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2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28화(32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28화
김도빈이 그렇게 부르짖던 해외여행에 초호화 여행 찬스가 당첨됐다고 고생한 리더를 모시고 간다고 하면 몰라, 개고생이 예약된 무인도에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무인도? 무- 인- 도오?”
내가 뒷말을 붙이지 않고 무인도만 부르짖는 이유는 이게 카메라에 찍히고 있을 테니까, 오직 그 이유밖에 없었다.
카메라가 없었으면 쌍욕을 초심도 시스템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잘 순화해서 쏟아부어 주었을 텐데.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었다.
-형이 거절하면 저는 혼자 가야 해요! 이거 딱 한 사람에게밖에 요청을 못 한다고요! 저는 그 소중한 기회를 형한테 올인한 거예요! 엄청 감동적이지 않아요?
수화기 너머의 태도가 하도 당당해서 순간적으로 내가 김도빈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나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까 너 언제는 하준이 데리고 가겠다며. 그 찬스, 하준이한테 쓰지 그랬냐. 안타깝게도 선택지를 잘못 택한 죄로 기회 날아갔다. 무인도 잘 갔다 와라.”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하자 김도빈이 다급히 나를 회유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생각해 보니까 재희 말이 맞는 거 같아서요. 어차피 무인도에서 진수성찬으로 한 식탁 해 먹을 것도 아닌데 형의 요리실력은 딱히 필요가… 그리고 왠지 형이랑 같이 가면 어떤 위험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물론 김도빈이 내게 전화한 이상 오케이하고 김도빈의 찬스권 대상으로 가는 게 맞다. 둘이서 신곡 홍보도 하고, 멤버간의 끈끈함도 인증하고, 대중성도 높일 좋은 기회이니.
하지만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인지라 선뜻 긍정의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트러블 트레블>, 김도빈이 현재 고정 패널로 있는 여행 예능의 이름이다.
훅 쏟아지던 여행 예능에서 이 프로그램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개성 있는 패널들의 조합. 방송으로 본 김도빈도 그 조합에 묻히지 않고 잘 어우러지더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힐링에 중점을 두지 않고 온갖 미션과 기상천외한 룰로 패널들의 개고생을 이끌어내며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준 것.
화면 너머 생고생을 하는 김도빈을 보며 아이고, 돈 버느라 고생한다고 혀를 찼던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힐링 여행으로 유명한 스위스 여행도 하드모드로 만든 예능인데 국내 무인도는 어떻겠나. 1박 2일 동안 온갖 개고생만 하고 올 게 벌써 눈에 선했다.
“도빈이가 너를 콕 집어서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냥 가 줘라. 오죽했으면 너한테 부탁했겠어.”
자기가 걸린 게 아니라고 서예현이 남 일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서예현 입장에서는 정말로 남 일이긴 했다.
아니, 김도빈은 자기랑 제일 친한 류재희나 자기 원픽 형인 서예현이나 아니면 원래 무인도에 데려가고 싶어했던 견하준이나 데려가지, 왜 하필 굳이 나를 데려가서 자기랑 같이 생고생을 시키려고 그래?
내가 데뷔 초에 도비라고 불러 댔던 일의 복수냐?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자 PD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자, 제한 시간 5초 들어갑니다. 5초 안에 승낙을 못 받으면 찬스권은 무효로 돌아갑니다! 5, 4…
-혀엉!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숫자가 점점 줄어들자 김도빈이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알았다, 갈게.”
-네, 형! 바로 오세요! 아, 짐 따로 챙겨 오지 말래요!
<트러블 트레블>이 대본 거의 없는 실제 상황이라고 그렇게 우기더니 이런 식으로 증명을 해 주는구나.
매니저 형한테 갑작스럽게 새로 추가된 스케줄 연락을 넣고 곧바로 숙소로 온 개인 매니저와 함께 김도빈에게 전달받은 촬영 장소로 향했다.
밴에서 내리자 김도빈이 제일 먼저 펄쩍펄쩍 뛰며 내게 손을 흔들어 반겼다.
평소처럼 헤드록을 걸고 싶은 마음을 꾹 내리누르고 PD를 비롯한 스텝들과 김도빈을 제외한 다섯 명의 출연진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중 낯익은 얼굴도 눈에 띄었다.
