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3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33화(33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33화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타프였다.
아무래도 식사 준비를 위해 불을 피우고, 저녁에 잘 때 조금이라도 바람을 막으려면 천막이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해서 내린 선택이었다.
팩을 열어 기둥과 로프를 늘어 놓고 해변가 모래사장에서 좀 더 떨어져서 흙이 모래보다 한결 단단한 땅을 발로 헤집어 보았다.
이 정도는 되어야지 타프 설치가 가능하지. 저 모래사장 위에 타프를 설치했다가는 가벼운 바람에도 쉬이 무너질 것이 분명했다.
“도빈아, 김도빈. 돌 주우러 가자.”
“잠시만요! 이거 코펠 설거지 좀 끝내 놓고요!”
“설거지? 세제 있냐?”
“아니요? 어차피 여기에 라면 또 끓여 먹을 거니까 그냥 물로 한 번 헹구는데요. 냄비도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라면 국물 계속 묻은 채로 두기는 찝찝하잖아요.”
먹은 그릇 설거지를 바로 하는 김도빈이라니, 견하준이 봤다면 퍽 감격할 장면이었다.
“나뭇잎으로 빡빡 좀 닦으면 안 되나?”
“나뭇잎이 냄비보다 더 더럽지 않을까요.”
“그런가? 그럼 그냥 물로만 한 번 헹궈라. 그 물, 바다에 버리지 말고.”
“저를 뭐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형.”
툴툴거린 김도빈이 설거지를 끝내자 그를 끌고 섬 안쪽, 우리가 칡을 캤던 곳으로 향했다. 로프는 팩 안에 있었으니 땅을 팔 삽과 로프를 고정할 돌만 있으면 됐다.
“타프 고정할 돌 네 개랑 우리 잠자리 고정할 돌 네 개, 총 여덟 개가 필요하단 말이지.”
“한 명당 두 개씩 들면 두 번만 왔다 갔다 해도 되겠네요.”
“내가 봤을 때 너는 하나도 제대로 못 들어.”
눈 감고도 그려지는 미래에 혀를 차자 저를 뭐로 보는 거냐며 김도빈이 의욕이 충만한 얼굴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삽 두 개를 챙겨 들고 적당한 돌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내 옷을 살짝 잡아당긴 김도빈이 돌 하나를 가리켰다.
“형, 이 정도 돌은 어때요?”
“너무 작아.”
“…이게요? 대체 얼마나 큰 돌을 찾으시는…?”
“이 정도.”
내가 가리킨 돌을 본 김도빈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이건 돌이 아니라 바위잖아요!”
“바위가 돌이지, 인마. 그리고 이게 무슨 바위야. 바위 한 번도 못 봤냐? 바위는 이게 바위지.”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김도빈의 착각을 정정해 주자 김도빈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이걸 어떻게 들고 가요.”
“왜 못 들어?”
번쩍 들어 시범을 보이자 김도빈의 입이 떡 벌어졌다. 개기지 말자는 굳은 각오가 담긴 중얼거림이 언뜻 들려온 것 같기도 했다.
“으헉, 너무 무거운데! 역시 못 들겠는데! 형, 돌 하나 둘이서 같이 들면 안 돼요?”
“그러면 오늘 안에는 타프 치고 잠자리 마련하겠냐?”
물론 김도빈은 돌 하나 드는 것도 아주 온갖 호들갑을 다 떨며 세 걸음에 한 번씩 멈춰서 쉬어 댔다.
“형… 조금만 쉬었다가 가면 안 돼요…?”
“야이씨, 나보다 두 살이나 더 젊은 놈이 겨우 돌 하나 들고 가면서 엄살이 왜 이렇게 심해? 지금 돌에다가 삽까지 두 개 들고 가는 이 형이 안 보이냐?”
“첫째, 이건 겨우 돌이라고 부를 정도의 수준이 아니고. 둘째, 저는 형한테 팔씨름을 2초 만에 발린 놈이에요… 힘이 사이타마급인 형이랑 비교하면 안 돼요….”
“그건 또 뭔데. 그리고 왜, 언제는 3초라며. 이번에도 3초라고 우겨 보지?”
“있어요, 원펀맨이라고 세계관 최강자….”
