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3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31화(33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31화
“형.”
“왜.”
“혹시 목이 많이 마르셨나요.”
차마 미쳤냐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돌려 돌려 묻는 김도빈의 의도가 뻔히 보여 픽 웃으며 생수병 한 통을 김도빈에게 떠넘겼다.
“목마르다고 생수병 네 통을 챙기는 미친 인간이 어디 있냐.”
미친놈이라고 하면 초심도가 깎이지만 미친 인간이라고 하면 또 안 깎이더라. 대체 기준이 뭔지, 시스템과 함께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모르겠다.
덕분에 비속어 돌려 말하기 실력만 늘었다.
김도빈이 애견용 수제 간식의 맛이 너무 궁금해서 아주 살짝만 맛보려고 시도한 어릴 적의 나를 보던 바둑이 같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전처럼 보급품을 가져오는 패널들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뒤로 훌쩍 빠져 방수포를 둔 곳으로 향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허준, 아니, 이분은 의사고. 허, 허…. 누구였지. 아씨, 기억이 안 난다. 분명 허 씨였는데.”
시작점인 책 제목 소개부터 막혔다. 내 기억력의 한계만 느끼고 앞머리를 신경질적인 손길로 쓸어올렸다.
“아무튼 그 사람 이름이 제목인 책에서 과일을 싹 사. 그리고 과일이 없을 때, 그런데 명절이었나, 꼭 필요할 때에 과일값의 배를 받고 팔아서 돈을 번단 말이야. 이름하여 매점… 매점… 뭐였지.”
“털이? 런?”
“아오, 털이랑 런이 왜 나와. 아, 기억났다. 매점매석.”
젠장, 서예현처럼 유식한 척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이것도 머리가 따라 줘야지 멋있게 연출할 수 있는 거구나.
“그거랑 형이 생수병만 네 통을 들고 온 거랑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거예요?”
“네가 이해 못 할 줄 알았다.”
혀를 차며 김도빈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도빈아, 이번에 남은 보급품들 훑어봤냐?”
“아니요, 부탄가스 챙기느라 못 봤어여.”
김도빈이 오직 부탄가스만을 찾으며 손을 뻗을 때, 나는 남은 보급품들을 쫙 스캔했다.
“첫판에 필수품들이랑 괜찮은 것들은 진작 다 나갔고, 이제는 없어도 그만이고 있으면 좀 편해지는 것밖에 안 남았다. 물은 많이 있으니까 후순위로 밀린 거겠지.”
그리고 이건 예상 범위 안이었다.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쉬이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우리가 방수포와 맥가이버칼을 챙겼듯 당연히 남들도 제일 필요한 것들을 챙겼겠지.
게다가 잘 곳이라고는 쥐뿔도 없었던 우리와 달리 다른 패널들은 텐트나 침낭 같은 잠자리가 이미 확보된 터라 마음 편히 무인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물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니 필수품인 물은 이제 희귀재가 됐잖아. 이걸 가지고 이제 우리가 필요한 물건들로 거래를 하자는 거지.”
“식수가 목마를 때나 요리할 때 필수이긴 해도 물이 이렇게나 많이 필요할까요? 제가 봤을 때는 한… 두 통 정도나 나갈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우린 그냥 물만 많이 가지고 있는 놈들이 되어 버리잖아요.”
여전히 내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한듯한 김도빈의 물음에 친히 맞춤형 눈높이 교육을 선사해주었다.
“야, 도빈아. 조개 캐기 미션지를 네가 찾았을 때 내가 뭐라고 하든?”
“어… 갯벌 들어가서 뻘 다 묻혀 오면 어디서 어떻게 씻냐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생수를 얻어서 하나는 식수용으로 쓰고 하나는 씻는용으로 쓰자고 했고요.”
“그게 끝?”
“아, 잠깐만요. 그러니까 형이 그럼 미션을 한 의미가 있냐고, 결국 생수 얻은 건 뻘 씻는용으로 다 나가는 거 아니냐고… 어?”
드디어 김도빈이 무언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말을 멈추고 입을 헤 벌렸다.
“PD님이 간조 시간을 알려준 것도 그렇고, 우리가 찾은 미션지도 그렇고, 분명 갯벌에 들어가야만 완수할 수 있는 미션들이 있을 거란 말이지?”
“그리고 갯벌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진흙이 묻을 테니까 무조건 씻어야 하죠. 바닷물로 씻는다고 하더라도 다시 물로 씻긴 해야 하고요.”
