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5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54화(35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54화
“아니, 그것 때문은 아니고.”
머리가 복잡하니 하고 싶은 말도 뒤엉켰다.
“야, 권윤성.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
-어? 야, 여보세요. 그래서 하란 거야, 말란 거-
뚝-.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시끄럽게 울리는 진동까지 괜히 신경을 긁는 탓에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
회귀 전에도 밝히지 않았던 게 정말로 우리한테 미안해서였는지, 그 진위를 지금 와서 밝히기는 불가능했다.
그러니 내 멋대로 생각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저 우연으로 치부해도 됐다.
그런데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DTB 4 콘서트 무대 연습을 위해 시간 내어 만난 자리에서도 내가 영 집중을 못 하고 있는 게 신경 쓰였는지 용철이 형이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무슨 일 있냐? 아무리 봐도 휴가를 향한 기대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하와이로 떠난다는 놈이 이렇게 죽상이야. 비자 문제 생겼어?”
“아니. 그건 해결법이라도 있지, 하….”
용철이 형이 건네주는 생수를 받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알고 용철이 형이 내 옆에 털썩 앉았다.
“무슨 일인데. 형이 해결 못 해 주는 일이야?”
잠시 침묵하다가 나직하게 용철이 형을 불렀다.
“…형.”
“또 생각 많아졌구만. 또 어쩌다가 철이 한층 더 들었냐.”
용철이 형이 내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내가 만약 형한테 큰 잘못을 했어. 금전적이거나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문제는 아니고, 그냥 신의의 문제?”
아무래도 뒷담으로 내가 금전적이나 신체적 피해를 입은 건 없었으니까?
“그러면, 내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형은 용서해 줄 거야?”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간 침묵의 시간을 가진 용철이 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 일인데 나한테 물어보면 답이 나오냐.”
용철이 형의 답변은 딱히 도움은 되지 않는 류였다. 그냥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제일 어른스러운 사람한테서 정답을 듣고 싶을 뿐이었는데.
“네가 마음 가는 대로 해야지. 내 대답이 정답은 아니잖냐.”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용철이 형이 피식 웃으며 내 정수리를 두어 번 다독였다.
“그리고 답지 않게 이렇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부터 답 나왔네.”
“뭐가?”
“이든아,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남한테 실수 한 번쯤은 한다. 너도 예외는 아닐걸?”
회귀가 아니었다면 바로잡지 못했을 수많은 실수들을 상기하자 딱히 할 말이 없어졌다.
“물론 실수해 놓고 뻔뻔하게 사과도 안 하고 배짱부리거나 없는 일인 척 묻어 놓고 은근슬쩍 다시 다가오는 놈은 걸러야지.”
그건 용철이 형이 굳이 말 안 해도 당연한 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진심으로 사과해 오면 한 번쯤은 받아 줘. 나도 언젠가는 실수할 날이 올 텐데 상대의 한 번의 실수에 너무 각박하면 쓰냐. 그게 두 번이 되면 고의지만 한 번은 실수잖냐.”
그 진심 어린 충고를 듣고 있으니 머리가 복잡했다.
나도 회귀해서야 멤버들과 크루 형들을 비롯한 수많은 관계들을 바로잡았으니 권윤성에게도 기회를 주는 게 맞다.
심지어 회귀로 인해 없는 일이 되었기에 내 실수를 지우고 편하고 쉽게 관계를 재정립했지만 권윤성은 내게 실수를 했을지언정 잘못을 직면하고 나랑 견하준한테 사과는 했지 않은가.
그래도 내가 권윤성과 예전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지 않나. 그 녀석을 성이라고 부르면서 예전처럼 격의 없는 사이로 돌아가기에는….
짧은 한숨을 한 번 더 내쉬자 용철 형이 젊은 놈이 무슨 그렇게 한숨을 쉬고 그러냐고 내 등을 퍽퍽 쳤다.
“네가 처음 한 질문에 대답해 주자면, 예전 같은 사이로는 돌아가진 못하겠지만 가끔 생각나면 한 번씩 안부 묻고 신곡 찾아 들을 사이 정도로는 회복되겠지.”
친분 있는 타인, 딱 그 정도의 거리.