“안녕하세요, 도빈이랑 같은 그룹 형인 윤이든입니다.”
“우리 레브 리더예요!”
카메라에 대고 인사를 마치자 김도빈이 의기양양하게 내 옆에 서서 덧붙였다.
“오랜만이네. 나 기억하지?”
카메라 앞의 인사를 끝내자마자 반갑게 내게 아는 척을 해오는 이는 내가 땜빵용으로 들어갔던 에서 만난 개그맨이었다.
관등성명을 대라고 장난도 걸고, 내게 적당히 설렁설렁하라고, 어차피 예능인데 여기에서 다치면 앞길 갑갑해진다고 충고도 해 줬던 이라 화면 너머가 아닌 직접 이렇게 얼굴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연하죠. 오랜만에 뵙네요. 벌써 1년 됐나? 거의 2년 되어 가죠?”
“이야, 시간 빠르다. 그때도 인기 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완전 슈스 됐어. 그때 내가 사인 안 받아갔던 게 한이다, 한.”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개그맨이 웃었다. 참고로 는 개편한답시고 패널을 싹 갈아서 지금 이 개그맨은 에서 하차한 상태였다.
플러스로 나한테도 개편된 패널 제안이 왔지만 어차피 개편 뒤로 시청률 하락세 타고 매번 패널 바꾸기와 스페셜 게스트 초대만 해 대며 원 패널들 무시하는 미래를 알고 있는 터라 미련 없이 거절했다.
그리고 현재 개편 ver.은 회귀 전과 똑같이 하락세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김도빈이랑 둘이서 <청류가(淸流歌)> 하이라이트 파트를 짧게 선보이고 나서 PD가 박수를 짝짝 쳤다.
“네, 도빈 씨까지 찬스권을 모두 썼고요, 그럼 이제 촬영 장소로 이동하겠습니다!”
그 말에 다들 옆에 놓아 둔 짐을 챙겨 들었다. 거의 캠핑 가는 수준인 묵직한 짐들을 보다가 김도빈의 달랑 캐리어 하나어치의 짐을 보니 갑자기 불안감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왔다.
짐을 버스 짐칸에 싣고 촬영용 버스에 올라타자 냉큼 내 옆자리를 차지한 김도빈이 내 옆구리를 아주 살살 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역시 우리 형 방송 잘알이라니까. 일부러 긴장감 유도하려고 바로 승낙 안 한 거죠? 어유, 저까지 괜히 쫄렸잖아요.”
착각은 자유라더라. 김도빈이 나를 더 우러러볼 수 있도록 김도빈의 착각을 굳이 정정해 주지 않고 어깨만 으쓱했다.
“자, 섬까지 도착했습니다. 다들 버스에서 하차해 주세요. 무인도까지는 배를 타고 가야 하거든요.”
“짐 꺼내야 하는데. 기사님, 버스 짐칸 좀 열어 주세요.”
MC 역할을 도맡아 하는 예능인이 버스 문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지만 짐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짐은 저희가 나중에 가져다드릴게요.”
PD의 말에 배우가 버럭 호통쳤다.
“이래 놓고 또 우리 짐 빼돌리려 그러지! 우리가 한두 번 속아!”
“나 이거 바리바리 챙겨오느라 우리 와이프한테도 한 소리 들었어. 집 어지럽힌다고. 그런데 그렇게 챙겨온 짐 방송에서 쓰지도 못해 봐. 나 쫓겨나. 우리 정 PD가 나 집에서 쫓아내는 거야.”
솔로 가수도 그 역정에 거들었다.
“배가 여러분들 짐까지 다 싣긴 어려워요. 그러니까 먼저 섬에 가 계시면 저희가 꼭 전달해 드릴게요.”
레브 멤버 중에서 옥장판 제일 잘살 것 같은 멤버 1위를 당당히 차지한 김도빈까지 불신의 눈으로 PD를 바라보고 있는 걸로 봐서는 정말로 이런 식으로 속인 게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배가 얼마나 작은데? 우리가 보고 판단해 볼게.”
“저겁니다. 여러분들이 타고 가실 배.”
PD의 손짓 끝에는 작은 모터보트 한 대가 부둣가에 묶여 바다에 동동 떠 있었다.
“야, 이거 가다가 빠지는 거 아니야?”
