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0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00화(30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00화
마우스에 손을 얹은 상태 그대로 고개만 돌려 묻자 김도빈이 눈을 깜빡였다.
“네? 혹시 제가 뭘 잘못 말했어요…? 그런데 형, 모자 챙이 그늘져 있는 바람에 완전 악마 교관 같이 보여서 수련회 PTSD 오는데 모자 좀 형이 평소에 스냅백 쓰시는 것처럼 뒤집어서 써 보세요.”
유격모를 벗어 뒤로 뒤집어쓰며 삐뚜름하게 웃었다.
“이야, 도빈이 많이 컸다? 형한테 명령도 다 하고?”
“제 간은 아직 형한테 명령할 정도로 크지 않아요. 좀 더 짬 차고 멘탈이 단단해지면 한번 해 볼게요. 방금은 확신의 청유형이었어요.”
“해 보긴 뭘 해 봐, 인마.”
꾹꾹 손끝으로 두어 번 김도빈의 정수리를 눌러 주고 방금 한 말을 다시 해 보라고 한 번 더 재촉했다.
“국악 곡조 같다고 했는데요?”
김도빈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일단 나는 이 곡의 후렴구를 작곡할 때 국악조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이렇다 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 봐서는 언제나처럼 김도빈의 헛소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말이 이 곡을 120%까지 끌어올리는 키(key)가 될 수 있다고.
다시 사운드를 재생하고 후렴구 멜로디에 귀를 기울였다. MR이 끝나고 나서도 유지되던 잠시간의 침묵을 제일 먼저 깬 건 서예현이었다.
“아무리 들어도 아리랑 같지는 않은데…?”
“엥, 저는 아리랑이라는 단어를 뱉은 적이 없어요.”
그래, 그럼 일단 아리랑은 아니고. 국악 쪽은 내 관심 분야가 아니라 대체 저게 어떤 국악조라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럼 대장금 OST? 황조가? 용비어천가? 밀양 아리랑? 진달래꽃?”
서예현은 아예 김도빈과 스무고개를 하고 있었다. 함정이 좀 숨어 있는 거 같은데. 연신 고개를 저어대는 김도빈의 옆에서 한소리 했다.
“밀양 아리랑도 아리랑이잖아, 인간아.”
“정선 아리랑은 다르니까 한 말이지.”
“형 지금 도빈이 무시해? 우리 김도빈이가 설마 밀양 아리랑을 모르려고.”
“맞아요, 제가 설마 밀양 아리랑도 모르겠어요?”
내 실드에 불쑥 끼어들어 거든 김도빈이 당당하게 밀양 아리랑 한 곡조를 뽑아 냈다.
하지만 그 당당함은 이제 숫제 강원도 아리랑과 영암 아리랑을 들이미는 서예현 덕분에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아무튼, 아리랑은 아니에요.”
강원도 아리랑과 영암 아리랑까지 한 번씩 들어본 김도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까 약간 늴리리야 생각나기도 하고? 도빈이 형, 이거 맞아?”
손가락을 튕긴 류재희가 확신을 담고 김도빈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류재희의 확신에 비해서는 영 미적지근한 반응이 돌아왔다.
“아니, 특정 곡조가 생각난다는 게 아니라 그냥 후렴구의 그 멜로디가 국악조처럼 느껴진다고. 내 귀에는.”
현재 후렴구의 멜로디는 기타 연주고, 이 곡이 120을 충족하지 못했던 건 음 자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후렴구 멜로디가 단조로워서 심심하다는, 그래서 약간 비어 보이는 느낌을 주는 게 문제였다.
“국악조… 국악기….”
하지만 국악의 특징은 단조로움. 아예 국악기를 활용하여 국악풍으로 간다면 지금껏 느꼈던 음의 단조로움을 단점에서 장점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다만 국악 특유의 느릿하고 서정적인 느낌을 살리기에는 벌스와 너무 동떨어진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으므로 그 부분을 살리기보다는….
“아예 사극풍으로 가지 말고, 비트를 좀 강렬한 비트로 깔고 그 위로 멜로디를 국악기로 덮어서 힙합이랑 국악의 퓨전식으로 가자.”
