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4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49화(34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49화
내 단순명료한 대답에 견하준은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었는지 당황 어린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왜?”
“아니, 무슨 이유가 있다거나 그런 거 아니었어?”
“있었지.”
“응.”
“그런데 없어졌어.”
분명 진실만을 말하고 있을 뿐인데도 내가 대답할수록 견하준의 표정은 점점 떨떠름해졌다.
“그냥 내가 이제는 확신이 생겼거든. 너한테 부담을 지워도 너무 과도하지만 않으면 우리 사이가 파탄이 나진 않겠더라고.”
확신을 담은 말을 내뱉기가 무섭게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떴다.
[멤버 ‘견하준’과의 사이 개선도 100을 달성했습니다.] [▶멤버들과의 사이 개선도-서예현(100%)
-견하준(100%)
-김도빈(100%)
-류재희(99%)]
나도, 견하준도 서로를 향한 과한 기대치를 내려놓고 나서야 다시 100%라는 사이 개선을 이룰 수 있었다. 내가 택한 이 길이 맞다는 거겠지.
“너는 뭐 궁금했던 거 없냐? 나한테 지금까지 못 물어보고 있었던 거?”
술과 함께 사 왔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견하준에게 물었다. 과거를 훑듯 잠시간 고민에 잠긴 견하준이 질문을 꺼냈다.
“네가 슬럼프를 겪었던 시기에, 그러니까, 몽유별곡 앨범 준비하기 전에. 나한테 실망했던 일이 있었어?”
그 실망감을 잘 숨겼다고 생각했지만 알면서도 모른 척해 줬던 모양이었다. 짧은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답했다.
“곡을 외주로 사 와도 괜찮다고 했던 거.”
“나는 네 능력을 못 믿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그냥 네 부담이 덜어졌으면 해서…”
“알아. 이해해. 그런데 너나 재희는 내 부담을 덜어 주려고 했을 말이겠지만, 나한테 그건 최악의 선택지였어.”
미간을 문지른 견하준이 중얼거렸다.
“…몰랐어.”
그러고선 또 소주를 입안으로 들이부었다. 두 병째인, 견하준의 손에 들린 소주의 양도 점점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당연히 몰랐겠지. 내가 말을 안 했으니까.”
“왜 말 안 했어?”
“이론적으로는,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너랑 재희 말이 맞는 선택지였으니까. 나도 여기로는 동의했거든. 여기가 도저히 타협을 못 해서 문제였지.”
손가락 끝으로 머리와 심장께를 차례로 톡톡 쳤다.
“네 슬럼프가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야겠네.”
견하준이 쓰게 웃었다.
“이번 슬럼프처럼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이번에도 예현이 형이랑 도빈이가 다 했잖아. 나랑 재희는 너한테 충고랍시고 오히려 부담만 줬고.”
“대신 예현이 형이랑 도빈이는 녹음할 때 너랑 재희보다 몇 배는 더 성가시게 하잖아. 그렇게 따지면 쌤쌤이지.”
어깨를 으쓱하며 네 병째 소주를 마저 비우고 다섯 번째 소주병을 깠다.
융통성 없다고 욕은 먹지만 그래도 일을 하는 시스템창의 경고에 나발을 불고 있던 병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이런 융통성은 환영이지.
포도의 강아지 하우스 옆에서 눈을 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포도와 같은 종족이 된 채로 본가로 기어들어 가는 경험을 하는 건 한 번으로 족했다.
끝없이 들어가던 술이 멈추자 오히려 취기가 더 몰려오며 피곤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체대 촬영과 말싸움, 주먹다짐이 모두 오늘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아, 이제 새벽이니까 어제라고 해야 하나?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충분히 피곤할 만도 했다.
“이제 슬슬 집에 가고 싶다.”
내 중얼거림에 새로 깐 소주를 홀짝대던 견하준이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집이 혹시 본가는 아니지…?”
“그럴 리가. 숙소, 숙소. 나 아직 안 취했다.”
레브 멤버들이 전원 성년이 된 기념으로 가진 신년 술자리 그다음 날에 자기는 최대한 뜯어말렸다며 퀭한 얼굴로 고개를 젓던 견하준이 떠올랐다.
