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4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45화(34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45화
나는 잠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견하준의 트리거를 눌러 대고 있다고? 계속 옆에 있었는데도 전혀 그런 낌새를 못 느꼈는데?
나조차도 느끼지 못한 걸 서예현은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형은 어떻게 알았어?”
“하준이 기분 안 좋은 거 안 느껴지든? 본인이 최대한 숨기고 있긴 했어도 낌새는 느껴졌을 텐데.”
“나는 당연히 KICKS 놈들 얼굴 봐서 그런 줄 알았지. 우리 준이는 KICKS만 보면 그날 기분 잡치잖아.”
“역시 남 눈치 볼 일 없이 살아온 놈은 다르구나.”
서예현이 감탄했다. 내용만 봐서는 빈정거림이지만 말투가 순도 100%의 감탄사라 왜 비꼬냐고 성질부리기도 뭐했다.
그렇게 일부러 긁어 댔을 때는 안 긁히더니, 지금은 내가 대체 뭘 했다고 견하준의 트리거가 눌리고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한 거라곤 그저 견하준에게 형님으로 한 번 불려보기 위해 축구 예선전에서 기가 막히게 활약한 것밖에 없는데.
하지만 내가 했던 행동들을 돌아보며 검열하던 것도 잠시, 갑자기 드는 생각에 검열을 멈췄다.
잘됐네. 어차피 긁으려고 했었잖아?
그리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원인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알아주길 원한다면 본인이 직접 말하겠지.
이렇게 싸움의 전초전을 밟아 가는 거다. 이건 오히려 호재였다.
“알려줘?”
내가 멍하니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걸 고심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나를 툭툭 친 서예현이 물었다. 이미 생각 정리는 마친 생태라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본인에게 직접 듣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하준이가 말 안 해주면 어쩌려고. 하준이가 자기 불만을 너한테 직접적으로 말하는 성향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말해 주길 바라야지.”
경기장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며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난 하준이한테 선빵 갈기기 싫거든.”
“뭐로 선빵을 갈길 건데?”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고 있어. 당연히 주먹이지.”
그럼 손바닥으로 싸대기를 날리리?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더 기분 더러울 텐데.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서예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벌떡 몸을 일으킨 서예현은 곧바로 견하준에게 달려갔다.
숙소 내에서 주먹질을 곁들인 개싸움판을 막기 위해서 서예현이 어떻게든 견하준을 설득이라도 해 보겠지. 이게 바로 손대지 않고 코 풀기라는 건가.
태평하게 휘파람을 불며 배구 예선전을 보기 위해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무슨 오해를 한 건지 김도빈이 감동 받은 얼굴로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헐, 이든이 형… 저 배웅하러 같이 가 주시는 거예요?”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저기까지 가는 걸 배웅하겠냐. 빨리 가야 구경하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딱히 응원 목적은 아니고, 김도빈이 과연 애니로 배운 배구로 활약을 할지 생쇼를 할지 궁금해서 관람하러 가는 거였다.
손가락으로 척, 나를 가리킨 김도빈이 의기양양하게 선포했다.
“제가 또 오늘을 위해서 애니 정주행을 싹 했거든요. 형의 축구 경기에 버금갈 제 활약을 잘 보시죠.”
“그렇게 만화에만 나오고 현실 사람들은 일상에서 절대 안 할 것 같은 손동작 좀 하지 말아 줄래? 보는 내가 다 공수치가 오는구나.”
“씹덕같다는 말을 엄청 돌려서 하시네요.”
슬그머니 손가락을 내리며 김도빈이 툴툴거렸다.
그야 씹덕 같다고 하면 초심도가 깎이니까 그렇지. 하도 찔러 대던 초심통에 적응해서 이제 초심도 깎으면서 지져 봤자 아프지도 않다고 비웃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아주 가아끔 참지 못하고 내뱉는 비속어 때문에 깎이는 걸 빼면 딱히 초심도가 깎일 일이 없었다.
멤버들의 멘탈도 한결 단단해졌는지 내가 가끔 툭툭 말을 뱉어도 멤버들과의 불화 조장으로 초심도가 깎이지도 않았다.