작곡 프로그램을 이용해 기타 연주를 국악기 조합으로 바꾸고 비트를 깔아 보았다.
“와, 미쳤다. 음이 갑자기 풍성해졌는데?”
“헐, 진짜 악기 바뀌니까 형 말대로 국악 느낌 확 나는 것 같다.”
“그렇지? 후렴구에 딱 국악 삘이 들었다니까? 나 사실 절대 음감 이런 거 아니야?”
한껏 으스대는 김도빈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25현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단소, 소금, 태평소, 북, 꽹과리, 아쟁, 피리에 더해 징을 추가했다. 그 후에 장구 박자를 비트와 살짝 엇박으로 수정.
떨리는 손으로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이거다! 이거야!”
드디어 곡이 100을 넘어 110에 도달했다.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벌떡 일으켜 김도빈의 어께에 팔을 걸치고 내 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도빈이 너 인마, 이렇게 한 건 하는구나!”
김도빈의 복슬거리는 머리를 마구 헤집어주며 오랜만에 시원하게 웃었다.
“형, 그럼 이번에도 공동 작곡으로 제 이름 넣어 줘요?”
“야, 당연하지! 너는 뭔 당연한 소리를 하냐. 멤버들 이름 다 넣어, 다!”
소주 한 잔 걸친 것처럼 하이텐션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막내야, 그러고 보니까 늴리리야 생각난다고 했냐?”
“약간… 요? 사실 곡 듣고 딱 연성되는 건 아닌데 도빈이 형이 국악 같다고 하니까 떠오르는 제일 비슷한 곡조가 그거였어요.”
류재희가 영 자신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또 다시 들어 보면 되지. 이전보다 훨씬 풍부해지고 국악조에 가까워진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듣다 보니 또 뿌듯해져 김도빈의 머리를 헤집었다.
“나만 왜 늴리리야인지 모르겠어…?”
서예현의 떨떠름한 중얼거림에 차마 동의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하고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러게, 나도 진짜로 모르겠다. 혹시 21살 이하에게만 들리는 주파수로 내가 의도치 않게 작업을 한 건가.
“후렴구 말고, 후렴구 들어가기 바로 전. 45초부터 48초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견하준이 툭 내뱉었다. 곧바로 45초부터 다시 재생해 보았다.
두 번 반복시키며 늴리리야의 곡조를 흥얼거린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니나노 난실로- 아, 이 부분! 너무 짧게 토막 난 부분이라서 내가 바로 못 알아챈 거였구나.”
“나도 재희가 말하기 전까지는 몰랐어.”
앓던 이가 드디어 빠진 듯한 느낌에 견하준과 가볍게 하이파이브했다.
“이 부분도 좀 걸렸는데 여기는 확실하게 늴리리야 샘플링으로 처리하면 되겠다. 방금은 너무 애매해서 그쪽 부분이 좀 죽은 거네.”
류재희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초롱초롱한 눈빛에 픽 웃으며 무언가를 기대하듯 내민 류재희의 손에 내 손을 마주쳐 주었다.
홀로 곡에 아무 기여도 못 해 목이 타는지 물병 속 물을 들이켠 서예현이 당당하게 한마디 했다.
“나는 도빈이가 활약할 기회를 만들어 줬어.”
“그래, 형도 도빈이랑 더불어서 이번 활동 곡 MVP 시켜 줄게.”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기죽지 말라고 서예현의 등을 퍽퍽 두드려 주었다.
휴대폰 달력 앱을 열어 기획팀이랑 AR팀에게 데모곡을 보내기까지의 일정을 계산하다가 시끌시끌한 소리에 무심결에 고개를 들어 작업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작업실 환경이 언제 이렇게 자연스러워진 건지.
뭐, 홀로 대가리 쥐어뜯는 것보다는 이편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미약한 미소를 띠고 있던 입꼬리를 슬쩍 내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 * *
DTB 본선 2차 경연 촬영 당일.
무대에서는 스코언의 리허설이 한창 이루어지는 중이었다. 리허설인 만큼 동선 체크 정도만 하며 힘을 잔뜩 뺀 무대였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기량이 묻어나왔다.
