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9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95화(29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95화
* * *
오랜만에 하는 그룹 스케쥴인 라디오 스케쥴.
“그러고 보니까 요즘 이든 씨는 DTB에서 본선까지 진출한 유일한 아이돌 래퍼로 활약하고 계시죠?”
대본에 적힌 잡다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DJ가 요즈음 제일 핫한 이슈인 DTB 이야기를 꺼냈다.
“네, 아무래도 운도 따라 주고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많았던 터라 쟁쟁한 래퍼 분들과의 경쟁에서 본선까지 무사히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혹시 지금 우승을 향한 길의 라이벌로 의식하고 있는 상대가 있나요?”
“아무래도 라이벌로 계속 엮여 왔던 G-TE 씨라든지, 우승 후보로 현재 손꼽히고 계시는 스코언 씨나 유피 씨 정도?”
속내와 달리 내 입은 착실하게 방송용 대답을 내뱉고 있었다. 방송만 아니었어도 우리 형진이가 이 라인업에 낄 일은 없었을 텐데.
“DTB에 입고 나온 의상들도 굉장히 화제가 됐는데, 일명 윤이든병이라고. 베레모부터 시작이었던가요?”
요새는 내가 무난한 의상을 입고 나온 터라 윤이든병이 한결 자중되긴 했지만 여전히 안경이나 스포츠져지, 신발 등의 가벼운 패션 아이템들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네. 역병과 유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죠. 이게 좀 억울한 게, 저는 베레모랑 오픈셔츠가 유행할 거란 생각을 전혀 못 했거든요. 그런데 하필 이 둘이 보편적인 패션을 벗어나 버리는 바람에 역병 취급을…”
[오픈셔츠는 진짜 역병 맞았지ㅋㅋㅋㅋㅋ] [ㅇㄴ 갑자기 길거리 베레모남들 생각난다 그게 벌써 한달 전이라니]“8054님이 이렇게 보내 주셨네요. 윤이든병 덕분에 남친이 커플링 크롬X츠로 맞추자고 계속 졸라서 헤어졌어요. 이것도 역병 범주에 넣어 주세요.”
“축하드립니다…?”
덕분이라는 말에 일단 축사부터 내뱉고 봤다. 눈을 깜빡이며 신호를 주는 류재희를 보고 슬그머니 설명을 덧붙였다.
“여자친구 취향도 고려하지 않고 유행 따라서 커플링 맞추려는 것도 모자라서 싫다고 했는데도 양보도 안 하고 계속 밀어붙이는 건 헤어지는 게 맞죠.”
[이든이 답변 사이다ㅋㅋㅋㅋㅋㅋ] [그런건 지 일기장에나 쓰지 왜 우리애 들으라고 문자보내고 지랄?] [연애백서 독설남 어디 안 간다ㅋㅋㅋㅋㅋ]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보낸 거임? ㅋㅋ 지가 별 븅같은 남자 사귄 걸 이든이가 죄송하다고 해야 해?] [문자 아무거나 읽지 말고 좀 골라서 읽으세요] [하 ㅈㄴ 스윗해….]“이든 씨가 품절시킨 게 한두 개가 아닌데 혹시 광고 제의는 많이 안 들어왔나요?”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등산복 광고도 엄청 들어왔어요.”
“아, 산악회장룩…”
김도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야기는 DTB를 벗어나 또 다른 화제로 옮겨갔다.
“너튜브에서 1억 뷰를 찍은 버스킹 영상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죠. 듣기로는 그 채널 계정주, 7Second? 그분들이 이든 씨랑 정식 콜라보를 요청하는 공개 러브콜 영상도 올렸다는데.”
내가 DTB에서 활약한 덕에 힙합 본토에서 프리스타일로 갈겼던 그 버스킹 영상의 랩이 또 한 번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1억 뷰라는 뷰수도 한몫했다.
“사실 7Second 측에서 저희 소속사에게 연락을 넣어서 닿았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제가 한창 DTB 촬영 중이라… 네, 그렇게 됐습니다.”
[와 다행이다 하마터면 레브 북미투어 1년 돌고 올 뻔] [이든이 개인서바가 미국병 제지할 신의 한 수였음 ㄹㅇ] [7Second? 처음 듣는데 미국에서 유명한 가수임?] [미국에서는 버스킹 가수로 좀 이름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자작곡으로 음원도 낼 정도고]멤버들을 향해 질문이 내게만 집중되는 것을 좀 분산시키라는 신호를 슬쩍 보내자 류재희가 바로 내 말을 받았다.
“그 영상이 유명해지고 가 뜨면서 저희가 뉴욕에서 버스킹한 영상들이 덩달아서 발굴이 됐어요.”
“아, 이든 씨만 버스킹을 한 게 아니에요?”
