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5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50화(35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50화
나를 부축하여 무사히 내 차까지 도착한 김도빈은 뒷자석에서 좀 편하게 가려고 했건만 굳이 나를 조수석에 밀어 넣었다.
흠, 이건 옆에서 쓴소리를 마구마구 해 달라는 무언의 신호지? 찡긋 윙크하며 엄지를 치켜올리는 김도빈을 향해 인자하게 웃어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에서 사옥까지 적어도 열 번을 스파르타 운전 연수를 시켜 놔서 오늘은 믿고 맡기고 나는 뒷자석에서 눈 좀 잠깐 붙이려고 했는데 본인이 저렇게 원한다면야.
부드럽게 차를 출발시키는 김도빈의 모습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얌마, 내가 말했지! 이 커브길에서는 속도 줄이지 말라고! 커브가 완만하면 속도를 안 줄여도 된다니까! 지금은 새벽이라 차가 없어서 그렇지 네가 나중에 네 뒤로 쫙 차 밀릴 때 속도 줄인다고 브레이크 밟아 버리면 뒷차도 줄줄이 밀린다고!”
“저도 그건 기억하는데 자꾸 커브만 보면 무의식적으로 발이 브레이크로….”
“네가 밟아 보면서 커브도 어느 정도까지 수용 가능한지 감각을 익혀야 한다고! 이 정도 커브에서 속도 내도 차 안 뒤집혀!”
수십 번을 말해도 고칠 생각을 안 하는 김도빈의 운전 습관에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래서 연 끊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운전을 가르쳐 달라 하라고 하는 거군.
“그리고 내가 속도 조절 브레이크로 하랬냐? 브레이크로 속도 조절 하는 습관 집어치우고 악셀 조절하라고 했지! 브레이크등 계속 깜빡거리는 거 보고 같이 브레이크 밟으면서 심장 졸일 네 뒷차는 무슨 죄냐!”
운전대를 꾹 잡은 김도빈이 울상을 지은 채로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운전 연수를 시키면서 수백 번은 본 얼굴이었다.
“도빈이 베스트 드라이버라서 괜찮다며. 아니, 이럴 거면 왜 도빈이 데려오라고 한 거야?”
안전벨트를 무슨 생명줄처럼 쥔 서예현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이 정도면 베스트 드라이버지. 형이 나한테 연수 받았잖아? 이 수준으로는 안 끝났어.”
그런 서예현을 향해 심드렁하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버튼이 눌린 건지 서예현이 울컥하며 반박했다.
“내가 운전에 끝내주는 재능이 있을지 누가 알아.”
“면허부터 따고 말씀하시지?”
“딸 거야. 딸 거라고. 올해 반드시 따서 너한테 형님 소리 듣고야 만다.”
“어어, 내년 1월까지 3주일 남았으니까 힘내. 우리 휴가 다녀오면 2주일이네. 휴가 다녀온 이후에 바로 연말 시상식 무대 준비해야 하는 건 알지? 파이팅.”
나는 DTB 4 콘서트까지 있었지만 그건 서예현이 나가는 게 아니었으므로 노카운트였다. 취기에 기분 좋게 웃으면서 덧붙였다.
“아무튼 확실한 건 내가 형을 형님이라고 부를 일은 없다는 거?”
“두고 봐. 내가 꼭 너한테 형님으로 불리고 만다.”
서예현이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져 들려왔다.
“오, 두 분 방금 동시에 플래그 꽂으셨어요. 이든이 형은 무조건 예현이 형을 형님으로 부르게 되고, 예현이 형은 절대 이든이 형한테 형님으로 못 불려요. 과연 누구의 플래그가 이기게 될 것인가.”
김도빈이 관심사를 대화 주제로 삼아서 기쁜 오타쿠처럼 미묘하게 빨라지고 높아진 목소리로 와다다 말하고선 키득거렸다. 나도 인자하게 웃으며 자동차 계기판을 확인했다.
“오우, 도빈아. 너 내가 모르는 사이에 운전 한 10년 했나 보다. 우리 대화에 귀 기울일 신경도 있고. 새벽이면 제한 속도 표지판도 막 무시해도 되지? 여기 제한 속도 60인데 너 지금 속도 몇으로 밟고 있냐?”
헤실헤실 올라갔던 김도빈의 입꼬리가 슬며시 내려갔다.
