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0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06화(30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06화
이전 시즌까지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DTB 현직 프로듀서가, 그것도 본인의 팀도 아닌 참가자의 무대에 피처링으로 선 건 말이다.
유피의 무대에서 서라온이 등장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파이트머니 급상승이 일어났다.
대중 가수의 인기도도 분명 무시할 수 없지만, 여기 모인 이들의 3분의 1 정도는 오랜 기간 비주류였던 힙합을 좋아해 왔던 이들이니 어떤 무대에 더 높은 평가가 주어질지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현직 프로듀서가 자신의 팀을 모두 탈락시킨 장본 팀 무대의 지원 사격 피처링으로 나온 것도 입이 떡 벌어질 일이건만, 무대에 오른 저 둘은 작년부터 DTB를 보아왔던 애청자들이라면 다 기억하고 있는 서사가 있기까지 했다.
1년 전, 시즌 3 세미 파이널 당시 D.I의 <낙서> 무대에 피처링으로 섰던 윤이든.
그리고 지금, 시즌 4 세미 파이널까지 올라온 윤이든의 무대에 피처링으로 선 D.I.
[꿈과 함께 찾아온 원점 네가 그린 완벽한 동그라미네가 지나온 track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작품이 돼]
윤이든이 쓴 <낙서> 피처링 가사를 인용한 가사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수미상관을 완성하는 온점이었다.
이전에 DTB 시즌 3 세미 파이널을 할 때도 현장 평가단으로 친구와 걸음하여 <낙서> 무대에 파이트머니를 던졌던 남자는 감동에 젖어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낙서로 시작해서 명작으로 끝나는 이 위대한 서사를 직관하다니…”
당시 윤이든을 D.I 무대를 망칠 아이돌 래퍼 놈이라고 낮잡아 보다가 그의 쩌는 피처링 실력을 보고 윤이든을 ‘인정’해 주었던 일은 DTB 4를 매주 본방 사수하며 그의 머릿속에서 싹 지워진 지 오래였다.
무대 위에 나란히 서서 서로 주고받듯 랩을 쏟아내는 윤이든과 D.I의 모습에 파이트머니 금액이 한 차례 더 쭉쭉 올라갔다.
G-TE 다음으로 윤이든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디아이의 피처링은 윤이든의 비상(飛上)에 날개를 달아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야, 그런데… 본인 팀 프로듀서도 아니고 남의 팀 프로듀서가 저렇게 피처링 해도 되는 거냐…?”
윤이든이 여기에서 유피 목 따고 파이널까지 올라가서 시즌 4 우승자가 되어야 하는데 덥넷 놈들이 괜히 핑계를 잡고 점수를 깎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드는 의문에 걱정을 섞어 말을 흘리자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PD가 막았으면 D.I가 무대에 못 올라왔겠지. 방송 자체에서 플랜 A 아가리를 그렇게 털어 댔는데 제작진들이 D.I가 무대 피처링 맡은 걸 몰랐겠냐.”
“오,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복면 디스전 이후 이제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은 윤이든의 금발이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자신을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호응해 주며 시원시원하게 온 무대를 헤집고 다니는 윤이든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 보였다.
이제 곡의 클라이맥스를 지나 엔딩이 서서히 다가왔다.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마지막 소절을 내뱉기 전, 호흡을 가다듬는 윤이든의 어깨에 D.I가 팔을 턱, 얹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미련을 싹 날려 버린 듯한 후련한 미소였다.
마이크를 다시 입가 가까이에 붙인 윤이든이 점점 소리가 사그라지는 비트 위에 가사를 얹었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뭐 어때마지막 조각 하나만 끼워 넣으면 그게 바로 Masterpiece지]
리모컨 버튼을 눌러 파이트머니를 베팅하며 남자는 파이트머니 금액과 함께 폭발하는 함성에 소리를 더했다.
