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7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71화(37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71화
“정이서한테 문자 왔더라. 디데이 얼마 안 남았다는데?”
바로 낙하산의 KICKS 해체 쇼였다.
이전에는 KICKS 놈들이 그렇게 불명예스럽게 추락하는 것에 별 유감이 없었지만 권윤성과 어느 정도 과거의 감정을 정리한 지금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견하준한테 이어 나한테까지 빅엿을 먹인 낙하산만 좋은 일을 시켜 주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준비할 일은 바로 낙하산의 장기 프로젝트를 보기 좋게 망쳐 놓는 것, 그게 목표였다.
팀 불화설에 우리까지 엮어서 써먹으려고 했으니 이 정도는 각오해야 하지 않겠냐. 회귀 전에야 우리 그룹 분위기가 하도 개쉣이어서 순순히 당해 줬다지만.
“연말 시상식 전에 터트릴 거라고 형한테 말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한 이맘때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딱 확정은 아니고, 지나가듯 했던 이야기?”
연말 시상식은 12월 말에만 하는 게 아니라 늦으면 2월까지 이어지니 빠르면 1월, 늦어도 2월에는 터트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더 빨랐다.
“의외네. 난 그래도 설 특집 아체대가 방영된 이후에 터트릴 거라 생각했는데. 일단 그 방송 장면으로 불화설을 지핀 다음에 터트리면 더 효과적이지 않나? 어쨌건 화면에 우리랑 붙어 있는 모습이 한 번은 잡힐 거 아니야.”
하긴, 3년을 넘게 칼을 갈고 있다는 걸 꾹 숨기고 나한테 그렇게 친한 척해 온 놈의 속뜻을 내가 어떻게 알겠냐. 정이서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들이받고 보는 나와 너무나도 달라도 다른 인간 군상이었다.
가장 큰 피해자인 견하준이 있는 우리 그룹을 저 좋을 대로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한 것부터 양심이 없는 걸 알았지만.
“이미 아체대 직관 왔던 그쪽 팬들 덕분에 팬덤 내에 불화설은 지펴졌을걸요.”
류재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멤버들이 정이서를 둘러싼 이미지메이킹을 워낙 잘해 온 덕분에 정이서의 공식 입장이 없다는 이유로 불화설을 제기한 쪽이 얻어맞고 있긴 하지만요.”
“그래도 일단 균열은 생겼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무의미한 건 아니죠.”
나랑 류재희는 서로를 마주 보며 킬킬 웃었다. 배를 벅벅 긁으며 제 방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던 김도빈이 우리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왜 둘 다 그렇게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악당같이 웃고 있는 거야… 요?”
말 끝에 어색한 존댓말을 붙이는 김도빈을 향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늘어져라 하품을 한 김도빈이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저거, 저거 나랑 방 떨어지자마자 아주 살판 났어. 이 시간까지 퍼질러 자고 있고.”
“도빈이 형, 아침에 진짜 안 일어나던데요. 형은 대체 어떻게 도빈이 형 깨웠어요?”
“몇 번 이불 뺏고 세수 시켜 주고 침대에서 강제로 끌어내리니까 자동 반사적으로 내가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더라?”
“흠, 훈련화에 의한 반사적 기상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류재희를 보니 김도빈이 해피한 늦잠을 즐길 날도 머지않아 끝날 듯 싶었다.
김도빈 미라클 모닝 프로젝트에서 다시 낙하산의 폭로 쇼로 이야기 주제가 돌아왔다.
“한 번에 터트리려나?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게 화력은 제일 좋을 테니까요.”
“그 대신 화력이 유지되는 게 짧잖아. 아체대 전에 폭로하려고 하는 걸 봐서는 아마 한 번에 터트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KICKS 쪽에서 반박할수록 부정하지 못하는 증거를 내놓는 식으로 퇴로를 막겠지.”
회귀 전에도 봤던 과정이라 유추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나만 끌어들였던 회귀 전과 달리 이번에는 레브 전체를 끌어들인 터라 양상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두고 봐야지 알겠지만.
“그러면 슬슬 우리도 준비해야겠네요.”
류재희가 반짝 눈을 빛냈다.
