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0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01화(30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01화
내가 한 발짝 다가갈수록 용철이 형은 두 발짝 멀어졌다. 오기가 생기는 바람에 걸음이 빨라지자 용철이 형은 이제 거의 뜀박질을 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를 악물고 저를 쫓아가는 나를 향해 용철 형이 다급히 외쳤다.
“야야야, 쫓아오지 마!”
“그럼 형이 도망가지 말던가! 왜 기껏 와 놓고 도망가는데!”
“너 리허설 준비 안 하냐?”
“뭔 리허설 준비를 벌써 해. 아직 첫 순서인 Team 몰틱&영빌리 차례가 끝나지도 않았구먼. Team G1&AJA 다음이 우리 팀 차례야.”
“아니, 분명 원백 형이 곧 네 차례라고 해서 왔는데!”
달리다 말고 우뚝 멈춰 선 용철이 형이 마침 근처에 있던 원백을 휙 돌아보았다.
“어, 용철아. 왔냐? G-TE는 세븐킥 리허설 시작하면 그때 부르면 되겠다. A01 리허설 먼저 하자. 네가 나름 혼을 쏟았으니까 G-TE가 마지막 순서로 기선 제압을 딱!”
허공에 잽을 날리던 원백과 내 시선이 마주쳤다.
“어우, 깜짝이야. 이든이 너도 있었냐?”
머쓱하게 주먹을 내리며 원백이 내게도 인사를 건넸다.
“형, 곧 이든이 차례라면서요!”
“엉, 이제 투혁 내려오면 유피랑 Geek승이랑 리허설 하고, 그다음에 바로 얘잖아.”
“곧이라며!”
“세 번째면 곧이지.”
용철 형의 역정에 태평하게 대꾸한 원백이 나를 돌아보았다.
“이번에 장난 아니야. 용철이가 너 이겨 보겠다고 아주 혼신의 힘을 다 하더라니까? 이래서 같은 편이 돌아서면 더 무서운 법이라고 하는갑다, 싶더라고. 네 스타일 맞춤형으로 가져다가, 막.”
역시 예상 범위 안이었다. 뛰는 이용철 위에 나는 윤이든 있다고.
확 틀어 버린 내 랩스타일을 보고 당황할 용철이 형의 얼굴을 직관하지 못한다는 게 조금은 아쉬웠다. 본방에서 내 무대를 보는 용철이 형의 얼타는 얼굴을 꼭 잡아 줘야 할 텐데.
“아, 형. 그걸 말하면 어떡해요. 내가 유출할까 봐 나 일부러 얘 연락도 안 받았는데.”
“한 시간 후에 본무대인데 뭐 어때. 지금 와서 얘네 팀이 곡을 뜯어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백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최형진은 왜 대기실에 박혀 있어? 무대에서 실수할까 봐 마인드 컨트롤이라도 한 대?”
여전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최형진에 대해 묻자 용철이 형이 고개를 짧게 저으며 대답해줬다.
“본무대 전까지는 네 무대 미리 안 볼 거랜다. 벌써 결과를 머릿속으로 내고 싶지가 않다고.”
“겁먹은 거야,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당연히 후자지. 우리 G-TE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그렇게 뿌듯하게 웃으면서 말하지 말아 줄래, 형. 그리고 언제부터 형진이가 형의 우리 G-TE였어.
겨우 DTB 때문에 8년을 본 동생을 버리는 거야?
입을 떡 벌리고 있자 뒤에서 누군가가 내 어깨에 팔을 턱 걸쳐왔다.
“기왕이면 전자인 편이 더 좋을 텐데. 후공으로 무대 하면 어쩌시려고.”
내 어깨에 팔을 얹은 BQ9이 용철이 형을 향해 가벼운 비꼼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저희야 좋죠. 아무래도 임팩트는 후공이니까.”
용철이 형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아쳤다. 전 시즌 우승자와 준우승자의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대체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눈을 굴리고 있다가 나를 버리고 형진이를 우리 G-TE로 삼은 용철이 형보단 같은 편인 일시적 우리형 BQ9을 응원하기로 했다.
“Team 공출&BQ9 리허설 준비해 주세요!”
스태프의 외침에 BQ9이 이만 가자는 뜻으로 나를 가볍게 툭 쳤다. 무대를 향해 몸을 돌리기가 무섭게 BQ9이 목소리 낮춰 속삭였다.
“숨길까? 아무리 그래도 본무대 직전 리허설인데 그냥 연습한 대로 할래?”
