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9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93화(29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93화
고작 이런 이유로 큰 소리를 내서 이 한밤중에 멤버들을 모두 깨우는 김도빈 같은 짓은 할 수 없었기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의 조명을 켠 후 검증을 시작했다.
“춤… 은 이 시간에 추면 층간소음으로 아랫집에서 항의 들어올 것 같고… 랩 한번 해 봐.”
내 당당한 요구에 팔짱을 단단히 낀 서예현이 코웃음 쳤다.
“내가 잘하면 또 ‘누구세요’, 이 난리 칠 거지?”
합격.
그 띠꺼운 대답을 듣자마자 안도했다. 저건 서예현이 확실하다.
만약 저 서예현이 순순히 내 말을 따라서 랩을 했다면 그건 진짜로 서예현의 탈을 쓴 무언가였을 테니까.
“왜, 혹시 형도 방문 닫고 랩 맹연습이라도 했어? 너무 자신 있어 보인다?”
잠기운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얼굴을 마주하고 농담조로 픽 웃으며 물었다. 분명 인터넷에서 봤던 드립을 섞은 농담이었는데 서예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진짜 했나? 그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다니, 참으로 한탄스러웠다.
미친 듯이 쪼개고 있자 서예현이 내 베개를 덥석 집어 들었다. 금방이라도 내 대가리를 후려칠 것만 같은 베개의 각도에 알았다고, 더는 안 놀리겠다는 뜻으로 손을 휘저었다.
“그런데 진짜로 형한테 뭐 이상한 거 씐 거 아니야? 형이 어떻게 내 앓는 소리를 듣고 깨? 업어서 거실 소파에 던져 놨을 때도 못 일어났잖아.”
“네 앓는 소리에 깬 게 아니라 처음부터 잠을 못 자고 있었다. 됐냐? 생색이나 좀 내려고 했는데 귀신 들린 취급이나 받을 줄이야.”
서예현이 여전히 달아오른 얼굴에 연신 손 부채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형이?”
잘 시간만 되면 칼같이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드는 서예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변명 역시 딱히 믿기진 않아 눈을 깜빡였다.
“도빈이 덕분이지, 뭐. 그놈의 5샷 아메리카노.”
덕분에 아직도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 죽겠다며 제 심장께에 손을 올린 서예현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녀석들이 말하던 그 피해자가 바로 서예현이었군.
이제야 사건의 전말을 모두 알아낸 나는 안심하며 몸에 힘을 뺐다.
만약 정말로 서예현한테 뭐가 들린 거였다면 천주교라던 김도빈을 깨워서 엑소시즘이라도 시키려 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겁 많은 김도빈이 순순히 협조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나는 필연적으로 김도빈을 향해 윽박을 지를 수밖에.
“그런데 대체 무슨 개꿈을 꿨길래 그렇게 끙끙거려? 본선 1차에서 떨어지는 꿈이라도 꿨어? 내일 본선 첫 무대가 그렇게 긴장돼?”
묻는 내용을 봐서는 서예현은 본선 1차의 경선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본선 1차에서 떨어지는 건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하긴, DTB 이전 시즌을 봤어야 알지.
“내가 그런 게 부담될 리가.”
공출의 미묘한 표정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만 공출의 양심보다는 공출의 오래오래 DTB에 프로듀서로 나오고 싶다는 마음과 어쨌든 존재할 DTB 대본을 믿었다.
공출이 이 시점에 인맥 힙합 선택하면서 나 떨어뜨려 봐라. 8화나 9화 끝나고 먹을 욕으로만 아주 거뜬히 만수무강할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지금은 내가 다시 올라올 수 있는 패자부활전도 없었다.
“그냥 진짜로 개꿈이었어. 도빈이가 작곡한 곡이 대표님 픽이 되는 개꿈.”
뒷머리를 거칠게 헤집으며 꿈 내용을 말해 주자 서예현이 영 착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건 왠지 현실성이 있는데….”