취해서 본가로의 귀소 본능을 발휘하는 내게 제대로 시달린 모양이었다.
회귀 전에 내 술버릇을 겪어 본 친구들도 징하다고 학을 떼긴 했었지.
“그런데 우리 숙소까지 어떻게 가? 우리가 운전하면 음주운전이잖아.”
겨우 멤버 둘이서 술을 마신 걸로 매니저를 부르기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러게. 그냥 여기서 잘까. 어우씨, 바닥이 왜 이렇게 차? 입 돌아가겠네.”
연습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가 등을 타고 오르는 냉기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내가 잠자리를 가리지 않는다지만 담요 한 장 없이 이런 냉골에서 잤다간 다음 날에 숙취까지 더해져 몸살이 날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대리 부르자.”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아니, 이든아, 잠깐만.”
견하준이 말리기도 전에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리기도 전에 상대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왜, 자고 온다고?
“아니, 우리 좀 데리러 오라고. 차는 여기 있으니까 몸만 와서 내 차 끌고 가면 돼.”
-나 아직 면허 안 딴 거 몰라?
“자랑이다. 올해 꼭 딴다면서. 지금이 12월이야, 인간아.”
-아니, 나도 따고 싶었는데 올해 스케줄이… 아무튼,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하게 됐다. 그냥 연습실에서 하룻밤 자고 와.
서예현이 하나도 아쉽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우리한테는 김대리가 있었다.
“형한테 대리운전 맡기려는 생각은 한 적도 없으니까 김도빈 데리고 와.”
-도빈이를 데리고 오라고?
“그럼 술 마신 사람 둘을 혼자 건사하라고 걔만 달랑 보내려고? 이 어두컴컴한 새벽에? 형, 아무리 새벽에 왔다 갔다 하기 귀찮아도 그럼 못 쓰지.”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지금 도빈이 보고 운전하라고?
“괜찮아, 괜찮아. 우리 도빈이는 나랑 했던 스파르타 연수로 인해서 베스트 드라이버로 거듭났어!”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제대로 취했네.
“안 취했어.”
-취했잖아. 순간 우리 아버지가 술 자시고 나한테 전화 거신 줄 알았어.
“내가 취했으면 숙소로 돌아가게 데리러 오라 하는 게 아니라 내 본가 간다고 난리 쳤겠지.”
내 술버릇을 견하준에게 전해 들어서 알고 있던 서예현이 납득했는지 내가 취했다고 우기는 걸 그만뒀다.
-아니, 너는 그런데 자고 있는 애를 깨워서 운전하러 오라고 하냐.
“김도빈이 서얼마 이 시간에 자고 있을 리가.”
발걸음 소리와 문 여는 소리가 차례로 이어지더니 서예현과 김도빈의 대화 소리가 곧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도빈아. 안 잤어?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해? 재희는 자네.
-이것만 보고 자려고 했어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형들 연습실에서 밤새워서 술 마시기 포기했대요?
-그런가 봐. 윤이든이 너한테 자기들 있는 쪽으로 와서 자기 차 대리 운전 좀 해 달란다.
-아, 저 자신 있어요. 어차피 저 운전 연수를 이든이 형 차로 받아서 그 차 익숙해요. 소속사 사옥까지 가는 길도 익숙하고.
-윤이든! 곧 갈 테니까 술 더 마시지 말고 있어! 몸 못 가누면 부축은 개뿔, 연습실 바닥에 버리고 갈 줄 알아!
뚝, 전화가 끊겼다.
그 사이 주량 한계가 지금 아슬아슬하다고 판단했는지 견하준이 들고 있던 소주병을 바닥에 탁, 내려놓았다.
제 옆에 놓인, 비어 있는 두 개의 소주병으로 시선을 옮긴 견하준이 숨을 길게 내쉬며 완전히 거울에 뒷머리를 기댔다.
“이렇게 마신 것도 스무 살 새해 이래로 처음이네.”
“그러게. 그러고 보니까 너 항상 한 병 반 이상으로는 안 마셨잖아.”
“오늘 너무 많이 마셨어.”
견하준이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꾹 감았다.
눈을 감은 견하준 옆에서 넓고 쾌적한 연습실을 바라보다가 툭 내뱉었다.
