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2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26화(32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26화
“헉, 부채 찢어졌다.”
“접을 때 얼마나 세게 접으면 부채가 찢어지냐. 살살 좀 접으라니까.”
무대에서 내려와 검은색 목티 위에 걸친 짧은 기장의 한복풍 겉옷 옷매무시를 정리하며 김도빈에게 타박을 날렸다. 옆에서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던 류재희가 김도빈을 돌아보며 물었다.
“형이 부채 찢어먹은 거, 이번이 세 번째 아니야?”
“종이 부채라 그러는 거 아닐까? 내가 조심성이 없는 게 아니라 종이가 너무 약해서 찢어지는 거라고.”
“그렇다기에는 우리도 종이 부채인데 형 빼고 한 번도 찢어 먹은 적이 없는걸.”
“그냥 다 같이 천 부채로 바꾸자.”
김도빈의 당당한 요구에 고개를 쓱 들어 딱 한 마디 했다.
“네가 사냐?”
“그냥 테이프로 붙여서 셀프 수리할게여.”
김도빈이 수그러들자 이번에는 부채를 살피던 견하준 쪽에서 말이 나왔다.
“내 것도 여기 찢어졌네. 펼칠 때 너무 힘을 줬나.”
“그래? 그럼 기왕 바꾸는 김에 그냥 천 부채로 바꾸자, 다 같이.”
“비견하준 차별을 멈춰 주세요. 같은 내용을 주장했다가 사비로 메꾸라는 소리를 들었던 비견하준은 서러워요.”
“얌마, 내가 설마 네가 돈 내게 내버려 뒀겠냐? 당연히 소속사에 청구하지.”
“우우우, 비겁한 변명 OUT!”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내리며 야유를 보내는 김도빈을 헤드록으로 제압했다.
“하하, 도빈아. 형이 많- 이 편해졌지? 형 면전에서 손가락으로 야유를 해? 이제 와서 손가락 다시 위로 세워 봤자 소용없어, 인마.”
“그래도 지금까지 불편한 것보다는 편해진 게 더 낫잖아요! 사람 살려!”
무대가 맨 마지막 순서였다 보니 숨 돌릴 틈도 없이 1위 발표를 위해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야 했다.
MC들의 옆에 나란히 서서 손가락으로 청류가의 번호인 1을 만들어 카메라를 향해 흔들었다.
“문자 투표 종료! 네, 그럼 11월 첫째 주 뮤직센터 1위 발표하겠습니다! 먼저 음반 점수입니다.”
MC들이 계속해서 평가 기준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다른 1위 후보는 오늘 음방에 나오지 않았기에 우리의 1위는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생방송 문자 투표 점수를 합산한 오늘의 1위는!”
팡!
허공에 컨페티가 흩날림과 동시에 MC가 오늘의 1위를 발표했다.
“레브의 <청류가(淸流歌)>! 축하드립니다, 레브!”
트로피를 받아들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나 대신 마이크를 건네받은 류재희가 1위 소감으로 멤버들과 소속사 실무진들에게 감사 인사를 늘어놓았다.
“마지막으로 레브의 영원한 짝꿍 데이드림! 언제나 감사하고 사랑해요!”
류재희가 팬석을 향해 손하트를 만들어 흔드는 사이 앵콜 무대 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무대 위를 벗어나는 타 아이돌 그룹들과 MC들에게 인사를 마친 우리는, 앵콜 무대 준비를 했다.
무려 애교 3종 세트라는 결코 쉽지 않은 벌칙이 걸려 있었기에 멤버들 사이에 흐르는 기류는 매우 비장했다.
류재희가 견하준이 맡은 도입부를 손쉽게 불렀다.
어차피 김도빈과 서예현은 서로의 파트, 혹은 내 파트만 노리고 있을 테니 류재희는 그들의 견제 대상이 아니었다.
서예현이 김도빈의 파트를 부르며 대놓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파트 하나 부르기 성공시켰다는 의미였다.
싸이퍼 미션에서 15초가 남자마자 바로 들어갔던 짬밥으로 견하준이 류재희의 파트를 부르기 전에 한발 먼저 들어가 파트를 가로챘다.
원음에서 음역대만 내게 맞는 수준으로 낮추어 부르는 건 이 곡의 주 작곡가인 내게 있어서 식은 죽 먹기였다.
이런 재량과 센스도 필요한 법이지. 원래 음역대로 부르면 삑소리를 넘은 쇳소리가 나서 꼼짝없이 애교 3종 세트를 선보여야 했을 게 분명했다.