“뭐라고?”
식겁하며 되묻자 서예현이 고개를 짧게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대표님이 워낙 감이 없으니까 뭔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거 같아서. 우리 데뷔 초에 가져온 곡은 아직도 기억나. 너무 충격이어서.”
하긴, 처음으로 서예현이 팀 탈퇴를 인질 삼아서 반발했었지. 정말 오죽했으면 그렇게 협조 안 해 주던 초반 서예현이 나섰겠냐.
“그런 꿈을 꿀 정도면 곡 작업 때문에 어지간히 스트레스받고 있는가 본데, 하준이한테라도 상담해 봐. 어차피 너, 나랑 막내들한테는 말할 생각 없잖아.”
“어어.”
설렁설렁 대꾸하면서도 서예현의 충고를 내 선택지에 굳이 넣지 않았다. 견하준한테 괜히 내 일로 심적인 부담을 안겨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견하준이 내가 얹어 주는 부담 때문에 나를 놓는 경험은 한 번으로 족했으니까.
짧게 한숨을 내쉰 서에현이 다시 방의 불을 껐다.
“내일 무대 올라가야 하잖아. 너라도 빨리 다시 자. 나는 아무래도 오늘 잠들기에는 그른 것 같다.”
내일 스케쥴이 없어서 망정이라며 서예현이 제 눈 밑을 꾹꾹 눌렀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눕는 서예현을 힐긋 돌아보다가 나 역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형, 그거 알아?”
내 뜬금없는 질문에 서예현이 몸만 뒤척여 나를 바라보았다.
“내일 무대에 올라가는 건 본선 1차 합격자들이야.”
“그게 왜?”
겨우 그 말을 하려고 저를 불렀느냐는 눈빛과 표정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아니, 형이 꼭 내가 본선 1차 붙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들려서.”
잔뜩 구기거나 질색하리라 예상했던 얼굴은 예상외로 심드렁했다.
“맨날 듣고 비교당했던 게 네 랩인데 내가 그 정도 확신도 못 해?”
틀에 박힌 응원보다도 더 묵직한 믿음이 느껴져 헛웃음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그러게,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될 수 있었구나.
* * *
본선 1차 무대, 마이크 선택 당일.
나, 세븐킥, IJM, 노네임 이렇게 넷은 백스테이지에서 프로듀서들과 함께 대기 중이었다.
Team G1&AJA의 본선 1차 무대가 한창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있었다. 우리 팀의 선택 시간 역시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나 진배없었다.
말없이 서 있는 네 명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이 점점 짙어졌다. 세븐킥이 땀에 젖은 손으로 모자를 고쳐 썼다.
공출과 BQ9이 제작진에게 불려 가자 IJM이 기다렸다는 듯이 디스를 내뱉었다.
“그 옷 입고 그대로 고척 가라. 오늘 경기 있더라.”
“구단 유니폼이 아니라 자체 제작이거든요, 형님.”
IJM을 향해 비실비실 웃으며 맞디스로 후려갈겼다.
“에휴, 촌스럽긴. 자체 제작 유니폼도 모르쇼?”
세븐킥이 대놓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맞디스에 한마디 보탰다. 노네임은 차마 이 세미 신경전 겸 디스의 장에 끼지 못하고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유피와 Geek승이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 팀은 셋 중에서 사포가 탈락했군. 예상했던 결과였다.
“수고했다. 무대 완벽했어!”
AJA가 유피의 등을 마구 두드리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유피도 나랑 스코언과 더불어 강력한 우승 후보 셋 중 하나였기에 다른 우승 후보인 내 앞에 있는 AJA의 어깨에는 힘이 빡 들어가 있었다.
이제 정말로 마이크 선택의 시간이 도래했다.
Team G1&AJA의 넷은 막 선택의 순간에 놓인 우리 팀의 결과가 내심 궁금했는지 대기실로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 주변을 괜히 서성이고 있었다.
