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4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40화(34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40화
견하준의 양옆에 착 달라붙어 첫 번째 시나리오를 함께 읽던 서예현과 류재희가 감상평을 짧게 말했다.
“오, 이건 완전 정석 로코네. 신입사원과 사수 관계로 재회한, 어릴 때 멀어진 첫사랑 소꿉친구라니.”
“배경도 패션계라 독특하고요. 하준이 형한테 캐스팅 들어온 역할도 러브라인 없는 여주인공 인턴 동기 2 정도라서 적당하고.”
둘이 말하는 이 드라마는 협찬 문제부터 역사관 문제, 배우 문제, 인맥 캐스팅까지 가지가지 터져 나가며 시청자들에게 피로감만 안겨 주고 시청률이 수직 낙하하면서 조기 종영했다.
이걸 왜 이렇게 자세히 기억하느냐면, 회귀 전에 내가 이 드라마 OST 작곡을 맡았기 때문이다.
OST만 더럽게 좋은 드라마라는 평을 들어 기뻐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 곡에 그런 드라마가 묻은 걸 빡쳐 해야 하는 건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
서예현과 류재희처럼 흥미로움을 가득 담은 견하준의 눈동자를 캐치하자마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 흥미를 어떻게든 꺼뜨려야 했다.
“노잼이야. 너무 지루해.”
“시나리오를 읽고나 평가해라. 너는 남들이 네가 작곡한 곡의 곡 설명만 보고 그 곡을 평가하면 좋겠어?”
서예현의 타박에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을 유지한 채로 견하준 앞에 놓여 있던 시나리오를 쭉 끌어와 팔랑팔랑 넘겼다.
“음, 진짜 내 취향은 아닌 듯. 너무 지루하다.”
“그렇겠지. 타겟층이 네가 아니니까. 너 같은 놈들을 주 시청층으로 잡았으면 이런 간지러운 정석 로맨스코미디를 기획하는 게 아니라 야인시대 리메이크나 했겠지.”
서예현의 반박에 괜히 울컥했다. 야인시대가 뭐 어때서.
“아무튼, 이건 안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준아. 영 그래.”
진지하게 말하자 견하준이 고개를 짧게 저었다.
“너무 섣불리 결정할 필요는 없잖아. 다른 하나도 마저 봐야지.”
아니, 내가 지금 내 최애 드라마 리메이크될 때까지 너를 드라마 데뷔 안 시키려고 이러는 것 같냐고! 나도 그거 리메이크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망하고 출연한 배우들까지 인맥 캐스팅 때문에 긍정적이지 않은 소문이 돈다는 걸 견하준한테 말해 줄 수도 없어서 답답한 가슴만 두드렸다.
인맥 캐스팅 카더라로 제일 피해 봤던 게 전에도 작품 몇 개에 출연했던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였는데 처음 연기자로 데뷔하는 견하준이라면 얼마나 더 물어뜯기겠는가.
“게다가 김정서 작가님이잖아요.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는! 이거 완전 좋은 찬스에요.”
그래, 이 드라마가 그분의 유일한 실패작이 되어 버려서 문제지. 입에 담기도 싫어해서 이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은 김정서 작가의 이후 작품에 캐스팅되지 못했다.
이게 견하준이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걸 막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견하준의 대표작은 바로 김정서 작가의 이 이후 작품이었단 말이다.
여기에 견하준이 나가면 견하준은 자기의 인생작을 못 만나는 거라고.
지금까지 딱히 회귀한 걸 밝히지 못하는 게 억울하고 답답한 적은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존나게 답답했다.
속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동안 세 사람은 두 번째 시나리오를 펼쳐 읽어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견하준은 항상 침착했던 평소와 달리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시나리오를 몇 번이나 앞으로 넘겼다 뒤로 넘겼다를 반복하고 있었으며, 류재희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맞선을 보기 싫은 두 사람이 모두 자기 대신 이름이 똑같은 대타를 고용해서 상대가 자기한테 학을 떼도록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그걸 너무 잘 수행해서 첫 만남부터 서로를 제정신 아닌 인간으로 각인 찍은 두 사람이 여주인공이랑 남주인공이란 말이지? 그런데 여주인공이랑 남주인공이랑, 남주인공을 대타 세운 남자 셋이 중요한 협업 프로젝트의 관계자로 다시 만났고? 여주인공이 대타인 걸 모르는 남주인공은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둘이 원래 맞선 상대인 줄 알고 있는 바람에 초조해지고? 그 와중에 또 여주인공을 대타 세운 여자는 남주인공에게 사랑에 빠져서 그 맞선을 다시 한번 성사시키려 들고? 그런데 동명이인 메타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 대타 세운 남자랑 다시 맞선 본다고 오해해서 그 맞선에 또 남주인공이 나가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류재희 대신 시나리오를 요약한 서예현이 깔끔한 한 문장으로 이 드라마 시나리오를 평했다.
“개막장인데?”
그리고 한 치의 거짓 없이 그 드라마의 줄거리가 맞았다.
하도 이슈라서 나도 몇 번 챙겨 보다가 쭉 앞편 정주행하면서 본방까지 보게 된 터라 줄거리를 듣자마자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줄거리를 저렇게 정리해서 들으니까 더더욱 견하준을 설득하기 요원해 보였다.
내가 들어도 정신이 혼미한데 이걸 친구한테 연기하라고 한다고? 답이 없네, 진짜.
“대체 사랑의 작대기가 몇 개야?”
“그리고 하준이 형한테 들어온 역이 바로 남주인공 대타 세운 남자고요. 이 개막장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라고요.”
류재희가 어두운 얼굴로 덧붙였다.
회귀 전에 저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약간 견하준의 이미지와 비슷했던 거 같기도?
