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6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64화(36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64화
흠, 시스템이 이렇게 단호하게 나오면 정말로 항공 사고는 아니라는 소리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연호의 충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영 찜찜했다.
“꼭 오늘 떠야 하는 이유가 뭐지? 태풍이라도 오나?”
차연호의 예언자 코스프레에 넘어간 듯한 서예현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리다가 나를 휙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도 혹시 오늘 자 항공권을 구할 수 있으면 구해 보는 게 어때?”
“형은 저 말을 믿어?”
믿을 게 없어서 레브의 일등 공신이자 레브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나를 레브에서 탈퇴시키려 하는 차연호 말을 믿냐.
내가 굉장히 저를 한심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서예현이 울컥하며 반박했다.
“설마 얼굴 안 보고 살 사이도 아니고 아예 낯선 사이도 아닌데 우리한테 빈말을 했겠어? 막말로 우리가 일정보다 하루 먼저 하와이를 뜬다고 차연호 선배님이 무슨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잖아.”
“옥장판 조심해, 형. 다단계 영업을 낯선 사람이 하는 줄 알아? 다아 안면 있는 사람 꼬셔서, 어?”
아직도 세상 물정을 이렇게 몰라요, 쯧쯧.
내가 서예현과 으레 하는 쓸데없는 말싸움을 하고 있던 사이, 하와이 일기 예보를 확인한 류재희가 어두운 얼굴로 우리를 불렀다.
“형들, 내일…”
우리를 부르는 류재희의 얼굴이 왜인지 심상치 않았다.
“내일 뭐?”
“홍수 주의보 내렸다는데요.”
뭐라고? 차연호가 진짜로 선의로 우리에게 충고를 해 줬던 거라고?
하지만 내 촉이 말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정말로 도움이 되는 선의의 충고가 쌓이고 쌓이면 나도 모르게 차연호에게 경계를 풀게 될 거고, 내가 저한테 경계를 푼 그때부터 차연호는 나를 휘두르기 시작할 거라고.
그러니까 차연호에 한정해서 일단 의심부터 해보는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내 두뇌와 내가 짠 계략은 믿지 못해도 내 감은 믿을 만하지.
나를 만만하게 본 모양인데, 사람은 지능뿐만 아니라 촉으로도 살 수 있다고, 헹.
내가 자화자찬하는 사이 서예현이 우리를 잡아끌며 다급히 말했다.
“오늘 일정 다 취소하고 무조건 오늘 자 항공권부터 잡아!”
“아니요, 형. 이러지 말고 두 팀으로 나눠서 한 팀은 짐 싸고 한 팀은 항공권 잡아요. 만약 시간 촉박하게 잡으면 체크아웃도 해야 하니까 각자 짐 싸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요.”
“짐을 왜 싸? 그냥 바로 캐리어 닫고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서예현이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묻자 류재희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형들 방은 그게 가능할지 몰라도 저희 방은 그게 안 되거든요.”
즉시 김도빈과 나를 돌아본 서예현이 한숨을 내쉬며 너희들은 정리 좀 하고 살라고 타박했다.
누가 원인인지 말도 듣지 않고 무작정 우리부터 의심하는 게 억울했지만 방에 널브러지고 이곳저곳 걸려 있는 옷의 대부분이 김도빈과 내 옷이었기에 할 말은 없었다.
“그럼 나랑 막내가 너희 셋이 쓰는 객실에 있는 짐 싸고 우리 객실으로 넘어올 테니까 나머지는 항공권 잡고 있어.”
류재희를 잡아끈 서예현이 우리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의 꼴을 본 서예현이 쫓아 나와 잔소리를 쏟아 낼까 다급히 서예현과 견하준이 쓰는 객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와, 직항은 자리가 없네.”
“어쩌겠어, 환승이라도 찾아야지.”
짐 정리를 마치고 캐리어 세 개를 끌고 돌아온 서예현과 류재희도 항공권 찾기에 돌입했다. 다들 일기예보를 보고 살았던 건지 오늘 하와이를 뜨는 항공권은 도저히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1시간쯤 찾았을까, 견하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숨소리만 간간이 들리던 방에 울렸다.
“환승 두 번 하는 비행기로 하나 찾았어.”
“환승을 두 번이나?”
