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6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62화(36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62화
차연호의 눈빛이 순간 벙쪘다.
“…60년은 대체 어디에서 나온 거야?”
“그야 나는 90세 가까이 장수할 거니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만 가득 찬 내 목소리에 차연호가 미간을 문지르며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네가 요절해서 내가 네 사인을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내가 요절할 리가 없는데.”
“사고사든, 자살이든, 병이든 사람이 젊은 나이에 죽을 이유는 차고 넘치지.”
“그래, 사람이 그럴 이유는 차고 넘쳐도 내가 그럴 이유는 없다니까?”
“네 최후를 기억도 못 하면서 그걸 왜 확신하는데?”
이제는 숫제 팔짱을 낀 채로 빈정거리는 차연호를 똑바로 보며 턱을 치켜들고 당당히 말했다.
“그야 나는 초년에 큰 고난만 버티면 무병장수한다고 용한 무당한테 들었거든.”
차연호가 단단히 끼고 있던 팔짱이 힘없이 스르륵 풀렸다. 입을 벌리고 잠시간 나를 멍하니 보고 있던 차연호가 울컥하며 외쳤다.
“그 말은 나도 하겠다!”
“에엥? 댁이 대통령, 국회의원, 재벌 총수들 사주 봐주는 용한 무당이야?”
“그게 왜 나오는데!”
“그야 내가 그렇게 살 거라고 한 사람이 그 무당이니까? 이야, 예약이 1년인가 걸렸다더라. 이 정도면 진짜로 용하니까 그렇게 기다려서 사주 보는 거 아니야.”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놀림받을 손주의 미래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끔찍한 프로그램에 내보내려 한 친할머니였지만, 그래도 내가 당신의 손주는 손주였는지 할아버지의 인맥을 통해서 1년간을 꼬박 기다린 끝에 내 사주를 보고 왔다더라.
공부 잘하는 집안의 유일한 공부 머리 없는 놈이었으니 어른들 입장에서는 미래가 걱정될 만도 했겠지.
뭐라 했더라… 초년에 큰 고난만 버티면 무병장수하지만, 그 큰 고난을 넘는 건 본인에게 달렸댔나.
아무튼, 그 말과 더불어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다고도 전해 들었단다.
그래서 친가는 윤씨 집안에 대통령이 나네, 국회의원이 나네, 대학 교수가 나네, 아무튼 사람들 앞에 서는 별별 직업을 다 가져다 붙여 댔다.
당시 래퍼를 꿈꾸고 있던 나는 국내 힙합 판이 좆만 한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래퍼가 되어도 많은 사람들 앞에 서기에는 글렀다고 생각해 별 돌팔이가 다 있다고 콧방귀나 뀌었지만, 내가 결국 대중 앞에 서는 아이돌이 된 걸 보니 어쨌든 그 무당 말이 맞은 셈이다.
그러니 무병장수한다는 말도 맞겠지.
쾅-!
큰 소리가 나서 잡생각에서 벗어나 소리의 근원지를 보니 차연호가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저딴 게… 저딴 게…”
왜 저래? 탁자에 머리를 박은 채로 무어라 중얼거리며 부들부들 몸을 떨어 대는 차연호를 보며 혀를 찼다.
“아무튼, 그래서 내 사인은 궁금하지 않으므로 기각. 말해 주지 않아도 돼. 미래는 충분히 바꿀 수 있거든. 너도 봤다시피 내가 이렇게 증명해 냈잖아?”
내 정수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비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탁자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든 차연호가 이를 갈며 물었다.
“그럼 뭘 원하는데.”
“유감이지만 나는 너한테 받고 싶은 게 딱히 없어. 내가 그때도 너한테 말했잖아. 거래도 서로 주고받을 게 있어야지 하는 거지.”
비소하며 상체를 차연호 쪽으로 기울였다.
비웃음 가득 서린 내 목소리가 객실에 선명히 울렸다.
“생각이란 걸 좀 해 보세요. 네 방해로도 여기까지 자알 기어올라 왔는데, 내가 네 도움이 왜 필요하겠어요, 선배님.”