이제 참가자 수가 여덟 명밖에 남지 않았기에 팀당 배정된 대기실은 널널했지만 극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곤 다들 스테이지 밑에서 리허설을 구경하고 있었다.
용철이 형은 리허설을 구경하지 않는 극소수 중 하나였다. 최형진도 보이지 않는 걸 봐서는 아마 대기실에 같이 있지 않을까.
스코언의 리허설 무대를 지켜보던 그의 본선 2차 상대, Geek승은 AJA를 붙잡고 탈락 소감 멘트 추천을 받고 있었으며, 스코언과의 정면승부를 피한 유피는 팔짱을 낀 채 가늠하는 듯한 눈으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역시 스코언과 유피를 겨우 본선 2차에서 붙일 리가 없지. 본선 2차보다 훨씬 더 관심도가 높은 게 세미 파이널인데.
레전드 무대는 언제나 파이널보다는 세미 파이널에서 나왔다. 아무래도 파이널은 2주간 두 곡을 준비해야 했으니 세미 파이널보다는 곡이나 무대의 완성도가 살짝 떨어질 만도 했다.
유피에게서 눈을 떼고 본선 2차까지 올라온 TOP 8을 천천히 둘러보다가, 조별 음원 미션의 내 팀에서 나를 제외한 유일한 생존자, 투혁과 시선이 마주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홀로 덩그러니 서 있던 투혁이 반가운 얼굴을 한 채로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본선 1차 당시에 각 팀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본선 2차 준비에 관련하여 잡다한 대화를 나누던 투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눈치 게임은 성공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말끝을 흐린 투혁이 애써 웃었다.
“뭐, 본선 2차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만족해야죠.”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잘하셨잖아요.”
가볍게 투혁의 어깨를 두드려 담담한 격려를 건넸다.
스태프가 들고 있는 카메라는 그런 참가자들과 프로듀서들의 모습을 잠깐 담고선, 리허설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방금 리허설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스코언과 영빌리, 몰틱을 향해 다가갔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코언이 무대를 내려오고, 여전히 무대 위에 있던 몰틱과 영빌리가 투혁을 향해 손짓했다.
스코언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과 투혁이 내게 꾸벅 인사하고 무대를 향해 올라가는 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여, 이든. 내 리허설 봤어?”
“네, 계속 보고 있었죠. 오우, 곡 좋던데요.”
“어때, 나 Geek승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1화부터 손꼽히던 유구한 우승 후보가 그런 말하는 건 기만 아니에요?”
스코언을 장난식으로 툭 치며 픽 웃었다.
“야아, Geek승도 잘해. 그나저나 우리가 세미 파이널에서 붙을지 파이널에서 붙을지를 모르겠네. 기왕이면 파이널에서 붙는 게 좋은데 말이야,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세미 파이널 대진표가 어떻게 나올지를 모르겠네요.”
스코언과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누며 투혁의 리허설을 지켜보았다.
투혁의 리허설 무대를 보니 그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스코언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쓴 태가 났다.
하긴, 투혁의 상대가 우승 후보 중 하나인 유피인데 저쪽 프로듀서들 입장에서는 떨어질 투혁보단 다른 우승 후보인 스코언의 무대를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겠지.
“여어, 나 버리고 홀라당 공출이랑 BQ9에게 가 버린 우리 이든이 아니야. 준비 많이 했냐?”
다음 무대 리허설을 위해 대기 중인 지원이 형이 한창 리허설을 구경 중이었던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치며 킬킬 웃었다.
“칼 갈았죠. 무려 덥넷이 밀어주던 라이벌끼리의 매치 아닙니까.”
“오오, 라이벌이라고 하는 거 싫어할 줄 알았더니.”
“그 소리 못 나오게 하려고 칼 간 거예요.”
키득거리며 지원이 형을 받아치다가 언제 온 건지 모를 용철이 형과 눈이 딱 마주쳤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인 용철이 형이 슬금슬금 내 시선을 피해 멀어졌다.
저 인간은 왜 내 얼굴 보자마자 도망가고 난리야. 심리적 거리든 실제 거리든 난 댁이랑 거리 멀어지는 거에 트라우마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