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9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96화(29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96화
세상에, 도빈이가 드디어 눈치라는 것을 탑재하다니.
정말로 눈치 있는 류재희였으면 작곡 캠프를 초 치는 앞선 말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본래 눈치가 부족하다고 당연시하게 평가되던 김도빈이라 그런가 이 정도도 충분히 감격할 만한 성장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더니만 이제는 약간의 흐뭇함을 담고 저를 보는 견하준의 모습에 김도빈이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레브에서 제일 무서운 형은 정말로 류재 말처럼 투명하디 투명한 이든이 형이 아니라 하준이 형일지도….
“다른 그룹은?”
“한 그룹은 소속사가 대형이라 소속사 전속 프로듀서가 있는 덕분에 그분이랑 프듀멤 분이 의견 교환하면서 곡 만들고, 다른 한 그룹은 그냥 저희처럼 프듀멤이 거의 다 하는 식이요.”
견하준의 물음에 류재희가 깔끔하게 브리핑했다.
“그러니까 변화를 주려면 아무래도 알테어 선배님들 방식이 제일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건 이든이 형이 혼자 짊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저희 의사를 반영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냐가 문제죠.”
윤이든 가부장 밈이야 (물론 본인의 성격과 성향도 한몫했지만) 어영부영 정착된 레브 식사 예절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긴 했으나 레브의 음악에서만큼은 처음부터 항상 가부장적이었다.
나머지 멤버들 역시 레브의 음악은, 그들이 침범하지 못하는 윤이든만의 영역이라고 여겼기도 하고 말이다.
지탱하는 기둥이 하나뿐이면 그 기둥이 무너졌을 때 붕괴를 막을 수 없다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생각하지 못한 건, 지탱하는 그 기둥이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음악의 성패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는 그 자신감 넘치는 말이 열일곱 살 류재희의 가슴에 하도 크게, 그리고 깊숙이 틀어박혀서.
류재희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러니 지금 같은 상황까지 도달해 버린 것일 테고.
‘뭐, 이제 와서는 쓸모없는 후회지만.’
눈살을 살짝 찌푸린 류재희가 제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올렸다. 한숨을 푹 내쉰 견하준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니까, 결국은 이든이가 음악의 영역에서도 우리의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는 소리네.”
윤이든을 잘 알고 있는 견하준의 입장에서 이건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가능의 영역에 가까웠다.
해내면 분명 도움은 되겠지만 그 과정이 극악의 난이도인, 말하자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마찬가지였단 말이다.
견하준의 그러한 반응을 보며 눈을 깜빡이던 김도빈이 나름의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본래 서브컬쳐 같은 걸 보면 원래 이런 건 의외로 정면돌파가 먹히기도 하는 법이었다.
“그냥 이든이 형한테 말하면 안 되나? 형 옆에는 언제나 동료들이 있다고?”
“이든이 형이 제일 진저리 칠 소년 만화 전개네.”
아주 자- 알 안다고 설렁설렁 대꾸하며 한 귀로 듣고 흘릴 윤이든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건 이든이 형이 스스로 알아야지. 우리가 백 날 천 날 말해 봐도 이든이 형 본인이 눈 막고 귀 닫고 있으면 끝이야.”
아무리 봐도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 류재희는 절로 터져 나오는 한숨을 꾸역꾸역 삼켰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서예현이 입을 열었다.
“내가 봤을 땐 윤이든 걔가 스스로 깨우치는 것보다 슬럼프 2탄이 찾아오는 게 더 빠를걸. 윤이든은 워낙 시야가 좁잖아.”
“그래도 DTB에서 하는 거 보면 시야가 좁진 않던데요. 지금 이든이 형이 성공적으로 피해 간 악편이 얼만데….”
“정정할게. 자기만의 영역인 음악만 관련되면 시야가 좁아지잖아, 걔는. 그러니까 무슨 깨달음의 계기가 생기든, 누군가가 물꼬를 터 주든 해야 한다고.”
류재희가 윤이든을 보는 시각과 서예현이 윤이든을 보는 시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윤이든은 류재희한테 나이 차가 좀 있고 마냥 커 보이는 형이었지만, 서예현한테는 제게 반말 찍찍 갈기고 갈궈 대긴 해도 어쨌든 동생이었으니까.
그러니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쪽은 아무래도 서예현이었다.