역시나 내 말본새를 바꾸기보단 멤버들의 멘탈 단련을 시키는 게 옳은 방향이었다. 역시 당장의 앞일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나 자신, 장하다.
내가 견하준의 트리거에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견하준의 트리거를 누른 행동들이 견하준과의 불화로까지 이어진다면 서예현이 경고하기도 전에 시스템이 진작부터 ‘멤버들과의 불화를 조장하는 말이 감지되었습니다’ 상태창을 띄우면서 초심도를 감점시켰겠지. 시스템 얘가 얼마나 득달같이 달려드는데.
배구 예선전이 이루어지는 코트 라인 근처에 앉았다. 내 옆자리에는 겉보기에는 여전히 평온해 보이는 견하준이 무릎을 세운 채로 앉아 있었다.
그냥 이참에 속 시원하게 한판 싸웠으면 싶었다. 그러면 사이 개선도도 100으로 올라가서 마음 편하게 다음 타자인 류재희한테 집중할 수 있을 것 아닌가.
기왕이면 견하준이 회귀 전처럼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먼저 말해 주기를 바라지만, 견하준이 입을 다물고 있다면 내 쪽에서 먼저 대체 내가 뭘 했길래 네 트리거를 건드린 거냐고 물을 의향도 있었다.
씨바, 속 답답해서 살겠냐.
서예현의 말대로 우리가 이 문제로 싸우고 사이가 틀어진다면 딱 그 정도의 사이였던 거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씁쓸하겠지만 딱 그 정도의 우정이었다는 걸 받아들여야겠지.
길게 한숨을 내쉬자 견하준이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다.
너요. 너, 너.
“정이서 때문이야?”
KICKS도 아니고 굳이 콕 집어서 정이서를 말하는 점에 잠깐 의문을 가졌지만, 정이서가 이곳, 아체대에서 우리를 골치 아프게 만든 시작점인 걸 떠올리자 납득이 됐다.
“그것도 한몫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어서.”
설렁설렁 대꾸하며 배구 예선전이 치러지는 코트로 시선을 옮겼다. 내 상상과 다르게 펼쳐지는 현실의 광경에 내 눈이 잘못됐나 몇 번을 비비적거렸다.
“아니, 쟤 왜 잘해?”
“도빈이가 잘하면 좋은 거 아니야?”
“너무 의외라서…?”
“의외라고 치기에는 도빈이 형이 토스랑 리시브는 잘했어요. 그 두 개의 명칭을 헷갈려서 문제였죠.”
“도빈이 저러다가 다치면 어떡해? 너무 몸을 막 날려대는데…?”
같은 팀 선수가 놓치는 공을 번번이 리시브로 살려내는 김도빈을 보고 있자니 활약이 돋보여서 좋다고 해야 할지, 남의 트롤짓을 수습하느라 몸 던지고 있는 걸 속 터져 해야 할지 가늠이 가지를 않았다.
아무리 우리가 활동이 끝났다고 해도 팀 메인댄서라는 놈이 발목 나가면 어쩌려고 저렇게 몸을 던져 대?
블로킹을 하다가 손가락에 공을 잘못 빗맞고 손가락 부상을 입은 채로 코트를 나가는 상대편 선수를 보자 불안감이 짙어졌다.
서예현도 너무 몸 던지지 말고 살살 좀 하라고 김도빈에게 한 마디를 날릴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상의 원인인 스파이크를 날린 이가 김도빈이 아니라는 거? 토스랑 리시브는 잘했지만 공을 때리는 힘이 부족해 김도빈의 스파이크는 번번이 막혔기에 공격은 다른 사람 전담이었다.
예선전이 무사히 우리가 속한 조의 승리로 끝난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결승에서도 이러기만 해 봐. 몸 안 사려? 병원 실려 가고 싶냐?”
“그래도 멋있었죠?”
한껏 높아진 콧대를 뽐내며 묻는 김도빈의 목에 헤드록을 걸며 투덜거렸다.
“지금 멋있는 게 문제냐고, 인마. 너 어디 한 곳 부러지면 네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하와이도 날아가는 거야.”