“네, 사실 이게 벌칙이었거든요. 벌칙에 당첨된 저랑 이든이 형, 도빈이 형, 이렇게 셋이 버스킹을 했죠, 뉴욕에서.”
류재희의 설명에 가볍게 설명을 보탰다.
“1억 뷰를 찍은 영상은 이제 지나가다가 요청을 받은 거고, 저희끼리 노래 버스킹한 게 또 따로 있어요. 도빈이는 스트릿 댄스에 끼어드는 게 미션이었고.”
“도빈이 형의 댄스 버스킹도 천만 뷰 달성을 했고요, 저랑 이든이 형 노래도 800만 뷰를 찍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거기 달린 댓글에 이상한 점이 보였죠.”
“이상한 점이요?”
“두 영상 다 예현이 형이 찍혀 있었는데 예현이 형은 벌칙 당첨자가 아니어서 저희 옆에 서 있기만 했거든요. 도빈이 형의 경우에는 댄서 분이 처음에 춤을 권한 사람이 예현이 형이었고. 아무튼, 활약한 건 저희인데 댓글은 거의 절반이 예현이 형 이야기가.”
류재희의 말이 끝나자 김도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재주는 곰이 돌고 돈은 왕 서방이 받는다”
다들 웃음이 터진 와중에 서예현만이 빨개진 귀를 하고선 달아오른 얼굴에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서서방과 곰돌이들ㅋㅋㅋㅋㅋ] [보고 왔더니 진짜로 은발남 얼굴찬양이 반이옄ㅋㅋㅋㅋ] [도빈이가 나가서 멋진 관객 참여 버스킹 완성됐는데 대체 왜 예현이 대신 울 멈무가 나갔다고 아쉬워하시는지]“예현이 형, 부끄러워하지 마요. 우리는 글로벌적으로 먹히는 형 얼굴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맞아, 솔직히 우리가 형 앉혀놓은 이유가 그거였잖아. 기억 안 나? 형은 형의 역할을 완벽하게 완수한 거야.”
김도빈과 내가 양쪽에서 칭찬을 빙자하여 깝죽거리자 서예현이 이제는 숫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예현이 동생들이 하는 외모 칭찬 여전히 부끄러워하냐고ㅋㅋㅋㅋ] [이든이랑 도빈이처럼 저러면 나라도 부끄러울 듯…ㅋㅋㅋ] [내가 저 얼굴이었으면 익숙해서 무슨 찬양을 하든 아무 생각 안 들 거 같은데]“네, 이쯤에서 한 번 들어봐야죠. 빌보드 차트인한 바로 그 곡! , 광고 하나 듣고 레브가 선보이는 라이브로 바로 들어보시죠!”
짧은 광고가 흘러나오는 동안 멤버들과 함께 몸을 일으켜 마이크 앞에 섰다.
그렇게 잠시, 10초짜리 광고가 끝나고 곧 의 MR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듣기도 부르기도 싫었던 곡이 실패곡이 아니라는 걸 직면한 이후로는 한결 나아졌다.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이것 역시 활동 단축의 원인 중 하나였기에 시청자들과 이 라디오를 듣고 계실 팬분들을 위해 평소보다 좀 더 애정과 정성을 담아 곡을 불렀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디오 스케쥴이 마무리되고 곧장 숙소가 아니라 작업실로 다 같이 향했다.
“오, 형. 폼 다 돌아오신 거 같은데요? 확실히 어색한 부분들 다 빠지고 예전 느낌 확 살아요.”
“전에 내가 가이드보컬 불렀던 것보다 훨씬 느낌이 사네.”
계속 잡고 다듬었던 작업곡을 틀자 꽤 긍정적인 반응들이 돌아왔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90%의 곡이었다.
내 목표치인 120%가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90%까지 끌어온 것만으로도 꽤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것을 남은 시간 동안 120%로 만들 수가 있느냐.
“꼭 120%가 안 되더라도 이 곡으로 활동해도 괜찮지 않아요?”
김도빈의 물음에 류재희가 김도빈을 팔꿈치로 가볍게 쳐 입을 다물게 했다. 류재희는 이번 활동의 의미를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견하준은 내가 90%의 곡으로 타협하지 않으리란 걸 잘 알았다. 그래서일까, 견하준은 김도빈과 달리 이 곡을 활동곡으로 올리자는 설득이 아니라 회유를 택했다.
“정 DTB 본선 준비에까지 영향이 갈 정도면 차라리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이번은 외주 곡으로 활동하고, 네가 여유 있을 때 정규앨범 타이틀곡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어?”
맞다. 내 현재 상황과 이번 활동의 중요성을 따지면 사실상 견하준이 한 말이 최선의 선택지다.
견하준은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선에서 대안을 제시한 거다. 다만 그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이 내게는 가장 최악의 형태라는 게 문제지.