견하준의 연기 실력이야 캐스팅 논란 같은 잡음 없이 그 역할을 소화해 내기 충분하고. 애초에 캐스팅 논란도 안 일어났긴 했지만.
“거의 주조연급 아니냐? 좋네. 첫 드라마부터 주조연급을 맡았다고 하면 평가가 더 오르겠지.”
짝짝짝, 박수를 치며 말하자 이미 첫 번째 시나라오에 꽂혀 버린 서예현과 류재희가 나를 무슨 견하준의 연기돌로 내딛는 첫발을 망치려 드는 놈 보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안 보는 드라마 주조연급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이 개막장 테이스트를 주연 배우들이 존나 맛깔나게 말아 줘서 대박이 터진다고, 대박이!
첫 번째 시나리오 줄거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김도빈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상체를 쓱 일으켰다.
“그래서 결국 둘이 서로 대타였다는 거 고백한대요?”
흥미를 감추지 못하는 그 물음에 김도빈의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당당하게 말했다.
“봐 봐.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잖아. 성공하는 건 정석적인 것보다는 이렇게 실험적인 거라고.”
짜식, 이렇게 이 형의 서포트를 해주다니. 너도 쓸모 있을 때가 있구나! 요즘은 김도빈을 그렇게 느끼는 빈도가 좀 많아진 것도 같았다. 김도빈도 성장했나.
물론 김도빈이 내 심정과 계획을 눈치채고 한 말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류재희면 몰라도 김도빈이면 불가능하지.
“하준아, 윤이든 헛소리 듣지 마. 이건 진짜 아니야. 그냥 정석으로 가. 아무리 배우로서는 첫 데뷔라고 해도 작품이 필모에 도움이 되고 자랑스럽게 남는 걸 골라야지.”
서예현이 진지하게 견하준에게 충고했다.
그래, 시발. 그래서 내가 지금 두 번째 시나리오를 밀고 있는 거 아니야. 내가 뭐 배우로 데뷔하는 견하준이 질투 나서 다시는 드라마판에 발도 못 디디게 하려고 일부러 이러고 있는 줄 아나.
하지만 그런 서예현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두 번째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훑어본 견하준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이든아.”
“어어?”
“그렇게 두 번째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어?”
호기심이나 의문이라도 묻어나오면 안도하겠건만, 생각을 쉬이 읽을 수 없는 견하준의 짙은 갈색 눈동자가 나를 빤히 응시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나 혼자 지레 찔리는 질문에 티 나지 않게 멈칫했다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두 번째 드라마가 느낌이 좋아. 그리고 우리 감 좋은 도빈이도 두 번째에 더 흥미를 보이잖냐. 이건 진짜 된다니까?”
“서브컬쳐에 절여진 저도 관심이 가는 걸 보니까 진짜로 이든이 형 말대로 이게 첫 번째 드라마보다 더 먹힐 거 같기도 해요.”
얼떨결에 내게 인정받은 김도빈도 견하준의 설득에 말을 보탰다.
두 개의 시나리오를 한곳에 모은 견하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상히 말했다.
“그래, 그럼 두 번째 시나리오로 할게.”
어라? 의외로 너무 쉽게 이루어진 설득에 나조차도 놀라서 눈동자를 굴렸다.
“하준아! 다시 한번만 생각해 봐! 너희 가족분들이 볼 것도 고려해야지!”
“하준이 형. 이건 너무 도박이에요. 첫 번째 드라마가 좀 시시한 거면 모르겠는데 성공이 거의 90%는 보장된 걸 두고 두 번째를 선택하기는 좀…”
서예현과 류재희가 다급히 견하준을 붙들고 설득을 시도해 봤지만 견하준의 의지는 강경했다.
“도박 한번 해 보지. 우리 데뷔 초에 후속곡부터 지금까지 쭉, 이든이 선택이 틀린 적이 있었어?”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돌아보는 견하준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진짜로 설마… 견하준이 내 회귀를 눈치채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눈치 빠른 류재희도 눈치채지 못한 내 비밀을?
* * *
인기 뮤직 1위를 마지막으로 몽유별곡(夢遊別曲) 활동이 끝이 났다.
10월 말이라는 컴백 날짜 때문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지표가 잘만 하면 올해의 대상도 노려봄직했기에 소속사에서도, 멤버들도 기대가 컸다.
휴가를 받기 전에 우리가 필참해야 할 스케줄이 하나 남아 있었다. 바로 연례 행사나 다름없는 <아이돌 체육대회>, 줄여서 아체대였다.
해외 스케줄 같은 선 스케줄이 있던 터라 몇 번 빠지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런 것도 없었기에 꼼짝없이 참가해야 했다.
“공중파가 치사하게 음방이랑 예능으로 협박을 하냐.”
데뷔 초에 나갔던 아체대를 떠올리며 툴툴거렸다. 매니저 형한테 전달받은, 종목이 프린팅된 종이를 훑은 견하준이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우리가 얼굴을 안 비쳤던 사이에 종목이 몇 개 추가됐네?”
옆에서 함께 종목을 훑다가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스포츠를 발견하고 미리 찜해 놓았다.
“오, 축구 있다. 나 무조건 축구.”
학교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서 뛰었던 전직 축구부로서 이런 빅 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었다. 가볍게 골 다섯 개만 넣어 볼까?
서예현이야 제일 자신 있는 양궁을 택할 거고.
“그럼 저는 배구 할래요!”
김도빈이 당당하게 손을 들었다.
“너 배구 할 줄은 알아?”
“요즘 보는 애니가 배구 애니긴 해요.”
“예상을 안 벗어난 대답을 해 줘서 정말 고맙다, 도빈아.”
성장은 개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