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4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42화(34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42화
다섯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도 KICKS 낙하산은 놀랍도록 뻔뻔하게 우리를 향해 여유롭게 미소를 지어 보이기까지 했다.
견하준이 마치 들으란 듯 냉소 섞인 한숨을 짧게 내뱉었다. 아, 그러고 보니 견하준은 낙하산, 그러니까 정이서가 내부 고발자라는 걸 모르겠구나.
그리고 내가 가끔 정이서와 문자를 나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견하준에게 굳이 KICKS 놈들이 했던 우리의 뒷담을 구구절절 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중 제일 먼저 침착하게 입을 연 이는 서예현이었다.
“아무래도 자리를 잘못 찾아오신 거 같은데…”
그리고 친절하게 KICKS가 있는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꺼지라는 뜻이었다.
우리 멤버들이 정이서에게 친절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정이서가 내부 고발자인 걸 모르는 이상, 그는 레브 멤버들에게 그저 우리 뒷담을 깐 KICKS 멤버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KICKS 놈들도 눈치는 있어서 남들 앞에서까지 정이서를 대놓고 따돌리지는 않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4년 차인 지금까지 왕따설이나 불화설 하나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지.
데뷔 초반에 내가 던진 함정으로 인해 발발할 뻔했던 불화설은 그쪽 리더인 권윤성이 어떻게 잘 잡은 건지 금방 사그라들더라.
하지만 여유만만하게 레브 멤버 사이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앉은 정이서는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제가 설마 레브랑 KICKS를 헷갈리겠어요?”
서예현의 말이 자신한테 꼽주는 말인 걸 알아차리긴 했는지 맞받아치는 정이서의 목소리에도 약간의 비꼼이 묻어나왔다.
저의를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좁힌 채로 정이서를 보는 류재희와 멀쩡한 제 그룹 두고 도통 왜 이러는지 몰라 눈을 깜빡이는 서예현을 제치고 김도빈이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러면 왜 여기 와 계세요?”
방금의 서예현과 달리 빈정거림 하나 묻어나오지 않고 순수한 궁금증만 담겨 있는 그 물음에 정이서가 답하기도 전에 견하준이 선수 쳐 입을 열었다.
“그러게. 이제 와서 친목을 쌓자는 건 아닐 테고.”
건조한 목소리와 버금가는 건조한 눈빛이 정이서를 훑었다. 여전히 얼굴의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로 정이서가 가볍게 말을 받았다.
“못 할 것도 없지 않아요? 레브 리더 분이랑도 교류는 꾸준히 하고 지냈는데요.”
음… 비록 서로의 안부를 묻기보다는 어떤 뒷담을 했는지와 그 뒷담의 감상평을 남기는 게 주였지만 이것도 교류라고 명명하자면 교류라고 할 수 있겠지.
자기들끼리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와 견하준의 뒷담이 자정된 이후로는 연락이 드물어지기도 했지만.
견하준한테 미리 언질도 못 줬는데 대형 폭탄을 터트린 망할 낙하산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고 슬쩍 견하준을 돌아보았다.
내가 아무리 견하준을 긁고 싶다고 해도 그게 부상 위험이 높은 스케줄 도중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견하준의 시선은 정이서도, 나도 향해 있지 않았다. 정이서와 말을 더 섞기 싫다는 듯, 그저 평온한 얼굴로 우리 팬석을 한 번 돌아보며 손만 흔들어 줄 뿐이었다.
“딱히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희와의 친목 활동을 그쪽 팬 분들은 딱히 반기시지 않을 것 같거든요.”
“상관없어요.”
류재희의 충고에 미소를 거둔 정이서가 입술을 꾹 깨물며 속삭이듯 말을 내뱉었다.
“친목 수준은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나 좀 한 번만 도와줘요. 연말 시상식에서는 이러는 게 불가능해서 그래요. 윤이든 씨랑 견하준 씨에게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니라고 장담할게요.”
