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38화(38/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화
아까보다 더 가라앉은 목소리에 생수병을 건네며 손바닥으로 견하준의 이마를 한 번 짚어 보았다.
아침에도 미열이 조금 있더니 여전히 이마는 뜨끈뜨끈했다.
“괜찮냐?”
두꺼운 겉옷을 건네며 묻자, 견하준이 그걸 담요 위에 덮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약 먹고 하루 푹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아. 어차피 오늘 라방 끝난 이래로 내일까지는 쭉 스케줄 없잖아.”
“간호는…… 하, 믿을 만한 놈이 없네. 나도 내일 하루 종일 작업실 있어야 할 각인데.”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얼굴들을 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회귀 전, 서예현이 몸살감기로 앓아누웠던 김도빈의 이마에 물을 짜지 않은 물수건을 고스란히 올려놓아, 상태를 더 악화시킨 걸 떠올리면 절대로 서예현한테는 견하준의 간호를 맡기고 싶지 않았다.
컴백 후 첫 음방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면 더더욱.
다른 두 놈도 간호는 해 봤을까 싶어서 영 못 미덥고.
당장 곡 작업보다는 모레 있을 음방이 더 중요하니 작업을 조금 미루고 견하준 옆에 있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 견하준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 간호받을 만큼은 아니야.”
“내일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하는 소리지. 약이랑 내 비타민이라도 챙겨 먹어. 보약은…… 으음. 그건 울 어머니가 내 체질 맞춰서 지어 왔다고 해서 준이 네가 먹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이따 라방 끝나고 어머니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
“……아니야, 보약은 너 먹어. 그것까진 진짜 괜찮아.”
회귀 전에 견하준의 몸살로 인해 첫 음방을 네 명으로 진행하는 참사가 일어난 적은 없었지만, 지금은 날짜가 한 달 반이나 앞으로 훅 당겨졌고, 음악과 안무도 달라졌다.
그러니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라며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가까이서 봐도 많이 아파 보이진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말고. 그리고 어차피 오디오 대부분은 류재희랑 김도빈이 차지할 거니까 무리하지도 말고.”
얘가 말수가 별로 없는 콘셉트란 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아니, 그런데 왜 자꾸만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거지……?
수면 부족 때문에 그런가 콘셉트라는 단어가 계속 거슬리는 이유를 도저히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마지막 순서로 견하준이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위클리 퀘스트 창을 열어 퀘스트 완수 목록을 확인했다.
내가 컴백 준비와 그놈의 크리스마스 기념곡 작사 작곡 탓에 거의 죽어 가자, 이 빌어먹을 시스템은 선심 썼다는 듯 다시 퀘스트 의무 완수 개수를 4개에서 3개로 줄여 주었다.
과로사로 사람 뒈지기 전에 2개로 내려 달라고 항의도 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얘들아, 라이브 5분 전이다! 준비하자!”
우리 앨범을 건네받고 내 발치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건네받은 스크립트를 확인했다.
대사라기보다는 오늘 컴백 기념 및 앨범 언박싱 등 라이브 방송에서 할 목록이 적혀 있었다.
간단한 노래 소개, 앨범 언박싱, 뮤직비디오 감상 리액션, 녹음 및 뮤직비디오 촬영 비하인드, 팬들과의 소통(Q&A).
일부러 생생한 리액션을 위해 우리는 아직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았다.
[On Air] 컴백 기념 및 앨범 언박싱!뒤에서 매니저 형이 입력하는 제목을 구경하며 훈수 뒀다.
“에이, 너무 뻔한 제목 아니야?”
“네가 아이디어 내라. 내 뻣뻣한 머리로는 이게 한계다.”
“앞에 ‘데이드림과 함께하는 레브의’ 붙여.”
음, 훨씬 나아졌군.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기 전, 앞에 서서 의자에 앉아 있는 멤버들을 쭉 훑으며 당부했다.
“라이브는 편집 안 되는 거 알지? 다들 말조심해라. 이거 해도 되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면 그냥 하지 마.”
