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9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91화(29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91화
본선 1차의 평가 방식은 바로 악명 높은 ‘마이크 선택’이다.
본선 1차 무대의 곡을 팀 프로듀서가 전달해 주면 그걸 연습해서 프로듀서들 앞에서 선보이면 된다.
언뜻 들으면 별거 없고 간단해 보이지만 이 마이크 선택이 악명 높은 이유는 바로 본선 1차 무대에 오르는 이들이 선택되는 건 무대에 오르기 바로 직전이기 때문.
그래서 꾸준히 욕먹다가 시즌 6부터는 사라진 평가 방식이기도 했다.
보통은 개인전으로 준비해서 각자 선보이는 무대를 보고 프로듀서들이 무대에 올릴 두 명을 뽑는다. 심지어 이때 1절과 2절도 프로듀서들이 정해 주는 정도.
그리고 지금 공출과 BQ9은 2대2 조합으로 팀전 경쟁을 붙여 무조건 한 팀을 올리겠다는 방식을 택했다.
시즌 1부터 3까지는 이런 방식이 없었던 걸 상기해 보자면 꽤 파격적인 평가 방식이었다.
‘기왕 어그로인 내가 굴러 들어온 거 더 큰 어그로나 한 번 끌어보겠다, 이 말이군.’
게다가 세븐킥이 아예 인맥 힙합 대 실력으로 대결 구도를 만들어 놨으니 관심도는 더 커질 터.
어쨌든 재미와 분량 확보는 제대로 성공한 것 같았다.
“팀은 다 정해졌죠?”
다시 돌아온 공출이 우리에게 USB를 하나씩 나눠 주기 시작했다.
“이게 본선 1차 곡이고요, 중간 평가는 이틀 후에 여기에서 할 예정입니다. 잘 준비해 오세요.”
최종 평가는 본선 무대 밑에서 이루어지는 마이크 선택이라는 사실을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겨우 이틀.
연습실은 조별 음원 미션 때와 마찬가지로 덥넷 측에서 제공해 줬다.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건 본선 1차 곡을 들어 보는 거였다.
“오, BQ9이네.”
팀 선택을 하고 부러 찾아봤던, 이전 시즌에서의 공출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곡에 작곡가가 BQ9인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대 컨셉 같은 건 BQ9의 스타일에 맞추는 편이 유리할 것 같고.
“앞, 뒤?”
“파트는 완성도 높은 쪽으로 정하면 될 것 같은데요. 어차피 우리 둘이 경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여유 넘치는 내 대답에 제 뒷머리를 마구 헤집은 세븐킥이 툭 내뱉었다.
“그럼 네가 벌스 2 해라. 더 정할 거 있어?”
“기왕 이렇게 무대 올라갈 팀 짜인 거, 무대 의상이랑 무대 컨셉도 정하죠. 본선 1차 볼 때마다 즉석 뽑기 때문에 무대가 중구난방에 어수선한 거 은근 거슬렸거든요.”
“다 찢어 버린다는 기세로 가게. 컨셉이 뭐가 중요해.”
“제가 아이돌이라서 아이돌 활동 컨셉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저는 곡에 맞춰서 무대 틀이랑 랩핑 좀 잡자는 소리였어요. 각자 하다가 어수선하게 물과 기름 되지 말고. 그리고 준비 열심히 했다는 걸 보여 주기에는 이게 진짜 잘 먹히거든요.”
“아, 그 소리였어?”
고개를 끄덕인 세븐킥이 멈칫했다.
“의상은 설마… 아이돌룩 입자고 하는 건 아니지?”
내가 5부 반바지 마린룩이라도 내민 것처럼 잘게 떨리는 세븐킥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븐킥이 입을 떡 벌렸다.
“시발, 진심?”
“아이돌룩도 범위가 넓거든요. 청량, 섹시, 큐티, 하이틴, 기타 등등. 그런데 이것들은 아무래도 형님이 소화를 못 하실 것 같고.”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말하자 세븐킥은 승질을 내야 할지 안도를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뭘 입자고?”