평소의 노란 색안경 대신 선글라스를 쓴 지원이 형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팔짱을 낀 채로 공출을 뚫어지라 응시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긴장감이 백스테이지를 감돌았다. 드디어 공출이 입을 열었다.
“오늘 본선 1차에 올라갈 팀은….”
모두의 시선 한가운데에 있는, 마이크를 쥔 공출의 손이 쓰윽 움직였다.
* * *
무대 앞쪽의 관객 스탠딩석, 정 모 양은 DROP THE BEAT 4 슬로건을 꼭 쥔 채로 눈을 빛내며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Team 공출&BQ9, 그녀에게는 사실상 윤이든 팀의 차례였다.
정 모 양은 1001몽(@thousandonemong)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짹에서 활동 중이었다.
바로 오늘의 DTB 본선 1차 직관이라는 행운을 위해서 그녀는 토끼 모자와 크롭티와 쓰리피스 정장과 최초공개 치즈고영이든을 놓치고 은행강도와 산악회장과 궁예를 버텼던 게 분명했다.
인생사 새옹지마요 전화위복이라지 않는가.
사실 정 모 양은 DTB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호의 영역에 가까웠다.
집에서 뜨신 밥 처먹고 용돈 타 가면서 사는 남동생이 래퍼랍시고 어디 할렘가 밑바닥 개고생 코스프레나 하고 자빠졌는데 제 남동생 같은 놈들이 득실거리는 DTB를 어떻게 좋아하겠는가.
이번에 그녀의 최애인 윤이든이 나오는 게 아니었다면 망할 남동생 클론들만 우글우글한 DTB는 쳐다도 보지 않았을 거다.
심지어 그녀의 동생도 DTB에 두 번이나 나갔다.
우리 가족 다 호강시켜 준다고 호언장담하며 나간 DTB 시즌 3은 1차 예선에서 얼굴 딱 3초 비추고 탈락했고, DTB 4에서는 티비에 나오지도 못해서 문제였지만.
그래 놓고 윤이든 같은 인지도 있고 방송물 먹은 아이돌 래퍼들이 많이 지원해서 제가 떨어진 거라고 집에 와서 징징거렸지.
이렇게 주제 파악이라곤 못 하는 그녀의 남동생 같은 놈들이 내새끼를 깎아내릴 게 뻔해서 DTB 방영 전부터 괜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불호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한 번씩 회피하다가 뼈아픈 경험들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본선 1차에서 떨어지면 무대도 올라오지 못한다지만 그녀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내 새끼가 결코 이곳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녀의 심미학에 맞는 무대 의상을 입은 채로 올라올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비트와 함께 비트 위에 얹힌 전주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슬로건을 꽉 쥔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드디어 열린 무대 스크린 중앙으로 두 사람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정 모 양은 조명에 맞서 눈을 부릅뜨고 윤이든의 의상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선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미친, 야구 유니폼!’
윤이든의 이마에 멋스럽게 걸쳐진 스포츠 헤어밴드와 남돌들이 컨셉으로 한 번씩 입는 야구 유니폼. 그리고 눈 밑에 귀엽게 칠해진 검은 칠.
기왕이면 레브 멤버들과 컨셉 포토로 입어 줬으면 하던 의상이었지만 야구 유니폼의 형태는 무궁무진했으므로 이걸 직관할 수 있다는 게 정 모 양(feat.1001몽)은 매우 기뻤다.
윤이든에게만 머물던 정 모 양의 시선이 잠깐 윤이든의 옆에 있는 래퍼에게로 가 닿았다. 그녀가 짧은 평가를 내렸다.
‘오, 옆에는… 진짜 야구 선수 같다.’
세븐킥에게도 어울리는 아이돌룩을 입히겠다는 윤이든의 전략은 어찌 보면 충분히 성공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