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화(3/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화
“이든이 형! 일어나요! 어떻게 데뷔 날까지 늦잠을 자요?”
익숙한 부름을 다시 들으며 눈꺼풀을 스르륵 올렸다.
깜빡, 눈을 두어 번 깜빡이자 이제는 다시 익숙해져 버린 낡은 벽지가 덕지덕지 발린 천장과 앳된 막내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 돌아왔구나. 데뷔일로.
‘시발, 인생.’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가 무의식에 새겨진 고통에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다행히 속으로 하는 욕은 초심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재희야, 초심이란 뭘까.”
넋 나간 내 중얼거림에 눈앞에서 손바닥을 휙휙 흔들어 대던 류재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지금 시점에서 굳이 따지자면 연습생 시절 때의 다짐? 그런데 뭔 이제 데뷔하는데 벌써부터 초심을 찾고 그래요?”
몰라, 나보고 되찾으란다. 심지어 무한회귀까지 시키면서.
전 소속사에서도, 현 소속사에서도 외모와 실력 덕에 금방 데뷔 조에 들었던 터라 간절했다든지 이런 적은 딱히 없었기에 연습생 시절 때의 다짐을 떠올려 봐도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또 현실을 부정하며 정신을 놔 봤자 내 앞길에 놓인 건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정도의 고통을 동반한 회귀 엔딩이었으므로 초심도가 0이 되지 않게끔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상태창.”
막내가 방을 나가자마자 거의 입을 뻐끔거리는 수준으로 읊조리자 1회차에서 보았던 상태창이 다시 튀어나왔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초심 되찾기 프로젝트!] [대상자: 윤이든] [초심도: 100] [※초심도는 아이돌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나 말을 하면 정도에 따라 수치가 깎입니다.] [※초심도가 0이 되면 다시 시작합니다!] [※프로젝트의 완결을 위해서는 필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필수 조건- 3만 명의 팬들을 실망시킨 당신, 3천만 명의 팬들을 기쁘게 만들어라!(0/30,000,000)]초심도가 0이 되면 이 시점으로 계속 회귀한다는 건 증명됐고, 프로젝트의 완결을 위한 필수 조건은 3천만 명의 팬을 기쁘게 만드는 것.
그렇다면 팬이 3천만 명은 넘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정도면 국내 1군을 넘어 빌보드 차트까지 올라간 글로벌 k-pop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활동했던 노래들과 콘셉트들이 머릿속에 촤르륵 스쳐 지나갔다.
‘토끼가 방아 찧는 저 달로 갈까, babe?’
‘네 미모에 놀란 별이 마구 터져 like 슈팅스타.’
‘아니, 돌겠네! 왜 그놈의 세계관은 우주 전쟁까지 확장되고 난리냐고! 이러다 아주 광선 검까지 나오시겠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루아침에 헬 모드가 된 내 인생에 존나 울고 싶었다.
‘이딴 걸로 1군이 되라고……?’
그건 대기업 자본을 처발라도 불가능하다. 서바이벌 같은 거로 어그로 엄청 끌고 데뷔한 대기업 루키조차 단번에 바닥으로 추락시킬 곡들과 콘셉트라고.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회귀 전에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해 오며 꾸준히 히트곡을 냈다는 것.
하지만 문제는 뭔 선무당에게 홀려서 돈 뜯기는 인간 같은 망할 소속사다. 내가 괜히 남의 그룹에 곡을 판 게 아니다.
나도 우리 그룹이 잘되면 좋지. 그런데 고집만 쇠심줄 같은 인간들이 협조를 안 해 주더라니까?
지끈거리는 머리에 미간을 문지르고 있자 상태창 맨 마지막의 문장이 반짝거렸다.
[☞위클리 퀘스트를 확인하세요!]위클리 퀘스트? 2번의 회귀를 거치면서도 처음 보는 문장에 눈을 깜빡였다. 하긴, 앞선 두 번은 상태창을 처음 말고는 열어 볼 생각을 안 했구나.
“이든이 형, 우리 숙소에서 대형 한 번만 맞춰 보고 가요.”
“헐, 연습실 가기 애매했는데 그러면 되겠구나! 맞아요, 형. 우리 계속 ‘눈부신 은하수가 쏟아지는~’ 이 부분 동선 꼬였잖아요.”
“지금 이 형아는 바쁘니까 너희들끼리 해라.”