이제야 좀 말이 통하기 시작하는군.
우리 손에 들어온 총 다섯 개의 2L짜리 생수병을 방수포 옆의 바닥에 줄 세워 놓고 씩 웃었다.
김도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PD가 확인 사살을 해 주듯 쩌렁쩌렁 외쳤다.
“자, 간조 시간까지 30분 전! 그리고 갯벌에 들어가실 때는 여러분들이 모터보트 타고 오실 때 입었던 구명조끼를 꼭 착용하셔야 합니다!”
빙고.
갯벌에 최소 세 명만 들어가도 물로 충분히 본전 뽑는다. 우리가 이번 차례에 가져오지 못하고 남겨 둔 물 한 통은 다음 보급품 배가 오자마자 달려가서 낚아채면 되고.
김도빈의 후드에서 소라만 골라서 물고기가 유영하는 물통 안에 넣고 게를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풀어 주기 위해 해변가 뒤편으로 향했다.
“DTB 때도 그렇고 형은 신기하게 이럴 때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이럴 때만?”
하하 웃다가 곧바로 헤드록을 걸었다. 이게 좀 편해졌다고 형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요.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타고난 머리는 좋을 거라는 친할아버지의 소망이 사실은 진실일 수도?
“그런데 표정이 아직도 왜 그렇게 뚱하냐?”
모래 바닥에서 맨몸으로 잘 미래에서 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넙죽 절은 하지 못할망정 묘하게 부루퉁한 표정의 김도빈을 보며 한소리 하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대꾸했다.
“그럼 저는 대체 왜 물이랑 식량만 잔뜩 챙겨 왔다고 한소리 들은 거죠?”
“내가 처음부터 물 챙기든? 당연히 잘 곳 마련이 제일 우선순위 아니겠냐?”
“물로 텐트랑 침낭 뜯으면 되잖아요.”
“누구에게는 텐트 뜯고 누구에게는 냄비 뜯으면 참으로 공평해 보이겠다. 도빈아, 이번 무인도 특집을 마지막으로 <트러블 트레블> 촬영 끝낼래?”
짜식이, 다른 패널들에게 괜히 찍혀서 밉보이지 말고 오래오래 하라고 일부러 생각해서 계획 짜 주니까 이 형의 큰 뜻도 모르고.
랜턴과 된장을 양손에 들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기타리스트를 발견하고 김도빈을 슬쩍 잡아끌었다.
“도빈아, 김도빈.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드디어 제 유능함을 증명해 보일 때가 왔군여.”
김도빈이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물론 딱히 믿음은 가지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우리가 교환했던 조개 캐기 미션 있잖아? 그거 다른 사람이랑 바꾸게 그 형님 설득 좀 해라. 방송 보니까 미션 교환하는 거 엄청 잘하시던데.”
“음, 확실히 동규 형은 첫트에 보급품 얻는 걸 포기했으니 저희가 물이랑 교환할 만한 게 딱히 없을 것 같긴 해요.”
고개를 끄덕인 김도빈이 곧바로 기타리스트를 향해 달려갔다. 다시 돌아올 때는 함박웃음, 그리고 오케이 사인과 함께였다.
“어떻게 설득시켰냐?”
“물 이야기는 굳이 안 하고, 텐트랑 침낭도 없는데 저녁까지 옷 안 마르면 축축하고 춥게 주무셔야 한다고 했죠.”
물이 빠져서 갯벌이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므로 섬 안쪽으로 들어가서 미션지를 찾다가 점점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바다의 모습을 보고 후다닥 동산을 내려갔다.
해변가에 서서 갯벌로 들어가는 사람의 수를 가늠했다.
“오, 뭐야. 생각보다 갯벌로 들어가는 사람 수가 많은데?”
나를 포함한 일곱 명 중 네 명이 들어갔다. 들어가지 않고 남은 이는 나랑 김도빈, 기타리스트뿐이었다.
“아무래도 여기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방법은 갯벌밖에… 그런데 형, 칡 어떻게 먹는지 알아요?”
“나도 너한테 그거 물어보려고 했는데. 뭔가 너는 알 것 같아서.”
“저 이래 봐도 도시에서 나고 자란 도시 청년이에요.”
“누가 그거 모르냐. 네가 맨날 보고 있는 만화책에서 칡 먹는 법 안 나오디?”
“형은 대체 만화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푹, 한숨을 내쉬는 김도빈의 모습은 내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내가 김도빈한테 한심하게 보였다니.