하지만 걱정과 달리 우리는 그 모터보트로 카메라 감독님과 함께 무인도에 무사히 도착했다.
체감 거리가 다행히 짧았기에 폭우가 엄청나게 쏟아지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조난을 당할 일은 없어 보였다.
앞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뒤에 무성하게 늘어진 숲. 정말로 전형적인 무인도였다.
“휴대폰 신호도 안 터진다. 진짜 무인도네.”
“어우, 저녁에 추위 장난 아니겠는데?”
“오, 미션지 여기 있네요.”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자갈로 떡하니 눌러져 있는 종이를 발견한 김도빈이 돌을 치우고 덥석 종이를 들어 올렸다.
김도빈에게 미션지를 건네받은 MC가 가장 첫줄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
“드론이 떠나기 전에 본인이 가져온 짐에서 필요한 것 딱 한 가지만 모래사장에 크게 적으시오. 드론? 드론이 어디 있어?”
“어, 온다, 드론! 왔다!”
하늘을 날아오는 드론이 눈에 들어왔다.
“뭐로 적지? 나뭇가지? 돌? 나뭇가지 어딨어?”
“저거 꺾어 오는 길에 드론 떠나겠는데?”
다들 드론이 언제 떠날지 몰라 허둥지둥하는 사이, 김도빈을 툭툭 쳤다.
“도빈아, 신발 한 짝 벗어 봐라.”
김도빈은 군소리 없이 신발 한 짝을 벗어 건네고 깽깽이 다리로 서 있었다.
“너 뭐 가지고 왔냐?”
“역시 필수품은 물이겠죠. 생수병 적어 주세요.”
위에서도 충분히 보이게끔 김도빈의 신발로 모래사장에 크게 생수병을 적고 있는데, 옆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차피 물은 100% 줄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제작진 측에서 제일 안 줄 만한 거, 그걸 적어야지.”
그 말에 옆을 돌아보자 다른 패널들이 쓴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텐트, 텐트, 낚시 가방, 침낭, 텐트.
“아, 침낭 생각만 하고 텐트 챙겨올 생각은 못 했네.”
우리 옆에서 글자 쓰기를 마친 배우가 제 이마를 치며 탄식처럼 중얼거렸다. 여전히 허공을 맴도는 드론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김도빈을 불렀다.
“도빈아.”
“네, 형.”
“너 텐트 안 가져왔냐?”
“넵.”
“침낭은.”
“안 챙겼죠.”
“그럼 우리 어디서 어떻게 자냐.”
“글쎄요…? 형님들이 챙겨온 텐트가 다인용이길 바라야겠죠…?”
“안 재워 주시면?”
“그럼 해변가에서 모래 덮고 자야죠. 아니면 옛날에 살아남기 시리즈에서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편에 나오거든요. 나뭇가지랑 나뭇잎으로 간이 집 만드는 거. 그거 만들죠. 아, 그 만화책도 챙겨올걸.”
“혹시 너만 무인도 간다고 전달을 못 받은 거냐?”
“아니요? 전달받았으니까 제가 생수랑 참치캔이랑 라면 챙겨왔죠.”
“아니, 왜 다들 텐트 챙겨오고 침낭 챙겨오는데 너는 그걸 생각도 못 하고 먹을 것만 잔뜩 챙겨왔냐고.”
“저희가 맨날 글램핑장만 갔잖아요. 그래서 캠핑에 익숙하지 않아서 생긴 비극 같아요.”
“도빈아.”
“네, 형.”
“…나 왜 데리고 왔냐?”
“이런 상황에서 형이 어떻게든 해줄 거란 믿음이 있어서요.”
“말 하나는 참 잘 한다.”
김도빈을 잡을 기력도 없어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왜 달콤한 휴식을 두고 김도빈과 무인도에서 맨몸으로 노숙을 해야 하는가.
떠나는 드론을 보고 있으니 예능인이 두 번째 줄 문장을 읽었다.
“선택되지 않은 여러분들의 나머지 짐은 보급품이 됩니다. 보급품 배는 1시간마다 한 번씩 옵니다. 단, 미션을 성공해야지만 보급품 배에서 보급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미션?”
“미션지는 무인도 사방에 숨겨져 있으니 찾아보시면 됩니다- 라는데.”
예능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패널들이 익숙하게 사방으로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