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7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72화(37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72화
“그런데 형 진짜 요즘 수상하긴 해요.”
김도빈이 괜히 심각한 표정으로 서예현을 휙 돌아보며 내 의심에 힘을 실어 주었다.
“내가? 왜?”
“갑자기 허공 보면서 실실 웃고, 맨날 휴대폰만 붙들고 살고, 막 저한테 심장 두근거린다고, 떨린다고 하고.”
김도빈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연애 시그널이었지만 이 중 멤버의 연애에 제일 예민하게 반응할 류재희의 표정은 평온할 뿐이었다.
정말로 서예현이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얼굴이었다. 대체 연애 말고 서예현이 저런 반응을 보일 만한 일이 뭐가 있지?
“연애하는 건 아닐걸. 애초에 누가 문자 보내는데 휴대폰을 가로로 들고 보내. 예현이 형 요즘 맨날 휴대폰 가로로 들고 있잖아.”
툭 한 마디 던진 견하준도 딱히 ‘서예현 비밀 열애 중’ 가설을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모습은… 도빈이 너도 자주 그러지 않아?”
그렇다. 생각해 보니까 김도빈도 자주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르죠! 저는 연애가 아니라 끝내주는 창작물을 보면서 그러는 거라고요!”
김도빈이 강한 부정을 시도했지만 외모가 달라서 행동 양상이 달라 보였던 거지, 사실상 똑같긴 했다.
“그래, 형. 아무도 형 보고 연애 중이라고는 생각 안 하니까 그렇게 억울해하진 않아도 돼.”
류재희가 덧붙인 말에 억울 해야 하는지, 오해조차 사지 않는 걸 좋아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김도빈을 보며 서예현도 김도빈처럼 끝내주는 덕질이라도 하고 있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아니면 내년에 있을 DTB 시즌 5 참가 준비라도 하고 있거나.
“자, 연습하자.”
짝, 짝! 두 번 손뼉을 맞부딪치고 거울 앞에 대형을 맞추어 섰다.
무대의 가장 첫 곡으로 선택한 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 * *
음악이 뚝 끊기자 땀 범벅이 된 멤버들이 바닥에 실 끊긴 인형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그것도 잠시, 각자 일어나서 자신에게 최적의 휴식 공간을 찾아 느릿하게 움직였다.
연습실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김도빈이 애타게 물을 찾아 댔다.
입 대지 않고 마셨던 생수를 김도빈의 이마에 턱, 올려놓고 연습실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제 이마에서 굴러떨어져 데구르르 바닥을 구르는 생수병을 쫓아서 누인 몸을 굴리는 김도빈의 꼴을 보며 실소를 터트리다가 손에 쥔 휴대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요즘 낙하산 뭐하냐?] 오후 3:12 [수상한 기색 안 보이냐?] 오후 3:13새로 생긴 KICKS 내부 스파이, 권윤성한테 KICKS의 내부 상황을 살피는 문자를 보냈다.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정을 몰랐을 때는 그게 정이서였고, 사정을 다 알게 된 지금은 권윤성으로 바뀐 거지, 뭐.
물론 정이서가 다른 KICKS 멤버들 앞에서 너희들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티를 낼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숙소에 사는데 이상한 점이나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 할까 싶었다.
[혹시 정확히 며칠에 킥스 터트릴 예정?]정이서에게도 보낼 메시지를 작성했다가 전송하기 직전에 멈칫했다.
“너무 떠보는 것 같나?”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내는 일도 거의 없었을뿐더러, 이렇게 길게 보내는 일도 드물었기에 정이서가 수상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제일 베스트는 나를 만만하게 보고 있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넘어가는 거지만 기왕이면 확실한 게 좋으니까.
옆에서 물을 마시고 있던 서예현이 상체만 기울여 아직 전송하지 않은 문자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해할 수야 있겠지만 조금 노골적이긴 하다.”
