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2화(32/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2화
단추를 끝까지 채운 블랙 셔츠와 그레이 슬림핏 슬랙스, 그리고 베이지색 트렌치코트.
가르마펌이 들어간 흑발은 이마를 반쯤 드러낸 쉼표 머리로 스타일링되어 있었다.
[내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 하나네가 없는 이 자리에서 고백하는
내 습관이 뭔지 알아?
언제나 끝을 상정하며 하는 이별 준비]
상체를 담는 카메라 덕분에 오른쪽 눈의 눈물점이 선명하게 보였다.
오늘 착장 미쳤다. 어떻게 나올 때마다 레전드 갱신이니.
치솟는 감격에 입을 틀어막은 김 모 양에게 혈육의 덤덤한 감상평이 닿았다.
“오, 쟤 랩 잘한다.”
“그치, 내 새끼 최고지? 진짜 내 새끼가 국힙원탑이라니까.”
“뭔…… 네가 낳았냐?”
조카뻘도 아니고 사촌 동생뻘인데 뭔 놈의 내 새끼냐고 쯧쯧 혀를 차는 혈육의 타박은 더는 김 모 양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화면을 가득 채운 윤이든의 얼굴, 정확히는 살짝 눈을 내리깔자 내려오는 긴 속눈썹에 쏠린 지 오래였으니 말이다.
[멍청하게 습관적으로 가늠했지우리가 맞이하게 될 어떤 엔딩]
카메라는 제 파트가 끝나자 다시 무대 옆으로 빠지는 윤이든에게서 서라온으로 향했다.
김 모 양은 아쉬움이 가득 남은 눈으로 SNS에 그 짧았던 25초의 감상문을 남겼다.
감상은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었다.
꿈♥백일몽 @revedream
울 에덴이 썸띵엔딩 무대 찢었다
공유 12 마음에 들어요 108
* * *
“죄송합니다…….”
늘어진 앨범 하나하나에 사인을 하는 서라온, 아니 온서라를 향해 송구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 서라온과 함께 무대를 선다니까 류재희가 양손 무겁게 바리바리 챙겨 준 앨범들이었다.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려다가 초심도 깎일까 봐 참고 가져왔다.
사인 좀 받아와 달라며 간식 든 주인을 재촉하는 발발이처럼 주변을 뱅뱅 맴도는 놈이 매애애우 성가시기도 했고 말이다.
“괜찮아요. 오히려 이렇게 좋아해 줘서 내가 고맙지.”
온서라가 마지막 앨범에 사인을 끝마치며 대꾸했다.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쇼핑백에 넣어 왔던 앨범 뭉치를 꺼내며 사인을 부탁하자 잠시 멍해지던 온서라의 시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저희 막내가 선배님 광팬이어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을 급히 중얼거리면서 속으로 류재희에게 얼마나 쌍욕을 퍼부어 댔는지 모른다.
차라리 그 빌어먹을 발발이 새끼를 끌고 와서 온서라랑 1대1 대면 팬미팅이라도 시켜 줬어야 했는데. 그럼 적어도 쪽팔림은 내 몫이 아닐 것 아닌가.
사인이 그려진 앨범을 모아 다시 쇼핑백에 집어넣으며 다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야 그럴 게 우리의 대화는 서라온이 아닌, 온서라라고 불러 달라는 것과 사인을 부탁하며 주고받은 인사말이 전부였다.
연차도 많이 나서 일단 깍듯하게 대하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장착되어야 했고 말이다.
“피처링이랑 오늘 무대 고마웠어요.”
“아닙니다, 불러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진심 어린 감사 인사에도 온서라의 표정은 변함없이 덤덤했다.
“사실 지원이가 랩은 안 넣는 게 나을 거라고 한 걸 내가 밀어붙였거든. 한번 넣어 보고 싶어서.”
“아, 옙. G1 형님께 들었습니다.”
“내 선택이 괜한 고집이 되지 않게 만들어 줘서 고마워요.”
온서라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오늘 처음 마주하는 온서라의 미소였다.
다행히 찍힌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말 무대도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연말 무대 피처링까지 약속받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류재희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후다닥 달려왔다.
“자, 선물.”
쇼핑백을 쥐여 주자 사인이 그려진 앨범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감격한 얼굴로 쓰다듬던 류재희는 내게 평생 충성을 맹세해 왔다.
