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5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56화(35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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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의 레브 숙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어두운 그림자가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정수기에서 찬물을 내려 단번에 들이켠 인영은 이리저리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슬그머니 냉장고 앞으로 다가갔다.
냉장고 자석으로 고정된 사다리타기 종이는 그의 눈높이보다 아래에 있었다. 냉장고에 그것을 붙인 이가 제 눈높이에 딱 맞도록 붙여 놓은 탓이었다.
하와이로 떠나는 날짜는 현재 시각 기준으로 하루 후.
하루 후에 누가 이 벌칙에 걸릴 것인지 공개된다. 제 이름에 손가락을 댄 인영은 슬며시 제가 그은 선을 타고 손가락을 내렸다.
손가락이 마침내 도착한 곳에 굳게 붙어 있는 포스트잇의 끝을 잡고 슬그머니 들추려는 순간.
“형, 뭐하세여…?”
“아오, 깜짝이야! 심장 떨어질 뻔했네!”
언제 깬 건지 소리 없이 방문을 열고 그 틈으로 고개만 빼꼼 내민 채로 자신을 보고 있는 음산한 김도빈의 모습에 새벽녘의 인영, 윤이든이 식겁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너 안 자냐?”
“제가 분명히 오픈하기 전까지 미리 사다리 타 보기 금지라고 했을 텐데.”
“야야, 그냥 눈에 보이니까 궁금해서 한번 해 본 거야, 궁금해서. 내가 설마 결과 미리 보고 만약 당첨이면 몰래 고쳐 놓으려고 했겠냐.”
“흠, 혓바닥이 길어지시네요, 형. 마치 속내를 들킨 사람 같이.”
“예리한 척하지 마, 인마.”
언제 그랬냐는 듯 포스트잇에서 손을 떼고 필사적으로 잡아떼는 윤이든의 모습에 김도빈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그럼 얼른 들어가서 주무세요. 왜 계속 그 앞에 계세요. 마치 제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네가 말 안 해도 그러려고 했거든?”
투덜거린 윤이든이 제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한 5분이 지난 후, 펜 하나를 쥐고 다시 슬그머니 방문을 연 윤이든은 열린 류재희와 김도빈의 문틈에서 비치는 휴대폰 불빛을 보자마자 후퇴했다.
시바, 독한 새끼.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윤이든은 제 운명을 보기를 포기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난 후, 잠귀가 하도 밝은 나머지 그 소란에 잠이 싹 깬 견하준이 기척을 한껏 죽이고 슬며시 부엌으로 나왔다.
방금의 윤이든처럼 제 이름에 손가락을 대고 제가 그린 선을 따라 가던 견하준이 잠시간 고민하다가 제 손가락이 멈춘 포스트잇을 슬쩍 들추어 보려고 하던 그 순간.
“와, 믿었던 형까지 그러시면 어떡해요.”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에 띄게 흠칫한 견하준이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앉아 있는 건지 문틈 저 밑으로 보이는, 휴대폰 화면 빛에 반사된 김도빈의 눈동자가 반짝 빛나고 있었다.
“도빈아, 안 잤어?”
견하준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형들이 이럴까 봐 제가 잠을 못 자고 이렇게 지키고 있죠. 이든이 형까지는 예상했지만 형이 이러실 줄이야.”
“아니, 그거 입고 비행기 타서 하와이에 내리면 덥겠더라고. 알다시피 하와이 날씨가 우리나라 여름이잖아? 그런데 네가 준비한 옷은 겨울용이고? 그래서 그게 좀 걱정되는 마음에…”
이런 개소리에 넘어갈 사람은 윤이든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도 말하는 주체가 견하준 한정이어야 하겠지만.
“안에 반팔 티 입었다가 하와이 공항에서 벗으면 되죠. 그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하세요.”
역시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 핑계에 속으로 쳇, 혀를 찬 견하준이 너무 소란스럽게 하지만 말아 달라는 말을 남기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저 두 형들이 이렇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걸 다년간 쌓인 빅데이터로 알고 있는 김도빈은 아예 오늘 밤 잠들기를 포기하고 냉장고 앞에 턱 앉았다.
두 방의 문이 새벽 동안 두어 번 더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평화가 찾아왔다.