부르기 쉽고 내 보컬 실력 밑바닥도 드러나지 않을 김도빈과 서예현 파트를 두고 굳이 음역대를 낮추면서까지 내가 작곡했지만 난이도가 좀 많이 미친 것 같은 류재희의 파트를 견하준이 하리란 걸 예상했으면서도 스틸한 건 견하준의 발화 지점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어서였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부로 견하준의 속을 긁으려고 이러는 게 맞다는 소리다.
이해해라, 견하준.
이게 다 내 미래를 위해서 이러는 거니까. 너와의 사이 개선도 1%를 다시 올리지 못하면 난 또 데뷔 초로 회귀해서 이 쌩고생을 또 해야 한다고.
물론 어떻게든 다시 데뷔 초로의 회귀를 막긴 할 거지만, 인생사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혹여 모를 1%의 확률을 위하여 DTB 4에 나가서 3차 예선에서 유피랑 다시 맞붙었을 때 쓸 가사도 이미 생각해 놨다.
‘니네 나 떨어뜨리고 유피 올릴 거 다 앎’이라고 내뱉고 진짜 내가 이번처럼 탈락했을 때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지는군. 그렇다고 그거 보고 싶어서 회귀하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견하준의 기회를 스틸하고 있는 건 오직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서치퀘를 하다가 견하준이 데뷔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애교를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다며, 견하준이 각 잡고 하는 애교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라는 견하준 최애 팬분의 소원을 들어드리기 위해서였다.
류재희랑 시선을 교환하고 손가락으로 슬쩍 견하준을 가리키며 눈을 찡긋하자 류재희 역시 자기만 믿으라는 듯 엄지를 쓱 올리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속해서 내게 맞춘 음역대로 얄미울 정도로 견하준을 막아 댔고, 견하준은 평온한 얼굴로 번번이 마이크를 내렸으며, 앵콜곡 랜덤 파트 체인지 공약 미션은 점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달아갔다.
시바, 이게 아닌데.
이 그룹은 대체 항상 왜 이러는 건가. 일단 내가 리더니까, 리더 문제는 아닐 거 아니야.
* * *
-뭐랄까 약간 꿈같다 1위 후보곡 세 곡 중에 두 곡이 레브 곡이라니
-오 공약 어제는 좀 심심하더니 오늘은 앵콜무대 볼 맛 나겠는데
-누가 벌칙 당첨될까ㅋㅋㅋㅋ
-오랜만에 울 밤비 애교 보고 싶은데…ㅠ 예현아 초심 찾아서 실수 한 번만 해줘 일몽이 소원!
-하준이 애교 내가 죽기 전에는 볼 수 있는 걸까 어떻게 이든이도 했던 애교를 4년차인 지금까지 쏙쏙 피해갈 수가
-앜ㅋㅋ 도빈이 부채 또 찢어졌어ㅋㅋㅋ 이쯤되면 도빈이 불량품 부채만 당첨되는 거 아니냐고ㅋㅋ
-하준이 부채도 찢어졌당
-부채 찢어져도 둘 다 표정 하나 안 바뀌는 거 그저 프로 그자체…
└도빈이는 익숙해서 그래ㅋㅋㅋㅋ 처음에 찢어졌을 때는 엄청 당황했어ㅋㅋㅋ
-그냥 안 찢어지는 천 재질 부채로 바꾸자 얘드라
-겉옷자락 꽃잎처럼 부드럽게 펄럭이는 거 너무 예쁘다
-올드팬들이 레브 칼군무에 감탄하는 이유를 최근 1~2년 내에 입덕한 일몽소녀들은 모르겠지
└한때 레브 퍼포그룹은 아니라는 소리 들었다고 하면 다 안 믿더라ㅋㅋ
-누구는 1번 투표하라 하고 누구는 2번 투표하라 하고ㅎㅎ 대체 문투에 몇 번을 보내야 하는 건가
-보컬라인은 연하가 응원하고 랩라랑 메댄은 청류가 응원하는 거냐고ㅋㅋㅋ
-오 청류가 1위 ㅊㅋㅊㅋ
-유제가 하준이 파트 선점 성공했네ㅋㅋ 울 거대햄찌 목소리로 들어도 좋다
-도빈이 파트 예현이가 스틸 성공! 그럼 예현이 파트를 이든이가 하려나 도빈이가 하려나
└이든이 버전은 봤으니까 도빈이 버전 ㅂㄱㅅㄷ
-하준이는 어차피 유제 파트 하겠지
-이든아…? 네가 메보 파트를 한다고…?
-음역대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예요?