“형이랑 연수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저는 역시 운전을 하면 안 되는 놈인가 봐요.”
“뭐, 인마? 내가 귀한 시간 내서 공짜로 운전 연수 다 시켜 놓으니까, 뭐? 운전을 하면 안 돼?”
눈을 부릅뜨고 윽박지르자 이럴 거면 왜 부르셨냐고 김도빈이 징징거렸다.
“자꾸 운전해 보고, 네 그 잘못된 습관들 충고도 들어야지 늘지! 계속 그러고 운전할래?”
“음-.”
“내가 말 안 했냐? 내가 이번에 형진이 준 차 있지. DTB 우승 상품으로 받은 차. 그거 끌고 다닌 지 며칠 만에 초보 운전이 뒤에서 받아 버려서 정비소 보냈다잖아. 그 차가 어떤 찬데 박냐고, 합의 안 한다고 난리치던데 했나 모르겠네.”
“오-.”
“너 계속 이렇게 운전하면 사고 낸 그 초보 운전자가 네 미래야, 인마! 최형진 같은 놈 만나면 답이 없다고!”
“아-.”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새겨들어. 이게 다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라니까.”
“예-.”
“어째 대꾸가 영 성의가 없다?”
“예에에-.”
앞좌석이 잔소리로 시끄러울 동안 뒷좌석에서도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으으… 물…”
“자, 여기 물. 아니, 하준아. 물병을 잡고 마셔야지. 돌겠네, 진짜. 고개만 좀 위로 올려봐.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윤이든 쟤가 다섯 병을 혼자 비웠을 리는 없으니까, 너 한 세 병 마셨어?”
“아니요, 두 병 반…?”
“그럼 윤이든 혼자 네 병 반을 비웠어? 무슨 술 먹는 하마야? 하준아, 이제는 네 손으로 잡고 마시면 안 될까?”
신호가 걸려서 차가 횡단보도 앞에 멈춘 사이에 나를 돌아보며 눈을 찡긋하는 김도빈을 향해 떨떠름하게 말했다.
“너 왜 자꾸 나한테 끼부리냐…? 그런다고 내가 안 봐주는 건 알지? 운전할 때는 정신 빡 차리고 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김도빈이 한숨을 터트렸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하여 내 방까지 나를 부축해 데려온 김도빈이 가슴을 콱콱 두드리며 내게 따졌다.
“으아아, 답답해! 제가 형을 생각해서 하준이 형 수발 들지 말고 편하게 가라고 조수석으로 특별히 모시니까! 그것도 못 알아듣고 잔소리만 하고!”
“아, 그래서 그랬던 거냐. 그래도 짜샤, 네가 운전을, 어?”
“많이 취하신 모양이네여, 형. 빨리 주무세요.”
잔소리 2탄을 본격적으로 쏟아내기도 전에 김도빈이 이불을 내 머리 끝까지 덮어씌우고선 빠르게 도망쳤다.
* * *
힘들게 견하준을 업고 드디어 숙소의 견하준 방까지 도착한 서예현은 망설임 없이 침대에 견하준을 던져 놓았다.
제가 윤이든을 김도빈에게 먼저 떠밀고 선택한 길이니 누구를 원망하리오.
다만, 김도빈의 부축 같지도 않은 부축을 받으며 제 발로 멀쩡하게 방까지 걸어 들어가던 윤이든을 떠올리니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침대 위에 널브러진 견하준은 이 추운 12월에 땀범벅이 된 이마를 닦는 서예현을 향해 감사 인사를 중얼거렸다.
“예현이 형, 고마워요.”
“뭐가? 연습실에 내버려 두지 않고 데리러 와 줘서? 직접 물도 떠먹여 주면서 네 수발 들어줘서? 네 술버릇을 버티면서 중간에 내팽개치지 않고 방까지 데려다 줘서? 아니면 윤이든을 한 대 칠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줘서?”
견하준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일이 참 많았기에 서예현은 뜬금없는 감사 인사에 감을 통 잡지를 못했다.
견하준 본인도 한 대 맞고 심지어 동생들이 보는 앞에서 주저앉기까지 했으니까 이건 본인에게는 딱히 감사할 거리가 아니려나…?
