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4화(34/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4화
제 어깨를 내 팔의 거치대로 쓰고 있는데도 서예현은 팔 치우라고 신경질 부리지도 않고 내 팔을 쳐서 떨구지도 않은 채 내가 내민 휴대폰 화면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이거 어디 이상한 듣보잡 투표 아니야?”
“WAMA라고 써진 게 안 보일 정도의 흐린 눈이라니 대단한걸.”
뭐, 여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들도 결과는 비슷비슷하지만.
“……우리가 진짜 이 자식들에게 지고 있다고?”
서예현이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 충격받은 게 역력한 표정을 새삼스럽다는 양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예상보다 표 차는 별로 안 나네. 정말로 우리가 떴긴 떴나 보다.”
“야, 너 누구야. 너 윤이든 아니지.”
“……갑자기 왜 결론이 그렇게 난 거야?”
도저히 범인(凡人)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가 없는 논리 점프였다.
“행사 무대 때도 KICKS 자식들에게 밀리는 게 싫어서 눈깔 그딴 식으로 뜨고 나 쳐다보던 놈이 갑자기 순순히 우리가 밀리는 걸 인정한다? 이게 진짜 윤이든이겠냐고!”
“헐, 듣고 보니 그러네요? 이든이 형이 저럴 리가 없는데?”
어느새 설거지를 끝내고 거실로 합류한 류재희가 입을 틀어막는 시늉을 했다.
나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 찾는답시고 셋이 회의를 열고, 무당에, 굿에 이제는 장미십자회까지 나오는 꼴을 지켜보고 있으니 점점 빡치기 시작했다.
내가 뭐 악귀나 사탄 들렸냐? 됐다. 저 꼬라지 보고 있으면 열만 뻗치지.
유일하게 저 멍청이 짓에 동조하지 않는 견하준의 팔에 등을 기대고선 다리를 쭉 뻗은 채 레브에 투표를 완료한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준아, 투표했냐?”
“아니. 회원가입 귀찮아서…….”
“아, 왜. 한 표라도 더 줄여야지.”
투덜거리자 픽 웃은 견하준이 제 휴대폰 화면을 켜 회원가입 과정을 밟았다.
“그러고 보니 보통 아이돌물에서 빙의하는 건, 팀 내에서 제일 성질 더러워서 팀 내 분란을 일으키는 그런 멤버 몸으로 하던데요. 그렇게 성질 더러운 멤버가 찐으로 새사람이 되어서 팀 분위기가 바뀌고 승승장구하고-”
“아, 그래서 해석하자면 우리 도비는 내가 죽고 내 몸에 새사람이 빙의했으면 좋겠다?”
관자놀이에 핏대 선 채로 웃으며 김도빈의 정수리를 손바닥 가득 콱 잡자,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며 김도빈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든이 형 맞는 것 같아요.”
폭력이 절대 아닌, 두피 마사지를 꾹꾹 내려 주고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나직이 경고했다.
“적당히 하자, 적당히.”
“넵, 그렇지 않아도 뇌절은 여기서 멈추려고 생각했습니다!”
군기 바싹 든 김도빈의 대답을 듣고는 다시 편하게 견하준에게 기대어 앉았다.
“우리 그래도 꽤 뜨지 않았어?”
힘 빠진 서예현의 물음에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떴지.”
“그런데 왜……!”
“원찬스 하나가 떴지. 뮤비도 뭣도 없는 후속곡 하나가.”
냉소 섞인 그 말에 서예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숙소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거워졌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8월에 데뷔해서 유의미한 활동이라고는 원찬스 한 주가 전부.”
“…….”
“반대로 KICKS는 올해 초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활동 두 번을 했고, 돈 쏟아부은 멀쩡한 뮤직비디오와 타이틀곡으로 두 번의 활동이 대박은 아니어도 중박은 쳤고, 소속사도 언플에 강한 중견 소속사지.”
말하다가 멈칫했다.
어라, 이 비슷한 상황 언제 경험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 속에서는 아마 그때 비슷한 말 하다가 초심도가 깎이고 견하준에게 잔소리도 들었던 것 같은데.
또 초심도가 깎일세라 다급히 덧붙였다.
“오해해진 마. 상황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것뿐이니까. 나도 이 자식들에게 밀렸다는 게 매애애우 열 받긴 하거든.”
견하준이 숨죽여 웃는 게 고스란히 등을 통해 전해져 왔다.