회귀 전의 상황을 모르는 지금의 견하준은 내 불안의 근원을 알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아무리 견하준이 나를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 한들 사라진 시간까지 어떤 수로 알겠나.
견하준마저 온전한 이해자가 되지 못한다는 걸 마주하자 작업실이 현재 북적거리고 있음에도 홀로 덩그러니 남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바, 사실 내가 극복해야 할 게 슬럼프가 아니라 외주 곡 트라우마인가?’
시스템! 시스템 나와 봐! 이거 맞아? 나 수면제처럼 외주 곡 트라우마 있어?
[시스템은 프로젝트 대상자의 슬럼프에 관련해서는 도움을 줄 수가 없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깨닫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돌아오는 냉정한 답변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을 확 차렸다.
그래, 너무 시스템한테 의지하면 안 되지.
얘는 멍 좀 때리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말 도입부 top 5 안에 드는 ‘아, 진짜’만 입에 올려도 사람을 전기로 지져댔던 극악무도한 시스템인데 내가 미쳤다고 믿고 있었네!
“그래, 내가 만든 90%의 곡보다는 남이 만든 100%의 곡이 낫겠지. 어차피 지원이 형이나 상열이 형한테 편곡 정도는 부탁하려고 했고.”
퍽 상식적인 대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놈으로 이상하게 비치지 않도록 부러 가볍게 말했다.
“이번 주 안으로 120%를 못 뽑아내면 그렇게라도 가야지, 어쩌겠냐.”
어깨를 으쓱하며 빙그르르, 의자를 돌리다가 어쩐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서예현과 시선이 딱 마주쳤다.
정확히는 나랑 견하준을 번갈아 힐긋거리는 시선과. 저 인간은 또 왜 저래?
“먼저 들어가. 나는 좀 더 작업하다가 들어가련다.”
멤버들이 작업실을 빠져나가자마자 작업실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머리 비우고 슬럼프 극복하려고 DTB 나갔는데 왜 타임어택만 더해지고 난리냐.
* * *
숙소로 돌아온 견하준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말실수한 부분이라도 있나?’
윤이든이 아무렇지 않은 척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주 찰나의 굳어짐을 눈치채지 못할 견하준이 아니었다.
되짚어봤지만 그가 제안한 대책은 이상할 게 하나 없었다. 당장 전 활동에서 와 함께 타이틀곡 후보로 경쟁했던 곡도 외주 곡이 아니던가.
‘<내 우주로 와>랑 그 다음 활동곡이랍시고 대표님이 받아 왔던 그 노답 3세트 곡이 너무 강렬했나?’
견하준이 헛발질을 하는 동안, 레브의 해결사 류재희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처럼 프듀멤 있는 그룹들 한 번 찾아보니까 알테어 선배님들은 작곡 캠프 열어서 다 같이 곡 작업에 참여하시던데요. 우리처럼 이든이 형의 ‘고독한 작업실에서 외로움을 떨쳐 줄 신경안정제 토템’이 아니라 진짜 막 전 멤버가 적극적으로요.”
알테어의 작곡 캠프는 케이제이의 부담감을 줄인다는 명목하에 케이제이가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막아 내고 감시하기 위한 차연호의 계책이었지만 류재희가 그걸 알 리는 없었다.
“아, 제발. 알테어 선배님들의 작곡 캠프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될지 몰라도 우리는 분명 해병대 캠프가 될 거라고. 이든이 형, 백퍼센트 그 트라우마 유발 시뻘건 유격모 쓰고 올 거라니까?”
쉬이 상상되는 레브 작곡 캠프의 모습에 김도빈이 진저리치며 고개를 저었다.
“류재 너 이든이 형이랑 함께하는 즐거운 작곡 놀이 한 번도 안 해 봤지? 헉, 나도 모르게 세뇌되어서 ‘즐거운’을 붙여 버리다니…!”
윤이든이 항상 붙이던 수식어를 저도 모르게 입에 올렸다가 다급히 입을 틀어막는 김도빈을 향해 견하준이 웃음기 한 점 없는 얼굴로 물었다.
“도빈아, 더 좋은 아이디어 있어?”
작곡 캠프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 못한다면 초 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 내포된 질문이었다. 물론 견하준은 딱히 김도빈이 이 질문의 속내까지 알아들으리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저으며 해맑은 부정의 대답을 내놓거나 헛소리와 비슷한 대답을 늘어놓을 것이라는 그의 예상과 달리 김도빈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러게요… 제가 이전에 하기 싫다고 징징거리지 않고 제대로 이든이 형한테 잘 배우기만 했어도 어떻게든 도움은 됐을 텐데…”
침울한 중얼거림에 견하준의 눈동자에 놀람의 빛이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