당장 의 실패의 충격을 극복해 냈던 것도 온전히 윤이든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G1 프로듀서와 그의 예전 힙합 크루원들의 도움이 있어서가 아니었던가.
그러니 윤이든이 레브 멤버들의 필요성을 느끼려면 그 깨달음을 일깨워 주는 계기 정도는 레브 멤버들이 만들어 줘야 했다.
‘손 많이 간다, 손 많이 가. 온 가족의 가부장 내조야, 아주.’
서예현이 투덜거림과 한탄 그 사이의 말을 속으로 삼켰다.
고개를 끄덕인 견하준이 서예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이든이랑 이야기해 볼게요.”
물론 윤이든을 제일 잘 알고, 윤이든이 제일 유해지는 건 견하준이 맞다.
하지만, 견하준에게라도 상담하라 했을 때의 그 미적지근한 반응과 오늘도 본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삐걱거림은 서예현에게 실패의 직감을 속삭였다.
“아니. 내가 할게.”
평소와 다른 서예현의 말에 견하준이 의외라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형이요…?”
“걱정하지 마, 안 싸워. 음, 혹시 내가 못 미덥거나 한 건 아니지?”
“그건 아닌데… 일단 형이 해 보시고 실패하면 말해 주세요. 그때는 제가 이야기해 볼 테니까.”
서예현 그도 스스로의 성공을 확신하는 건 아니었으나 김도빈은 물론이요 류재희는 머리 굴리는 일이 아니면 윤이든 본인이 의지하지 않으려 하는 어린놈이니 어쩌겠는가, 이 그룹의 맏형인 자신이 나서야지.
빼앗긴 수저 들기 1빠따의 권리를 되찾을 길은 요원했으니 이렇게라도 맏형의 위엄을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서예현의 맏형 위엄 찾기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 * *
DTB 촬영일, 이제 두 명으로 좁혀진 팀원과 프로듀서들이 나란히 마주 앉았다.
공출이 모두에게 좋은 선택을 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본인 레이블 소속 래퍼만을 꾸역꾸역 본선 2차랑 세미 파이널로 올리려고 해서 인맥 힙합의 온상지로 DTB가 평가받는 미래가 머지않긴 했지만 굳이 그 시초로 싸잡혀 욕먹을 필요는 없지 않나.
사실상 8강이나 다름없는 본선 2차는 팀 프로듀서들과 함께 만들고 오르는 무대였다.
경연곡 프로듀싱부터 피처링까지 팀 프로듀서들과 함께 해 나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들 입장에서는 무대 두 개를 준비해야 했기에 보통은 프로듀서들이 각각 팀원 한 명씩을 전담하여 본선 2차 경연곡을 프로듀싱하고 피처링에만 두 사람이 합류하는 식이었다.
“일단 대진표부터 짜라는데,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든이가 G-TE보다는 A01이랑 붙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어. 그러니까 내 말은, 괜히 모험을 하지 말자는 거지.”
공출의 말에 눈에 불을 켠 세븐킥이 곧바로 들고 일어났다.
“아니, 제가 지금 A01이랑 체급이 안 맞는다는 소리예요?”
“그 말은 아니고, 그냥 확실하게 이기자 이거지. 븐킥이 너는 왜 그렇게 막 삐딱하게 받아들이고 그러냐?”
공출의 가벼운 타박에 세븐킥이 입을 다물었다. 물론 프로듀서들 입장에서는 4강인 세미파이널까지 팀원들을 많이 올릴수록 좋다. 우승자를 배출할 확률이 높아지는 거니까.
IJM과의 디스전에서 패배한 탓에 조별 미션 조장이 될 기회를 놓치고 스코언 조의 팀원으로 들어간 탓에 실력이 조장급은 아니라고 과소평가당해서 그렇지, A01의 실력은 따지자면 세븐킥과 비슷한 수준이다.
“글쎄요, 아무래도 시청자들은 저랑 형진이 매치를 기대하고 있을 텐데 이러면 좀 김새지 않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세븐킥 형님도 잘하시니까, 프로듀싱만 신경 쓰면 충분히 이겨요. 그리고 저쪽에서도 대진표 짜 올 텐데 아마 100% 저랑 형진이랑 붙일걸요.”