“형은 계속 정이서랑 연락하면서 디데이 좀 정확히 알아봐 주세요. 괜히 일찍 손썼다가 정이서 쪽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면 머리 아프잖아요.”
“그래, 알았다.”
이런 일에는 제법 믿음직한 막내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지금까지는 귀찮아서 류재희한테 머리 쓰는 일을 맡겨 왔다지만 차연호와의 일은 류재희한테 맡길 수 없는 류였다. 회귀라는 비하인드가 얽혀 있는 이상,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 했다.
차연호와 수 싸움을 하는 것도 내 몫이라는 소리였다.
머리야 귀찮음을 무릅쓰고 굴리면 된다고 해도 사람을 내 뜻대로 휘두르는 건 아이러니하게 내가 의도치 않을 때만 성공했다.
이번에 회귀자란 사실을 들킨 것처럼 내가 의도하고 하면 귀신같이 실패하더라고.
그러니 이런 물밑 심리 싸움은 이럴 때 보고 뇌리에 새겨 놔야지. 나중에 응용해서 써먹을 수 있도록.
‘그나저나 막내랑 떨어진 사이 개선도는 어떻게 올리냐.’
점점 퀘스트 기한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류재희와는 사이 개선도를 올릴 만한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었다. 차라리 다른 퀘스트라도 던져 줘서 퀘스트 기한 연장권이나 아이템으로 기부 좀 해 줬으면 싶었다.
류재희가 내 눈길을 의식하는 것보다 내가 휴대폰에서 울린 짧은 진동 때문에 시선을 거두는 게 한 발 더 빨랐다.
[스코언 형- 다시 한번 미안하다 진짜로] 오전 10:31 [스코언 형- 나중에 꼭 밥 살 테니까 시간 괜찮을 때 연락해] 오전 10:32 [스코언 형- 그리고 순서 바꿔 주고 시간 끌어줘서 정말 고맙다] 오전 10:32어제 다 같이 갔던 콘서트 뒤풀이에서도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나를 붙들고 몇 번을 사과하더니만 기억을 싹 날린 건지, 아니면 그만큼 미안해하고 있는 건지.
그래도 순서를 바꾸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계속 사과하는 모습은 사람이 꽤 좋게 보이는 것에 한몫했다.
어제의 콘서트 뒤풀이는 스코언이 머리 박은 사과와 스코언이 풀어 준 사고 경위 썰 말고도 콘텐츠가 제법 많았다.
물론 눈 시퍼렇게 뜬 시스템의 감시 때문에 비록 음주는 얼마 하지 못하긴 했다.
한데, 기왕이면 시즌 5에 나오거나 프로듀서로 나오시지 왜 시즌 4에 출연자로 나와서 양학했냐며 내 앞에서 대성통곡하던 회귀 전 원래 우승자 유피나.
너 이 새끼 옛날에 나한테 왜 그랬냐며 너 때문에 트라우마 생겨서 아직까지 죠스바를 못 먹는다며 내 앞에서 잔뜩 꼬부라진 발음으로 씩씩거리던 최형진을 구경하는 건 꽤 재미있었다.
아, 진지한 얼굴로 만약 자기가 시즌 3에서 피처링으로 용철이 형처럼 나를 불렀으면 자기가 시즌 3의 우승자가 될 수 있었을까 용철이 형이랑 토론하던 BQ9도.
어차피 시즌 3 때는 BQ9이 부탁했어도 내가 응하지 않았을 거고, 우리 둘의 무대만큼의 시너지도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용철이 형의 답은 좀 감동이었다.
용철이 형도 내가 깊은 고민 끝에 어렵사리 피처링으로 나와 준 걸 잘 이해하고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까 예현이 형 어디 갔냐? 아침 운동 하고 와서 또 나갔네?”
“예현이 형 요즘 바빠요.”
“연말이긴 한데 그 형 개인 스케줄이 그렇게 많아?”
“개인적인 일정이긴 하죠.”
은근슬쩍 말장난으로 넘기려고 하는 류재희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류재희가 모른 척 딴청을 부리며 내 집요한 시선을 피했다.