“그래? 조금 더 돌려서 보내야 하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물론 상대는 네가 곡을 준다고 수락했을 때부터 너를 얕잡아 보고 있겠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그 말을 하면서 나를 돌아본 서예현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너 같으면 그룹 얼굴이나 다름없는 리더가 제멋대로 휘두르고 속아 넘기기 좋은 만만한 놈 취급을 받고 있는데 한숨이 안 나오겠어?”
“형이 나를 리더로는 생각을 하고 있구나. 그리고 우리 그룹 얼굴은 형 아니야?”
“그룹 대표는 너잖아.”
제일 이름값 높은 놈이 기만질을 다 한다며 서예현이 투덜거렸다. DTB 효과가 크긴 했지.
“하긴, 자칫하다가는 내가 보낸 문자가 나랑 얘가 친분을 유지했다는 증거로 쓰일 수도 있으니까.”
걱정되는 점을 짚어 내자 드디어 머리를 쓰기 시작했냐고 감탄하던 서예현이 갑자기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까 너 전부터 연락 주고받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
“어어, 그랬지.”
내 대꾸에 서예현의 표정이 단번에 심각해졌다. 프라이버시 침해를 해도 되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 서예현을 툭 치고 물었다.
“보여 줄까?”
서예현이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울에 기대어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견하준도 슬그머니 일어나 내 옆으로 쓰윽 다가왔다.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다.
딱히 견하준이 보더라도 견하준의 마음이 상할 만한 대화는 없었기에 보여 주는 것에 딱히 거리낌은 없었다.
상대가 얼마나 길게 보내든 내 답장은 어쩌다 아주 드물게 한 번씩 제법 문장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다섯 글자를 넘지 않는 단답이었다.
“음, 깔끔하네.”
견하준이 담백한 평가를 내렸다. 입가에 은은하게 미소가 서려 있는 걸 보니 자기가 봐도 딱히 마음에 걸리는 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했던 걱정이 굉장히 쓰잘데기 없이 느껴진다.”
서예현이 왜인지 자괴감이 느껴지는 얼굴로 마른세수했다.
“정이서 쪽에서 절대 증거로 못 까겠네. 이건 누가 봐도 친한 사이끼리의 대화가 아니라 친해지고 싶어서 한쪽만 짠하게 몸부림치는 거 같잖아.”
“공개하면 정이서 쪽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대중들의 비웃음만 사는 악수가 되겠지.”
서예현의 감상에 견하준이 여상히 덧붙였다. 다단계에 홀려 옥장판을 사서 돌아온 놈을 보는 눈으로 나를 보며 서예현이 내게 잔소리를 쏟아 냈다.
“너도 사람을 의심하는 법을 좀 배워 봐. 몇 년을 꾸준히 이런 성의 없는 답장을 받는데도 이렇게 살갑게 먼저 문자로 말을 계속 붙여오는 게 수상하지도 않든?”
“나랑 너무 친해지고 싶어서 다 감수하는 줄.”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하게 대꾸했다.
사실은 회귀 전에 도움(이라고 쓰고 빅엿이라고 읽는다)을 받은 기억 때문에 경계심이 풀려서 그런 게 컸지만 이걸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으니 나르시즘 코스프레나 해야지, 어쩌겠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서예현이 어쩐지 경외감까지 섞인 눈으로 나를 힐긋 돌아보았다.
“이렇게 될 걸 미리 생각하고 답장을 그렇게 보낸 건 아닐 거 아니야. 이걸 뭐라고 평가해야 하는지, 참… 운이 따른다 해야 하나. 그런데 이게 운인가? 하긴, 운은 운이지.”
둔해 빠진 놈으로 각인된 내 이미지를 바꿀 절호의 찬스군.
“당연히 내가 앞일을 다 생각하고 한 거지.”
하지만 견하준과 서예현은 내 말에 대꾸도 반응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진지한 얼굴로 어떻게 문자를 보내는 게 좋을지 토의하고 있었다.
내가 정이서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전에 권윤성한테서 답장이 도착했다.