-얼굴만 보면 원음으로 열창중이여 아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든이 애교 확정ㅋㅋㅋㅋㅋㅋㅋ 역시 효륜돌!
-음역대 이야기는 없었다고 실수 아니니까 자기는 애교 안 해도 된다고 윤리다가 우길 확률 99.9999999%
└든잘알 ㅇㅈ
-오 예현이가 이든이 파트까지 뺐었닼ㅋㅋㅋ 도빈이 표정 점점 초조해지고 있엌ㅋㅋ
-괜찮아 도빈아 그다음에 바로 예현이 파트 이어지니까 그거 하면 돼
-예현아…… 욕심은 거두고 네 파트 랩만 하자…..
-우리 예현이… DTB 5 나갈 수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현아? 예현아…?
-예현이가 자기 파트도 해버림ㅋㅋㅋㅋㅋㅋ
-사실 예현이도 애교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저 얼굴로 애교 안 하고 사는 건 국가적 손실이긴 하지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자기 파트 차례 되면 자동반사적으로 나올 만큼 연습했냐고
-중간에 자기 파트 자기가 하고 있는 거 알아채고 표정 아연해진 것좀 봐ㅋㅋㅋㅋ
-도빈이 표정 ㄹㅇ 눈앞에서 간식 뺏긴 강쥐 그자체
-도빈이 하준이 파트라도 하려고 했는데 막냉이 블락 쩔어ㅋㅋㅋㅋ
-막내 오늘 형들 다 애교시키려고 작정했나보다ㅋㅋㅋ 하준이 못 하게 도빈이 파트까지 자기가 해버리네ㅋㅋㅋ 막내야 숨은 쉬면서 부르는 거지?
-윤이든 또 지가 먼저 유제 파트 해서 하준이 블락ㅋㅋㅋㅋㅋ
-어쩐지 리더랑 막내가 초반에 신호 주고받더라ㅋㅋ 하준이 막자는 신호였을 줄이야ㅋㅋㅋ
└하준이 몰아가려고 했는데 둘이나 더 자폭해버림ㅋㅋㅋㅋ
-후렴구에서 음 훅 낮아지는 거 개웃기다곸ㅋㅋㅋㅋㅋ
-노래 끝났다 도빈이랑 하준이 결국 끝까지 못 부름ㅋㅋㅋ
-레브멤들 다 웃기다고 전혀 서로 감정 안 상한 얼굴로 웃고 있는데 속마음 궁예 소설까지 써 내려 가면서 유제랑 이든이 까는 악개 뭐임
-내일이나 목요일에 벌칙 없는 버전으로 한 번 더 해줘 하준이 버전 후렴구랑 도빈이 버전 예현이 랩 궁금하단 말이야
* * *
“자, 그렇게 해서 이렇게 세 명이 애교 3종 세트 선보이기에 당첨되었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멘트를 마치고 짝짝짝 박수를 치자 그 세 명 중 두 명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니죠! 왜 세 명이에요! 네 명이죠!”
“맞아! 왜 너는 포함 안 시켜!”
“그야 나는 막내 파트도 성공적으로 부르고 실수도 안 했으니까.”
“음역대가 아주 땅바닥을 파고 들어갈 수준이던데 뭔 실수를 안 하긴 안 해.”
“음역대까지 똑같이 하라는 룰은 없었잖아.”
뻔뻔하게 우겨 봤지만 결국 나도 앞에서 잡아끌고 뒤에서 떠미는 손길들에 이끌려 카메라 앞에 터덜터덜 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그랬지? 내가 왜 내 파트를 했지?”
“왜 그랬어여, 형.”
“나도 몰라.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어. 연습을 너무 많이 했나 봐.”
서예현의 넋 나간 한탄과 김도빈의 원망이 옆에서 들려왔다.
슬쩍 옆을 돌아보며 견하준의 표정을 살폈지만 마주한 견하준의 얼굴은 나를 향한 원망 한 점 없이 아주 평온했다.
역시 이 정도로는 속 긁기에 실패인가. 혼자 애교 벌칙에 당첨됐으면 몰라, 하필 또 류재희를 제외하고 다 같이 벌칙에 당첨됐으니 딱히 마음 상할 일도 아니게 되어 버렸군.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볼쿡윙크를 수행하는 견하준을 보며 생각했다.
내 차례가 오자 기계적으로 볼 옆에 가져다 댄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래, 이건 애교가 아니라 어느 쪽 주먹을 날릴지 상대방을 교란시키는 수법이다.
이제 나머지 두 개는 뭐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