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9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92화(29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92화
방을 옮기는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걸리는 게 하나 있었다.
“아니, 잠깐만. 내가 분명히 새로운 환경이라고 했잖아. 그러면 방만 바꾸는 게 아니라 룸메이트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냐? 예현 형은 솔직히 너무 익숙한데? 김도빈만큼이나 익숙한데?”
내 항의 때문에 졸지에 룸메를 뺏기게 생긴 김도빈이 다급하게 번쩍 손을 들어 올렸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읍!”
헛소리를 하는 김도빈의 입을 성공적으로 틀어막은 류재희가 꽤 신뢰가 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저희가 올해 방을 한 번도 안 바꿨잖아요. 그 말인즉슨 형은 스물네 살의 예현이 형이랑은 한 번도 룸메를 안 해 본 셈이죠. 새로운 룸메이트, 짠.”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런가…?”
납득이 가서 고개를 끄덕이자 서예현이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타박을 날렸다.
“‘그런가’는 뭐가 ‘그런가’야. 이 팔랑귀 자식아. 이러다가 옥장판도 사겠다?”
“당연히 이걸 도빈이나 형이 말했으면 헛소리라고 했겠지. 그런데 막내가 이러니까 뭔가 신빙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이걸 보니까 사이비 종교가 탄생하는 메커니즘을 알 것 같다. 지능을 막내한테 위탁하는 걸 그만두길 추천할게.”
서에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로 꼭 필요할 때만 외주 주는 걸 이런 식으로 곡해하다니. 누가 들으면 내가 평소에도 내 지능을 막내한테 위탁하면서 사는지 알 거 아니야.
짝짝, 박수를 두어 번 친 견하준이 제게 시선을 집중시킨 후 입을 열었다.
“일단 하루만 이렇게 정해진 대로 방을 써 보자. 만약 이든이 네가 이건 새로운 환경이 아니라고 느끼면 내일 또 바꾸면 되지. 아니면 하루마다 바꿔도 괜찮고.”
참으로 좋은 생각이었다. 나를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그 제안에 괜히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서예현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다들 벙찐 눈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말이다.
서예현이 견하준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어? 방을 하루마다 바꿔…?”
“이든이가 새로운 환경이 필요하다고 하니까요. 제일 고생하는 리더를 위해서 이 정도 수고 정도는 다들 해 줄 수 있잖아요?”
“어어…. 못 해 줄 건 없지… 어….”
견하준에게 휘말린 서예현이 얼떨결에 동의했다.
“역시 하준이 형. 여기서 반박하는 놈이 천하의 역적이 되도록 프레임을 짜서 반대 의견을 원천봉쇄하다니.”
류재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새로운 환경이 필요한 건 나였으므로 류재희와 나만이 방을 바꾸면 됐다. 옮긴 짐의 정리를 끝내고 침대에 풀썩 눕자 서예현이 나를 불렀다.
“야, 윤이든.”
“왜.”
“우리 룸메였을 때 방 분위기 어땠지?”
“몰라, 어색했던 것밖에 기억 안 나. 그런데 그건 왜?”
“네가 하루 만에 방 바꾸자고 하는 걸 막게 그때와 다른 새로운 분위기 좀 조성해 주려고.”
“어어, 벌써 새롭다.”
서예현의 말에 건성건성 대꾸하며 창가를 통해 밝게 비쳐오는 햇빛을 마음껏 만끽했다. 흠, 내일 굳이 방을 또 바꾸지 않아도 될지도?
* * *
본선 1차 무대 중간 점검 당일.
의상을 맞춰 입고 온 우리를 위아래로 훑은 IJM이 감탄을 내뱉었다.
“이야, 유니폼도 맞춰 입고 왔어? 아이돌 유닛이 따로 없다, 아주.”
말투가 하도 담백해서 빈정거림인지 진짜 감탄인지 긴가민가했다.
세븐킥은 그 말을 감탄으로 받아들인 듯, 조금은 자랑스럽게 혼잣말했다.
“오, 나 좀 아이돌같이 보이나?”
IJM이 미간을 팍 구기는 걸 보니 역시 빈정거림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단순히 세븐킥의 잔뜩 콧대 높아진 모습이 꼴 보기 싫었거나.
