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4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46화(34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46화
축구 결승전에 진출한 상대 팀의 면면을 훑다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상대 역시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어 댔다.
“이든 씨, 오랜만!”
같이 On Top 활동을 했던 신드롬의 시온이었다.
“이든 씨 팀 예선전 봤는데 완전 날아다니던데?”
“그래서 결승전에서도 활약 좀 해 보려고요. 제가 또 멋있게 보여야 하는 사람이 있어서.”
“오, 어느 그룹?”
“저희 그룹이요.”
초롱초롱했던 시온의 눈동자가 즉시 흥미의 빛을 잃었다.
예선전에서 주장 역할을 했던 선배가 내게 자리를 양보해 준 탓에, 얼떨결에 정중앙에서 상대 팀 주장 노릇을 하고 있는 시온과 악수를 나눴다.
아체대의 총 여섯 팀 중 두 팀씩 한 팀으로 묶어 경기를 진행했으므로 우리의 상대 팀은 경기를 하지 않고도 부전승으로 결승에 올랐다. 그래서 약간 얕보았던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아, 말씀드린 순간 시온! 바로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골대로 향합니다!] [슛! 골인! 시온이 결승전 첫 골을 넣었습니다!] [A, B팀에 윤이든이 있다면 E, F팀에는 시온이 있네요. 두 에이스의 오늘 결승전 활약이 매우 기대가 됩니다.]우리 팀 수비를 손쉽게 따돌리고 한 골을 넣은 시온이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상큼하게 윙크했다.
“내가 또 학창 시절에 축구부였거든.”
“오, 저돈데.”
상대 팀 골키퍼가 힘껏 찬 공을 드리볼하다가 우리 팀 선수에게 정확히 패스하며 씩 웃었다.
결승전이다 보니 몸싸움은 한층 더 격렬해졌다. 다들 이게 아이돌 체육대회라는 걸 잊고 축구 국가대표에라도 빙의한 모양새였다.
[윤이든! 윤이든! 바로 슈팅 찬스를 얻어냅니다! 오, 찼어요! 들어갔습니다! 골!]내가 쏜 중거리 슛이 골대 안으로 힘차게 꽂혔다.
우리 팀 선수가 상대 팀 선수와 함께 얽혀 넘어지는 바람에 나란히 부상을 입고 선수 교체에 들어갔다.
상대 팀의 반칙으로 판단되었지만 페널티 에어리어 안이 아니어서 우리 팀은 직접 프리킥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시온의 지휘하에 골대 앞에 수비의 벽을 만든 상대 팀을 훑다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공을 힘껏 찼다.
그리고 잠시 후 수비의 빈틈을 정확히 파고든 공이 골대 그물을 출렁거리게 했다.
그렇게 후반전까지 정신 없는 게임이 끝났다.
“3대 3이에요! 한 골만 더 넣읍시다!”
양측 다 한결 더 견고해진 수비와 저돌적인 공격 덕분에 서로에게 쉬이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결국 무승부로 경기 시간이 끝나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시온이 힘껏 찬 공은 우리 팀 골키퍼의 필사적인 수비로 인해 골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승부차기 찬스 역시 직접 프리킥처럼 내게 주어졌다. 발끝으로 공을 바닥에 슬쩍 굴리다가 뒤로 물러나 앞으로 달려오며 발끝으로 공을 걷어찼다.
아이씨, 이거 예전에도 성공 확률 존나 낮았는데. 실패하면 개쪽에 무승부고, 성공하면 영웅이다, 시발.
골대 가장자리로 날아가는 공에 우리 팀이 탄식을 내뱉었다. 하지만,
“어, 어, 어!”
“미친! 골! 골인!”
궤적이 휘어지면서 공이 골대 기둥을 맞고 골대 안으로 통통 들어갔다.
[네! 마지막 승부차기, A, B팀이 성공합니다! 4대 3으로 A, B팀의 우승입니다!]우리 팀 선수들 모두 환호성과 함께 일제히 우르르 달려와 나를 거의 포위하듯 끌어안았다. 상대 팀 선수들과 구경하던 이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겨우 빠져나와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자 시온이 어느새 쓱 다가왔다. 시온에게 생수병을 건네며 픽 웃었다.
“에이스 맞네요.”
“다음에도 상대 팀으로 만나자. 오랜만에 아체대가 재미있었어.”
키득거린 시온이 내 등을 두드리고 제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축구 결승전은 총 네 명이라는 부상자를 남겼다. 아무래도 내년에는 축구라는 종목이 사라지거나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승부차기 정도로 교체될 전망이었다.
