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29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299화(29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299화
DTB 본선 2차 세부 대진표가 나왔다. 예상대로 나는 최형진과 본선 2차에서 붙게 되었다.
그렇게 DTB가 염불 외우며 몰아가던 라이벌 서사의 떡밥을 회수할 때가 된 것이다. 최형진과 내가 라이벌로 묶이기에는 체급 차이가 너무 크다는 걸 드디어 보여줄 수 있게 되어 매애애우 기뻤다.
형진아, 표절 논란 해결에 큰 도움을 준 게 고맙긴 하지만 어쩌겠냐. 내가 그거 보은한다고 내 실력을 너랑 라이벌 소리 나올 정도로 깎아내릴 수는 없잖냐.
공출과 세븐킥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나랑 BQ9은 순탄히 경연곡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잠깐만, 방금 그 부분을 엇박으로 한 번 가 보는 건? 이쯤에서 변주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잠시 비트를 멈춘 BQ9이 녹음 부스 밖에서 마이크로 내게 말을 전달했다.
“그래요? 그럼 일단 녹음해 보고 두 버전 비교해 보죠.”
“어, 그렇게 하자. 할 수 있지?”
“당연하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고 다시 흘러나오는 비트에 맞추어 가사를 엇박으로 내뱉었다.
녹음 부스에서 나와 중간 작업물을 BQ9과 함께 들어보았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용철이 형의 예측 대응을 피하는 걸 목표로 곡과 랩핑의 중점을 맞추다 보니 당사자인 내가 들어도 낯설었다.
“오우, 확실히 제 평소 스타일이랑은 멀어지는 느낌이네요. 용철이 형 당황 제대로 하겠는데?”
“어떤 게 더 나은 것 같아? 너무 D.I 의식하지 말고 완성도 더 높은 쪽으로 가자.”
“그럼 엇박 파트 한 번만 더 해 볼게요. 아무래도 자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보니까 약간 어색한 것 같아서. 몇 번 더 하면 확실히 익을 건 같은데.”
아무리 상대와 내 실력의 격차가 있다고 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안주하면 안 되는 법이다.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당장 나조차도 용철이 형의 허를 찌른답시고 이러고 있지 않은가. 용철이 형도 분명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테고.
내가 아무리 친한 동생이라고 해도, 그 양반 성격에 내 우승을 위해서 자기를 믿고 선택한 자기 팀의 팀원을 떨어뜨릴 리가 없다.
비록 용철이 형이 내게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 대던 최형진을 그 당시에는 영 못마땅하게 여기긴 했지만….
물론 내가 용철이 형과 함께하던 언더 시절에 비하면 실력이 그 당시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수준으로 성장하긴 했어도 내가 아는 용철이 형이라면 레브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의 내 랩스타일마저 싹 분석하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러니 방심할 수 없었다. 뭐, 그런 성실함이 용철이 형의 장점이긴 하지만?
따뜻한 물이 담긴 물병을 건넨 BQ9이 잊고 있었다는 듯 짧은 침음을 흘리더니 내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그거 물어보는 거 깜빡했네. D.I랑 연락해 봤어? 거기는 어떤 식으로 간대?”
“안 그래도 떠보려고 용철이 형 한 번 찔러 봤는데 본선 2차 끝날 때까지 연락하지 말라던데요. 자기의 입과 손을 믿지 못하겠다고.”
내 말에 BQ9이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짧은 웃음을 터트렸다.
“기간이 본선 2차 끝날 때까지라는 거 보니까 세미파이널까진 못 올라갈 거 예감했나 봐?”
“안 그래도 저도 똑같은 말 했는데 본선 2차 끝나고 하루 정도 받아 주는 거래요. 부정 타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었어요.”
역으로 우리 팀은 어떻게 갈 건지 캐낼 생각도 안 하더라.
그게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용철이 형의 자신감인 건지, 아니면 본인도 한 번 거친 서바이벌 방송 중인 동생을 위한 배려인 건지.
전자라면 그 자신감을 깨부수고 용철 형의 벙찐 얼굴을 보는 게 꽤 재미있을 테지만 후자라면 좀 미안할 듯.
“이번에야말로 이겨 봐야지. 나는 같은 사람한테 두 번은 지고 싶지 않거든.”
시즌 3의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운명을 바꾸는 데에 아주 조금이지만 기여했던 터라 BQ9의 차갑게 타오르는 의지에 볼을 긁적였다. 딱히 미안하진 않지만 찜찜하니까 우승자 배출 팀 한 번 만들어 줘야지.