이제는 대꾸할 힘도 없는지 김도빈이 말끝을 잔뜩 흐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몇 번을 왔다갔다 하며 겨우 돌 여덟 개를 가져다 놓은 김도빈은 방수포 위에 드러누웠다.
“안 일어나, 인마! 머리도 내가 써, 몸도 내가 써, 모셔 왔으면 부양을 하지 못할망정 나만 부려먹고 있어! 빨리 일어나서 땅 파!”
내가 지금 삽질을 하고 있는데도 홀로 태평성대로 쉬고 있는 김도빈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지금까지 쌓아 왔던 이미지와 관계가 있었기에 이 정도로는 불화설이 절대 날 리가 없었다.
흠칫한 김도빈이 곧바로 달려와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적당히 판 땅 안에 로프로 칭칭 묶은 돌을 넣은 후 로프 한 줄만 빠져나오게 한 뒤 다시 흙을 잘 묻었다.
“로프에 비너를 건 후에, 메인타프 스프링을 비너에 연결하고…”
“혀엉! 이든이 형! 자꾸 매듭이 풀리는데 어떡해요?”
내가 오지 않았으면 김도빈은 대체 이 무인도에서 어떤 꼴로 있었을까 이제는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한숨을 쉬며 딱 봐도 허접하게 대충 묶인 매듭을 다시 푼 후, 꼼꼼하게 다시 묶었다.
그렇게 바위 네 개를 모두 묻은 후, 로프로 연결한 기둥을 단단히 박아 넣고 그 위로 방수포를 메인타프 스프링으로 잘 고정시켜 타프 설치를 완료했다.
대략 김도빈의 몫이 1푼, 내 몫이 9할 9푼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해도 다음 여행 설계권인가 뭔가는 김도빈의 손으로 들어가겠지. 그걸 떠올리니 왜인지 약이 올랐다.
타프는 다행히도 센 바람에도 어느 정도 버티고 있었다.
“오, 내가 가져온 거.”
예능인이 타프 기둥을 살짝 흔들어 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땅에 굳건히 박힌 채 조금 흔들리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기둥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예능인이 기둥에서 눈을 떼고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잘 설치했네. 그나저나 여기에서 자게? 그래도 추울 텐데.”
“아니요, 아직 잠자리는 준비 안 했어요. 저녁 먹은 후에 치우고 만들려고요.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하시게요?”
“나는 그냥 굶어야지. 나 이제 교환할 것도 없어. 그런데 성수 너는 라면도 뺏겼는데 어쩔래?”
“저는 조개나 구워 먹어야죠. 드럼통이랑 토치랑 그릴이랑 있으니까.”
개그맨의 대답에는 그러니 우리한테 손 벌릴 일 없다는 뜻이 은근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가 버너의 불로 마른 풀에 불을 붙인 드럼통 위에 석쇠를 올려놓고 잡아 온 물고기를 구울 준비를 해도, 김도빈이 호시탐탐 탐내던 낙지와 박하지를 깨끗이 씻어온 배우와 솔로가수가 슬그머니 우리 타프 안으로 들어와서 나눠 먹자며 그것을 내밀어도, 어디로 갔나 싶었더니 기어코 생선 한 마리를 잡아 온 기타리스트가 당당하게 끼어도.
개그맨은 우리 타프 옆에서 예능인의 잔소리 섞인 지휘를 들으며 묵묵하게 해감을 마친 조개를 구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성수, 너 진짜 이리 안 오고 조개만 구워 먹으려고?”
“안 가! 나 더 안 뜯길 거야. 나 이제 뜯길 거 텐트밖에 없어.”
바람이 한차례 강하게 불어와 타프의 방수천이 세차게 펄럭거렸다.
워낙 큰 돌로 단단히 고정해 놓은 터라 타프는 조금 많이 펄럭거리기만 할 뿐, 안정적이었지만 그냥 펼치기만 하면 되었던 개그맨의 원터치 텐트는 그렇지 않았다.
“내 텐트!”
바람에 날아가는 원터치 텐트를 발견한 개그맨이 구워지고 있는 조개를 내팽개치고 텐트를 쫓아 달려갔다.
어느 순간 시야에서 자취를 감춘 텐트를 찾기 위해 개그맨이 두리번거렸다.