“이거요.”
검색 결과가 뜬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세븐킥도 충분히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의상을.
* * *
“와, 미치겠다. 이번 달까지는 무조건 곡 나와야 하잖아.”
세븐킥과의 빡센 곡 연습을 끝내고 어두운 저녁 무렵에야 내 작업실에 돌아올 수 있었다.
힙합 서바이벌과 레브 활동 준비가 겹쳤지만 하필 세븐킥과 본선 1차의 운명 공동체가 되는 바람에.
그럼 어떡하겠나. 내 수면 시간을 줄이는 수밖에 없지.
“그런데 DTB랑 병행은 가능해? 본선은 준비할 거 많잖아. 그만큼 시간도 써야 하고.”
“최대한 이번 주 안에는 곡 초안 잡아 놔야지. 본선 1차야, 주는 곡 그대로 부르면 된다지만 세미 파이널부터는 정신없으니까. 파이널은 두 곡이나 준비해야 하고.”
기지개를 쫙 펴며 견하준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대꾸했다.
아마 이번 주에 8화와 9화 분량 확보를 위해서 본선 2차 준비하는 과정까지 촬영할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도 본선 2차는 신경 써야 할 세미 파이널 무대보다는 좀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기에 이번 주가 심적으로 제일 여유로운 한 주가 되리란 건 명확했다.
현재 나는 DTB 조별 음원 미션 과정과 세상에 내어놓은 결과물의 평가를 거치면서 다시 자신감이 꽤 붙은 상태였다.
“이건 좀 괜찮게 뽑힌 거 같은데. 야, 준아. 가이드 녹음 한 번만 해 보자. 랩파트는 생략하고 1절만 일단.”
가사가 적힌 악보를 견하준에게 넘기자, 가사와 악보를 쭉 훑은 그가 녹음 부스로 들어갔다.
작업실을 울리는 견하준의 목소리에 맞추어 턱을 까딱였다. 슬럼프를 겪으며 꾸역꾸역 작업했던 곡들이 워낙 로우 퀄리티라서 오랜만에 괜찮게 나온 곡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헤드셋을 벗고 녹음 부스를 나오는 견하준의 표정은 미묘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여상한 얼굴로 돌아왔다.
다시 재생시키자 방금 녹음한 가이드 녹음본이 오디오에서 그대로 흘러나왔다.
“오, 정규 앨범 수록곡 작업 먼저 하신 거예요?”
중간에 작업실에 들어온 류재희가 녹음본을 좀 듣더니 내게 물었다. 어두워지는 내 표정을 곧바로 캐치한 류재희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다급히 말을 정정했다.
“수록곡이 아니라 올해 컴백 타이틀곡이었구나….”
“정확히 말하면 타이틀곡이 아니라 타이틀곡 후보.”
류재희의 말을 다시 정정해주며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죄송요.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곡 퀄리티가 안 좋은 건 아닌데 이제까지의 타이틀곡에 비하면 임팩트가 약하다고 해야 하나? 약간 특색이 없다고 해야 하나? 혹시 이런 평가도 불편하세요?”
평가 뒤에 덧붙여지는 류재희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손을 내저으며 견하준을 돌아보았다.
“준, 재희랑 같은 생각?”
“무난하긴 했어.”
그 대답에 머리를 거칠게 헤집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오히려 잘됐지. 수록곡 퀄리티로 컴백하는 것보단 낫잖아.”
어쩐지 표정이 미묘하더니만. 내가 이제까지 하도 슬럼프를 극복한답시고 뽑아 내던 로우 퀄리티 곡들만 듣다 보니 기준과 듣는 귀 수준이 낮아진 모양이다.
DTB 때는 비트가 다 찍혀 나왔으니 멜로디를 입힐 일이 없었지.
비록 정규 앨범 전 공백기를 줄이는 취지라긴 했다만 이번 활동은 꽤 중요했다.
내가 DTB 시즌 4로 끌어온 파이, 그리고 가 해외에서 반응이 터진 덕에 끌어올 수 있는 해외 파이.
