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4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48화(348/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48화
이렇게 주먹질 한 판 하고 난 다음에는 근처 편의점 야외 테이블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게 일종의 필수 코스였지만 안타깝게도 나랑 견하준은 그게 불가능했다.
근처에서 죽치고 있던 사생이나 지나가던 사람 귀에 우리의 진솔한 대화가 들려 봐라. 바로 레브 불화설 뜨는 거야.
그래서 우리가 선택한 곳은 바로 술집도 편의점의 야외 테이블도 내 작업실도 아닌 연습실이었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딱 좋은 장소 아닌가.
비록 현 사옥 연습실은 우리가 헤쳐 나갔던, 힘들었던 데뷔 전과 데뷔 초의 그 추억이 담긴 장소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연습실이라는 공통 분모는 있으니까.
차를 타고 소속사 사옥으로 가는 동안 차내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마트에서 쓸어 담은 소주병이 비닐봉지 안에서 서로 부딪혀 쨍그랑거리는 소리만이 소음의 전부였다.
‘젠장, 그냥 숙소 거실에서 마실 걸 그랬나.’
그렇지만 멤버들이 문 닫고 귀 쫑긋 세우고 있을 게 뻔한데 숙소 거실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좀 그랬다.
먼저 술 마시러 가자고 말을 꺼낸 견하준의 반응 덕분에 오고 가는 주먹질 정도로 사이가 어색해질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단둘이 남으니 더럽게 어색했다.
악셀을 꾹 밟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으며 운전했다.
마침내 소속사 사옥에 있는 레브 연습실에 도착했다. 조명을 켜자 어두웠던 연습실에 불이 들어왔다.
우리는 제법 많은 소주병을 사이에 둔 채로 살짝 거리를 두고 나란히 거울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보일러를 켜지 않은 바닥은 서늘했다.
어색함을 이기지 못하고 소주를 손에 잡히는 대로 사 왔건만 이렇게 많이 샀을 줄은 몰랐다.
내가 친 견하준의 볼은 서예현이 기겁하며 볼에 꾹 눌러 준 아이스팩 덕분에 부기가 제법 가라앉았지만, 견하준이 친 덕에 터진 내 입 안쪽은 여전히 혀로 꾹 누르면 욱신거리는 상태였다.
입가의 상처를 건드려 보려다가 연고를 발라 놨음을 뒤늦게 상기하고 입가 근처에 맴돌던 손을 내렸다.
서예현은 그저 나뒹굴기만 했던 견하준은 그렇게 걱정하면서 아이스팩까지 직접 대 줬으면서 입가가 터져 피까지 본 나한테는 리더란 놈이 잘하는 짓이라며 잔소리만 해 댔다. 오죽했으면 그 눈치 없는 김도빈이 내게 연고를 가져다줬을까.
비견하준 차별 정신을 서예현이 물려받았나, 서러워 돌아가실 지경이다.
입가 근처에서 서성대던 내 손을 발견한 견하준이 담담한 질문으로 먼저 어색함의 침묵을 깼다.
“아직도 아파?”
“아프지는 않… 잠깐, 지금 이거 네 딴에는 아프게 때렸다고 자백하는 거지? 야, 나는 그래도 너 생각해서 최대한 힘 빼고 후려갈겨 줬는데.”
“그게?”
투덜거리는 내 말에, 견하준이 떨떠름한 얼굴로 되물었다. 내가 풀파워로 쳤으면 네가 지금 나랑 이렇게 술 까면서 대화하고 있었겠냐. 병원 가서 임플란트 견적 뽑고 있었지.
“약국 문 닫았으려나? 근처 약국에서 입 안에 바르는 약이라도 사 올까?”
“괜찮아. 소독하면 돼.”
소주 한 병의 뚜껑을 따서 병째로 콸콸 들이켰다. 기겁하는 견하준을 향해 알코올 소독이라고 손을 내저으니까 견하준이 식도랑 위장도 소독하느냐고 한 소리 했다.
오직 소주만 샀지 종이컵도 안주도 사 오는 걸 깜빡했기에 결국 견하준도 한숨을 푹푹 내쉬며 소주를 병째 들어 깠다.