그때.
툭- 툭-.
타프의 방수천 위로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간격을 좁혀 오더니 세찬 빗소리를 연출해 냈다. 타프는 굳건히 빗줄기를 막아 주고 있었다.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줄기에 개그맨이 조개를 굽던 드럼통의 불이 꺼졌다.
“에잉, 해감할 물 양보해 줬다는 핑계로 조개 몇 개나 얻어먹어 볼까 했더니 글렀구먼.”
혀를 찬 예능인이 제 텐트로 들어갔다.
날아가 버린 텐트를 찾지 못하고 비를 맞으며 처량하게 터벅터벅 걸어온 개그맨은 불이 꺼진 제 드럼통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조개를 그릴째 들고 우리 타프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혹시 조개도 교환돼…?”
나랑 김도빈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자 개그맨이 달궈지기 시작하는 우리의 석쇠 위에 조개 반을 부었다. 나머지 반은 라면이 끓고 있는 코펠 안으로 들어갔다.
“헐, 설마 형… 비 올 거 다 예측하고 이거 설치한 거예요?”
김도빈의 속닥거림에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거 알면 내가 점집 차려서 돈 쓸어모으고 있겠지, 연예인 하고 있겠냐?
“큰일이네. 내일까지 비가 쏟아지진 않겠지?”
내일 폭우가 내려 이 섬에 고립되는 게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잠깐 쏟아지다가 지나갈 비 같다며 집게로 석쇠 위의 조개를 뒤적거리던 개그맨이 나를 안심시켰다.
“나 생선 손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냥 이대로 구우면 되나…? 산 채로 굽는 건 좀 크리피한데.”
“지금까지 거침없이 뻗어져 나가던 서바이벌력이 요리에서 가로막히다니.”
여전히 펄떡대는 물고기를 앞에 둔 채로 고심하고 있자 김도빈이 깐족거렸다.
교환은 꼭 물품과 물품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동규 형, 물이랑 해물 라면 나눠 드릴 테니까 저희 생선 손질 좀 도와주세요. 형 그런 거 잘하시잖아요.”
“나야 좋지. 그런데 칼 있어?”
“이든이 형이 하나 가져왔는데. 형, 칼 좀 주세요!”
기타리스트는 김도빈의 도움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접혀 있는 맥가이버 나이프를 김도빈에게 휙 던졌다.
“잠깐만, 우리는? 낙지랑 게는 우리 건데?”
“동규 형이 손질한 생선구이 나눠 드시면 되죠. 에이, 형들. 먹는 걸로 니꺼 내꺼 딱딱 나누면 너무 정 없잖아요.”
일부러 버너를 손끝으로 툭툭 두드리며 김도빈이 넉살을 부렸다.
이 물건들을 가져온 건 다른 사람들이라지만 이 물건들의 임시적 소유권은 우리한테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손질된 생선구이, 그리고 낙지와 박하지, 조개가 들어간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잠자리 역시 한결 업그레이드되고 말이다.
겨우 생수 여섯 통으로 이뤄 낸 쾌거였다.
이래서 머리가 좋으면 몸이 편하다는 건가. 항상 몸이 좋아 머리가 편했기에 딱히 와 닿지 않은 속담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라면 냄새와 생선 굽는 냄새가 얼마나 맛있게 풍기던지, 텐트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예능인이 슬그머니 나와 타프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분량도 챙길 생각이었겠지만.
코펠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해물라면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그에게 나무젓가락을 내밀며 제안했다.
“텐트가 2인용이니까 도빈이를 텐트에서 자게 해 주시면 식사 드릴게요.”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지.”
고개를 끄덕인 예능인이 흔쾌히 나무젓가락을 받아들었다. 놀란 눈을 한 김도빈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엥, 그럼 형은 어디에서 자요?”
“여기 재료 다 가져다 놨잖아. 비록 나뭇가지랑 나뭇잎 엮은 임시 천막은 아니어도 네가 생각했던 야생 서바이벌 꼴을 내가 이뤄줘야지, 어쩌겠냐.”
“그럼 침낭은 형 드릴게요.”
“너는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네가 양보하는 것처럼 하냐…?”
이렇게, 잠버릇이 얌전하진 않은 김도빈까지 내 잠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