주먹다툼이야 그 대상들이 상대를 제외하고 세상을 왕따시키는 윤이든과 ‘견하준’이어서 경악했지, 싸워 봤자 숙소 분위기에 아주 티끌만큼 영향을 줄 류재희와 김도빈이 서로한테 주먹을 날렸다면 서예현은 사내자식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을 터였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는 걸로 서예현이 꺼낸 모든 항목을 부정한 견하준이 술기운 섞인 웃음과 함께 정답을 내뱉었다.
“이든이에게 화라도 내라고 떠밀어 줘서요.”
“아, 그거.”
서예현이 멋쩍게 제법 자란 뒷머리를 헤집었다.
“걔가 전화로 비하인드를 전해 듣고 있더라고. 그래서 지금 너희가 그 주제로 대화하면 윤이든이 적어도 네 속 터지게 하는 눈새 발언은 안 할 것 같았어.”
윤이든이 정이서에게 곡을 준다고 승낙한 것 때문에 방에 들어가서 분을 홀로 삭히고 있던 견하준을 윤이든에게로 보낸 건 바로 서예현이었다.
윤이든이 일단 자의로 견하준의 트리거를 누른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윤이든이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판단했을 뿐이다.
“오늘, 아, 이제는 어젠가. 아체대에서 있었던 일을 제가 계속 마음속에 쌓아 놨으면 그게 언젠가는 발화점이 되었을 것 같아서…”
그건 견하준의 직감이었다. 어떤 회차에서는 발화점이 아니라 마침표이자 사실이 된.
“다행이다.”
“왜요? 레브 불화설 일어날 일은 이제 없을 것 같아서?”
“아니, 나는 내가 괜히 너보고 윤이든이랑 이야기 좀 해 보라고 떠민 것 때문에 윤이든한테 특별한 친구 사이 내려놓자는 말 듣고 혹여나 나 원망할까 해서.”
견하준이 픽 웃었다.
“처음 딱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는데, 이든이랑 대화하면서 머리 좀 식히고 생각해 보니까 그게 맞는 선택지 같더라고요.”
부모 자식간에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사람이 어떻게 대화 없이 눈치만으로 서로를 이해하겠는가.
“대화하지 않고 서로가 ‘너는 나랑 가장 친한 친구니까 이 정도는 알고 있겠지.’로 넘어가면 오해랑 앙금만 쌓인다는 걸 이번 일로 확실히 알았잖아요. 사실 저도 불안했었거든요.”
솔직히 슬럼프 때부터 DTB 끝난 이후까지 유독 삐그덕거리긴 했지. 제삼자가 보아도 아슬아슬해 보였던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서예현이 볼을 긁적였다.
허울 좋은 특별한 우정 관계로 포장하여 묵혀 놨다가 터지느니 지금 터진 게 오히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좋을 수도 있었다.
“서로한테 가졌던 기대치와 동경을 무너뜨렸으니까 다시 새로 쌓아 가야죠.”
윤이든은 이제 견하준에게 부담을 주면 견하준이 회귀 전처럼 언젠가는 저를 손절할 수도 있다는 트라우마에서 깔끔하게 벗어났으며, 견하준은 이제 윤이든의 앞에서 어른스러운 모습만을 굳이 보이지 않더라도 윤이든이 제게 실망할 일이 없으리란 걸 확신했다.
여전히 윤이든과 견하준은 서로의 가장 가까운 동갑내기 친구였다.
윤이든과 견하준이 서로를 향한 기대치를 내려놓았다고 한들, 두 사람이 지금까지 쌓아 왔던 시간과 서사는 쉬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그 시작점은 남들보다는 훨씬 위였다.
그리고 견하준 역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간…. 이든이도 먼저 말해 줄 날이 오겠죠.”
그의 마지막 질문에 묘하게 정확한 대답을 회피하던 윤이든을 떠올리며 견하준은 스르륵 눈을 감았다. 아직은 이르지만, 언젠가는…
비록 본인의 방식이 아니어도 살면서 윤이든식 갈등 해결 방식을 훨씬 더 많이 보아왔던 경상도 사나이 서예현은 견하준의 말을 듣는 동안 저도 모르게 닭살이 돋은 팔을 쓱쓱 문질렀다.
“나 말고 본인한테 말하면 안 될까.”
이미 잠든 견하준에게는 전해지지 않을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