“그런데 굳이 연습실인 이유가 있어?”
내가 연습실을 말했을 때부터 견하준의 표정이 묘하더니, 술을 마시기에는 뜬금없는 장소라서 그런지 이유가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추억 쭉 되새김질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잖냐. 왜, 마음에 안 들어? 내 작업실로 바꿔?”
“아니, 그건 아니고. 너 닷새간인가 이상해졌을 때, 그때도 새벽까지 안 들어오더니 알고 보니까 연습실에 있었거든. 그래서 혹시 네 아지트가 네 작업실에서 연습실로 바뀌었나 해서.”
“오, 내가 그랬다고?”
그때인가? 서른 살 내가 잠깐 왔었던 정신의 회귀인가 뭔가를 페널티로 받았던 때? 김도빈이 악귀이든 평행세계라고 지랄했던?
소주를 두 병째 까다가 무의식적으로 팔 안쪽의 타투를 문질렀다.
견하준이 그때의 일을 내심 듣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지만 딱히 말해 줄 생각은 없었다. 나도 그 닷새간의 기억이 없을뿐더러, 견하준이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데 내가 굳이 말해 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일단 어디에서부터 어긋난 건지부터 좀 맞춰 보자. 제일 먼저 오늘 일부터.”
손가락으로 연습실 바닥을 툭툭 두드리며 슬쩍 말을 돌렸다. 본론이기도 했다.
“나는 이든이 네가 KICKS랑 마주칠 때마다 못마땅하다는 티를 그렇게 팍팍 내니까 당연히 정이서도 그 ‘못마땅함’ 안에 포함인 줄 알았지.”
거울에 기대어 허공을 바라보며 견하준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따지고 보면 정이서가 우리를 LnL에서 데뷔하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고. 그걸 네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그래, 내가 빡대가리요, 죽일 놈이다. 반성의 의미로 대가리라도 박아야 하나.
“왜, 그래도 덕분에 지금 멤버들 만났잖아. 초반기의 서예현이랑 김도빈이 좀 노답이긴 했지만, 그때랑 비교해도 판 깔리니까 얼씨구나 하고 뒷담까는 놈들보단 낫지 않냐.”
“지금 와서야 솔직하게 말하는 거지만 우리가 <내 우주로 와>로 데뷔할 때까지만 해도 답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냥 너한테 미안해서 티를 못 낸 거지. 하아, 진짜로 너 아니었으면 그다음 활동도….”
말을 차마 잇지 못한 견하준이 깡소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이참에 나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그럼 LnL은 대체 어쩌다가 왔냐. 난 솔직히 네가 이런 좆소 소속사 찾아낸 것도 존나 신기했어.”
좆소와 존나가 아니라 좋소와 좋나니까 시스템이 발음을 오해해서 초심도를 깎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오케이?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시스템이 탑재했던 융통성은 단 몇 시간 만에 실종되었다. 그럼 그렇지.
잠시 머뭇거리던 견하준이 다시 소주를 들이켜고는 알코올의 힘을 빌려 진실을 토해 냈다.
“…친척분 소개로. 대표님이랑 아버지 쪽 친척분이 아는 사이셔서. 뉴본도 이러는데 다른 곳에서 다시 연습생부터 시작하기에는 더 늦기 전에 데뷔할 수 있을 거란 기약이 없고. 이 와중에 무조건 1년 안에 데뷔시켜 준다니까 혹한 거지, 우리 부모님이.”
“와우, 초기의 대표님은 진정한 인맥 경영을 하고 계셨던 거구나.”
이건 회귀 전후를 통틀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동시에 견하준이 존나 짠해졌다. 누구는 인맥으로 중대형 소속사 데뷔조 인원 한 명 튕기고 그 자리에 다이렉트로 꽂혔는데 누구는 겨우 인맥으로 좆소 LnL 1호 연습생이나 됐다니.
“…그래서 너한테 더 미안했어.”