“안 그래도 원래 스타일대로 하려고 했어요. 미리 보여 주면 재미가 반감이 되니까, 방심하고 있으라는 의미로.”
씩 웃으며 BQ9의 말에 대꾸했다.
“좋아, 가자.”
격려하듯 등을 두드린 BQ9과 함께 리허설을 위해 나란히 무대로 올라갔다.
* * *
“흠, 라이벌전이라고 하도 전방위로 홍보 때려서 뭐 색다른 거라도 좀 보여 줄까 싶었는데 평소랑 똑같네.”
무대 밑에서 윤이든의 리허설을 지켜보던 유피가 냉정하게 내린 평이었다.
실험적인 것보다 안전빵을 중시하나? 정답보다는 오답에 훨씬 가까운 추론을 하며 유피는 세미파이널, 혹은 파이널에서 만날 윤이든의 무대에 대응할 전략을 차곡히 쌓아 갔다.
“어차피 G-TE전은 이긴 거나 다름없으니까 세미파이널 때 쏟으려고 지금은 힘 좀 뺀 건가?”
“그렇다기에는 비트에 힘 빡 들어갔잖아. 오, EDM. 그런데 지금 일부러 좀 뭉개는 것 같은데…”
견제인가? 저 녀석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기도 한데. 영빌리의 추측에 대꾸해 주며 스코언이 힐긋 D.I와 원백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됐다! 먹혔다! 확실히 임팩트는 죽일 수 있겠고, 이제 후공만 뽑으면 되겠네.”
“너무 순탄하게 들어 먹혀서 좀 불안한데…”
온몸으로 기뻐하는 원백과 달리 윤이든을 잘 아는 D.I는 영 찜찜하다는 기색이었다.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둘을 향해 윤이든이 동선을 맞추어 무대를 가로지르다가 눈을 찡긋했다.
“이야, 아이돌은 아이돌이다. 팬서비스 확실하네. G-TE한테도 관중석을 향한 윙크 한 번 넣으라고 해 볼까.”
“관둬요. 저건 이든이니까 먹히는 거지. G-TE가 해 봤자 G-TE에게 파이트머니 던지려 했던 사람도 철회하는 결과나 낳지.”
“용철이 너 너무 이든이랑 G-TE 차별하는 거 아니냐….”
“차별이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평가죠.”
원백의 말에 대꾸하면서도 조금 더 G-TE 무대의 임팩트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추가할 거리를 찾기 위해 D.I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윤이든이 본무대 직전 리허설을 포기하면서까지 훼이크를 친 보람이 있었다.
* * *
리허설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자 내게 바통을 이어받은 세븐킥이 곧바로 무대로 올라가 리허설을 진행했다.
세븐킥의 리허설이 한창 진행되는 동안, 연락을 받았는지 드디어 최형진이 얼굴을 보였다. 세븐킥 다음으로 용철이 형, 그리고 원백과 함께 A01이 무대에 올라갔다.
몇 시간 후면 정면으로 붙을 최형진과 내 시선이 아주 잠시간 마주했다.
“저는 대기실 들어가 있으렵니다.”
후드 주머니에 두 손을 넣은 채로 몸을 돌리자 공출이 나를 붙잡았다.
“벌써? G-TE 리허설 보고 가지.”
“아아니, 형진이랑 한 번 똑같이 해 보려고요.”
내 한쪽 팔을 후드 주머니에서 빼서 가볍게 흔들어 주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대기실에서 막바지까지 가사를 숙지하며 대기하고 있다가, 드디어 공연 시간에 가까워졌다.
본격적인 팀 경연에 앞서, 팀 프로듀서들의 뽑기로 선공과 후공이 정해졌다. 참가자들은 굳이 무대에 오를 필요 없이 각자의 대기실에서 모니터로 뽑기 장면을 지켜보고 있으면 됐다.
먼저 세븐킥-A01전의 결과는…
“예스, 후공! 이렇게 하늘이 세미 파이널까지 올라가라고 나를 돕는구나!”
공출의 손에 잡혀 나온, 후공을 뜻하는 빨간색 공에 세븐킥이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바로 용철이 형이 뽑은 빨간색 공에 세븐킥은 슬쩍 내 눈치를 보다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상관없지…?”
“당연하죠. 오히려 형진이가 백스테이지에서 듣다가 쫄아 주면 더 좋겠는데.”
덕분에 내가 본선 2차 대진의 서막을 열게 되었다. 관중들이 쌩쌩한 상태의 첫 번째 차례로 무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백스테이지로 이동하실게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뽑기를 마치고 백스테이지로 돌아온 공출과 BQ9이 나를 반겼다.