밤을 꼬박 새운 김도빈이 드디어 뜨기 시작하는 새벽녘의 푸른 햇빛을 맞으며 냉장고에 기대서 꾸벅꾸벅 조는 사이, 슬금슬금 다가온 누군가가 식은땀을 훔치며 조심스럽게 종이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 사람의 손에는 펜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 펜이 누군가의 이름 밑에 죽죽 그어진 작대기에 하나를 더하려는 순간.
“굿모닝이에여, 형. 모닝이라기에는 이르고, 굿 던이라고 해야 하나? 오, 굿 던 이거 이든이 형 DTB 파이널 곡이었지 않나? 하준이 형이랑 같이했던?”
“와씨, 깜짝아!”
무심코 밑을 내려다봤다가 눈을 반쯤 뜬 김도빈과 시선이 마주친 서예현이 기겁하며 후다닥 물러났다.
“형, 이건 반칙이죠.”
펜을 잡은 김도빈과 서예현 사이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간절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했나, 명실공히 레브 팔씨름 순위 꼴찌인 서예현이 오히려 김도빈을 압도하고 있었다.
“도빈아, 이러지 마. 나는 꼭 선 하나를 그어야만 해.”
유독 창백해진 데다가 식은땀까지 범벅이 된 얼굴로 서예현이 간절하게 부탁했다. 펜을 꼭 쥔 손만큼이나 목소리 끝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형은 또 왜 이래요. 내가 밤새워 지키고 있었는데 대체 결과를 언제 본 거야?”
“안 봤어. 너 내가 자다가 깨는 거 봤어?”
서예현이 자는 도중 깨어나는 건 맨정신으로 우는 윤이든만큼이나 현세에 일어나기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김도빈은 제가 세운 가설을 집어치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 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이 한 줄을 꼭 그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요? 진짜로 저를 설득할 수 있을 만한 타당한 이유면 그으라고 할게요.”
하얗게 질린 채로 파들파들 떠는 청순 미남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지는 효과를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윤이든이 각 잡고 정색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덜했겠지만 말이다.
김도빈한테는 천만다행히도 슬쩍 나왔던 새벽밤의 윤이든은 아직 잠기운이 남아 있었기에 정색으로 협박하기라는 좋은 수단을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다.
잠깐 주저하던 서예현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꿈을 꿨어. 꿈에서 내가 선 하나만 더 그릴 걸 그랬다고 대성통곡을 하더라고. 이건 예지몽이 분명해.”
그래서 자신은 꼭 이 선을 그어야겠다며 다시 서예현이 펜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듣고 김이 팍 샌 김도빈은 쉬이 펜을 뺏기지 않았다.
예현 형이 선 하나를 더 긋기를 허락하면 다른 형들과 류재희도 선을 더 긋겠다고 난리를 칠 것이다. 아니면 왜 우리는 막았으면서 예현 형은 허락해 줬냐고, 자기들도 결과를 보겠다고 따져 물을지도.
서예현의 유독 크고 또렷한 눈이 아련해졌다.
“도빈아, 우리가 함께해 왔던 연습실에서의 그 수많은 시간들을 잊은 거야? 내가 네가 간식을 먹는 것도 눈감아 줬던 그 시간들을?”
사실상은 춤 실력 꽝인 서예현의 실력을 어떻게든 늘리기 위한 김도빈과 서예현의 개고생 세월들이었고, 간식이라도 먹지 않으면 그 짱짱한 체력을 가진 김도빈마저도 뻗을 만큼의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서예현의 저 눈빛을 마주하니 머릿속에서 자체적으로 기억이 미화가 되고 있었다.
하하호호 화목하고 행복했던 스승과 제자 관계의 한때로 말이다. 결국 추억 미화 및 왜곡에 마음이 약해진 김도빈이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놨다.
“얼른 하나 그어요. 이든이 형 깨기 전에.”
“도빈아, 고마워. 너는 최고의 스승님이야. 이 은혜 꼭 잊지 않을게.”
감동에 가득 찬 얼굴과 목소리로 김도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서예현이 망설임 없이 줄 하나를 쫙 그었다.