[서예현- 나 숙소 안 들르고 바로 연습실로 갈게] 오전 10:50 [서예현- 너희 먼저 연습실 가 있어] 오전 10:51이 와중에 또 도착한 메시지는 의심을 한결 더해 주었다.
“예현이 형 혹시 연애하는 거 아니지?”
“형이 곡 작업 때문에 맨날 숙소 비웠을 때 다들 한 치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형을 믿었어요. 그러니까 형도 예현이 형을 믿어 줘야죠.”
“그야 나는 작업물이 증거로 있으니까! 이거랑 이거랑 같냐!”
“아무튼, 저는 말 못 해요. 노코멘트. 형한테만 말 안 한다고 섭섭해하진 마요. 하준이 형이랑 도빈이 형도 모를걸요.”
“아, 뭔데 진짜. 나 궁금한 거 있으면 잠 못 자는 거 알잖아.”
“조금만 주변에 신경을 썼다면 알 수 있었을 텐데. 하여간, 우리 멤버들은 서로한테 너무 관심이 없다니까. 퍼스널 스페이스가 너무 넓어.”
내 손에 짤짤 흔들리면서도 류재희는 끝까지 뻔뻔하게 내 시선을 피하며 혀만 차 댔다.
설마 그건가? 계속 보고 있던 휴대폰? 시발, 그거 연애 징조잖아!
* * *
“와, 세이프.”
연습 시간에 딱 맞춰서 도착한 서예현이 문가를 짚고 허리를 숙인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뛰어온 건지 한겨울인데도 땀이 이마와 코끝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지각비 안 내도, 허억, 되지?”
“지각비 안 내려고 뛰어온 거야?”
“어, 그래서 엘리베이터도 포기하고, 헉, 계단으로 뛰어왔어.”
땀을 훔치며 서예현이 문을 닫고 연습실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발이 문턱 밖으로 나가 있었으면 그걸 핑계 삼아 지각비를 뜯으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서예현의 발은 문턱 안에 온전히 들어와 있었다.
내가 제 발을 보며 혀를 한 번 차자 제가 그 정도도 계산 못 했겠냐고 서예현이 얄밉게 비죽 웃었다.
“형은 요즘 왜 이렇게 바빠? 요새 통 숙소에 있는 걸 못 보네.”
지나가듯 자연스럽게 미끼 질문을 던졌다.
숨을 마저 고르고 연습실용 운동화로 갈아 신은 서예현이 긴 한숨을 내쉬며 가볍게 툴툴거렸다.
“예상보다 연말 시상식 준비 시간이 늘어나서 그래. WAWA 무대 시간을 10분을 받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나는 기껏해야 5분 정도나 받을 줄 알았지.”
우리는 Wnet이 주관하는 연말 시상식, WAWA에서 무려 10분이라는 파격적인 무대 시간을 받았다. 심지어 엔딩 무대였다.
10분이면 무대에서 곡 세 개는 풀로 거뜬히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쟁쟁한 선배 그룹들을 제치고 엔딩을 우리한테 준 걸로 봐서는 덥넷이 DTB 4로 어지간히 재미 좀 봤나 싶었다.
하긴, 이번 DTB 4 음원 성적이랑 콘서트 규모만 봐도 이번 시즌 참가자들, 특히 나한테 고마워할 만도 하지.
그리고 DTB 공연 파트가 WAWA에서 또 따로 나뉘어 있어서 나는 DTB 프로듀서들과 공연까지 해야 했다.
이건 준우승 배출 팀 프로듀서인 몰틱&영빌리 레이블에서 낸 곡으로 무대를 하기 때문에 곡 작업은 필요 없고 그냥 내 벌스만 따로 써 가면 됐다.
너무 내 얼굴이 오래 보이는 거 아니냐고 욕먹는 거 아닌가 몰라. 물론 그런 걸로 욕을 하든 말든 알 바는 아니었다.
꼬우면 덥뎃에게 가서 따지든가.
“그런데 무대 시간 10분이랑 형이 바쁜 거랑 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어?”
그 질문을 듣자마자 서예현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걸렸다.
“너는 몰라도 돼.”
류재희는 말장난으로 넘기려고 하더니 이 인간은 은근슬쩍 미인계 써서 넘어가려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