경악하면서도 다들 어찌저찌 받아들이는 모양새였다. 어쩌겠는가. 발 묶이기 싫으면 환승 두 번쯤은 감수해야지.
“그런데 문제가…. 한 자리밖에 안 남았다는데?”
“그럼 못 타겠네.”
다섯 자리가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혼자 타고 갈 것도 아니고. 잠깐만, 혼자?
“우리 중에서 제일 스케줄 급한 사람 누구야? 그 한 자리라도 먼저 타고 가자.”
견하준의 제안에 서로를 보는 눈이 날카로워졌다.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거나 다 같이 남는 우정을 보여 주기는 개뿔. 다들 그 한 자리를 노리고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 같았다.
우리가 그러면 그렇지.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폭우로 비행기가 연착 또는 결항되어 공항에 발이 묶이느니 그냥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었다.
“나 일주일 후에 CF 미팅.”
제일 먼저 손을 든 서예현이 이것보다 더 빠른 개인 스케줄이 있느냐는 얼굴로 우리를 돌아보았다.
그런 서예현의 시선을 정면에서 맞받아치며 자신만만하게 웃은 김도빈이 손을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
“저 엿새 후에 트트블 촬영 있어요. 그래서 미리 가서 짐 싸놓고 여행 갈 준비해야 해요.”
일주일보다는 여행 준비도 해야 하는 엿새가 더 다급하지. 하지만….
“나 나흘 후에 DTB콘 리허설.”
쓰윽, 손을 들고 가장 긴급한 내 스케줄을 내뱉었다. 그게 나흘 후의 콘서트 리허설을 이길 수 있을까?
패배감이 드리워진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승리감에 도취되어 웃었다. 잘 있어라, 사랑하는 멤버들아. 나는 먼저 간-
“나는 사흘 후에 드라마 대본 리딩.”
견하준의 목소리가 들뜬 내 마음을 칼같이 잘랐다. 잔잔한 목소리지만 기저에 깔린 기쁨을 내가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아니, 그래도 이 좋은 기회를 순순히 양보할 수는 없다. 나는 리믹스 버전을 잘 뽑아서 공출&BQ9과 연습을 해야 한다고. 용철이 형하고도 합을 맞춰 봐야 하고.
“사흘 후면 하루 늦어도 충분하네. 공항에서 대본 좀 읽어라, 준아. 그럼 되겠네.”
“내가 숙소에 대본을 두고 왔거든. 혹여 내가 잃어버려서 대본이 유출될까 봐. 이든이 너도 영상 통화나 화상 채팅 같은 걸로 같이 무대 해야 하는 분들이랑 연습하지 그래?”
“…농담이지?”
공항에서 휴대폰을 앞에 세워 두고 랩하라고? 공항에서 랩하는 관종으로 너튜브에 올라와서 조리돌림당할 일 있어?
떨떠름하게 묻자 견하준이 진지한 표정을 풀고 어깨를 으쓱했다.
“대본 리딩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어느 정도 대본을 숙지를 했다는 걸 보여 줘야 하지 않겠어? 안 그래도 아이돌이 연기에 도전한다고 하면 좋은 눈치는 안 받을 텐데.”
“이든이 형은 다른 사람들이랑 무대를 해야 하니까 이든이 형만 빠지면 눈치 보이지 않겠어요?”
“도빈아, 너 좀 낯설다. 왜 갑자기 윤이든 편을 그렇게 들어?”
“자고로 스승과 제자는 한 뜻을 가져야 한다고 했어요. 이든이 형이 제게 작곡을 가르쳐 주니까 이든이 형은 어떻게 보면 제 스승님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게 치면 너랑 나도 뜻을 같이해야지.”
“아니죠, 저희 관계에서는 제가 스승이니까 형이 제 뜻을 따라야죠.”
“…….”
이미 후보에서 저 멀리 떠밀린 서예현과 김도빈은 나와 견하준 중에서 누가 더 급한지에 관하여 진지한 건지, 쓸데없는 건지 도저히 분간이 안 가는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김도빈의 논리적인지 비논리적인지 듣는 사람도 헷갈리는 주장이 승기를 잡았다. 김도빈 덕분에 점점 내게 가까워지는 단 한 개의 항공권에 기뻐하던 중.
“다들 잊으신 거 같네요. 저희가 5박 6일로 여행을 잡았던 이유를.”