목소리의 크기는 작았지만 그 안에 서린 절박함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유로운 태도를 싹 내버린 정이서의 손이 내 소매를 꾹 잡아 왔다.
그 손을 내려다보며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은 서예현이 말했다.
“뭘 도와줘야 하는지 먼저 들어보고 나서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냥 여기 있게만 해 주세요. 그거면 돼요.”
거래 내용이 이걸로 바뀐 건가? 회귀 전과 다른 요구를 해 오는 정이서의 말에 눈썹을 치켰다.
서예현이 네가 빨리 결정하라고 내게 필사적인 눈신호를 보냈다. 견하준의 눈치까지 힐끔거리는 걸로 보아하니 서예현은 딱히 엮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냥 있으라고 해. 그쪽 멤버들하고 싸우기라도 했나 보지.”
심드렁한 대답에 잠깐 멈칫한 서예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견하준의 옆자리로 제 자리를 옮겼다.
“60m 단거리 달리기 예선전 준비해 주세요!”
스태프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견하준과 정이서가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저도 단거리 달리기 출전하거든요.”
“아, 그렇구나.”
정이서의 말에 견하준이 아무런 감흥 하나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비록 예선전이긴 하지만 견하준의 응원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우르르 단거리 달리기 예선전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정이서를 기다리고 있던 KICKS 멤버들도 보였다.
“어디 있었어, 이서 형. 계속 찾았잖아.”
최현민이 생글생글 웃으며 다가와서 뼈가 담긴 말을 내뱉었다.
“나도 너처럼 또래 인맥 좀 쌓고 싶어서 돌아다녔지. 왜, 나는 그러면 안 돼?”
“글쎄, 아무리 형이 끈질기게 달라붙어도 이든이 형이랑 하준이 형이 내 친구들처럼 형이랑 놀아 주지는 않을 텐데. 안 그래, 이든이 형?”
나까지 끌어들이는 최현민을 보다가 표정을 싹 굳혔다. 쳇, 혀를 찬 최현민이 경고를 알아먹었는지 순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권윤성이 그런 최현민의 뒷덜미를 거칠게 잡아끌었다. 막내가 저러니 너도 참 고생이 많다. 우리 막내는 얼마나 어른스러운데.
갑자기 뿌듯해져 손을 뻗어 류재희의 정수리를 두어 번 다독여 주자 류재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라인에 준비 자세로 줄줄이 선 이들을 바라보다가 류재희의 손길에 슬쩍 뒤로 빠졌다. 견하준이 결승에 진출하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응원은 결승전에서 본격적으로 해주면 되겠지.
“형, 정이서 말이에요. KICKS. 형은 왜 저 사람이 우리한테 와서 저러는 건지 알아요?”
운을 뗀 류재희가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 속삭였다. 대충 예상은 가는 터라 고개를 까딱했다.
알테어 차연호가 없으니까 KICKS 낙하산이 성가시게 구는군.
이제 아체대 나올 짬밥과 급은 아니라고 평가받는 알테어가 이럴 때는 차암 부러웠다. 소속사도 대형이라 공중파 눈치를 좀 덜 보기도 하고 말이다.
“왜겠냐. 자기 그룹이 마음에 안 들어서겠지.”
“대충 검색해 보니까 KICKS 내에서 엄청 챙김 받는 롤이던데요.”
류재희의 보고에 혀를 찼다. 정이서한테 충고한 이후에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더라니 그거 서치하고 있었냐.
“하여간, 그놈들은 단체로 연기를 해야 해. 아이돌을 할 게 아니라.”
어정쩡하게 대하면 소외시키는 게 들통날 수 있으니까 카메라 앞에서만이라도 대놓고 챙기는 전략으로 간 건가.
‘권윤성… 보다는 최현민 아이디어겠군.’
권윤성은 앞뒤겉속 다른 연기를 딱히 즐겨 하는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건 최현민의 특기였지.