이 지루한 아체대에서 오직 축구만이 내 한 줄기 빛이었는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려 결승인데도 멋있었냐는 소리를 안 하네?”
“시온 선배한테 막혀서 예선보다 활약을 덜한 것 같아서, 쳇.”
“그래? 예선보다 더 멋있었는데.”
“진짜? 형님이라고 부를 마음이 막 들었어?”
“그건 아니고.”
견하준은 참으로 냉정했다.
양궁 결승전에서 레브는 무려 은메달을 따 왔다. 금메달을 딴 팀과 딱 1점 차이였다.
양궁 결승을 치렀던 멤버들은 무척 아쉬워했지만 예선 탈락에서 은메달 정도면 많이 발전한 거였다. 김도빈 하나 빠졌다고 은메달이라니.
서예현이 엑스텐 세 개에 10점 두 개를 맞추며 김도빈이 주장하던 행운 토템의 행운력 버프는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배구는 점프했다가 착지를 잘못해서 발목이 나간 같은 팀 선수를 바로 눈앞에서 직관한 김도빈이 몸을 사린 덕분에 결승 진출은 하지 못하고 끝났다.
배구 역시 축구 못지 않게 수많은 부상자를 배출했기에 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종목란에 이름을 올릴 미래가 훤히 보였다.
“형은 결승에서나 그렇게 몸 던지지. 1차 예선에서 열연하지 말고.”
“발목 나간 사람을 바로 앞에서 보니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면서 몸이 굳더라니까?”
“재희야, 너무 뭐라 하지 마라. 안 다쳤으면 그만이지. 잘했어. 여기에서 부상 입는 것보다 메달 못 따는 게 나아.”
김도빈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어 주자 김도빈이 감동 먹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 종목인 릴레이 계주만이 남았다.
마지막 경기이다 보니 이곳저곳에 늘어져 있던 아이돌들이 죄다 구경하러 몰려왔다. 꼬리에 KICKS 멤버들을 주렁주렁 달고 온 정이서도 내 옆에 앉았다.
제 멤버들을 의식해서인지 딱히 말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류재희가 바통을 건네받고 레브 멤버들의 신경이 류재희 쪽으로 쏠리자 정이서가 나를 툭툭 쳤다.
“나중에 제 솔로곡 하나만 프로듀싱 해 줄 수 있어요? 작사, 작곡까지 포함해서요.”
회귀 전과 똑같은 부탁이 정이서의 입에서 나왔다.
아체대에서 같이 있게 해 주는 걸로는 본인이 내게 일방적으로 지워 주었던 내부고발의 빚을 청산하기 부족했던 모양이다.
미래가 이렇게 틀어져도 어떤 일은 회귀 전과 똑같이 재현되는구나 싶어 기분이 묘했다.
내가 대답 대신 저를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정이서는 초조한 얼굴로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저도 다시 일어나야죠. 이렇게 끝내려고 데뷔한 게 아닌데.”
오직 내게만 들리도록 정이서가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속삭였다.
회귀 전의 정이서는 내가 준 곡으로 팀 탈퇴 몇 년 후에 솔로 가수로 자리를 잡는 것에 성공했다.
곡을 줘 봤자 내가 손해 보는 건 없었기에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지, 뭐.”
내가 회귀 전 정이서에게 곡을 줬던 건 내 회귀의 기점이기도 했던 7주년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터라 재현하긴 어렵지 않았다.
따가운 눈초리가 내게 와 박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류재!”
김도빈의 경악스러운 외침에 경기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따가운 눈초리 역시 거둬졌다.
결승선 바로 앞에서 나뒹군 류재희의 모습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절뚝거리며 겨우 결승선에 골인한 류재희한테 달려갔다.
“막내, 괜찮냐? 걸어 봐. 발목 괜찮아?”
“네, 삐끗하진 않은 것 같아요. 아, 무릎 쓸렸다.”
“야야야야, 너 무릎에 피, 피…!”
“도빈이 형, 나 괜찮으니까 그렇게 호들갑 안 떨어도 돼.”
김도빈보다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르는 류재희가 더 침착했다.
류재희가 의료 천막에서 응급처지를 받느라 견하준을 류재희와 함께 남겨 놓고 폐막식에는 나, 서예현, 김도빈, 이렇게 셋만 참가할 수밖에 없었다.
“쳇, 금메달이 내가 따온 축구 경기 하나라니.”