“허공 보고 있으면서 뭐가 바쁘다고 그래요. 하준이 형! 예현이 형! 형들도 빨리 나와요!”
“이야, 우리 막내가 형 말을 개무시하네?”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미션을 막 확인하려던 순간 튀어나와서 내 팔을 잡아끄는 도빈이 녀석과 마찬가지로, 내 옆에 붙어 나를 질질 끌고 가는 재희 녀석에 그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덤으로 초심도도 깎였고. 이제 개무시가 아니라 캣무시라고 해야겠군. 설마 이것까지 비속어로 치지는 않겠지.
그 후로도 방송국 도착과 무대 의상 환복 및 헤어, 메이크업, 선배들에게 인사하기 등등으로 바빠 우리 차례가 다가올 때까지 퀘스트는 확인조차 못했다.
결국 위클리 퀘스트는 데뷔 무대가 끝나고 나서야 겨우 확인해 보게 생겼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며 아무리 봐도 적응 안 되는 무대 의상을 펄럭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데뷔 앨범 세계관을 무려 우주여행으로 잡은 빌어먹을 소속사는 우주복이랍시고 어디 환자 구속복 같은 새하얀 점프슈트를 우리에게 입혀 놓았다.
여기에 끈만 칭칭 감으면 언덕 위의 하얀 집 구속복 완성이다.
이때부터 소속사가 감 없는 걸 눈치채고 초반부터 의견이라도 열심히 냈어야 했는데.
데뷔 코앞인데 때려치우고 나온 놈을 받아 준 소속사가 고마워서 살짝 무리수를 둬도 네네- 했던 게 이렇게 독으로 돌아올 줄은 나도 몰랐다.
“정말 같이 데뷔하네, 네 말대로.”
내 옆에 서 있던 견하준이 인이어를 툭툭 치며 점검하는 내게 말을 걸었다.
동갑내기인 견하준과 나는 전 소속사 연습생이었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오랜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견하준은 배우상인 얼굴 덕분에 나중에 연기돌 타이틀을 달며 성공적으로 배우로 전향한다.
데뷔 직전 낙하산을 데뷔 조에 꽂아 준다고 견하준을 쫓아낸, 나름 이름 있는 중대형 엔터인 전 소속사에서 이 녀석과의 의리를 지킨답시고 뛰쳐나와 이 소속사에서 함께 데뷔했지.
‘그래 봤자 그런 오랜 친구가 원하던 길을 가겠다는데 이해 하나 못해 주고 삐졌다고 쌩깐 놈이지만.’
9년 우정 참 의미 없다. 심기 불편해진 내 표정에 피식 웃은 견하준이 물었다.
“왜, 싫어?”
“아니, 누구누구가 나중에 삐져서 나 모른 척만 안 하면 이때의 감동이 평생 갈 텐데 말이야.”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어깨를 으쓱이며 뼈 있는 말을 하자 견하준이 내 등을 두드렸다.
준아, 네가 그랬다니까, 네가.
잔뜩 긴장해서 딱딱하게 굳어 있는 멤버들을 쭉 둘러보고는 데뷔 무대 3회차 경력자 리더답게 한마디 했다.
“동작 실수한 놈 십만 원빵, 콜?”
멤버들의 야유를 들으며 씩 웃었다. 짜식들, 마음 넓은 내가 마지막에 삐져서 말도 걸지 않은 건 한 번 봐준다.
무대로 올라가 대형을 맞추니 데뷔곡인 <내 우주로 와>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작곡가가 발로 작곡한 건지 엉덩이로 작곡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을 들어도 참 구렸다.
이런 구린 곡에 아까울 정도인 메인보컬 류재희의 시원시원한 보컬을 들으며 다짐했다.
역시 다음 앨범부터는 내 곡으로 활동해야겠다. 소속사가 회귀 전처럼 협조 안 해 준다면 까짓것 개싸움이라도 한번 해보지, 뭐.
* * *
데뷔 무대를 실수 없이 무사히 마친 우리는 CP 인사가 끝나고 나서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거실에서 견하준의 노트북을 펴고 기대 어린 눈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멤버 셋을 보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얘들아, 우리 음방 조회수 일주일 지나서야 1천 겨우 넘겨.
