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3화(33/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3화
아니, 아는 형들이랑 술 마시고 들어온 게 잘못은 아닌데. 왜 저 똥개 새끼는 내가 무슨 죄악이라도 저지르고 온 것 같은 눈깔로 나를 보냐.
혹여 사람들이 알아볼세라 얼굴을 꽁꽁 싸맨 마스크와 캡모자, 안경을 벗고, 입고 있던 항공 점퍼를 바닥에 휙 던졌다.
“나도 물 좀 주라.”
휘적휘적 다가가 김도빈의 손에 들려 있는 물병을 낚아챘다.
시원하게 닿아 오는 냉장고의 냉기에 옷을 펄럭이며 컵을 찾고 있자 눈살을 찌푸린 김도빈이 코를 자꾸만 찡긋거렸다.
두리번거리다가 내게 시선을 고정한 김도빈이 물었다.
“형, 혹시 술 마시고 왔어요?”
“어어, 눈치 보느라 얼마 마시지는 못했지만.”
시스템 눈치 보느라, 시발.
컵을 끝끝내 찾지 못한 나는 물병을 열어 입을 대지 않고 물을 원샷했다.
냉장고에 다시 물병을 집어넣고 방으로 가려 하는데, 갑자기 김도빈이 내 팔을 덥석 잡으며, 답지 않게 진지한 얼굴과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 저랑 이야기 좀 해요.”
“나 지금 피곤해 죽겠는데 내일 이야기하면 안 되냐?”
찡그린 미간을 문지르며 말을 자르며 걸음을 옮기자 김도빈이 결의에 찬 눈으로 내 앞을 막았다.
“아니요. 오늘, 아니 지금 꼭 해야 해요. 진짜 중요한 이야기란 말이에요.”
혹사당해 피곤한 몸 때문에 어서 방에 들어가 눕고 싶은데 휴식을 방해받는 이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요한 이야기 아니기만 해 봐.”
내 가라앉은 목소리에 움찔하면서도 김도빈은 몸을 비키지 않았다.
“스, 스폰 말인데요…….”
미안하다. 존나 중요한 이야기였구나.
당장 소파로 김도빈을 질질 끌고 갔다.
이 시간에 깨어 있는 멤버들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냉장고 앞에 서서 하기에는 좀 그랬다.
드디어 이 똥개 새끼가 나를 믿고 털어놓는다는데 진지하게 경청해 줘야지.
지그시 바라보자 히끅, 딸꾹질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김도빈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몸을 덜덜 떨며 입을 열 생각을 안 하는 녀석에게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뭐. 계속 말해.”
“잠시만요, 마음의 준비 좀…… 진짜 화내시면 안 돼요, 형.”
염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하는 김도빈의 모습에 푹 한숨을 내쉬며 달래듯 대가리를 토닥였다.
“도빈아, 내가 너 잡아먹냐?”
그 다독임에 드디어 입을 열 용기가 생긴 듯 숨을 한껏 들이마신 김도빈이 눈을 질끈 감으며 물었다.
“스폰 이제 안 받으시면 안 돼요?”
피로로 평소보다 덜 돌아가는 내 뇌는 방금 들린 말을 해석하는 데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저 녀석이 스폰 제안을 받았다는 거 아니었어? 왜 꼭 내가 스폰 제안을 받은 것처럼 말하지? 아니, 방금 말은 꼭 내가 스폰 뛰고 온 사람인 것처럼…….
내가 혹시 너무 피곤해서 ‘안 받게 해 주시면’이라는 말을 잘못 들었나.
침묵이 길어질수록 김도빈의 몸 떨림 역시 더욱 격렬해졌다.
“뭐?”
“네?”
삑사리까지 내며 대꾸하는 김도빈을 향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스폰받게 하지 말아 달라고? 대표님이 스폰 제안하든?”
“저 아직 미성년자거든요! 제안이 들어올 리가 없잖아요!”
“아, 그럼 내가 맞게 들은 거구나.”
하하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떨리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멱살을 잡아채 당기고는 윽박질렀다.
“내가 왜 스폰을 받아, 이 자식아!”
[금지 동작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따끔거리는 고통이 느껴져 멱살을 쥔 손을 빠르게 풀었다.