“그런데요, 형. 혹시 서라온 님 인별에 올라온 투샷 말인데요, 혹시 형 얼굴에 제 얼굴 합성해도 돼요?”
“되겠냐?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
달라붙어 오는 놈의 머리를 밀어내며 인별에 접속해 서라온 계정을 검색했다.
오늘 내가 서라온의 폰으로 찍었던 투샷 셀카가 최신 피드에 올라가 있었다.
◎west_raon
(사진)
♡⌕⇗
ujjj 님 외 여러 명이 좋아합니다.
west_raon 어떤 엔딩 뮤캠 1위☺☺☺
우리 조이풀 내가 언제나 사랑하고 감사하는 거 알죠?♥ 멋진 무대 함께 만들어 준 이든 씨도 thanks so much!
#서라온 #어떤 엔딩 #조이풀 #Feat. #레브 #이든
댓글 15,027개 모두 보기
나는 공식 계정 말고 개인 계정은 아직 없었기에 해시태그를 달아 놓은 모양이었다.
[☺팬 30,000명 달성!] [보상: 초심도 +20, 아이템 선택권]팬 3만 명을 달성했다는 알림에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오, 나도 서라온 팬이나 할까?”
갑자기 벅차오르는 이 마음은 팬심인가 충성심인가.
* * *
-여보세요? 이든이, 네가 웬일이냐?
“예에, 준범이 형, 잘 지내셨어요? 다름이 아니고 혹시 언제 시간 되시나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왜, 한 턱 쏘게? 얌마, 그냥 한 말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숨길 수 없이 묻어 나오는 기대감에 냉소를 들리지 않게 뱉어 주고, 넉살 좋게 대꾸했다.
“에이, 그래도 형님이 피처링 꽂아 주신 건데, 은혜는 갚아야 할 거 아님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또 어쩔 수 없지.
수화기 너머로 경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이 잦아들자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참, 형. 혹시 용철이 형이랑 상열이 형도 끼어도 돼요?”
-왜, 둘만 보긴 어색하냐?
“아니 뭐, 형이랑 단둘이 얼굴 보기 어색해서라기보다는 두 형한테도 제가 신세 진 게 있어서 겸사겸사…….”
사실은 김준범의 인맥 자랑과 자기 자랑을 나 혼자서 가만히 들어 주고 싶지는 않아서다.
상열이 형 정도나 있어야지 그 인간의 끝없이 이어지는 자랑을 끊을 수 있다.
뭐, 꼭 그게 아니라도 그 두 형한테 신세 진 걸 갚으려는 목적도 진실이었다.
용철이 형은 작업실을 기꺼이 대여해 줬고, 상열이 형은 을 다듬는 데에 꽤 많은 도움을 줬으니까 말이다.
물론 상열이 형은 그때마다 밥을 뜯어 갔지만, 그래서 이번에 상열이 형을 끼워 넣는 건 사실상 은혜 갚기가 아니라 김준범 컷 용도지만.
그렇게 날짜 잡고 셋이 모였다. 그것도 비싸기로 유명한 한우집에.
서라온 피처링 꽂아 준 사람한테 은혜 갚으러 간다니까 김도빈이 또 나를 매우 기분 더럽게 만드는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이제 그 똥개 새끼에게 신경을 끄기로 마음먹은 터라 상관없었다.
나는 열심히 고기만 구웠고 김준범은 열심히 인맥 자랑과 자기 자랑과 생색을 늘어놓았으며, 상열이 형은 김준범의 자랑을 듣기 지겹다고 열심히 잘라 댔다.
용철이 형은……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야, 근데 이든이 너 이번에 들으니까 랩 많이 늘었더라. 잘만 하면 리케이한테도 비비겠어.”
상열이 형이 내가 건네는 고기를 받으며 말했다.
“에이, E긴이면 몰라도 리케이까진…… 너무 비행기 띄워 주는 거 아니에요?”
“새끼, 겸손한 척을 하려면 그 실실거리는 웃음이나 지우고 해라.”
“그런데 안 그래도 G1 형님도 그 말 하시더라고요. 잘못 든 언더 물 싹 빠졌다고. 덕분에 G1 형님 개인 폰 번호도 받았고요.”
휴대폰을 흔들며 히죽 웃자 김준범이 내 등을 퍽퍽 쳐 댔다.
“와, 그 형이 개인 폰 번호도 줬다고? 그 형이 너 꽤 마음에 들었는가 보다. 나도 한 스무 번은 만나고 겨우 받았는데.”