이 두 파이를 온전히 먹을 수 있느냐 아니냐가 이번 활동에 달렸다.
그리고 의 부진했던 국내 성적으로 실망했던 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이번 활동의 성적은 무조건 기대치 이상으로 나와야 했다.
“레브 제610회 회의, 방 좀 바꾸자.”
곡 작업을 대충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을 모아 놓고 회의라는 탈을 쓴 선언을 던졌다.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환경을 조성해 보는 게 매너리즘과 슬럼프 극복에 도움이 된대.”
“저도 좀 오랜만에 방 바꾸고 싶었어요. 방 햇볕 너무 세요.”
류재희가 곧바로 말을 얹으며 동의했다. 다른 멤버들도 차례로 고개를 끄덕였다. 류재희는 이미 발 빠르게 포스트잇으로 방 룸메이트 뽑기용 쪽지를 만들고 있었다.
“조금은 아쉽네. 독방이 중간에 깨는 일 없이 편했는데.”
“그럼 준이 너는 그대로 독방 써라.”
견하준에게 독방을 토스하다가 내 독선으로 결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슬그머니 회의로 넘겼다.
“자자, 레브 제611회 회의. 하준이가 계속 독방 쓰는 거에 이의 있는 사람?”
의외로 제가 독방을 쓰고 싶다고 이의를 제기하고도 남았을 김도빈은 순순히 동의했다.
“하준이 형이랑 룸메 하느니 차라리 이든이 형의 모닝 등쌀을 견뎌 내는 게 훨 낫죠. 저 진심 그때 새벽에 휴대폰 하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잖아요. 최대한 불빛 안 새어 나가게 이불 뒤집어쓰고 휴대폰 켜도 바로 ‘도빈아’ 소리 날아오는데, 어우….”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는지 김도빈이 진저리치며 고개를 저어 댔다.
“그래, 도빈아. 나도 참 힘들었어. 뒤척이는 건 잠버릇의 문제니까 굳이 뭐라곤 안 하겠는데, 새벽 두 시에 안 자고 왜 휴대폰을 켜.”
견하준이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김도빈을 말로 후려 팼다.
다른 멤버들 역시 견하준이 독방을 쓰는 것에 동의했다. 다들 한 번씩 견하준과 룸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 터라 견하준의 예민한 잠귀를 잘 알고 있었다.
유일하게 견하준의 독방 확정을 반대하는 건 독방을 양보받은 당사자 본인이었다.
“나 말고도 독방 쓰고 싶은 사람은 분명 있을 거잖아. 나 혼자 이렇게 오래 독점하는 건 아닌 것 같아.”
포스트잇 한 장을 더 떼어 별 모양을 그린 견하준이 그걸 다른 쪽지 사이에 던져 넣었다.
동그라미 두 개, 세모 두 개, 그리고 별표 하나. 이렇게 해서 총 다섯 개의 쪽지가 마구 섞어졌다.
각자 하나씩 고른 다음 쪽지를 펼쳐 공개했다.
“별이네.”
견하준은 또 다시 독방에 당첨되었다.
방 당첨 결과가 마음에 드는지 견하준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타짜의 소질을 보이던 견하준이 이번 뽑기에서도 재능을 발휘했는지, 아니면 정말 운의 영역인지는 본인만이 알겠지.
류재희가 종이를 다시 섞을 때까지 시선이 종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걸 보면 전자일 가능성도 높긴 한데….
“세모 누구세요? 엥, 류재 너야? 진짜? 오예! 오랜만에 막내라인 룸메이트! 류재, 우리 룸메이트야!”
“오, 그러고 보니까 형이랑 룸메 된 건 이사 오고 처음이네.”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룸메이트 결성을 자축하는 막내라인의 양옆에서 나랑 서예현은 떫은 얼굴을 한 채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각자의 앞에는 동그라미가 그려진 종이가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기념비적인 세 번째 룸메이트 당첨이었다. 이사 전 반지하 숙소까지 더하면 네 번째군.
회귀 전에 멀어졌던 거리감 지금 몰아서 줄이라고 이러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