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3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34화(33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34화
낙지 다리 하나와 함께 해물 라면을 흡입하다가 슬쩍 내려다본 손목시계의 시간은 어느새 저녁 6시가 지나 있었다.
이 시간에 라면을 먹어도 무어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무인도에 끌려온 것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소금 대신 라면 수프를 뿌려서 구운 생선도 꽤 먹을 만했다.
정말로 먹을 만한 건지, 아니면 몰려오는 허기에 혀와 입맛이 하향 평준화가 되어 버린 건지.
“참치캔도 나름 비장의 한 수로 챙겨 온 건데 아무도 안 가져가서 아쉽네여.”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하고 모터보트 한 구석에 덩그러니 쌓여 있던 김도빈의 참치캔이 떠올라 혀를 찼다. 그거 챙길 시간에 침낭이나 하나 챙겨 오지는.
다행히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비는 그쳤다.
땅이 살짝 젖긴 했으나 물이 고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마터면 젖은 바닥에서 침낭도 없이 맨몸으로 잘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바닥에서 시선을 들어 김도빈을 휙 돌아보았다.
김도빈은 딴청 부리며 따가운 내 시선을 피했다.
식사를 마친 후 뒷정리를 도운 개그맨은 카메라맨 한 명과 함께 강풍에 날아가 버린 제 텐트를 찾으러 갔다.
“형, 이제 우리 뭐 해요?”
김도빈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곡 작업을 할 때나 녹음 디렉팅할 때의 나를 볼 때보다 대략 열 배 정도가 뛴 존경심이 눈동자에 한가득 담겼다.
내가 무인도에서 이 개고생을 하면서 얻어 간 게 겨우 김도빈의 존경심이라니.
그리고 김도빈 이 자식, 본업하는 나보다 자기의 몸빵용&두뇌용 집요정이 된 내가 더 존경스럽다고? 대체 저 자식 마인드는 어떻게 돼먹은 거야.
몰려오는 현타에 마른세수 한 번 하고선 대답했다.
“뭐 하긴. 내가 잘 곳 만들어야지.”
이제 더 뜯어먹을 것도 없는데 물트코인하고 있게 생겼냐. 쓸 만한 건 다 뜯어 간 후라 이제는 텐트 하나를 통째로 물과 교환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손해였다.
“오, 저 진짜 궁금했어요. 대체 방수포랑 돌이랑 나뭇가지 하나로 어떻게 간이텐트를 만든다는 건지.”
또 한 번 세차게 불어와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타프의 방수포와 겨우 텐트를 찾았는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텐트를 머리 위로 번쩍 들고 퍽 지친 얼굴로 걸어오는 개그맨을 번갈아 보던 김도빈이 눈을 깜빡였다.
“형이 자다가 간이텐트가 날아가 버리면 어떡해요?”
“일단 타프 밑에 만드니까 1차적으로 센 바람은 막아주긴 할걸. 그리고 바람에 쉽게 날아갈 만큼 허접하진 않아. 네가 아니라 내가 잘 거니까.”
“어라, 그 말인즉슨, 만약 제가 잘 곳이었다면 허접하게 만들었을 거란 뜻?”
“어어, 그래. 네 잠자리면 방수포 한 장은 깔고 한 장은 덮고 자게 만들려고 그랬다, 왜.”
조리용으로 고난을 겪었지만 불에 달구기까지 하며 깨끗하게 소독을 마친 맥가이버칼을 꺼내어 내가 주운 노끈을 적당한 크기로 4등분 하며 대꾸했다.
제일 먼저 방수포를 바닥에 깐 다음 김도빈이랑 열심히 옮겼던 돌 네 개를 방수포 위, 각 모서리에 얹었다.
“형, 도와드릴 일 없어요?”
“너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그럼 옆에서 구경해도 돼요?”
“그래라. 네가 여행 버라이어티 예능을 찍는 이상, 이런 잡지식도 나중에 쓸모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형, 이런 건 어디에서 봤어요?”
“너튜브 보면 다 나와.”
돌 밑으로 로프를 깔아 열십자(十) 모양으로 돌을 꽁꽁 묶은 후, 바닥에 깐 방수포의 구멍에 로프를 감아 단단히 매듭지었다.
그렇게 방수포의 4면을 모두 꼼꼼히 바위에 고정한 다음, 그 위에 접이식 매트를 깔고 지붕 역할을 할 방수포의 구멍에도 돌에 묶인 로프줄을 꽉 묶어 돌 밑에 방수포를 짓눌렀다.
주워 온 긴 나뭇가지의 잔가지들을 손으로 뚝뚝 꺾고 맥가이버칼로 다듬고 있다가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던 김도빈을 불렀다.
“도빈아,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생겼다.”
“제가 뭘 하면 되죠? 나뭇가지 세 개 더 구해 올까요? 어쩐지 하나만 가져간 게 좀 의문이긴 했어요.”