없어 보여도 초심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
인상을 찡그린 서예현이 헛웃음 지으며 물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답지 않게 차분해? 네가 언제부터 열 받아도 참는 인간군상이었다고.”
“우리가 화내고 성질낸다고 투표수가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
내가 신인상에 의연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지금의 상황이 회귀 전보단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회귀 전에도 신인상을 탄 건 KICKS였다.
그리고 레브는 2위는커녕 후보에 들지도 못했다.
“물론 못 받으면 아깝긴 하겠지. 데뷔하고 단 한 번 받을 수 있는 상이니.”
그런데 신인상 못 받으면 죽는 병 걸린 것도 아니고, 시스템이 퀘스트 주면서 신인상 타지 못할 시 초심도 99점 감점시킨다고 예고한 것도 아닌데.
굳이 여기에 얽매어야 하나 이거지. 신인상이 꼭 1군 필승 공식도 아니잖아.
신인상 받고도 그 후로 뜨지 못하고 묻힌 아이돌들이 수두룩하다.
“신인상 포기하라는 말은 안 한다. 아직 올해가 가기 전까지 우리 활동이 한 번은 남아 있으니까.”
그 몇 주간의 활동으로 인해 기적적으로 역전할 거라는 기대는 딱히 하진 않지만 말이다.
인생은 도비 녀석이 즐겨 보는 웹소설이나 웹툰이 아니라, 더욱 냉혹한 현실이니까.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을 잠시 멈추고 진지한 눈빛으로 천천히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좋든 싫든 일단은 한배를 탄, 이 빌어먹을 초심도 감점과 무한회귀를 끝내려면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하는 녀석들을.
“만약에 KICKS에게 밀려 신인상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KICKS보다 부족하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이유는 단지 우리 환경이 조금 더 열약했다, 그거 하나뿐이니까.”
나를 향한 눈빛들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왜 저렇게 의외라는 눈빛들로 나를 보냐.
손가락에 걸리는 머리카락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탈색했어도 다행히 머릿결은 아직 개털 수준까지 오진 않았다.
“그리고 자기들에게 밀려서 신인상 못 받은 놈들에게 대상 뺏기면 더 약 오를 거 같지 않냐?”
삐딱하게 입꼬리 올려 웃자 서예현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그럼 그렇지.”
“평범하게 평소의 이든이 형이네요.”
류재희가 동감을 표했다.
저 자식들은 내가 리더 역할을 할 때보다 성격 나쁜 면모를 보여 줄 때 더 안도하더라.
“그래도 전 포기 안 할 거예요. 끝날 때까진 끝난 건 아니잖아요!”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결연한 얼굴로 외치는 김도빈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한 소리 했다.
“포기하지 말라니까? 누가 포기하래냐?”
눈을 데굴데굴 굴린 김도빈이 소심하게 중얼거렸다.
“이걸 안 받아 주시네……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제 말에 잔잔하게 감동 한 번씩 해 주고는 다들 손 모으고 청춘의 한 페이지처럼 파이팅 외쳐 주는 게 클리셴데.”
“시꺼, 도비. 내가 웹소설 작작 보라고 했지.”
“이건 애니인데요. 스포츠물 클리셰긴 하지만.”
“가지가지 한다, 진짜.”
미간을 찌푸리며 대꾸하고는 위클리 퀘스트인 서치가 이루어지는 휴대폰 화면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울 애들 신인상 꼭 타게 해 주고 싶은데ㅠㅠㅠㅠ
-다들 날마다 잊지 말고 투표해 줘! IP 우회 꼭꼭하고!