“그래도 우리 멤버들은 아무도 심하게 안 다쳐서 다행이지. 이번 아체대가 진짜 역대급이긴 하다. 부상자가 몇이야?”
그렇게 아이돌 체육대회가 끝이 났다.
* * *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제 방으로 들어가는 견하준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한숨 자고 한판 뜨자는 건지, 아니면 이번에도 입을 다물 생각인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풀썩 누웠다. 피로가 몰려오는 바람에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무심코 받았다.
-여보세요, 이든이 형 맞지?
최현민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어어.”
-다행이다, 이 폰 번호는 아직 안 바뀌었구나.
“용건.”
-힝,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두 번 말하게 하지 말자.”
내 짜증스러운 경고에 최현민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든이 형, 혹시 알아? 이서 형이 디그린 엔터 연습생이었다는 거?
디그린은 TK, 신월과 더불어 국내 3대 대형 엔터였다. 그곳에서 나온 보이 그룹은 레브보다 1년 먼저 데뷔한 선배 그룹이었고.
나를 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오디션에서 떨어뜨린 곳이기도 했다.
“오, 의외네. 그런데 내가 그 사실을 꼭 알아야 할 이유가 있냐?”
-그리고 이서 형은 데뷔조 뽑기 직전의 월말 평가에서 퇴출당했어. 발전이 없었다나. 대형 기준 빡세다, 정말. 내 친구가 디그린에서 이서 형이랑 같이 연생 생활 하다가 다른 엔터로 옮겨서 데뷔한 덕분에 아주 자세히 들었지.
“혹시 클럽 같이 다니는 친구냐?”
-…….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인지 최현민이 잠시 침묵했다.
“클럽 좀 적당히 가라. 아이돌이라는 놈이.”
-자, 그럼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대형 엔터에서 데뷔조 선출 직전에 퇴출당한 이서 형이, 보이 그룹 데뷔조가 막 꾸려진 뉴본 이사를 외삼촌으로 두고 있는 그 형이 택한 선택지가 뭐였을까?
“말 돌리기는. 결국 데뷔조에 꽂아 달라고 정이서가 먼저 부탁했다는 것도 네 뇌피셜 아니냐?”
내 심드렁한 대꾸에 최현민의 비웃음이 돌아왔다.
-그거 알아, 형? 하준이 형이랑 이서 형, 뉴본에서 만난 적 있었다? 하준이 형이 한 사람 나가야 하는 건 알고 들어왔냐니까 이서 형이 뭐라 대답했게?
잠시 텀을 둔 최현민이 정이서의 말투와 목소리를 흉내 내며 견하준이 들었을 정이서의 대답을 뱉었다.
-네, 그런데 저도 간절해서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다 듣고 있었거든. 정 의심 가면 하준이 형한테 물어봐도 돼. 그 형이 형한테는 말해주겠지.
내 얼굴에서 표정이 느릿하게 지워졌다. 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서예현이 슬그머니 방을 나갔다.
-이서 형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는 소리야. 자기가 애꿎은 한 사람 자리 뺏고 들어오는 거. 이 판에 간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코웃음을 친 최현민이 똑똑히 들으란 듯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이서 형도 형이 그렇게나 아끼는 하준이 형한테는 가해자라고. 형이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어?
손바닥으로 눈가를 덮으며 실소를 내뱉었다.
“내가 전제부터 잘못 생각했었네.”
서예현이 말했던 오만, 그리고 회귀 전 일로 인한 편견이 내 눈을 제대로 가리고 있었다.
“그렇게 괜히 견하준 끌어들여서 정당화시키지 말고 사람 한 명 따돌린 대가는 너희들끼리 치러라. 복수를 해도 견하준이 해야지, 니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견하준이 애틋했다고.”
-글쎄, 하준이 형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리고 우리가 하준이 형이 애틋하겠어? 이서 형 때문에 나가게 된 사람이 하준이 형만 있는 게 아니잖아?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이만 끊는다.”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방문이 노크도 없이 벌컥 열렸다.
“너는 내가 왜 뉴본 데뷔조에서 쫓겨났는지 잊은 거야?”
이를 악문 견하준이 짓씹듯이 내뱉었다. 평소의 어른스러움도, 여유도 다 내다 버린 채로 견하준은 그렇게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견하준의 트리거는 KICKS가 아니라 KICKS 낙하산, 정이서였다.
드디어 회귀 전 견하준과의 손절과 관련된 마지막 퍼즐 조각이 손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