“아니, 나뭇가지는 더 필요 없고. 이거보다 작은 돌 세 개 정도만 구해와 줘. 적당히 크기 있는 걸로 구해 와야 한다. 조약돌 가지고 왔다가 괜히 힘들게 몇 번 더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섬 안쪽의 동산 초입까지 들어갔던 김도빈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 달려와 나를 잡아끌었다.
“형, 같이 가면 안 돼요? 귀신 나올 것 같아요. 홀려서 길 잃으면 어떡해요.”
“그래, 너한테 맡긴 내가 멍청이지. 가자, 가.”
카메라와 초심도만 없었어도 엉덩이를 걷어차며 사내새끼가 한밤중도 아니고 겨우 여덟 시에 저기도 못 들어가냐고 윽박을 질러 줬을 텐데,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돌을 찾아 김도빈이 하나, 내가 두 개를 들고 다시 베이스캠프가 된 장소로 내려왔다.
“이걸로 뭐 하려고요?”
“마무리.”
짧게 대답하고 나뭇가지를 방수포와 방수포 사이에 세웠다. 지붕 역할을 하는 방수포가 입구 쪽에 세운 나뭇가지 꼭대기에 걸려 어느 정도 텐트의 꼴을 갖췄다.
나뭇가지가 넘어지지 않도록 주워 온 돌 세 개로 지탱한 후 접이식 매트 위에 김도빈이 잘 들고 있던 침낭을 던져 넣었다.
이곳에서 자야 할 나보다도 먼저 신발을 벗고 내가 만든 간이텐트 안으로 기어들어 간 김도빈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드러누웠다.
“우와, 의외로 넓은데요? 둘이서 자도 충분히 남겠는데? 오, 아늑하다.”
뒹굴거리던 김도빈이 랜턴 고리를 일부러 남겨 둔 나뭇가지의 잔가지에 거는 나를 향해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앞으로는 무인도에 같이 가고 싶은 사람 뽑을 때 무조건 형 선택할게요. 역시 재희의 판단이 옳았어요.”
“필요 없어, 인마. 이 형을 쌩고생시키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하냐.”
“엥, 제가 재희나 하준이 형도 아니고 어떻게 말을 돌려서 해요.”
“단순해서 좋다.”
내 아지트 안에 널브러진 김도빈의 얼굴 위로 담요 하나를 휙 던지며 투덜거렸다.
“그런데, 이든이 형. 만약 제가 제 원래 원픽이었던 하준이 형을 데려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일단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자야 할 잠귀 밝은 준이가 너를 절대 고운 눈으로는 안 볼 거란 건 확정이다.”
쟤가 저런 말을 하니까 괜히 또 궁금해지네.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걸 내뱉었다.
“걘 이런 간이텐트를 못 만들었겠지.”
살림과 생존 서바이벌은 별개였고, 내가 봤을 때 견하준은 생존 서바이벌에 걸맞는 손재주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처럼 물을 독점해서 이 무인도 경제를 좌지우지하기보다는 아마 필요한 게 상대한테 있다면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준이는 온건파잖아.”
“역시 형을 데려온 건 옳은 선택이었어요. 그걸로는 MVP가 되기가 조금 모자라죠.”
네가 MVP 되면 나한테 상여금이라도 떨어지냐고.
김도빈에게 던져 주고 남은 담요 하나는 솔로 가수의 텐트 치는 것을 도와주고 받아 온 고리로 잘 고정해서 입구에 바람 가림막을 만들었다.
침낭만 챙겨온 배우와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은 기타리스트는 어떤 수완을 발휘한 건지 솔로 가수의 텐트로 쏙 들어갔다. 솔로 가수가 챙겨온 건 작은 2인용 텐트라 성인 남성 세 명이서 잔다면 결코 편한 잠자리는 아닐 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엉성하게 설치된 텐트가 휘청대더니 솔로 가수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담요를 어깨에 둘둘 두르고 나온 김도빈과 타프 밑의 아늑한 내 아지트를 발견한 솔로 가수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한 사람만 재워도 될 줄 알았으면 일찍이 저 둘 받지 말고 물이랑 물물교환할 때 침낭이 아니라 텐트 자리로 교환할 걸 그랬어.”
“왜요?”
“저기 둘이랑 거래한 미션으로 얻은 건 식사할 때 다 같이 쓰는용으로 나가 버렸거든. 나름 MVP를 노리고 짠 계책이었는데, 쩝.”
너희 덕분에 MVP를 할 기회는 날아가 버렸다며 솔로 가수가 나비 날갯짓 같은 손동작을 했다.
“아, 미치겠네! 텐트 찢겨서 찬바람 다 들어온다!”
간이로 만든 내 아지트는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튼튼했지만 개그맨의 원터치 텐트는 사정없이 바람에 흔들릴 뿐만 아니라 날아가다가 찢겼는지 커다란 입이 생겨 그 틈으로 끊임없이 바람을 안쪽으로 공급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선택한 텐트니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지, 어쩌겠는가.
다들 어지간히 피곤했는지 개그맨이 발견한 짭윌슨으로 방송 분량용 족구 한판을 끝내고 하나둘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침낭 안에 몸을 구겨 넣고 눈을 감았다.