“억, 부상이 아니라 형의 헤드록 때문에 먼저 병원 실려 갈 것 같아요.”
“수고의 의미로 직접 해 주는 목 마사지를 헤드록 같은 무시무시한 레슬링 기술로 오해하면 형이 슬프겠냐, 안 슬프겠냐.”
잠깐 팬석에 얼굴만 비춘다고 떠났던 정이서는 아직도 제 멤버들 틈새에 있었다.
[못 오게 하든?] 오후 2:30궁금해서 메시지를 보내 보자 즉각 답장이 도착했다.
[정이서(KICKS 낙하산)- 가려고 했는데 이든 씨가 저를 잡아 두지 말라고 했지 다 같이 오지 말라는 소리는 안 했다고 최현민이 멤버들 다 끌고 따라가려고 해서요] [정이서(KICKS 낙하산)- 그럼 의미 없잖아요] 오후 2:31 [정이서(KICKS 낙하산)- 팬들에게 내가 레브와의 친목질의 장을 열어준 장본인으로 취급되기나 하겠지] 오후 2:32나쁜 쪽으로만 잘 발달한 최현민의 잔머리는 여전했다. 이렇게 내 말의 허점을 찌르다니.
“그런데 저기는 온다고 해 놓고 안 오네요.”
류재희 역시 나처럼 신경 쓰고 있었는지 KICKS가 모여 앉은 쪽을 힐긋힐긋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너무 관심 두지 마. 어차피 우리랑 애초부터 상관없는 사람이잖아.”
“에이, 연말 시상식 전에 뭐라도 터져서 화력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죠. 내부 총질이 제일 효과적이잖아요.”
견하준과 류재희의 대화를 들으며 혀를 찼다. 어쩐지 순순히 받아들이더니 그런 의미였냐.
역시 류재희는 적으로 돌리면 제일 골치 아픈 놈 1위였다.
“내가 자기를 잡아 두지 말라고 했지 다 같이 오지 말라는 소리는 안 했다고 최현민이 멤버들 다 끌고 따라오려고 해서 포기했단다.”
“확실히 불화설에 찬물 끼얹기는 최고네요. 앞선 일탈도 화해와 친목의 장을 먼저 열어 준 선두 주자 정도로 취급될 거니까. 그런데 형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궁금해서 문자 좀 해 봤어.”
“형, 저분이랑 친했어요? 아까 저분이 말하는 거 들으니까 교류도 꾸준히 하고 지냈다면서요.”
“딱히? 그냥 가끔 연락만 주고받는 사이?”
눈썹을 치키며 대답하자 곧 있을 단거리 경주를 위해 옆에서 몸을 풀고 있던 견하준이 무심하게 물었다.
“연락 주고받을 게 있어?”
따지고 보면 이건 내가 견하준에게 숨기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냥 이참에 시원하게 공개했다.
“뒷담 내부 고발.”
망설임 없이 뱉은 대답에 견하준이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그걸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어? 그냥 무시해 버려.”
“그쪽에서 열심히 먼저 보내 주더라고. 이제는 빈도가 확 줄어들어서 그거 관련한 연락도 거의 안 오긴 하더라. 다른 연락이야 뭐, 내가 걔랑 할 말이 뭐가 있겠냐. 다른 놈들처럼 예전 연습생 생활에 추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단거리 달리기 결승 진출자들을 부르는 소리에 견하준이 메달 따 온다는 당당한 포부 한 마디를 남기고 성큼성큼 그쪽으로 향했다.
서예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나랑 마찬가지로 몸을 일으켰다.
날리고 간 포부가 무색하지 않게 견하준은 50m 단거리 달리기 결승에서 동메달을 따 왔다.
“축구 결승전,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진행 스태프의 외침에 뚜둑, 목을 꺾어 근육을 한 번 풀고는 견하준을 돌아보며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잘 봐라. 이번에야말로 형님 소리 제대로 나오게 해 줄게.”
견하준의 트리거가 설마 ‘형님’은 아닐 거 아니야. 갈 때 가더라도 형님 소리 정도는 괜찮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