“네 그 미친 계획도….”
덧붙여 중얼거리던 BQ9이 또 떠올리니까 골 아프다는 얼굴로 미간을 문질렀다.
“그런데 그거 진짜로 괜찮은 거 맞지? 와,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는 사례라 나 진짜 반응이 도저히 가늠이 안 가는데?”
거 이 형님, 그렇게 안 봤는데 간이 영 작으시네.
“안 괜찮으면 욕 좀 먹죠. 목적이 어그로도 아니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무대 하는 건데요, 뭐.”
“여러 의미로 레전드는 되겠는데.”
안심하라는 뜻을 담아 시원시원하게 대꾸하자 BQ9이 앓는 소리를 냈다.
“정 불안하시면 PD님께 한 번 여쭤보세요. 괜찮냐고.”
“그래야겠다. 이게 해도 되는 영역인지 도저히 감이 안 와.”
BQ9이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 메모장에 일정을 적어 놓았다.
다시 녹음을 재개하고, 두어 번 재녹음 끝에 나랑 BQ9, 둘 다 마음에 쏙 드는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었다. BQ9의 피처링 파트는 내가 프로듀싱 했다.
이제 남은 건 공출의 피처링 파트였다. 그쪽 역시 경연곡 작업을 진행 중인 터라 미리 가사를 전달하고 작업 일정과 겹치지 않게 시간을 잡아야 했다.
덕분에 공출은 영 퀭해 보이는 얼굴로 우리의 작업실에 소환되었다.
“와, 너희는 곡 작업 벌써 끝냈어?”
“아직 끝난 건 아니고, 마무리 단계 진입? 형 피처링 파트만 녹음하면 얼추 끝나요. 후보정은 하루 잡고 하면 되고.”
“시간 여유 좀 있으면 우리 좀 도와주라. 하…. 하필 상대가 A01이라 도저히 안심을 못 하겠다. 올라온 놈이 차라리 준명이였으면 한시름 놓았을 텐데.”
제 손으로 제 발등을 찍었다며 공출이 연신 마른세수를 해 댔다.
“그러게 그냥 하던 대로 하자니까 왜 굳이 2대 2로 팀전을 한다고 하셔서.”
BQ9이 혀를 쯧쯧 찼다.
“그런데 진짜 왜 그렇게 간 거예요? 비꼬는 게 아니라 저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본선 1차에서 2대 2 팀전은 DTB 역사상 최초 도입이잖아요.”
내 질문에 공출이 멋쩍은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본인 레이블 인맥만 대놓고 뽑은 거 아니냐는 소리 듣기 싫어서 머리 좀 쓴 거지. 준명이가 백 퍼 너랑 팀 짤 줄 알았거든. 너 준명이랑은 딱히 별 이슈 없었잖아. 오히려 세븐킥이랑 좀 부딪혔었지. 조장 단독 공연 미션 때.”
당시 내 유일한 솔로곡인 <빌런(villain)>으로 먼저 시비를 걸었던 건 세븐킥이었고, 그래서 세븐킥이 살짝 껄끄러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별 음원 미션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이미지가 확 깎인 것도 한몫했고.
만약 IJM이 본선 1차 당시 내게 한 팀을 하자고 권유했으면 나는 별 고민 없이 오케이했을 터였다.
“그런데 그 멍청한 녀석이 본선 1차부터 너를 견제하고 있을지 누가 알았겠냐. 파이널 때 만나기 싫어서 미리 떨어뜨리려 했단다. 에휴, 막말로 세미파이널에서 올라갈지도 미지수였구먼 뭔 김칫국부터 들이키고 있어. 레이블로 영입할 때 이제 씨발 지능 테스트도 해야 하게 생겼어.”
과도한 자아와 부족한 자아 성찰이 불러온 비극이었군.
하지만 인맥 힙합 vs 실력 힙합전과 무대 의상 야구 유니폼이 다른 의미로 잘 어울린 세븐킥의 모습이 소소하게 화제가 되어 Team 공출&BQ9이 대중들에게 확실히 각인된 걸 고려하면 IJM 대신 세븐킥이 올라온 건 일종의 전화위복일지도 몰랐다.
공출이 한 삽질의 최대 수혜자는 인맥 힙합 버스 타는 편한 길을 거절하고 나를 선택한 덕에 깎인 이미지도 회복하고 내가 고른 무대 의상 덕분에 커뮤에 오르내리며 제 얼굴도 제법 각인시킨 세븐킥이군.