그 정도라면 어렵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니 용철이 형이 이제 해결됐냐고, 그러면 이어서 연습하자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럼, 형. 만약, 아주 만약에…”
차마 묻지 못한 물음을 이제 와서 꺼내 놓았다.
“내가 이간질이랑 오해로 먼저 형들을 손절 치고 그 이후에 정신 차려서 다시 사과하면, 예전처럼 받아 줄 거야?”
“너는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냐? 돌아온 탕아 OVER LEVEL 버전 되는 거지. 따스한 포옹이 아니라 등짝 스매시가 반겨 주겠지만.”
용철이 형이 픽 웃으며 맛보기라도 보여 주려는 듯 내 등짝을 강하게 두어 번 내리쳤다. 등짝이 얼얼해서 몸을 비틀었지만 평소처럼 왜 때리냐고 왁왁거리지는 않았다.
회귀 전에 못 맞은 등짝 이번에 맞은 거라고 치자.
“야, 이 형들이, 몇 년을 질풍노도 사춘기였던 네 뒤늦은 진정한 사춘기 지랄병 한 번 이해 못 해 주겠냐?”
용철이 형의 타박과도 같은 말을 듣고 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사과하고 회귀 전에도 그런 식으로라도 사죄한 권윤성은 어쩌면 나보다도 더 용기 있던 놈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그 전에, 어? 네가 정신만 똑띠 잡고 있으면 그런 이간질에 넘어갈 일도 없지! 우리가 짜치게 남한테 우리 크루 막내 뒷담이나 까고 있겠어? 그런 거에 넘어가면 혼쭐 한 번 나야지. 형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마.”
이제는 숫제 헤드록을 걸어오는 용철이 형의 팔뚝에 얌전히 목을 내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정신만 똑바로 잡고 있으면 그런 이간질에 넘어갈 일도 없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용철이 형한테 과몰입에서 빠져나오라고 하기에는 양심이 좀 찔렸다.
“이것도 무대 퍼포먼스에요…?”
막 도착한 최형진이 용철이 형한테 헤드록을 당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선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형으로서 이든이 교우 관계 충고 좀 해줬지.”
“싸웠어? 누구랑 싸웠냐? 설마 같이 파이널 무대 했던 그 친구?”
“아니? 말하면 네가 아냐?”
“알 수도 있지.”
“권윤성을 네가 안다고?”
최형진이 보이 그룹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기에 툭 던진 말이었지만 최형진은 의외로 아주 자신 있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파이널 방청에서 나랑 같은 구역에 서 있었던 그 보이그룹 멤버 아니야. 그룹명이 킥스였나? 키 큰 쪽 맞지? 즈그 멤버? 동생? 아무튼 걔한테 눈치 존나 주던데. 오죽하면 걔가 너 뽑았다고 변명을 다 하더라고. 그런데 네 파이널 무대 때 착잡해 보이긴 하더라. 쌩깠냐?”
“그쪽 잘못으로 갈라지긴 했지.”
“어우, 너 왜 바른 언어를 쓰냐…? 카메라도 없는데 아이돌은 그래야 해?”
“나는 원래부터 바른 언어를 썼어, 형진아. 왜 사람을 욕을 달고 다니던 놈으로 만들어.”
“말이 되는 소리를 쫌 해. 내가 네 10대 때 언어 습관을 아는데.”
최형진이 질색했다. 이래서 과거를 너무 잘 아는 놈은 성가시다니까.
“그런데 네가 걔를 어떻게 알아? 설마…”
“남팬 아니라고! 너튜브 영상 보다가 댓글에 그 자식이랑 묶어서 나를 얼평하는 댓글이 있으니까 알았지! 아오, 왜 하필 PD님은 걔랑 나랑 교차해서 리액션 편집을 해 놓고 난리야!”
풀버전 영상을 봤으면 그런 댓글을 볼 일도 없었을 텐데, 쯧쯧.
“윤이든 그런데 너, DTB 4 콘서트 전에 솔로곡 하나 낼 생각 없냐? 언제까지 빌런 우려먹을래. 네가 그거 부를 때마다 계속 끌올되는 커디보이가 불쌍하지도 않아? 좀 놔 줘라.”