“기억 나? 뉴본 연습실만 보다가 LnL 첫 사무실 지하 연습실 보고 우리 엄청 충격 먹었던 거?”
“뉴본 연습실에서는 잘만 드러눕던 네가 데뷔할 때까지 그 연습실에서는 한 번도 안 드러누웠던 건 잘 기억나.”
“…지저분해서가 아니라, 뉴본에서는 드러누워 있으면 알아서 물 가져다주고 수건 가져다주고 부채질해 주고 그랬으니까. 여기에서는 챙김받는 롤이 아니었잖아. 리더까지 맡았고.”
“하긴, 그때도 넌 나랑 달랐지. 그리고 그건 챙김받는 거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어.”
자발적 복종이면 모를까… 느릿해진 견하준의 목소리에 짙게 잠기운이 묻어 나왔다.
“있잖아, 이든아.”
고요한 연습실의 공기에 내 이름이 나직하게 울렸다.
“드라마 말이야. 두 번째 시나리오를 그렇게 고집했던 이유가 있어?”
“첫 번째보다 훨씬 재미있어 보이잖아. 배역 비중도 더 크고.”
망설임 없이 나온 내 대답을 듣고 잠시 침묵한 견하준이 주저하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게 혹시 서른 살이라고 주장하던 네가 나를 원망했던 거랑 관련이 있어…?”
“내가 서른 살이었던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준아.”
교묘하게 진실만을 말한 대답이었다.
“그게 정말로 네 말대로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까? 네 말대로 진작 갤럭시로 폰 바꿀 걸 그랬다… 그랬으면 녹음본이라도 남았을 텐데.”
짧게 웃은 견하준이 고개를 털듯이 흔들었다.
“제대로 취했나. 내가 진짜로 별생각을 다 하네.”
그리고 물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견하준이 잡은 건 물병이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소주병이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한 말처럼 제대로 취한 듯했다.
“야, 준아. 그거 술-”
내가 말리기도 전에 견하준의 목울대를 타고 소주가 넘어갔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견하준의 손에 들린 소주병을 뺏은 것과 연습실의 문이 벌컥 열린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택시비 내놔.”
“대리 운전비도요.”
김도빈을 뒤에 달고 위풍당당하게 걸어온 서예현은 제일 먼저 내 손에 들린 소주병을 수거해서 뚜껑을 닫고 나를 김도빈에게로 떠밀었다. 얼결에 나를 부축한 김도빈이 울상을 지었다.
“야, 둘이서 세 시간 만에 소주 여섯 병을 비웠어? 이거랑 이거까지 합치면 일곱 병은 되겠다.”
빈 소주병을 보고 혀를 찬 서예현이 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견하준을 부축했다.
“세상에, 하준이 네가 안 취하고 윤이든이 거하게 취했을 줄 알았는데 왜 반대가 되어 있지?”
“그래서 이든이 형을 제게 떠넘기신 거군여.”
“윤이든 키가 더 작잖-”
키득거리던 서예현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견하준이 서예현의 팔을 꾹 붙들고 제 머리를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예현이 형, 저….”
“으으응, 하준아. 일단 대가리, 아니 머리부터 내 팔에서 좀 떼고 이야기할까? 내가 지금 좀 소름이 돋아서 그래.”
경직됐던 서예현이 견하준한테 잡힌 제 팔을 해방시키기 위해 시도해 봤지만.
“속이 안 좋, 우웁!”
“알았어, 알았어! 팔 안 흔들게!”
“아니, 진짜로 속이 안 좋아서 그래요… 속 좀 진정 좀 시키려고… 제가 설마 형한테 애교 부리고 있겠, 우욱…”
“이런 식으로 진정시키지 말고 화장실을 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준아, 내 말 들려?”
서예현한테는 천만다행으로 견하준의 속 안 좋음 이슈는 헛구역질 두어 번으로만 끝났다.
견하준에 비해 멀쩡한 나를 슬쩍 돌아본 김도빈이 울상을 싹 거두고 상쾌하게 말했다.
“역시 필사즉생 필생즉사라고,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네요.”
그게 이 상황에서 쓰일 만한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