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8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0화(38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0화
“그럼 홍콩까지 다들 걸어가게요? WAMA 끝나면 도착하겠네. 형들, 이러면 월드투어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우리의 앓는 소리를 받아 주지 않는 매정한 막내 때문에 다들 김샌 얼굴로 여권을 챙겼다.
“도빈아, 이번에는 쓸데없는 옷 안 샀지?”
감히 운명을 바꾸려 하다가 강제로 롤백되고 하와이 휴가 공항 패션으로 역대 두 번째로 끔찍한 토끼 후드티를 입게 되었던 서예현이 김도빈을 초조하게 돌아보며 물었다.
물론 첫 번째로 끔찍한 건 바로 내가 입었던 고양이 후드티였다.
토끼 후드티 내기를 하자고 할 때만 하더라도 시큰둥하더니… 역시 사람은 본인 일이 되어 봐야지만 심각성을 느끼는 모양이다.
“아, 맞다. 요즘 KICKS 터지는 거 구경하느라 주문하는 걸 깜빡했네. 이번에는 상어 후드티였는데.”
김도빈이 아쉬움이 듬뿍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대로 나머지 세 명의 얼굴에는 안도가 떠올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도빈이 주문할 상어 후드티야 뻔했기에. 백 퍼센트 후드에 상어 이빨 뾰족뾰족 달려 있는 거겠지. 그것도 수면 잠옷 하체만 뚝 잘라 놓은 듯한 퀄리티의.
내 미학에서 벗어나는 옷을 입고 공항 사진을 찍히고 싶진 않았다. 그건 고양이 후드티 한 번으로 충분했다.
“아쉽다. 이든이 형이 걸렸을 확률이 높았을 텐데.”
“왜 나야? 내 이미지가 상어야? 아니면 내가 뭐 상어 상이야?”
나의 벌칙 당첨을 확신하는 김도빈에게 이유를 묻자 김도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 모든 가설들을 부정했다.
“아니요? G-TE 보고 죠스바라고 했다면서요. 이런 건 원래 업보 맞는 법이에요.”
“얌마, 그래도 너는 내 편을 들어야지 형진이 편을 들어? 형진이한테 뭐 받았냐, 어?”
가볍게 헤드록을 빙자한 목 마사지를 선사해 주자 내 팔뚝에 낑긴 채로도 김도빈은 할 말을 다 했다.
“그리고 형은 상어 상이 아니라 호랑이 상… 상어 은근 맹하고 귀엽게 생겼어요. 이빨이 좀 무서워서 그렇지. 형이 상어 닮았다 하는 건 상어한테 실례예요.”
“목 마사지가 약한가 보다, 하하. 입이 안 쉬네.”
“켁! 상어가 귀엽다고 한 게 죄예요?”
팔을 풀어 주자마자 후다닥 내게서 멀어진 김도빈이 여전히 영 아쉬워하는 얼굴로 말을 뱉었다.
“그럼 상어 후드티는 다음 기회에. 짱 멋있는 걸로다가 골라 놨는데 진짜 아쉽다.”
“다음 기회는 뭔 놈의 다음 기회야. 제발 쓸데없는 것 좀 사지 마.”
“에이, 이런 거 몇 벌 산다고 제 통장이 텅 비는 것도 아닌데요, 뭐. 물론 형 통장에 쌓인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그렇게 올려치기 해도 그런 쓸데없는 짓에 대신 돈 내 줄 생각 없다.”
쳇, 김도빈이 들켰다며 혀를 내둘렀다. 내가 너랑 한 지붕 밑에서 산 지 몇 년째인데 그걸 모르겠냐.
회귀 전에 같이 지냈던 시간은 물론 세지 않았다. 그때는 한 숙소에 살면서도 교류가 거의 없었으니까.
지나치게 눈치만 보는 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눈치를 이렇게 안 보고 사는 놈이었을 줄이야. 못마땅하다기보다는 김도빈이 이제 내 앞에서도 편하게 제 본래 성격을 드러낸다는 게 마음이 놓였다.
“형은 이번에 무조건 따뜻하게 입어요.”
류재희가 나를 붙들고 신신당부했다. 너무 추워서 자기가 내 패션을 못 따라 할 것 같아서 그런가?
“왜? 나 추위 별로 안 타는데?”