그 영상에 달렸던 댓글들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경민k • 17시간 전
뭐임? 언덕 위의 하얀집 컨셉임? 하다하다 별 컨셉을 다 잡네
좋아요 11
유니콘케팝돌찾아다니는하이에나 • 10시간 전
소속사 감 없네ㅉㅉ 벨트 칭칭 감아서 구속복 컨셉으로 갔어야지
좋아요 7
그랬던 때도 있었지.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빌어먹을 ‘그랬던 때’로 돌아왔고 말이야, 하하.
“뭐야, 조회수 진짜야? 급상승 때문에 아직 반영 안 된 거 아니고?”
“그렇다기엔 뮤비 조회수도 별로 변화가 없는데.”
“그럼 음원, 음원은…….”
아직도 우리 앞에 펼쳐진 망돌 길이 믿기지 않는지 티끌만 한 희망이라도 걸어 보는 막내의 넋 나간 중얼거림에 뮤직 앱에 접속해 TOP100 차트를 휙휙 내렸다.
역시나 회귀 몇 번 했다고 TOP100 차트인이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한 것도 없는데, 바뀌길 바라는 것 자체가 도둑 심보인 거지.’
마찬가지로 음원 차트를 확인한 류재희가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옆에 있던 김도빈과 견하준의 팔뚝을 잡고 흔들었다.
“형들도 빨리 스밍 돌려요! 울 엄마가 망하면 공시 준비하라 했단 말이에요!”
그 말에 곧바로 인터넷 창에 가장 큰 규모의 공무원 시험 준비 카페를 띄운 김도빈이 화면을 가리키며 류재희를 향해 깝죽거렸다.
“그래, 얼른 공무원 시험 준비 카페부터 가입해라.”
“형, 내가 공시 준비하는 것보다 우리가 뜨는 게 훨씬 더 쉬울걸. 내 머리로는 공시 절대 합격 못한다고.”
“이야, 류재희, 자기객관화 제법이다?”
낄낄거리는 김도빈을 향해 류재희가 거실에 굴러다니는 쿠션을 집어 던졌다. 물론 김도빈은 메인 댄서답게 민첩하게 피했다.
‘어어, 진짜 3년 동안 공부해도 못 붙긴 하더라.’
내 기억으로 류재희는 2집까지 망하자 정말로 공시 공부를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 붙들고 있던 3년 차에 레브가 맏형의 직캠으로 빵 떴고 막내는 미련 없이 공시를 때려치웠다.
얼굴에 팩을 붙인 채로 화장실에서 나온 서예현이 허리를 굽혀 쓰윽 노트북 화면에 뜬 조회수를 훑더니 혀를 찼다.
“아니, 어떻게 내 얼굴이 나왔는데도 조회수가 이렇게 안 나올 수가 있지?”
“형, 지금 충격받으면 어떡해. 운 나쁘면 3년간은 더 묻히는데.”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심드렁하게 대꾸하자마자 따끔, 찌르는 듯한 고통과 함께 눈앞에 뜬 상태창에 눈썹을 치켰다.
나를 보며 한숨을 내뱉은 서예현은 스트레스 받으면 피부가 상한다고 중얼거리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직 얼굴만으로 캐스팅되어서 노래, 랩, 춤 모두 아이돌치고는 부족한 실력이었던 저 형은 연습생 때부터 외모 관리에 집착했다.
연습생 시절, 데뷔를 앞두고 혹독한 다이어트를 참다못한 우리가 몰래 야식으로 치킨과 피자를 공수해 와 먹을 때도 홀로 단백질 바를 씹으며 굶던 독기 가득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대체 내가 한 말 어디에 불화를 조정할 말이 있다는 거?’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서예현이 들어간 방을 보며 고민에 빠져 있자 노트북을 덮은 견하준이 조용히 물었다.
“이든아, 넌 괜찮아?”
어엉, 엄청 괜찮지.
처음에는 이렇게 장렬히 망할 줄은 몰라서 충격이 큰 나머지 며칠간 밥도 잘 안 넘어갔는데, 세 번째 겪으니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게 바로 득도인 건가.
“뭘 기대했냐? 우리가 대형 기획사도 아니고. 노래도 구려, 헤메코도 구려, 뮤비도 가성비 저가 뮤비야, 여기서 뜨는 게 로또 당첨급 기적 아니냐?”
거실에 남은 셋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엥, 또?
찔러 오는 듯한 고통을 느끼곤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며 슬그머니 물었다.
“내가 뭐 말실수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