“결국 둘 다 모른다는 소리군여. 아무래도 칡은 식량으로 쓰기 그른 것 같아요.”
“잘라서 구워 먹으면 안 되나? 더덕구이면 몰라도 칡구이가 있나?”
“칡즙밖에 생각이 안 나요. 이걸 어떻게 짜 먹지…?”
우리가 만담에 가까운 고찰을 나누고 있는 사이 우리 근처에 있는 구명조끼를 덥석 집은 예능인이 우리에게 물었다.
“너희는 갯벌 안 들어가?”
“네, 저희는 갯벌 미션 못 찾았어요.”
“아이고, 와서 저녁에 먹을 조개라도 캐. 괜히 산에 있는 버섯 따서 먹고 탈 나지 말고. 버섯 함부로 먹는 거 아니야. 큰일 나.”
우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움직이지는 않았다. 굳이 지금 줍지 않아도 우리는 저녁에 조개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보급품 배 오기 전에 얼른 미션지 찾아서 미션 더 해요, 형.”
의욕 충만한 얼굴을 한 김도빈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런데 물이 30분 만에 다시 차긴 차나?”
그 걱정은 기우였다. 우리가 미션 하나를 더 찾아서 수행하고 누가 봐도 미션용으로 만든 것 같은, 반은 빨간색, 반은 파란색으로 칠해진 버섯을 따고 불 피우기 좋게 생긴 드럼통을 발견하여 마른 풀을 안에 적당히 집어넣을 때까지 물은 차지 않았다.
길고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어 드럼통에 넣고 다시 드럼통을 들다가 생수병 하나와 버섯 하나만 소중하게 들고 있는 김도빈의 모습을 보고 있자 왜인지 모르게 열불이 뻗쳤다.
“너 인마, 이러려고 나 데리고 온 거지.”
“그렇지만 저는 3초 만에 형한테 팔씨름으로 지는 약골이잖아요.”
“은근슬쩍 1초 늘리지 마, 짜식아. 3초 아니라 2초였어.”
“아무튼요.”
그래도 말은 이렇게 해도 김도빈에게 드럼통을 넘길 생각은 없었다.
김도빈이 드럼통을 들다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떨어뜨려서 드럼통이 저 멀리 우리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굴러가는 것보단 내가 조금 고생하는 게 나았으니까.
드럼통을 방수포와 다섯 생수병 옆에 두는 동안, 뻘 투성이가 된 패널들이 양손에 물통과 호미를 쥔 채로 갯벌에서 나왔다.
얼굴에까지 뻘을 묻히며 열연한 배우를 보니 정말로 물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이야, 너희 너무 깨끗하다.”
우리한테 뻘을 묻히려고 하는 패널들을 피해 도망 다닌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물이 차오르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급품 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역시나 우리가 모여 서 있는 곳으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방향을 꺾어 배를 해변가에 댔다.
“으아아, 진흙 때문에 무거워서 빨리 못 뛰겠어!”
가볍디가벼운 몸으로 제일 먼저 보급품 배에 도착한 우리는 수행한 미션을 먼저 인증하고 버섯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 버섯! 미션 맞죠?”
“자, 이 버섯의 이름은?”
아니, 버섯 이름까지 알아야 하는 거야? 벙찐 나와 달리 김도빈은 옆에서 온갖 하얀 버섯 이름을 다 대 보고 있었다.
“송이버섯!”
“땡!”
“새송이버섯!”
“땡!”
“양송이버섯!”
“땡!”
“느타리버섯!”
“땡!”
“독버섯!”
“땡!”
점점 다가오는 패널들을 힐긋 돌아본 김도빈의 표정은 연신 나오는 땡 소리에 점점 울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설마…. 에이, 설마… 반신반의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태극기버섯…?”
“정답! 태극기버섯 찾기 미션 성공!”
칠해 놓은 색깔이 태극기 같다고는 생각했는데 진짜로 미션이 태극기버섯 찾기였냐고.
“보급품 두 개 챙겨 가세요.”
일단 2L짜리 물통을 챙기고 얼마 남지 않은 보급품을 훑어보다가 500ml 생수병을 챙기려는 김도빈의 손을 막고 수건 더미를 턱 집어 들었다.
기왕 뜯어낼 거 제대로 팍팍 뜯어내야지.
생수병과 수건 더미를 안고 보급품 배로 달려가는 패널들을 스쳐 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저분들도 곧 알게 되겠지.
“뭐야! 생수가 왜 하나도 없어!”
“그러게요? 분명 많았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즐거운 무인도 서바이벌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