서예현이 나를 매우 요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왜, 또 뭐.”
“아니, 그냥 네가 할 말인가 해서.”
CG 효과를 현실에서 띄울 수 있었으면 분명 내 주변에는 해골마크x100 표시가 떠 있을 거다.
여기서 또 대판 했다가 그대로 라이브 들어가면 불화설이 뜰 수도 있었기에 팀의 미래를 위해서 꾹 참고 류재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힘들겠지만 재희 네가 준이 몫까지 좀 커버해 주고. 알겠지?”
“라져. 맡겨만 주세요.”
씩 웃으며 경례해 보이는 막내 녀석 덕분에 나도 한시름 놓고 의자에 앉았다.
앉은 순서는 김도빈-서예현-나-견하준-류재희이었다.
“라이브 시작한다!”
매니저 형이 시작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 옆에 놓인 노트북에 우리의 모습이 비쳤다.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가 채팅창이 하나둘씩 뜨는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하나, 둘, Dream of me! 안녕하세요, 레브입니다!”
내 신호에 맞추어 일제히 구호와 인사를 내뱉으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우리 일몽이들! 보고 싶었어요!”
류재희가 양손을 흔들며 해맑게 인사했다. 김도빈이 그 인사에 불쑥 끼어들었다.
“제가 유제보다 우리 데이드림 분들 더 보고 싶었어요!”
“아니야, 내가 더!”
“나는 이만큼 보고 싶었는데!”
“나는 이마아아안큼이거든!”
내가 오디오 채우라고 했지 언제 너희들끼리 카메라 앞에서 유치하게 싸우라고 했냐.
류재희야 원래 저런 성격이니 그렇다 쳐도.
김도빈은 내 앞에서는 그리 소심하면서 카메라 앞에만 서면 인격이 바뀌는 게, 아주 천상 연예인이었다.
하필 또 자리도 양쪽 끝이어서 센터에 있는 내가 곧바로 제지도 못 한다.
큰 성량을 자랑해 대는 류재희와 김도빈을 향해 티 나지 않게 이를 갈다가 내 양쪽에게 눈짓했다.
“네, 우리 막내라인이 팬분들이 많이 그리웠나 보네요. 아, 물론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제압했는지 조용해진 녀석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팬들에게 인사했다.
옆에서 견하준과 서예현 역시 손을 흔들었다.
발치에 놓인 앨범을 들어 올리며 실질적 오프닝 멘트를 쳤다.
“네, 저희가 데뷔앨범인 미니 1집 에 이어서 3개월 반 만에 미니 2집 으로 컴백을 했습니다.”
“발음이 하이틴이었어? 나 계속 하이티엔으로 읽었는데.”
눈을 멀뚱히 뜬 서예현의 물음에 순간 말문이 막히자, 옆에 앉아 있던 김도빈이 대신 대답했다.
“계속 회의할 때도 하이틴이라고 했잖아여, 형…….”
“헐, 앨범 이름이 아니라 우리 콘셉트 이야기인 줄.”
서예현이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저렇게 무신경하면서 왜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그 무신경함의 반의반도 발휘하지 않는 거지? 선택적 무신경함이냐?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꾸역꾸역 삼키며 앨범 표지의 ‘HI-TN’ 글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하이틴이긴 하지만 예현이 형처럼 하이티엔으로 읽으셔도 무방하긴 합니다.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싶어서 이렇게 지었는데요, 발음과 같은 하이틴, 그리고 Hi Tonight의 줄임말입니다.”
“왜 Hi Tonight이죠?”
“타이틀곡 제목이 All Right or Night이니까……? 노래 내용에 맞춰서? 아, 이런 거 물어보지 마.”
“제가 아니라 팬분들이 궁금해하시잖아요. 그렇죠, 데이드림?”
“사실 하이틴 발음 맞추려고 별 의미 없이 지은 거라…….”
결국 순순히 양심 고백했다.
이전 라이브와 달리 채팅창을 실시간으로 보며 반응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조금 걱정되긴 했다.