웃음기가 한껏 서린 류재희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순간에 짙게 드리워진 패배감을 느끼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턱을 슬쩍 치켜든 류재희가 씩 웃으며 말했다.
“저 이틀 후에 인기뮤직 MC요.”
K.O, 완벽한 패배였다.
“무조건 막내 보내!”
“그래, 펑크로 계약직에서 잘리면 어떡해!”
“돈 벌어와, 돈!”
“그건 막내 개인 정산 아니냐?”
“류재의 인기가 곧 레브의 인기로 이어지는 거죠.”
결국 최후의 항공권은 류재희가 차지하게 되었다. 비행기 연착되면 스케줄 펑크라는데 어쩔 거야.
“잡았어?”
“혹시 일단 예약은 해 뒀어. 이걸로 갈 사람 없다고 하면 바로 취소하면 되니까.”
“오, 다행이다. 그런데 시간은 언제야?”
“두 시간 후.”
우리는 쓰린 속을 달랠 새도 없이 류재희를 한국으로 무사히 보내기 위해서 공항까지 렌트카로 황급히 향했다.
“형들, 별일 없이 조심히 한국까지 들어와요.”
“그래, 고생해라.”
류재희가 비행기에 무사히 탄 것까지 확인하고 우리도 다시 호텔로 향했다.
이렇게 하늘이 푸른데 내일 홍수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냥 아무 일도 없어서 류재희만 환승 두 번 해서 힘들게 한국으로 돌아간 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 * *
다음 날.
“망했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각자의 캐리어를 덩그러니 든 채로 호텔 밖에 폭우 수준으로 쏟아지는 비를 보며 한탄을 내뱉었다.
혹시 결항되면 다음 날 뜨는 비행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서예현의 주장에 호텔에 머물기를 포기하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조수석에 앉은 견하준은 공항 근처의 비지니스 호텔을 찾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선배님은 이걸 대체 어떻게 안 거죠? 예언 능력이라도 있으시나?”
김도빈의 씹덕 같은 추측에 서예현이 현실적인 답을 내놓았다.
“일기 예보를 확인하지 않았을까. 우리 여기 와서 다들 한 번이라도 일기 예보 확인한 적 있었어?”
그러게.
우리는 하와이에 와, 일기 예보를 보고 날씨를 미리 알아서 계획을 짰던 게 아니라 그냥 나가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햇볕 내리쬐면 내리쬐는 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차연호가 본인들도 이 일에 휘말려서 기억하고 있었을 확률 반, 일기 예보를 보고 충고해 줬을 확률 반이었다.
둘 중에 뭘까 궁금해긴 했지만 굳이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우리가, 아니, 물론 사실이긴 하지만 차연호… 선배 눈에 일기 예보도 확인 안 할 놈들로 보였다는 소린가?”
“2만 원의 행복 때 모습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워낙 생각 없는 모습들만 보여줬잖아. 나 빼고.”
“거기도 한창 촬영하고 있었을 텐데 우리의 그 극악, 아니, 아이씨, 하도 형이 극악무도 극악무도 해서 옮았잖아. 해피한 피자파티를 어떻게 봐.”
“본방을 봤겠지, 멍청아.”
그렇지 않아도 차연호보다 떨어지는 내 두뇌에 슬퍼하고 있는데 서예현이 멍청이라고 하니까 더 슬퍼졌다.
너무 슬퍼져서 고열량의 맛있는 음식을 서예현 눈앞에서 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예상대로 우리 비행기는 연착이 떠 있었다. 저 연착이 언제 결항으로 바뀌게 될지 몰랐다.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빗줄기의 기세를 보니 아무래도 오늘 안에 하와이를 뜨기는 그른 것 같았다.
원래는 쌓인 피로도 풀 겸, 내일 하루를 쉬고 DTB 콘서트 준비로 복귀하려고 했지만, 비행기가 연착된 덕분에 쉬는 건 글러 먹었다.
“긍정적 사고를 하는 거예요, 형들. 원래라면 1~2편으로 끝났을 vlog가 비행기 연착으로 인한 공항 체류기로 한 편 더 늘어나잖아요.”
공항에서 무기한 대기하면서 찍을 게 뭐가 있겠냐. 실시간으로 꼬질꼬질해지는 우리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