비트 소리가 더는 울리지 않는 무대 위에서 윤이든이 숨을 몰아쉬는 동안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준 D.I는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대기실에서 윤이든이 무대를 마칠 동안 대기하고 있었을 유피가 다시 스테이지 위로 올라오자 한 차례 환호성이 들려왔다.
두 사람의 팀 프로듀서들도 무대에 올라와 각자 팀원의 양옆에 나란히 섰다.
스코언과 세븐킥의 경연은 이미 결과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이번 세미 파이널의 관심과 흥미도는 대부분 유피 대 윤이든 대전에 쏠렸다.
두 사람이 3차 예선에서 이미 한번 붙은 전적이 있다는 것도 한몫했다.
3차 예선에서 무승부로 첫판을 끌고 가고 두 번째 판을 기어이 깔게 만들어 윤이든을 이긴 유피, 그로 인해 파생된 뜨거운 논쟁.
윤이든이 이겼네, 유피가 이겼네 하며 3차 예선부터 준결승인 지금까지 지지부진하게 끌고 온 그 논쟁에 이제는 드디어 마침표가 찍히는 시간이었다.
이번 경연은 이전처럼 프로듀서 여덟 명의 심사가 아니라 몇백 명 관객들의 선택이었으니.
사방에서 각자가 응원하는 이의 이름을 연호했다.
유피의 이름을 연호하는 99%가 남자였다면 윤이든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체감상 오대오 정도로 섞여 있었다.
“결과 발표 전에 TOP 4까지 올라온 우리 준결승 진출자분들의 소감 한마디씩 들어 보도록 하죠.”
MC가 마이크를 유피에게 먼저 건넸다.
“여기까지 올라왔네요. 그래도 여기에서 멈추기는 아쉬우니 감히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겠습니다.”
평소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버린 유피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준비해 온 멘트를 내뱉었다. 멘트를 마치고 유피가 살며시 건넨 마이크를 받아든 윤이든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늘 정말로 후회 없는 무대를 선보였기에 어떤 결과가 나오든 미련 없습니다.”
결승 가자! 관객석에서 터져 나온 우렁찬 외침에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윤이든 역시 마이크를 내리고 키득거리다가 외침이 들려왔던 곳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자, 그럼 유피 대 윤이든 대전 최종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MC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크린 속 두 개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유피는 뒷짐 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초조하게 발끝을 까딱거리고 있었고, 윤이든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눈으로 스크린 속 올라가는 숫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히려 호들갑 떨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건 윤이든의 프로듀서 중 하나인 공출이었다.
마침내 유피의 파이트머니가 변화를 멈췄다. 아직 윤이든의 파이트머니가 멈추지 않았을 때였다.
[유피]₩6,550,000
LOSE
[윤이든]₩8,900,000
WIN
금액 차로 봤을 때는 큰 차이가 아니었지만 윤이든은 세미 파이널에서 900만 원에 육박한 파이트머니를 받으며 역대 세미 파이널 파이트머니 최대 액수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AJA가 위로의 의미로 등을 두드리자 슬쩍 고개를 들어 스크린에 띄워진 결과를 확인한 유피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흘긋 옆을 돌아본 G1은 한 번 피식 웃고선 얼굴의 웃음기를 지우고 유피의 어깨를 다독였다.
반대로 공출과 BQ9은 양옆에서 윤이든을 끌어안고 채신머리없이 방방 뛰어대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윤이든! 파이널 진출 확정입니다!”
패자인 유피가 먼저 승자인 윤이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망설임 없이 제게 내밀어진 손을 맞잡은 윤이든이 두어 번 손을 흔들어 악수를 나눴다.
스크린에 비친 유피의 얼굴은 왜인지 후련한 기색이었다.
3차 예선 때처럼 가볍게 끌어안고 어깨를 부딪친 두 경쟁자는 그때와는 정반대가 된 결과를 안은 채로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 * *
자, 그러면 이쯤에서 시간을 돌려서.