“나만 좆될 뻔했지, 나만. 내가 미쳤다고 본선 1차 때 꼭 붙여주겠다고 신신당부를 해서. 우리 레이블에서 DTB 시즌 4 TOP4 또 하나 나오나 싶었는데 임준명 그 자식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이게 뭐냐.”
레이블 이야기는 내 알 바 아니었기에 끝없이 이어지는 공출의 한탄을 자연스럽게 커트했다.
“어쩌겠어요. 지금은 세븐킥 형님이 올라가셨는데. 당장 A01부터 이겨야죠.”
내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세븐킥이 무조건 A01을 이기고 세미 파이널에 진출해야만 했다.
“규인이 형, 저희 작업 일단 킵해 놓고 저쪽 먼저 돕죠? 저희는 이제 대략 마무리됐으니까.”
“그래, 그러자. 그래야지 세미 파이널…. 하….”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BQ9이 한숨을 내뱉었다. 내 원대한 계획이 뭐가 어때서?
* * *
멤버 다섯 명 모두 스케줄도 레슨도 트레이닝도 없는 날, 드디어 레브의 즐거운 제1회 음악캠프가 개최되었다.
장소는 멤버들의 스케줄과 레슨의 향연에서 독채 펜션 하루씩 잡는 건 사치라 그냥 내 작업실로 정했다.
내 머리에 얹은 유격모를 발견한 김도빈이 박수까지 쳐 가면서 기쁨을 표현했다.
“거봐, 내가 그랬잖아. 이든이 형 백 퍼 저 모자 쓰고 올 거라고. 화기애애 음악 수련회가 아니라 해병대 캠프 될 거라고 그랬잖아. 캬, 역시 내 예상을 벗어나지를 않는구먼?”
“그게 기뻐할 거리야? 왜 이렇게 좋아해, 형…?”
그런 김도빈을 바라보는 류재희의 눈빛은 영 떨떠름했다.
“우리 도빈이가 내심 빡센 해병대 캠프를 바라고 있었구나. 그럼 이 형이 또 그 기대에 부응을 해 줘야지. 안 그러냐?”
“네, 안 그래여.”
김도빈이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관계 개선도가 100을 달성한 이후 김도빈은 발 뻗을 곳을 귀신같이 알고 뻗어 대곤 했다.
예전에는 내가 숨만 쉬어도 발발 떨더니만 쟤는 왜 중간이 없냐, 중간이.
먼저 내가 미리 세워 온 작곡 캠프의 플랜 1을 시도했다. 대략 다섯 시간 만에 탄생한 결과물의 평가는….
“딸기마카롱민트초코휘핑크림김치찌개 같아요.”
김도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보다 더 정확할 수가 없는 비유였다.
그렇다면 일단 멤버들이 원하는 걸 모두 때려 박는 방식은 실패군. 플랜 2로 가서 그나마 제일 나았던 곡을 멤버들의 의견을 받아 뜯어고치기를 시도해 봤지만 그것 역시 거한 실패였다.
곡의 원본이 남지 않은 건 둘째치고, 다들 추구하는 성향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까 곡이 전반적으로 통일이 안 되더라.
마감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10시간의 행군에도 건져 낸 것 하나 없다니.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잖아.”
내가 머리를 거칠게 헤집자 견하준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맞아, 다 그렇게 시행 착오도 겪고 하는 거지.”
계속 말을 바꾸어가며 곡에 제일 혼란을 야기시켰던 장본인인 서예현이 뻔뻔한 얼굴로 덧붙였다.
류재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 나가야 할지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음악 영역까지 저 녀석에게 맡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하지만 그걸로 심란함을 느끼기에는 시간도, 내 마음도 빠듯했다.
다시 새로 작곡할지, 아니면 어떻게든 수정하는 식으로 갈지 마지막으로 생각해 보기 위해 다시 곡의 원본을 재생시켰다.
미묘하게 곡이 심심하다고 해야 하는지, 비어 보인다고 해야 하는지. 아무튼,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지.
내 옆에서 안무를 따듯 멜로디에 따라 상체를 움직이고 있던 김도빈이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런데 계속 생각한 건데 이거 후렴구, 뭔가 은근 국악 곡조 같지 않아요? 부채춤 잘 어울릴 듯.”
아무 의미 없이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손을 뚝 멈췄다.
“도빈아,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