-베스트 뮤직비디오는 후보조차 오르지 못한 거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ㅎㅎ
-ㅈnL ㅅㅂ럼들이 애들 데뷔앨범 타이틀곡이랑 뮤비만 제대로 뽑아줬어도…… 데뷔만 몇 개월 당겨서 11월 전까지 활동 두 번만 했어도……
-그래도 내우주 때부터 팬이었던 일몽으로서 우리 레브 2위까지 오른 거 너무 자랑스러움ㅜㅜ 그때는 신인상 후보에 들 거란 것도 상상도 못했는데
-신인상 의미없어 우리 레브 나중에 대상 받으면 돼
-키백 ㅁㅊㄴ들이 견제픽 ㅇㅈㄹ하는 거 존나 듣기 싫어;; 진짜 견제픽으로 레브 찍은 타팬덤 애들 얼마나 된다고 자꾸 견제픽견제픽빨 노래를 처불러
└ㄱㄴㄲ 며칠 전에 짹에서 양심고백이랍시고 타돌팬인데 견제픽으로 레브 찍은 거 맞다카던 알계 딱봐도 어그로던데 그거 하나 캡쳐해서 주구장창 견제픽 염불만 외우면서 계속 우리 팬덤 분위기에 물 끼얹는 거 ㅈㄴ 븅신같고 깡패가 따로 없음
└아 진짜,,, 걔들 견제픽 뜻 모르는 거 아님? 견제픽이 2위 하는 거 봤냐고 다 저 밑순위 그룹한테 사표로 던지지 솔직히 신인상 후보 중에 레브 말고 KICKS랑 비빌 수 있는 그룹 어디 있다고 견제픽이야ㅋㅋ 누구땜시 KICKS 견제하느라 레브 찍었는지 말 좀 해 봐~ 인장에 타돌 면상이라도 박고 어그로 끌던지
└레브가 견제픽이 아니라 지들이 레브 견제하는 거겠지ㅋㅋㅋ 저번 달 축제 영상도 레브 직캠이 KICKS 직캠 조회수보다 훨 높았자너ㅋㅋㅋ
└대형 아닌데도 성공한 남돌신화 쓰고 싶었는데 찐 좋좋소에서 데뷔한 레브 때문에 물 건너갔죠? 솔까 KICKS 투표수 높은 것도 얘네 소속사 선배 팬덤들이 몰아줘서잖아ㅋ
-울애들 지금 KICKS에게 밀리는 거 속상해하고 있는 거 아니겠지ㅠㅠㅠ 이든이랑 재희는 모니터링도 자주 해서 견제픽으로 몰린 것도 봤을 거 같은데 애들한테 너무 미안하다ㅠ
‘견제픽은 개뿔이.’
견제표.
순위에 위협이 되는 경쟁자를 끌어내리고 자기 가수를 1위로 만들기 위해 위협적이지 않은 다른 후보에게 던지는 표를 말한다.
견제픽은 그 견제표를 받는 후보를 말하고.
오히려 레브가 순위에 위협이 되는 경쟁자면 경쟁자지 견제픽은 아닐 텐데.
우리와 함께 후보에 오른 나머지 세 그룹은 레브와 KICKS에 비빌 만한 급은 아니니까.
마지막 글을 보다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팬카페에 접속해 FROM 게시글 글쓰기를 눌렀다.
[From. 이든]데이드림, 기체후일향만강하셨어요? 저희가 다시 얼굴 볼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네요. 디데이 날짜가 줄어들수록 팬분들과 다시 만날 생각에 설레는 중입니다.
참, 그리고 투표 결과보다는 우리 데이드림이 보내 주신 한 표 한 표가 더 소중하니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미안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레브가 데이드림에게 더 미안하죠.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댓글 578
-이든아 레브가 신인상 받는 세상 만들어 줄게
-엄마아빠할머니할아버지동생폰으로 오늘치 투표 개같이 완
-오빠도 좋은 말만 보고 나쁜 반응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기, 약속
-너희들이 왜 미안해 해ㅠㅠㅠㅠㅠ 기다려 이든아 미안하지 말라고 전남친한테 투표 부탁하고 올게
“헐, 이든이 형. 웬일로 이런 글도 다 올렸어요? 멤버들한테 한 말이랑 팬에게 하는 말이랑 너무 다른데. 역시 레브의 유제 다음가는 팬사랑꾼.”
류재희의 호들갑에 멍하니 대꾸했다.
“……그러게.”
“네?”
“내가 이 글을 왜 썼지?”
팬들이 지쳐서 탈덕할까 봐?
그래서 3천만 명의 팬들을 기쁘게 만들라는 필수 조건 충족이 늦어질까 봐?
아니면, 정말로 우리한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해서……?
충동적으로 써 내려간 글을 복잡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평소보다 몇 배는 되는 댓글들이 빠르게 달렸다.
이 와중에도 나를 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예쁜 말들을 보자 속이 울렁거려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으며 상체를 숙였다.
내 손을 벗어난 휴대폰이 서예현의 허벅지 위로 툭, 떨어졌다.
“아이씨, 왜 남의 다리 위에…… 야, 너 왜 그래?”
“형, 괜찮아요? 이든이 형!”
“이든아, 어디 아파?”
“아, 시발…….”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그 이유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아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