무대 위에서는 한창 MC가 무대 평가 방식인 파이트머니의 룰을 설명 중이었다.
본선 1차 때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관객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파이트머니의 설명을 끝낸 MC가 우리 무대를 예고했다.
“자자, 실수하지 말고. 무대 찢고 오자.”
공출이 나와 BQ9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의 말을 보냈다.
본선 2차 경연곡, 의 전주가 공연장에 울려 퍼지고.
마이크 헤드를 손으로 감싸고 입가까지 들어 올린 후, 첫 소절을 내뱉으며 백스테이지에서 무대 위로 성큼성큼 나아갔다.
어, 그래. 반전 시작이다.
* * *
“와… 랩스타일을 저렇게 바꿔 버리냐.”
“아예 틀었네요. 우리가 맞춤형으로 나올 거 예상하고. 하여간 진짜 난 놈이야. 저렇게 짧은 시간 만에 입에 익게 하기 힘들었을텐데, 참…”
프로듀서들이 한탄 식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뒤로 한 채 최형진은 백스테이지에서 들려오는 윤이든의 랩에 귀를 기울였다.
D.I만큼이나 잘 안다고 자부했던 윤이든의 랩이었다.
‘쟤랑 저랑 동갑이라고요? 중 3? 와, 미쳤다. 중딩의 실력이 아닌데, 저건?’
동경으로.
‘야, 네 랩네임이…. 언시크랬냐? 나 진짜로 궁금한 게 있는데 너는 랩 좆도 못하면서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공부 안 하고 랩 하냐? 너 이걸로 먹고살 자신 있어? 아니, 빈정거림이 아니라 진짜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나? 딱 보면 모르냐?’
‘윤이든 씨발새끼… 내가 좆빠지게 연습해서 네 목은 꼭 따 준다.’
오기로.
‘미친 새끼, 진짜 아이돌 데뷔했네. 나한테는 그딴 식으로 아가리 털어놓고 지 미래가 불안정하네 뭐네 하더니 대형도 못 가고 무슨 좆소에서 데뷔하려고 뛰쳐나갔냐, 븅신. 데뷔곡은 또 왜 이렇게 구려? 랩도 씨발 발전이 없어. 꼴 좋-다 .’
드디어 따라잡고선 비웃어 주려고.
‘뭔 씨발 이 새끼는 몇 달 만에 발전이 아니라 진화를 하고 지랄이야? 악마한테 영혼 팔았나? 하, 겨우 따라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지 혼자 올라가네. 망할 새끼.’
다시 까마득하게 멀어진 게 분해서.
그래서 꾸준히 들어왔던 것이라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윤이든의 팬보다도, 그의 크루 형들보다도 훨씬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백스테이지에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랩핑을 들으며 최형진은 피식 웃었다.
윤이든의 스타일이 제 랩에 잡아먹히게끔 기껏 심혈을 기울였던 경연곡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지만 딱히 분하진 않았다.
오히려 안주하고 있었으면, 그래서 그들의 경연곡에 윤이든의 경연곡이 잡아먹히는 형국이 되었으면 그게 더 분했으리라.
최형진의 현재 랩스타일의 기반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윤이든이 있었으니까.
따라 하기에는 자존심 상하고, 그렇다고 외면하기에는 그의 이상 그 자체고. 그 마음이 최형진의 원동력이었으니까.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경연곡을 들으며 최형진은 생수병을 까 들이켰다.
-Make some noise!
곡이 끝나고 윤이든이 지른 마지막 외침에, 다음 타자의 기를 죽이기 충분한 커다란 함성이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여전히 열렬하게 이어지는 환호를 뒤로하고, 공연장의 열기 때문인지 땀으로 흠뻑 젖은 윤이든이 백스테이지로 들어왔다.
“야, 윤이든. 네가 그때 나한테 무슨 자신감으로 랩 하냐고 했지?”
사과받은 과거의 일을 다시 한번 끄집어내자 윤이든의 얼굴이 떨떠름하게 변했다.
최형진은 사과일지 꼽주는 말일지 모를 말을 뱉기 위해 입을 여는 윤이든보다 한 발 먼저 운을 뗐다.
“이 무대로 대답해 줄 테니까 잘 봐라.”
당당한 선전 포고를 날린 후, 윤이든을 스쳐 지나 스포트라이트와 관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지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무대 위로 최형진은 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