막 잠들려는 찰나, 바람 가림막을 걷고 들어오는 인기척에 눈을 번쩍 떴다. 담요를 덜레덜레 들고 온 김도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냐, 쫓겨났냐?”
“아니요. 그냥 제가 왔어요. 저는 좋은 텐트에서 자고 제가 강제로 끌고 온 형 혼자만 간이텐트에서 주무시게 하기도 그래서요.”
“빨리 다시 안 가? 빨리 돌아가, 인마. 기껏 편하게 자라고 잠자리 마련해 주니까.”
“에이, 형도 감동받으셨으면서 괜히 그러시긴. 하긴, 그게 가부장 아부지의 덕목이죠.”
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홀로 뿌듯해하는 김도빈을 향해 진실의 입을 열었다.
“감동이고 덕목이고 나발이고 내 노력과 내가 얻은 물자를 헛수고로 만들었잖아, 인마! 그리고 나는 혼자 자고 싶다고!”
“엥, 진짜요…? 그런데 못 물러요.”
멍청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김도빈이 대꾸했다.
“왜 못 물려? 그냥 나온 거 아니야? 너 또 뭐 걸었어. 얼른 말해.”
“제 선의를 왜 그렇게 곡해하세요. 성수 형한테 양보했어요. 텐트가 하도 너덜거려서 거의 맨몸으로 야외 취침 하는 꼴이라… 그 형 침낭도 안 가져오셔서.”
이렇게 된 상황에서 다시 예능인의 텐트로 김도빈을 돌려 보내기도 그랬기에 어쩔 수 없이 내 아지트에는 두 사람이 눕게 되었다.
“형, 오늘 힘들었죠.”
“…대답할 힘도 없다.”
“제가 내일은 무조건 조기 퇴근시켜 드릴게요.”
방송 분량 어쩌고 하는 김도빈의 말을 들으며 다시 스르륵 눈을 감았다.
* * *
무인도의 아침이 밝아왔다. 세수까지 꼼꼼히 한 후에 후드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카메라에 얼굴을 비쳤다.
부어서 빵떡이 된 김도빈의 얼굴에도 잔뜩 차가워진 물을 벅벅 문질러 주는 걸 잊지 않았다. 레브의 리더로서 멤버 놈이 저런 못생긴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용납하지 못했다.
아침 일찍이 모터보트를 타고 도착한 PD의 앞에 패널들이 모두 모이자마자 김도빈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잠깐만요! 저 킵해 놨던 소원권 하나 쓸래요.”
“도빈이 너 시작할 때 찬스권도 썼잖아.”
“도빈아, 겨우 무인도에서 다 털고 가게? 오늘은 무인도였지만 이건 체험판이라고 그다음에는 아마존에 던져놓으면 어떡해. 소원권은 그럴 때 써야지.”
패널들이 한마디씩 말을 얹으며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PD가 손뼉을 짝, 한번 쳐서 패널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조용. 도빈 씨, 소원권 접수되셨고요. 빌고 싶은 소원은?”
“무인도 탈출! 전원 조기 퇴근! MVP 발표는 무인도에서 벗어나서 합시다!”
모터보트에 있는 깃발과 풍선 등으로 짐작해 봤을 때 아침부터 게임을 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김도빈 왈, 소원권은 모든 것의 상위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졌기에 PD는 준비해 온 게임을 선보이지도 못하고 순순히 모터보트에 우리를 태우고 처음에 왔던 항구로 향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무인도를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를 항구에 무사히 데려다 놓은 모터보트가 또 한 번 물살을 가르며 나가더니 우리가 무인도에 두고 왔던 짐들과 쓰레기까지 다시 항구로 도착했다.
각자의 캐리어에 한창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갑자기 비가 또 쏟아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다들 짐 정리를 대충 마무리하고 황급히 버스에 탔다.
“오후부터 비 온다고 안 했어?”
“그러니까요. 오후에 비 계속 쏟아진다고 해서 아침에 게임 하나만 짧게 하고 게임 성적순으로 철수하려고 했는데, 도빈 씨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버스 앞쪽에 탄 제작진들의 대화를 들으며 패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당장 오후에 스케줄이 있는 나 역시 포함이었다.
“이야, 오늘도 도빈이가 한 건 했다.”
“진짜로. 하마터면 우리 물자도 없는데 무인도에 꼼짝없이 고립될 뻔했어. 역시 럭키도빈.”
“형이 정 PD한테 잘 말해서 이번 소원권은 무효로 해달라고 할게. 비도 이렇게 쏟아지는데 도빈이가 오늘 조기 퇴근 소원 안 빌었으면 언제까지 거기에서 대기하고 있을지 몰랐을 거 아니야.”
나를 조기 퇴근시켜 주려고 하다가 얼떨결에 모두의 은인이 되어 버린 김도빈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칭찬에 헤실헤실 웃고 있는 사이,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또 고립돌이란 별명에 고립 일화 하나 더 추가될 뻔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