“허억, 아니었어요? 그럼 오늘 피처링 꽂아 준 사람한테 은혜 갚는다는 거랑 향수 냄새는……?”
“이 자식아, 내 인맥! 아는 형! 그리고 향수 냄새는 옆자리 인간이 누나 향수 들이붓고 와서 밴 거다.”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남들 다 자는 새벽인 걸 자각하고는 목소리를 다시 낮췄다.
바싹 군기가 든 김도빈이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그럼 몸 좀 빡세게 굴린다 하고, 살길 찾는다고 자꾸 숙소 나가서 새벽에 들어온 건…….”
“곡 작업했다. 그거. 그게 이틀 만에 완성할 수 있는 곡이겠냐?”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 된 김도빈을 보며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그럼 사람 비위 맞추는 거 힘들다고 한탄했던 건…….”
“노래 피드백 받겠다고 형들한테 술 사고 밥 사고,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네가 돈 절반 댈래? 어?”
이제는 느낌표까지 얼굴에 마구 띄워 대는 놈을 보는 내 눈에 절로 한심하다는 감정이 들어찼다.
“그럼 같이 짊어지자는 그날의 대화는…….”
“네가 하도 스폰 단어 들릴 때마다 움찔해서 스폰 제안받은 줄 알고, 속에 묻어 두지 말고 말하라고 그랬지, 인마! 아주 대가리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막장드라마 한 편 쓰고 있을 줄 누가 알았냐?”
말하다 보니 또 열이 뻗쳐 목소리가 절로 올라갔다.
화를 식히기 위해 머리를 신경질적인 손길로 헤집자 손이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리던 김도빈이 울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재희 말 들을걸…….”
“류재희는 또 왜 나와?”
“재희가 그냥 형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너 설마 막내에게도 너의 그 뭣 같은 가설을 꺼내 놨냐?”
사고 친 똥개 새끼처럼 눈을 데굴데굴 굴리던 김도빈은 슬그머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내 시선을 피했다.
티 나게 나를 피하던 김도빈과 달리 나를 대하는 태도가 한결같았던 걸 보면 우리 똑똑한 막내 녀석은 저 엿 같은 가설을 믿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류재희가 똑똑한 게 아니라 김도빈 저 망할 놈이 눈치 없고 쓸데없이 상상력 풍부하고 멍청한 건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기분이 더럽네……?”
스산한 중얼거림에 딴청을 부리던 김도빈은 분위기 파악을 마쳤는지 곧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내리깔았다.
“나를 스폰이나 뛰고 다니는, 아무튼 그런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 아니야.”
“아아아아니요? 절대 아닌데요? 저는 형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절대 없는데요?”
“입.”
한 마디 하자 속사포로 부정의 말을 쏟아 내던 김도빈이 곧바로 입을 꾹 다물었다.
“내 등골 빠지는 노력의 결과물을 겨우 스폰의 부산물로 치부한 거 아니야, 이거.”
지금 내가 7년을 거슬러 돌아와서 우리 그룹 망돌 길 피하고 1군으로 만들려고 그리 쌔 빠지게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걸 내가 겨우 몸으로 얻어 왔다고 생각했다, 이거지?
눈빛이 절로 흉흉해졌다.
바닥에 납작 엎드린 김도빈이 대성통곡을 해 댔다. 지금 울고 싶은 게 누군데.
“흐허헝, 형 죄송해요! 제발 때리지만 말아 주세요!”
“돌겠네. 내가 언제 너 때린 적 있냐?”
“지금 형 눈이, 흐어, 돌아 있잖아요!”
앞에 쭈그려 앉아 묻자 고개를 든 김도빈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삿대질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 더 무어라 할 의욕도 사그라졌다.
“나 진짜 궁금해 죽겠는데 하나만 묻자. 대체 어쩌다가 생각이 스폰까지 뛴 건데?”
“아니, 하필 의심 시작했던 날에 본 게, 크흥, 아이돌물인데 주인공 라이벌 그룹이 스폰받은 거 터져서, 킁, 몰락한 편이라서.”
훌쩍거리는 녀석의 동그란 정수리를 한 손 가득 콱 쥐어 잡았다.
“애니메이션 좀 작작 봐라.”
“애니가 아니라, 크흥, 웹소설인데요…….”