아직도 생생한 꿈에서 ‘이 한 줄만 더 그었어도 윤이든한테 저 망할 끔찍한 후드티를 입힐 수 있었는데!’라고 절규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줄을 긋고 서예현은 아주 상쾌한 얼굴로 아침 운동에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고 20분쯤 뒤, 잠옷으로 입는 트레이닝복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온 윤이든이 냉장고 앞에 있는 김도빈을 발견하고 아쉬운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혀를 찼다.
“도빈아, 안 졸리냐?”
“왜요, 저 잠들면 포스트잇 들쳐 보게요?”
“짜식이 말에 가시가 있네?”
꼰대끼가 발동한 윤이든의 타박에 김도빈이 모로 눈을 떴다.
“저는 제가 한 말은 꼭 지키거든요? 형들처럼 벌칙 의상에 두려워하지도 않고요!”
“야, 누가 두려워한다고 그래.”
윤이든이 발끈했다. 김도빈은 발끈하는 윤이든의 그 모습에 드디어 가닥을 잡았다.
“자기가 긋고 택한 운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 미리 결과 확인하려고 하는 거, 진짜로 가오 없어 보여요, 형.”
“허, 참. 야, 누가 결과 미리 확인한대? 포스트잇 제대로 붙어 있나 보러 온 거지.”
짜증스럽게 제 뒷머리를 헤집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윤이든의 모습에 김도빈은 소리 없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처음으로 그가 생각해서 성공시킨 계책이었다. 이 맛에 머리 쓰는구나!
김도빈은 신이 나서 류재희한테 자신의 성장을 자랑하기 위해 방으로 달려갔다.
막 잠에서 깨서 김도빈을 발견하고서는 웬일로 일찍 일어났냐고 묻는 류재희를 붙들고 미주알고주알 제 성취를 털어놓은 그가 눈가를 문지르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와,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나 꼬박 밤새웠어. 형들이 계속 사다리타기 판 확인하려고 해서.”
“그럴 만도 하지. 솔직히 예현이 형은 몰라도 하준이 형이랑 이든이 형한테는 안 어울리잖아. 게다가 형들 모에화 동물은 토끼도 아닌걸.”
복슬복슬 토끼귀 후드티 의상이 제일 안 어울리는 얼굴로 류재희가 말했다.
“너는 걸려도 상관없어?”
“형, 나는 처음부터 나 자신을 햄스터로 밀던 사람이야. 그건 하와이안 셔츠처럼 촌스럽지는 않잖아.”
“난 류재 네 기준을 도통 모르겠어.”
“이든이 형 기준이랑 내 기준이랑 섞여서 그래.”
류재희가 가볍게 툴툴거렸다.
이든이 형은 가오 상하는 짓을 제일 싫어하니 더는 결과 확인을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예현이 형이야 그 한 줄을 긋게 해 줬으니 이제 더는 손대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하준이 형이 문제구나.
결국은 또 내일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밤을 새워야 하는 운명인가.
“류재, 하준이 형은 어떻게 막아야 하지? 너무 어려워. 네가 이든이 형보다 하준이 형이 더 어렵다고 했던 이유를 알겠어.”
“하준이 형은 이든이 형으로 막으면 돼. 이든이 형한테 언질해 줘. 하준이 형이 자꾸 결과 보기를 노린다고.”
“그걸로 될까…?”
“그걸로 충분하지.”
김도빈은 반신반의하며 어제 있었던 일을 아침운동을 끝내고 서예현과 나란히 돌아온 윤이든한테 털어놓았다.
이미 줄 긋기라는 목표를 달성한 서예현은 너희들 너무 상도덕이 없는 거 아니냐며 뻔뻔하게 혀를 차고 욕실로 들어갔다.
“야, 설마 준아, 이거 미리 보려고 하는 건 아니지? 우리 모두의 약속을? 그럼 당일에 까는 재미가 없잖냐.”
냉장고 앞에서 반찬을 꺼내지 않고 사다리타기 판을 빤히 보고 있던 견하준의 어깨에 팔을 턱 얹으며 능글맞게 말하는 윤이든과 그럴 리가 있느냐고 대꾸하며 냉장고 문을 여는 견하준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김도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역시 아직 류재희를 따라가기에는 이르구나! 한 세기 정도는 일렀지만 김도빈이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그렇게 아무도 사다리타기 판 결과를 알지 못한 채로 대망의 하와이 출국 날, 아침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