나는 겨우 1군 자리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자기가 무슨 빌보드 차트 hot 100의 1위에 우리 곡을 올려주기를 할 거야, 아니면 코첼라 헤드라이너 자리를 따 와 줄거야, 아니면 월드투어를 돌게 해 줄 거야?
내가 무한 회귀를 끝내는 조건인 3천만 명의 팬을 채우는 데에 차연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제 소속사인 신월 엔터의 눈을 피해서 차연호가 뭘 얼마나 도와줄 수 있겠나.
작곡과 프로듀싱은 내 담당이고, 이 분야 톱클래스들인 내 인맥이 차연호 인맥보다 훨씬 더 좋으니 차연호가 좋은 작곡가나 프로듀서를 소개해 줘 봤자 딱히 도움도 안 되고.
게다가 차연호가 방해 공작을 펼쳐도 우리한테는 류재희가 있었다.
시이발, 누구는 회귀하지 않으려고 초심도 신경 쓰느라 시원하게 쌍욕도 못하고 뻐큐도 마음껏 못 하는 그런 짠하디짠한 삶을 살고 있는데.
그런 불쌍한 사람 앞에서 지금 회귀하고 싶다고 멀쩡한 팀에서 탈퇴해 달라 해? 내가 또 무한 회귀하면 책임질 거야? 어?
“또 케이제이 때문에 이러냐? 너네 정준이 때문에?”
정곡을 찔렸는지 차연호가 흠칫했다. 케이제이와 싸웠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다.
회귀 전에도 비슷한 구도였다. 다만, 그때와 다른 건 그때의 차연호는 저렇게 눈높이가 높고 고개가 뻣뻣하지 않았다는 것, 그뿐이다.
“진짜로 친구를 위한다면 그렇게 대신 해결해 보겠다고 사방팔방 뛰어다니거나 남 앞에서 무릎 꿇지 말고 자기가 잘못한 값이나 치르게 해.”
케이제이가 일곱 살 애고 네가 케이제이 보호자인 줄 아냐? 내 진심 어린 충고를 들은 차연호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기억하지도 못 하면서 함부로 지껄이지 마.”
나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눈으로 보던 차연호가 한 마디 한 마디 짓씹듯 내뱉었다.
“아이고, 무서워라.”
태평하게 대꾸하며 케이제이의 이름 옆에 나란히 표기된 작곡가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 편의성을 알아 버린 케이제이가 창작의 고난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회귀하게?
이쯤 되면 우정이 아니라 집착 아니냐? 이런 우정 나는 모른다.
“없던 일로 만들어도 또 똑같은 일이 반복되잖냐. 제 버릇 개 못 준다니까? 본인을 망치는 친구를 두고 있는 케이제이가 불쌍할 지경이다. 본인의 잘못은 똑바로 알아야 할 텐데, 이렇게 눈과 귀를 틀어막는 친구를 옆에 두고 있어서야.”
쯧쯧 혀를 차니 차연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헛웃음 같은 웃음을 내뱉더니 그 실소는 점차 커져 박장대소로 변해갔다.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윤이든.”
기이할 정도로 차분하게 흘러나온 차연호의 목소리에 눈썹을 치키기가 무섭게, 악에 받친 외침이 이어졌다.
“네 장례식장에서 1분도 채 있다 가지 않은, 헌화 한 송이 안 하고 절 한 번 올리지 않고 간 친구를 둔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전 소속사에서도 같이 뛰쳐 나올 정도의 절친이라더니, 하! 난 적어도 몇 번이고 그 애 빈소를 3일 내내 지키고 있기라도 했어!”
방금… 방금 뭐가 좀 많이 지나간 것 같은데…?
그리고 60년 전에 절연한 친구 장례식에 1분 있다가 갈 수도 있지. 기억한 것만으로도 어디야.
하지만 내가 해일처럼 급작스럽게 쏟아진 사실들을 곱씹을 새도 주지 않고 이성을 잃은 차연호는 연이어 폭탄을 던져 댔다.