우리의 필승 전략이 나 Vs A01, 세븐킥 Vs G-TE라는 건 뒤집어서 말하면 Team 원백&D.I 측에게는 필패 루트라는 뜻. 이 구도만큼은 분명 피하려고 하겠지.
최형진이 나랑 정면으로 맞붙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칠 리도 없고 말이다.
“제작진들이 그중 뭘 택할지는 뭐, 안 봐도 훤하고요.”
“허어, 그건 그러네.”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공출이 골 아프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그럼 일단 대진표는 말한 대로 이든이랑 G-TE 붙이는 걸로 짜고, 프로듀싱은….”
보통은 세미 파이널까지 올라갈 싹수가 보이는 참가자에게 짬이 더 찬 프로듀서가 붙는다. 프로듀싱 역량 차이라는 걸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니 내게 프로듀서로 공출이 붙고 세븐킥에게 BQ9이 붙는 게 일반적이었다.
“제가 BQ9 프로듀서님이랑 할 테니까 공출 프로듀서님이 세븐킥 형님이랑 준비하시면 되겠네요.”
“오, 그래도 돼?”
공출이 한결 마음 놓은 표정으로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세븐킥의 우승 확률을 높이려면 공출이 붙는 편이 낫지.
그렇게 대진표와 담당 프로듀서들이 정해지고, 배정된 작업실에 BQ9과 함께 들어갔다.
단둘이 남고 BQ9이 내게 물은 첫 마디는 경연곡의 방향도 곡 작업 일정도 아닌 의외의 질문이었다.
“왜 공출 프로듀싱을 양보했어요? 알다시피 나는 이번이 DTB 프로듀서로서는 처음이라 나보다는 공출 선배랑 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텐데.”
“DTB 프로듀서가 처음이지 아예 프로듀싱 경력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리고 마침 딱 플랜 A 중간 루트까지 맞아떨어진 덕분에 플랜 A로 가려고 하거든요. 그러려면 아무래도 세븐킥 형님이 무조건 이겨야 하는 터라.”
“그 플랜 A가 뭔데요?”
BQ9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플랜 A의 내용을 말해 주었다.
“와, 살다 살다 이런 획기적인 미친놈 처음….”
내 원대한 계획을 들은 BQ9이 멍하니 읊조리다가 퍼득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 나도 모르게.”
“반응 확실한 거 보니까 잘 먹힐 것 같네요.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키득거리며 말 놓기를 권유하자 BQ9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즌 3 준결승에서 만났을 때는 래퍼 카스트제도 세우는 비호감이었는데, 사람 일 참 모른다 싶었다.
BQ9과 가볍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어떤 느낌으로 갈 것인지 경연곡의 방향을 먼저 잡았다.
“강렬한 느낌을 살리려면 기타 베이스로 락 비트를 깔아도 괜찮을 거 같고, EDM 비트로 완성도 높여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너 D.I랑 같은 크루랬지? 아마 내 생각엔 D.I는 네 스타일에 맞춰서 우리 곡이 잡아먹히게끔 프로듀싱할 것 같은데, 네가 평소 안 할 만한 스타일로 가자. 허를 찌르자는 거지.”
BQ9은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 주며 함께 경연곡 가닥을 짚어 나갔다.
BQ9 역시 1인분 몫은 충분히 하는 덕분에 본선 2차 경연곡 준비 부담은 한결 줄어들었다.
DTB 촬영을 마친 이후에는 바로 작업실로 가서 레브 활동곡 작업을 재개했다.
여전히 90%에 머물러 있는 곡은 답답함만을 안겨 주었다.
끝내, 그 곡을 포기하고 다른 곡을 만들어 보기 위해 조금 깔짝거리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어차피 서예현은 잘 깨지 않으니 방 조명 불을 켜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이불 더미에서 잠기운 하나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늦게도 온다. 작업곡 각 좀 나와?”
“아니, 아직.”
평범하게 대꾸하다가 지금 시간이 새벽 1시가 넘었다는 걸 자각하자 등골에 소름이 쭉 끼쳤다.
내가 ‘누구세요’라는 물음을 내뱉는 것보다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서예현이 제 책상에 놓인 카페 음료 테이크아웃 컵을 가리키는 게 한 발 더 빨랐다.
서예현이 굳이 5샷 추가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까지 잠을 안 자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그게 더 호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