그래도 초심도가 깎이지 않는 걸 보니 문제 되는 답변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마음을 놓고 곡 소개를 시작했다.
“저희 타이틀곡 는 분류하자면 댄스 장르의 일렉트로 신스 팝으로 저희 레브의 파워풀한 이미지와 하이틴에 걸맞은 상큼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드릴 수 있는, 말하자면 레브만의 색깔이 담긴 곡인데요. 자칫하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멜로디에 빠른 드럼 비트로 경쾌함을 더했습니다. 제목은 All right or all night, 오케이하거나 밤새 놀거나라는 뜻입니다. 즉, 승낙만 있고 거절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
툭, 내 허벅지를 치는 손길에 적당히 곡 소개를 마무리 지었다.
“……입니다.”
“와, 역시 우리 메인래퍼. 말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안 끊기고 줄줄 나오는 거죠?”
짝짝짝, 류재희가 박수를 치며 깝죽거렸다.
“그리고 수록곡 track 2인 은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이는 슬로우 발라드로 타이틀곡인 과 달리 일렉트로닉을 뺀 기타 사운드를…….”
수록곡 이야기는 타이틀곡보다는 짧게 마무리 짓고 앨범 언박싱으로 넘어갔다.
앨범 커버는 하늘색 배경에 노란색 글자로 제목이 박혀 있었다.
키치함을 잡기 위해서인 듯 작은 하트나 별 등이 프린트되어 있고, 카메라 표시처럼 각 모서리에 꺾인 선이 그어져 있었다.
‘앨범 커버 디자인 하나는 잘 뽑는단 말이지.’
앨범 역시 오묘한 색의 밤하늘에 별이 알알이 뿌려진, 꽤 괜찮은 디자인이었다.
거기서 건질만 한 노래가 원찬스밖에 없어서 문제였지.
“자, 그럼 이제 앨범 내부 공개!”
김도빈의 호들갑에 맞추어 앨범을 열었다.
하늘색 배경에 노란색 글자였던 앨범 커버와 대조적으로 CD는 노란색 배경에 하늘색 글자가 박혀 있었다.
포토북을 꺼내어 펼치자 선공개되었던 콘셉트 포토와 미공인 컷들,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 찍었던 컷 몇 개가 담겨 있었다.
중간에 끼어 있던 포토 카드가 툭, 떨어졌다.
“오, 저네요.”
포토 카드를 들어 얼굴 가까이 가져다 대며 한 손으로 브이를 그렸다.
“아, 참고로 포토 카드는 멤버들 개인컷, 그리고 단체 사진이 랜덤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다음은 뮤직비디오 리액션.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중앙에 놓인 태블릿으로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와, 진짜 저 때 NG 엄청 났는데.”
“아, 기억난다. 농구부 에이스가 골대에 골을 하나도 못 넣어. 완전 캐스팅 미스.”
“이든이 형, 저 무대공연 씬에서 진짜 노래 부른 거예요?”
“어. 랩을 할 수는 없잖아.”
“무슨 노래 불렀어요?”
“애국가 락버전.”
“예현이 형, 진짜 학창 시절에 저 수준의 인싸였나여?”
“아니, 매우 조용하고 얌전한 학생이었지. 친구도 많이 없었고.”
“그 얼굴로요……? 와, 그 얼굴 나 줬으면 구 단위의 파워 인싸 가능한데.”
“와, 저 치즈볼. 도빈이가 바닥에 떨어진 거 아깝다고 주워 먹다가 네가 아무거나 주워 먹는 동네 똥개냐고 이든이한테 혼났지.”
“이렇게 풀버전으로 보니까 뮤비 주인공은 하준이 형이었네요.”
“아, 내가 주인공이야?”
“여주랑 이어지면 남주죠!”
태블릿 때문에 옹기종기 붙어 있다 보니 견하준의 손과 내 손이 닿았다.
손바닥에 닿는 손등이 꽤 뜨거웠다.
견하준이 쓰러지기 전에 OA라이브가 끝날 수 있을 것인지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