그 자식이 나나 견하준 대하는 것만 봐도 각이 딱 나오잖아.
속 긁고 싶은 사람한테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다가와서 친한 척하며 속 뒤집기. 뉴본에 있을 때도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한테 그러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그저 나한테 하는 건 아니라서 그 녀석이 그러든 말든 신경을 껐을 뿐이지. 긁힌 놈이 가끔 참지 못하고 손을 올리면 내 등 뒤로 쪼르르 와서 나를 방패 삼아 숨어 댄 건 좀 귀찮긴 했지만.
그때는 견하준한테 그 짓거리는 하지 않았기에 그래도 최현민이 선은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견하준이 만만하지 않았거나 내 눈치를 보느라 견하준한테는 감히 그러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 같았다.
현재 저와 사이가 틀어진 나한테 그 지랄을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후자에 더 기울긴 했다.
회귀 전에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서로를 대하던 그때.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레브보다는 KICKS와 있을 때 숨통이 더 트인다고 생각했던 그때.
찰나에 아주 가끔씩 굳었던 권윤성의 표정의 의미를 내가 빨리 알아챘더라면 회귀 전의 우리 사이는 그렇게까지 나락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을까.
뭐, 이제는 쓸데없는 가정이었다.
그냥, 기어이 이런 쓸모없는 가정을 하게 만든, DTB 결승에서 봤던 권윤성의 손을 들까 말까 주저하던 얼굴이 아주 잠시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이제 너를 향한 원망도 미련도 우정도 다 털어 버렸는데 너 혼자만 아직 내가 너를 ‘성아’라고 부르던 과거에 남아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쓰게 웃던 나를 가볍게 잡아당겨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류재희가 속닥거렸다.
“잠깐 있다가 갔으면 몰라, 아체대 끝날 때까지 저 사람이 계속 우리하고 붙어 다니면 분명히 KICKS에는 멤버 간 불화설이 돌 거예요.”
그게 정이서가 노리는 거구나. 회귀 전에는 바로 탈퇴부터 갈기더니만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길래 불화설이라는 밑밥을 깔아 놓으려고 하는지.
권윤성이랑 대화할 때마다 초조해하던 게 이것 때문이었나.
“도와달라는 게 그걸 말하는 거겠죠?”
눈치 빠른 류재희 역시 정이서의 행동과 말의 뜻을 알아차린 듯했다.
“우리 멤버들 다 KICKS한테 좋은 감정이 딱히 없긴 하지만, 형이랑 하준이 형은 우리보다 좀 더 그 감정이 깊잖아요. 형들이 손해 보는 일이 아니라는 건, 거꾸로 말하자면 KICKS한테는 손해가 가는 일이라는 소리겠죠.”
“이야, 역시 <셜록keyAn> MVP다. 추론 죽이네.”
네 덕분에 내 머리가 편하다, 재희야.
킬킬거리며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자 이건 따지고 보면 형들 일인데 왜 내가 해석하고 있느냐고 류재희가 유니폼 모자를 뒤집어써 내 손길을 피하며 툴툴거렸다. 뒤늦은 사춘기인가.
어느새 예선전이 끝났는지 결승에 진출한 이들의 이름이 불렸다. 정이서는 없었고 견하준은 결승 진출자 목록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준, 금메달 가능하지?”
수건을 휙 던져주며 묻자 허공에서 수건을 잡아챈 견하준이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금메달은 조금 어려울 것 같고, 은메달까지는?”
“그래, 은메달도 괜찮지. 금메달은 이 형님이 따 올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응원이나 해라, 준아.”
축구 예선전을 알리는 목소리에 가볍게 몸을 풀며 씩 웃었다.
“형님이라니. 생일은 내가 더 빠른데 그 호칭이 맞아?”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묻는 견하준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함께 축구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리 와서 예선전 구경이나 해. 형님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해 줄 테니까.”
오랜만에 선문고 호나우지뉴의 저력을 보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