[권윤성- 숙소에서 짐 뺀다는데] 오후 3:22 [권윤성- 독립한대] 오후 3:23 [느그 멤버들 반응은?] 오후 3:23 [권윤성- 저거 이제 터트리고 자기만 몸 뺄 준비 한다고 이 갈고 있는 현민이 빼고는 다들 신경 안 써] 오후 3:24나머지 놈들이 둔한 건지, 아니면 숙소에서 독립하는 걸 자연스럽게 이해할 만큼 정이서를 괴롭혀 댄 건지. 후자라면 저것들은 진짜로 자업자득이었다.
[권윤성- 아] 오후 3:25 [권윤성- 그리고 현민이한테 요새 살갑게 대한다고 하긴 하더라] 오후 3:26 [원래는 어땠는데] 오후 3:26 [권윤성- 너도 알다시피 현민이 이 새끼가 자기가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사람 대하는 게 좀 그렇잖아] 오후 3:28 [권윤성- 그러니까 정이서도 현민이를 딱히 좋게는 안 대했지] 오후 3:29여기도 아마 한창 연말 시상식 무대를 준비 중일 텐데도 그 와중에 숙소에서 독립한다고 짐을 빼지 않나, 데면데면했던 놈을 갑자기 살갑게 대하지를 않나.
대놓고 수상한 짓을 하는 걸 보니 디데이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KICKS한테 단 한 개의 상도 쥐여 줄 수 없다는 정이서의 굳은 의지가 돋보였다.
[준비 잘 되고 있냐?] 오후 3:33정이서를 적당히 떠 볼 만한 문자를 드디어 생각해 내서 곧바로 보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다시 연습을 재개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기 직전, 답장이 도착했다.
[정이서- 다음 주부터 재미있는 거 볼 수 있을걸요?] 오후 3:49“오케이, 다음 주란다!”
그래, 나도 지능 외주 없이도 하면 한다니까!
* * *
“우와, 누가 보면 우리 그룹이 한 7년 차는 된 줄 알겠네. 벌써 숙소에서 독립하는 사람도 있고.”
대놓고 저를 꼽주는 최현민의 빈정거림에도 정이서는 묵묵히 짐을 쌌다.
“말 나오는 건 다 형이 감당하려고 이러는 거지? 설마 아무 대책 없이 나가지는 않겠지. 사람이 머리가 있으면 말이야.”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툭툭 치며 비꼬아 대는 최현민을 고요한 얼굴로 돌아본 정이서가 입을 열었다.
“현민아, 충고 하나 해 줄까?”
원하는 답이 아니라 잔뜩 인상을 찌푸린 최현민을 보며 피식 웃은 정이서가 말했다.
“사람 너무 믿지 마.”
범위가 너무 넓은 말에 저와 가까운 주변인들을 머릿속으로 훑느라 버퍼링에 걸린 최현민을 잡아끈 건 권윤성이었다.
“너는 또 시비 걸고 있냐. 그러지 말라고 했지. 쟤 그만 좀 괴롭히고 그냥 내버려 둬.”
최현민은 입을 댓 발 내밀면서도 제 리더의 손에 얌전하게 이끌렸다.
“이제 와서 이래도 딱히 안 고마운데.”
짐을 정리하던 손을 멈춘 정이서가 권윤성을 올려다보며 건조한 비소를 머금었다.
“내가 그렇게 꼴 보기 싫었으면 너도 이든이 따라서 나가지 그랬어. 그랬으면 그렇게 친했던 절친이랑 지금처럼 남보다 못한 사이는 안 됐을 텐데. 안 그래?”
그렇게 된 원인을 제공하다시피 한 놈이 혓바닥도 길다며 권윤성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 나 요즘 이든이랑 연락하잖아. 이든이는 네가 자꾸 친한 척 해오는 게 짜증 난대. 안 믿기면 문자도 보여줄 수 있어.”
걔가 퍽이나. 그리고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어. 정이서의 도발에도 권윤성은 아무런 동요 없이 최현민을 끌고 등을 돌려 정이서의 방에서 멀어졌다.
“이상하다…”
권윤성이 떠난 자리를 빤히 보던 정이서가 권윤성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나직하게 읊조렸다.
“왜 안 긁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