데뷔 초의 견하준이 내게 가졌던 그 과도한 죄책감의 원인도 알 것 같았다. 견하준은 제가 의도치 않은 다단계 수법을 나한테 펼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수십 번은 말했잖아. 내 선택이라니까.”
“그냥, 그랬다고.”
그렇게 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견하준도 두 번째 소주병을 깠다. 두 병째인 내 손에 들린 소주병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술기운이 올라 후끈거리는 얼굴에,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KICKS 놈들 볼 때마다 기분 잡쳐 하는 티를 내서 나랑 똑같이 뒷담 까인 거 짜증 난다고 생각하는 줄 알았지.”
“걔네는 이제 의미 없는 애들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권윤성이나 최현민을 대하는 태도도 퉁명스러웠잖아. 그래서 말로만 그런 줄.”
견하준이나 나나 서로의 해석을 완전히 잘못하고 있었구나. 콧등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입바람으로 훅 불어 날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친절도 기력이야. 걔네한테까지 기력을 쓰고 싶진 않아.”
살짝 눈살을 찌푸린 견하준이 비소했다. 의외의 말에 휙 견하준을 돌아보며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너 좀 낯설다.”
견하준이 멈칫하는 꼴이 고스란히 보이는 바람에 덧붙였다.
“칭찬이야.”
내가 동경하기도 했던 견하준의 어른스러움은 견하준이 이 악물고 내 얼굴에 주먹을 갈겼을 때 한 꺼풀 걷혔다.
“이렇게 솔직하니까 오해도 풀리고 좋잖아.”
손을 뻗어 견하준의 어깨를 두드리며 픽 웃었다.
“낙하산이야, 나한테는 내부 고발자로서의 의미가 더 컸고. 어른들의 사정일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말이야. 알고 들어온 거 내가 알았으면 그 자식한테 내가 욕을 줬겠지 곡을 줬겠냐.”
복잡한 얼굴로 나를 보는 견하준을 향해 한마디 했다.
“야, 내 눈치를 그렇게 고평가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인정하긴 싫지만 사실이었다. 당장 서예현이나 류재희가 나를 대하는 것만 보더라도 일단 내 눈치 수준이 F라는 건 깔고 가지 않는가. 오직 견하준만 A+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네가 뭐 때문에 나한테 실망했는지 먼저 말해줘서 고맙다.”
회귀 전, 끝내 말해 주지 않고 나를 끊어 낸 견하준을 겪고 나니 비록 나를 호구 잡힌 놈으로 만들긴 했지만 그 이후에라도 말해 준 견하준이 대견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남은 소주를 입에 한 번에 털어 넣고 빈 병을 옆에 내려놓은 후, 세 병째 소주병을 까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DTB 파이널 때, 네가 나한테 했던 말. 그거 무슨 의미였냐.”
“네가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는 거?”
견하준 역시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즉답했다.
“질문의 의미를 진짜 몰라서 대답을 안 했던 거구나….”
“말을 해 줘야 알지. 준아, 사람은 말 안 하면 몰라.”
평소처럼 부르자 견하준이 왜인지 안도하는 기색을 보였다. 가늘게 뜬 눈에 어깨를 으쓱하며 정정했다.
“그래, ‘사람은’이 아니라 일단 나는.”
내가 방금도 말했잖냐. 내 눈치를 그렇게 고평가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깊은 한숨을 푹 내쉰 견하준이 느릿하게 말했다.
“너는 나한테 너무 과할 정도로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했잖아. 그게 오히려 네가 나를 마냥 편하지 않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어. 내가 그 무대에 피처링을 해야 하는 이유를 그렇게 필사적으로 이해시킬 필요가 있느냐고. 그냥 딱 한 마디면 충분한데.”
그게 그렇게 망할 줄은 몰랐다며 견하준이 들고 있던 소주를 꼴꼴꼴 입안으로 쏟아부었다. 본인이 피처링한 무대의 투표 결과가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무대만 즐거웠으면 됐지, 무슨 결과까지 신경 쓰고 그러냐. 어차피 내가 이겼는데.
“아, 그게 싫었구나. 이제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회귀 전, 견하준과 내 손절의 결정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을 윤이든 체험판도 이제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