그 뒤로도 내가 새로 얻을 작업실 이야기, 작곡 장비 이야기, 언더에서 일어났던 개싸움 이야기, 환승연애 때문에 크루 하나 갈라진 이야기 등등을 나누다가 한우 30만 원어치 털고 2차로 넘어갔다.
“야야, 2차는 애들 다 불러!”
“맞아,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모이겠냐! 우리 이든이 곧 톱스타 되면 얼굴 보기도 힘들 텐데!”
2차는 회귀 전, 아직 형들이랑 사이가 틀어지기 전에 자주 모였던 술집이었다.
바글바글 모인 익숙한 얼굴들을 질린 얼굴로 돌아보다가 용철이 형을 툭툭 치며 속삭였다.
“……형, 벼룩의 간을 빼먹으려는 건 아니지?”
“걱정도 팔자다, 인마. 쟤들이 퍽이나 너한테 다 내라고 하겠다.”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아는 척해 오는 인사와 내 등을 두드려 오는 손길들에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일일이 화답했다.
사방에서 내밀어지는 술잔을 부딪치며 과도한 음주 어쩌고로 초심도가 언제 깎일지 타이밍을 쟀다.
딱 한 잔만 마시고 내려놓으려고 술을 들이켜는 순간, 눈앞에 푸른 상태창이 보였다.
[과도한 음주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이런 상황에서 한 잔도 못 마시게 하냐? 그럴 거면 미리 경고라도 띄워 주던가.
움찔하는 고통에 소주잔을 내려놓자 내 앞에 앉아 있던 용철이 형이 쓸데없이 아련한 눈깔로 나를 보며 눈가를 훔쳤다.
“어흑, 째깐했던 놈이 교복 입고 뽈뽈 돌아다녔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커서 밥도 사고 술도 사고…….”
“뭐라는 거야, 용철아. 처음 만났을 때도 얘가 너보다 더 컸어. 그리고 나는 윤이든이가 교복 제대로 갖춰 입고 온 꼴을 본 적이 없는데, 대체 기억이 어떻게 왜곡된 거냐?”
“내가 씨발, 용철이라고 하지 말랬지. D.I라는 까리한 예명이 있는데 그놈의 용철이, 시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게 이미 취한 모양이었다.
“시이발, 아까부터 향수 냄새 뭐고? 역겨운 향기 좀 치아라.”
“아, 죄송. 누나 향수 잘못 뿌리고 왔음. 야, 이든아. 그렇게 역겹냐?”
내 오른편에 앉아 있던 박기정이 취객이 된 용철이 형을 상대하고 있던 나를 툭, 치며 물었다.
“아니요, 그냥 여자 향수 냄샌데? 기정이 형이 이해해요. 우리 태훈 형님이 여자를 못 만나 봐서 여자 향수 냄새가 낯설답니다.”
“윤이드이, 마이 컸다?”
많이 컸지. 회귀 전에 스물일곱 찍고 돌아온 터라 여기서 나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은 거의 없을 터였다.
‘이렇게 보니까 다들 어렸구먼.’
물론 액면가는 죄다 나이+4가 기본이시지만, 초심도의 제지 때문에 술 대신 음료수나 홀짝이며 새삼스러운 감상평을 속으로 삼켰다.
술자리가 파할 때가 되자 술에 찌들어 정신 놓은 채로 해롱거리고 있는 인간들이 눈에 들었다.
취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맨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술에 취하면 부축받아 어찌어찌 집까지 가면 되지만, 맨정신이면 그놈들을 부축해서 집까지 보내는 역할을 떠맡게 되니 말이다.
예전에는 항상 취해서 부축받는 놈 쪽이라 이게 이렇게 돈도 못 받고 하는 개고생일 줄은 몰랐는데.
마지막으로 몸을 못 가누는 박기정까지 부축하여 콜택시에 집어넣은 나는 마침내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겨울에 가까워지는 가을 끝자락임에도 땀에 푹 젖을 정도였으니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는 말 다 했다.
땀에 젖은 옷을 펄럭일 때마다 미묘하게 올라오는 향에 인상을 찡그렸다.
“하씨, 옷에 향수 냄새 다 배었네.”
그 형은 무슨 향수를 뿌리는 게 아니라 들이부었나.
숙소에 도착하니 한창 새벽인 터라 멤버들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조심 들어왔다.
그러다가 냉장고에 막 물병을 집어넣는 김도빈과 시선이 딱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