“네가 늙어서 편하게 임종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너 서른 살에 죽었어. 60년 같은 소리 하네. 4년 만에 뒈져 버린 주제에.”
씨발, 이게 뭐지? 내가 지금 스물세 살이니까 나 7년 시한부 된 거야? 아니, 며칠만 더 있으면 6년이네?
시발, 초년에 겪는 큰 고난이 LnL에서의 데뷔가 아니었어? 아니면 그 무당이 돌팔이였던 거야? 나 무병장수한다며?
그래도 덕분에 차연호가 조금은 덜 징그러워졌다. 내 임종까지 스토킹 한 줄 알았을 때는 존나 징그러웠는데.
이럴 때만 잘 돌아가는 대가리를 돌려보다가 밑으로 무심코 시선을 내리자 팔에 새긴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이거 새긴 놈이 서른 살 윤이든이라고 안 했나?
그럼 병사인가, 사고사인가. 김도빈한테 혹시 서른 살의 내가 건강 이슈가 있어 보였는지 물어봐야겠다.
에런가 뭔가로 잠깐 엿본 기억에서 꽁초로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어 놨던데 혹시 담배 때문 아니야? 아니면 손등에 덕지덕지 한 타투 때문에 c형 간염?
내가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혼란스러워 하는 동안, 다시 이성을 되찾은 차연호가 내게 비웃음을 던졌다.
“안 궁금하다며. 전혀 궁금해 보이지 않는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
“너 같으면 안 궁금하겠냐?”
타두를 엄지로 문지르며 짜증스레 대꾸하자 승기를 잡은 얼굴로 차연호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조작된 기억을 찾는 방법이 궁금하면, 그에 상응하는 거래 조건을 들고 와.”
그 말을 뱉은 차연호가 희열 섞인 얼굴로 웃었다.
“그러네, 그러고 보니 굳이 회귀하지 않아도 되네.”
나는 내 머리 끝까지 기어오르려는 놈이랑 나를 제멋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놈이 딱 질색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차연호는 내가 질색하는 그 두 부류의 공통 분모에 속해 있었다. 이런 놈들은 밟아 줘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때처럼.
흥분에 못 이겨서 거래 대상으로 쓰려던 것까지 줄줄 내뱉은 주제에 승기 잡은 척하기는.
턱-
“연호야, 차연호.”
손을 뻗어 멱살을 콱 틀어쥔 채로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상체가 한껏 기운 상태에서 탁자에 허리가 걸린 채로 켁켁거리는 차연호를 빤히 바라보았다.
[부적절한 행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쌓아 놓은 초심도는 이럴 때 쓰는 거 아니겠냐.
“꿈 깨.”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짧게 경고했다.
던지듯 멱살을 놓으니 의자에 등을 기댄 차연호가 숨을 다급히 헐떡였다. 손등으로 입가를 쓱 훔친 차연호가 빠득, 이를 갈았다.
“그래, 마지막까지 여유 부리는 게 누구일지 한번 봐 보자고.”
* * *
“야, 너 또 딴 길로 샜지? 객실 다녀오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서예현의 잔소리가 쏟아졌지만 무시하고 곧바로 차가운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머리까지 처박자 서예현의 잔소리를 비롯한 주변 소음들이 점점 흐릿해졌다.
스물일곱 살에서 끊긴 내 기억.
맛이 간 것 같던 서른 살의 내 모습.
내가 겨우 서른 살이라는 나이에 죽은 이유.
내 탈퇴가 회귀의 기점이라고 믿고 있는 듯한 차연호.
회귀가 이번 한 번이 아닌 듯한 차연호의 말.
이 모든 열쇠가 결국은 이 빌어먹을 초심도 시스템이라고. 대체 내 기억까지 조작해 가면서 얻는 게 뭔데.
내 목덜미를 잡고 끌어올리는 손길에 수면 밖으로 끌려 나와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랜만에 머리를 쓰려니까 영 피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