“애니든 웹소설이든 작작 보라고. 망할, 건실하게 팀 건사하고 있는 사람을 스폰 뛰는 놈으로 만들고 있어.
정수리 위에 얹은 손가락에 꾹꾹 힘을 줬다.
이건 폭력이 아니라 이제까지 머리가 무겁고 복잡했을 넷째 녀석을 위한 두피 마사지였다.
머리가 시원한지 악악거리는 탄성이 들려왔다.
시스템도 멤버를 생각하는 내 마음을 느꼈는지 초심도를 깎지 않았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비몽사몽인 얼굴의 견하준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이든아, 왜 이 한밤중에 애를 잡고 있어…….”
“거기까지 들렸냐? 미안. 얼른 다시 자.”
“너도 얼른 들어와서 자…….”
내게 손짓한 견하준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김도빈은 눈앞에서 밥그릇 치워진 똥개 새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이 상당히 짠했기에 두피를 잡고 있던 손을 떼고 등을 툭툭 다독여 주었다.
“얼른 들어가서 자라. 내일 안무 연습하려면 잠은 자야지.”
“혹시 그 내일의 안무 연습이 제 최후의 안무 연습인가요.”
“진짜 최후로 만들어 주리?”
“아아니요! 안녕히 주무세요!”
후다닥 방으로 달려가는 김도빈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하품하며 내 방으로 향했다.
미성년자인 애한테 스폰 제안했냐고 소속사 안 쳐들어간 게 다행이네. 하여간 저 원수 같은 똥개 새끼.
* * *
“도비! 물!”
“도비는 자유로운 집 요정이에요!”
내 외침에 곧바로 달려온 김도빈이 공손하게 찬물이 가득 담긴 물컵을 내밀었다.
“뭐, 인마? 하기 싫다고?”
“그냥 집 요정 전용 멘트인데요…….”
잔뜩 기죽어 웅얼거리는 김도빈을 보며 류재희가 혀를 찼다.
“그러게 진작 물어보라니까. 내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했잖아, 형. 진짜 스폰이었으면 이든이 형이 진작 깽판 치고 나와서 우리 그룹 망했다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설거지나 해라, 막내야. 설거지 쌓였더라.”
“이번 주 설거지 당번은 형 아니에요?”
“서라온 사인 앨범 받아 와 준 게 누구더라?”
내 삐딱한 미소에 류재희는 말없이 터덜터덜 주방으로 향했다.
소파에 편히 기대어 앉으며 히죽거리자 바닥에 내려놓은 빈 컵을 들어 올린 견하준이 주방으로 가며 내게 한 소리 했다.
“그래도 적당히 하는 거 잊지 말고.”
“별걱정은. 한 일주일 정도만 부려 먹을 거야.”
내 대꾸에 주방에서 류재희가 곧바로 반박했다.
“일주일은 너무 긴데요!”
“앨범 하나당 하루 잡은 거 아님을 감사하게 여겨라, 재희야.”
앨범 하나당 하루였으면 너는 12일을 내 따까리로 살아야 해, 이 자식아.
컵을 설거지하는 류재희에게 가져다주고 다시 내 옆에 앉은 견하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까 KICKS 티저 나왔더라.”
“어때?”
“괜찮게 뽑혔던데? 노래는 풀로 들어 봐야 알겠지만.”
굳이 소파 두고 바닥에 앉아 소파를 등받이 용도로 쓰고 있던 서예현이 쳇, 혀를 찼다.
“걔들이 11월 둘째 주 컴백이고 우리가 셋째 주 컴백이니까 활동은 무조건 겹치겠지. 우리나 걔들이나 아직은 연차 안 찬 신인이니까 대기실도 같이 쓸 거고.”
“또 걔들이 긁는 말 옆에서 듣고 있을 생각 하니까 짜증 나는데.”
머리를 벅벅 긁는 서예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그러니까, 다른 건 져도 음원 순위랑 음방 무대에선 지지 않게 빡세게 하자고. 그게 걔들 입 다물게 만드는 최선이니까.”
“우리가 걔들에게 뭘 졌는데? 인성 더러운 사람 보유 수?”
“우리 지금 지고 있던데?”
한창 진행되고 있는 20xx 어워즈 신인상 부문 투표란을 열어 결과를 보여 주었다.
1. KICKS 541,345표(43%) 2. 레브(Reve) 337,985표(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