BQ9에게 처음 플랜 A를 털어놓았던 당일.
“TEAM 원백&D.I를 본선 2차에서 떨어뜨리고 용철이 형, 그러니까 D.I를 제 세미 파이널 피처링으로 부르려고요.”
내가 진솔하게 털어놓은 플랜 A에 경악하는 BQ9의 얼굴은 꽤 웃김과 동시에 이게 그렇게 경악스러운 계획인지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와, 살다 살다 이런 획기적인 미친놈 처음… 아, 죄송. 나도 모르게.”
“반응 확실한 거 보니까 잘 먹힐 것 같네요.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 그런데 그거 진심이야…? D.I 피처링?”
끝이 살짝 떨리는 BQ9의 물음에 진정성을 한가득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PD님이 오케이하실까? 아니, 그 전에… D.I가 승낙을 할까?”
“용철이 형은 무조건 승낙할걸요. 제가 용철이 형이랑 얼마나 친한데.”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소파 등받이에 편히 몸을 기대기가 무섭게 BQ9이 내 어깨를 덥석 붙들었다.
“아니, 이든아. 들어봐. 내 팀을 전원 탈락시킨 원흉이 나한테 결승 바로 전 문턱인 세미 파이널 피처링을 부탁한다? 나였으면 진심 바로 죽빵 날아갈 거 같은데.”
“용철이 형은 안 그래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얼굴로 나를 보던 BQ9이 마른세수를 한 번 하더니 내게 속사포처럼 말했다.
“아니, 왜 하필 D.I야? 다른 래퍼들 많잖아. 우리 벌써 세미 파이널 피처링으로 리제리도 섭외해 놨어. 아니, 그건 둘째치고, PD님이랑 D.I 승낙을 제외하더라도 이건 관객들이 받아들이기에도 위험 부담이 있다니까.”
그렇게나 내 말을 부정하고 싶은 건지 BQ9은 서두마다 ‘아니’를 붙여 대고 있었다.
“혹시 <낙서> 기억하세요?”
그런 BQ9의 염려와 불안을 덜어주려 은근하게 운을 뗐다.
“그걸 어떻게 잊어. 그걸로 세미 파이널에서 맞붙었으면 까딱했다가 결승 진출도 못 할 뻔했다고 공출 형이랑 얼마나… 아, 맞다. 네가 <낙서> 피처링 했지.”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한 채로 BQ9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미 세미 파이널 곡 가닥도 다 잡아 놨습니다. <낙서> 2탄. .”
2를 뜻하는 V 자를 그리며 손등이 보이도록 BQ9의 눈앞에 치켜올렸다. BQ9의 눈빛이 순간 벙쪘다. 내가 이런 빅피쳐까지 그리고 있었는지는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이 무대에는 꼭 용철이 형이 필요하거든요. 이건 제가 양보 못 합니다. 깔끔하게 최형진이랑 A01 본선 2차에서 탈락시키고, 세미 파이널 리제리 형님 피처링은 세븐킥 형님에게 넘기죠.”
푹, 한숨을 내쉰 BQ9이 치켜 올린 내 검지와 중지를 고이 접어 주며 내게 말했다.
“내가 PD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올 테니까, 네가 직접 D.I에게 승낙받아 와. 나도 이건 양보 못 한다. 오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낙은 본선 2차가 끝난 뒤에 받으러 갈 생각이었다.
물론 세상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는 아니다. 내 협조가 들어간다면 세븐킥이 A01을 이기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팀원들이 전원 탈락할 걸 상정하고 피처링을 요구하면 제아무리 보살 용철이 형이라도 내게 죽빵을 날리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세븐킥을 도와 A01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만한 경연곡을 만들며 때를 기다렸다. 용철이 형한테 피처링을 요구할 때를.
그리고 기회는 내가 최형진을 탈락시키고 세븐킥이 A01을 탈락시킨 그날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