나란히 서 있는 우리 앞으로 공출과 BQ9이 자리를 잡고 의자에 앉았다. 그게 꼭 뉴본에서의 연습생 월말 평가를 생각나게 했다.
물론 LnL은 그런 거 없었다. 그렇다고 심적으로 마냥 편했던 건 아니었지만.
“이쪽은 준비를 정말 본격적으로 했네요.”
무대 의상을 맞춰 입은 우리를 보며 공출이 고개를 끄덕였다. BQ9의 얼굴에도 은은하게 만족스럽다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럼 IJM이랑 노네임 팀부터 한 번 보죠.”
둘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IJM은 조별 음원 미션의 조장 게릴라 미션이었던 단독 공연에서 증명했듯 오히려 세븐킥보다 실력은 한 수 위였다.
무난하다는 평을 받았던 그 미션에서 보여 준 모습답게 딱히 튀지 않고 노네임과도 합을 잘 맞췄고 말이다.
평타 이상의 무대.
그게 IJM&노네임 팀의 무대에 내가 내린 평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진 나와 세븐킥의 공연은 연습했던 대로 실수 없이 잘 끝났다. BQ9은 제법 만족한 표정이었지만 공출의 표정은 애매했다.
“내일 최종 선택으로 뵙겠습니다.”
공출과 BQ9이 연습실을 나서고, 이어서 IJM과 노네임도 나갔다. 세븐킥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우리도 오늘은 이대로 쫑?”
“내일 무대에 서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한번 맞춰 보고 가죠.”
내 권유에 나를 빤히 보던 세븐킥이 갑자기 물었다.
“너 혹시 뭐, PD픽 그런 거냐?”
PD픽은 방송에서 갑자기 내 라이벌로 위치가 격상된 최형진(G-TE)이고.
“아니요.”
“그런데 왜 그렇게 확신해?”
세븐킥의 어깨를 가볍게 한 번 툭 쳤다.
“인맥 대 실력이라면서요. 형도 확신해서 저 선택한 거 아니었어요?”
자신만만하게 웃자 제 앞머리를 넘기며 스냅백을 고쳐 쓴 세븐킥이 투덜거렸다.
“야이씨, 내일 만약에 떨어지면 책임져라. 실망 안 하려고 기대감 최대한 버려 놨는데 그걸 또 MAX로 차오르게 만드네.”
마지막 연습을 마치고 작업실에서 곡 작업을 조금 한 뒤, 내일의 무대를 위하여 너무 늦지 않게 숙소로 도착했다.
그렇지 않아도 갈증 난 상태였던 내 눈에 거실 탁자 위에 올려진 카페 테이크아웃 컵이 눈에 들어왔다.
오, 아이스 아메리카노. 얼음이 좀 녹긴 했지만 그래도 제법 시원해 보였다.
“어어, 형! 그거 마시지 마세요!”
컵을 들기가 무섭게 류재희가 다급하게 나를 만류했다.
“그거 마시면 형 이제 내일 무대 못 서요.”
“뭔데? 아메리카노가 아니고 사약이야?”
유난히 시커메 보이는 테이크아웃 컵 속 액체를 흔들며 묻자 류재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메리카노 맞아요. 그런데 그냥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도빈이 형이 어른의 맛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서 시킨 5샷 아메리카노라서 문제죠.”
“사약 맞네. 대체 언제부터 5샷 아메리카노가 어른의 맛이었냐?”
“4샷 아메리카노 마시는 형이 도빈이 형 기준에서는 멋있어 보였나 보죠.”
“나 참, 멋있는 거 다 얼어 뒤졌다. 아니, 내가 평소에 그렇게 마시는 것도 아니고 밤샘할 때나 한 번씩 마시는 건데 그걸 대체 왜 따라 해? 그리고 거기에 샷 하나는 왜 더 추가한 건데?”
“도빈이 형이잖아요.”
짧지만 납득 가는 이유였다. 이해하려 들지 말지어다.
왠지 누군가가 조금 마신 것 같더니만. 분명 김도빈이 몇 입 마시다가 도저히 못 먹겠다고 여기에 이렇게 내팽개쳐 놨겠지.
“그런데 왜 내가 이거 마시면 무대에 못 서?”