“꼬우면 선빵을 치지 말았어야지. 그리고 그게 커디보인가 키디보인가 걔 디스곡이냐. 내 솔로곡이지. 그거 키디보이 자존감 과잉이야.”
“이 새끼, 남의 랩퍼명 지좆대로 바꿔 부르는 습관 아직도 못 고쳤네.”
최형진과 연습 30, 싸우기 70 정도의 일을 끝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류재희와 어제 전화로 들었던 말을 상의했다.
그렇게 잠깐의 이야기 후에는 최현민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권윤성과 통화를 연결했다.
“우리 막내가 그러는데, 그래 주면 일단은 고맙댄다. 우리가 언질 주기 전까지 먼저 터트리지 말라던데.”
-알았어. 내가 우리 멤버들 입단속은 시킬게.
이제 리더 티 좀 나네. 데뷔조에서 처음에 리더가 정해졌을 때 안 어울린다고 다 같이 놀려 댔었는데. 하긴, 그때의 나는 리더 후보에도 못 들긴 했지. 아이돌 그룹 리더 할 성격은 아니라고.
흐릿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에 쓴웃음을 한 번 짓고 최대한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나중에 솔로곡 필요하면 연락하고.”
사과를 받아준다는 의미가 내포된 그 인삿말에 권윤성이 물기 섞인 실소를 터트렸다.
-아직 신년까지 26일 남았는데 무슨 놈의 새해 복은 새해 복이야.
“야, 26일 금방이야. 아, 계속 최현민 통해서 전화하기도 그런데 너 번호 좀 보내 봐.”
-번호 그대로니까 거기로 연락해.
전화번호부에 권윤성의 이름 석 자를 치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지웠는데.”
-망할 새끼.
뚝-
이번에는 권윤성 쪽에서 통화가 먼저 끊겼다. 뒤이어 문자로 도착한 휴대폰 번호에 피식 웃으며 번호를 저장했다.
여전하네.
* * *
“드디어 간다! 하와이!”
대체 어디에서 구한 건지 모르겠는 하와이안 패턴 반팔 후드티를 번쩍 들어 올리며 김도빈이 한껏 신나서 외쳤다.
세상에 패션이 얼마나 다양한데 맨날 후드티만 입으면 안 질리나?
“이게 다 나 덕분에 가는 거 아니야. 감사해 해라, 짜식들아.”
콧대가 한껏 높아진 서예현이 캐리어에 짐을 싸다 말고 턱을 치켜올렸다. 저 말은 휴가 동안 하와이 여행이 확정되고 나서 한 스무 번은 들은 것 같았다.
“솔직히 감사는 우리 숙소 근처 카페 사장님께 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사장님이 테이크아웃 아메리카노를 천 원에 팔아 주신 덕분에 상대가 30분 거리를 걸어가서 할인받고 산 것보다 돈 더 아꼈잖아.”
내 심드렁한 팩폭에 서예현이 울컥한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내가 양상추랑 오이만 씹어서 그나마 돈 아낀 거야! 너희들이 피자파티 같은 극악무도한 짓 안 하고 알테어처럼 봉지 과자로 협조만 해 줬어도 잔액 더 남겼어!”
그렇지만 둘 다 봉지 과자를 먹으면서 극한의 절약을 하지 않고 한쪽이 고삐 풀고 돈을 펑펑 쓰면서 날뛰었기에 그 방송 편이 레전드로 남게 된 거지.
저 형은 데뷔 몇 년차인데 아직도 방송을 몰라, 방송을.
서예현의 토끼밥 식단도 나름 붐이긴 했다. 특히 극한의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에게 말이다.
서예현의 양배추와 오이 먹방 캡쳐짤과 함께 앞으로 한 달 식단 이걸로 간다고 올린 트위터 글에 기겁하여 이렇게 먹으면 건강 다 해친다고 부계로 만류했건만 돌아오는 답변이 ‘? 님 저 아세요? 뭔데 초면에 꼰대질이지..ㅋㅋ’라서 조용히 삭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구나.
덕분에 세상에는 서예현보다 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 알게 된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