“밤새우면 피곤하잖아요. 랩하다가 하품하시면 어쩌려고 그래요.”
“졸면서도 해, 인마.”
픽 웃으며 농담조로 대꾸하곤 컵을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무대 연습하다가 오신 거예요?”
“아니, 그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맞춰 봤고. 곡 작업하다가 왔지. 내일 DTB 촬영 있어서 오래는 못 했지만.”
“형,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형이 정 힘드시면 이번 활동곡은 외부에서 받아 와도 되니까….”
외부에서 받아 온다는 말에 순간 표정이 굳었지만 류재희가 내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한 말임을 상기하며 바로 표정을 풀었다.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걸 선택하면 레브에서의 내 기여도가 확 줄어드는 것 같은 기분이라 그건 정말로 최후의 수단으로 두고 싶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류재희는 내 잠깐의 정색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실수했다는 표정을 보니 말이다.
“맞아요, 빌보드 차트인 작곡가인 저도 있고요.”
장난스럽게 웃은 김도빈이 맹물이 될 정도로 우려먹은 빌보드 차트인 작곡가 드립을 치며 끼어들었다. 덕분에 잠깐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그래, 재희야. 형이 설마 형 생각해서 하는 소리인 거 모르겠냐. 그리고 도빈아, 헛소리할 시간에 얼른 저거나 치워라.”
류재희와 김도빈의 머리를 한 번씩 가볍게 헤집어 주고는 새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냥 버릴까?”
“그래, 형. 그냥 버려. 또 피해자 나오기 전에.”
등 뒤로 막내 라인의 소곤거림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날 밤.
나는 개꿈을 꿨다.
김도빈이 작곡한 곡이 대표님 픽이 되어 활동곡으로 선정되는 개꿈을. 그리고 김도빈의 곡을 너무 마음에 들어 한 대표님이 레브 전속 작곡가로 김도빈을 임명하는 개꿈을.
‘이건 충분히 빌보드 차트인을 할 수 있는 명곡이에요!’
‘그래, 이든아. 그렇게 됐다. 네 곡은 수록곡으로 넣어 보는 게 어떻겠니? 세계관은 스케일 크게 우주 전쟁으로 갈까?’
회귀 전의 일과 개꿈의 상상이 제멋대로 섞이는 바람에 현실성이 애매하게 있는 게 더 열 받았다.
안 된다고, 대표님은 귀가 없으시냐고, 우리 다 망하는 꼴 보고 싶냐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내 입을 단단히 틀어막은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씨바, 이러다가 무한 회귀하게 생겼다고!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나를 세차게 흔들어 대는 손길에 그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 눈을 떴다.
어둠과 잠기운으로 흐릿했던 시야가 점점 또렷해지며 나를 깨워 이 끔찍한 악몽에서 구해 준 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렇게 끙끙거려? 네가 하도 앓는 소리 내서 깼잖아.”
“내가…?”
“어, 네가. 어디 아프기라도 해? 구급차 불러 줘?”
“아니, 좀 끔찍한 개꿈을….”
잠결에 멍하니 대꾸하다가 나와 대화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자각하자마자 멈칫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화였지만 대상을 자각하는 순간 이상함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슬쩍 곁눈질로 베개 옆에 있던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은 새벽 3시 5분.
등골이 오싹해졌다. 잘 때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서예현이 한밤중에, 그것도 겨우 내가 끙끙거리는 소리에 깼다니. 이게 무슨 방금 꾼 개꿈이 현실 되는 소리야.
절대 가능성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앞에서 마주하자 절로 공포심이 들었다.
왜 내가 성격 반전이라는 페널티를 받았을 때 멤버들이 귀신 들렸다고 난리를 쳤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겁쟁이 자식들이라고 혀 차서 미안하다. 실제로 마주하니까 정말로 호러가 따로 없구나.
귀신 들렸는지 아니면 내 개꿈 속 인물 2탄인지 모르겠는 슈뢰딩거의 서예현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대체 누구신데 예현 형 몸으로 이러고 계세요?”
“도빈이가 기어코 너까지 물들이는 거에 성공했구나.”
이상하다. 나한테 저런 막말을 내뱉는 걸 보면 서예현이 맞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