“우리 휴가 때 형이 입은 숏코트 패션 춥다고 난리였어요. 숏코트랑 티셔츠, 캐시미어 목도리 조합으로 역병 돌았잖아요. 이번에도 형이 보온성 없는 패션을 택하면 형이 감기 발병률 증가의 원흉으로 기사에 박제될 확률이 없지 않다고요.”
“아니, 그러면 숏코트를 입고 이너를 두껍고 따뜻한 걸로 입던가. 누가 나 따라서 이 한겨울에 티셔츠 입으래?”
투덜거리자 류재희가 곧바로 반박했다.
“그 패션은 숏코트와 티셔츠의 조합이었기에 완성이었다고요.”
“나를 안 따라 하면 되잖아. 그렇게 간단한 문제 해결법이 있는데, 굳이?”
나는 그저 내 패션을 고수한 것밖에 없는데 왜 내가 한 패션들이 역병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가. 누가 따라 입으라고 확성기 들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쳤냐고.
삐딱하게 해결책을 선사해 주자 류재희의 표정이 부루퉁해졌다.
“형이 먼저 따라 하고 싶게 입어 놓고…!”
“왜 잘못을 나한테 전가하는 거지?”
어깨를 으쓱하자 동물 후드티를 입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 놓고 코디 조합을 찾아보던 서예현이 혀를 찼다.
“우리 막내는 가만 보면 윤이든 패션이랑만 엮이면 좀 망충해지는 거 같아.”
“나한테는 스스럼없이 멍청이라고 해대면서 왜 막내한테는 굉장히 순화된 표현을 쓰지?”
“그걸 진짜로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아니지?”
몸을 일으킨 서예현이 커튼을 쓱 들춰 창밖을 한 번 내다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케이, 아직 눈도 안 왔고.”
그러고 보니 오늘 일기 예보에 눈 온다고 했었지.
내가 내 차를 지하 주차장에 대 놨나 기억을 더듬어 보는 동안 문이 활짝 열린 우리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챙긴 서예현이 바지 주머니에 그 무언가를 쑤셔 넣고 성큼성큼 현관으로 향했다.
“얘들아, 다녀올게! 행운을 빌어 줘!”
멤버들, 특히 나를 향해 환하게 웃은 서예현은 무슨 노래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숙소를 벗어났다.
철컥,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대체 어딜 가는데 저렇게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행운을 빌어 달라는 거야?”
“로또 사러 가는 거 아니에요?”
“로또를 무슨 저렇게 동네방네 소문내면서 사러 가. 설마 도박은 아니겠지…?”
“에이, 형. 형 말마따나 누가 도박하러 가는데 저렇게 동네방네 말하고 가요. 행운토템 대표님 사진 챙겨서 말없이 쓱 가겠죠.”
“나 방금 예현이 형이 주머니에 뭐 넣는 거 봤는데?”
김도빈과 말없이 시선을 교환하다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씨바, 팀 비주얼이 사회면 1면에 얼굴 박히는 꼴은 못 본다!
당장 서예현을 쫓아 나가려 하던 우리를 만류한 건 류재희였다.
“도박 아니에요. 만약 진짜 예현이 형이 도박으로 사회면 1면 실리면 제가 이든이 형 패션 따라 하기를 포기할게요.”
“우리한테 그 조건이 대체 무슨 메리트가 있는데.”
“저한테는 엄청난 디메리트라고요.”
요리 너튜브 영상을 시청 중이던 견하준이 여상히 충고했다.
“그래, 재희야. 적어도 이든이랑 똑같은 옷 다 가져다 버리기 정도나 도빈이 패션 따라하기로 옮겨 가기 정도는 되어야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까?”
“1년 365일 후드티만 입고 살라고요? 그건 패션 문화의 붕괴예요.”
“후드티가 뭐 어때서!”
질색하는 류재희에 김도빈이 발끈했다.
그리고 서예현은 대략 두 시간 후에 나갈 때와 똑같은 밝은 얼굴로 숙소로 돌아왔다.
“형, 많이 땄어?”
“뭔 소리야?”
떠보는 소리에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류재희 말대로 정말로 도박은 아닌 모양이다.
“대체 요즘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오늘로 끝이야. 이제 우리 앞으로 쫙 스케줄 있어서 어차피 시간 빼지도 못하잖아.”
이제 눈이 오는지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커튼 틈새로 살짝 보이는 함박눈을 감상하며 서예현이 뭔 놈의 삼국지 등장인물처럼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하늘도 나를 돕는구나.”
무슨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이라도 일으키고 왔냐?
* * *
라이트그레이 롱 다운 아우터로 타협한 내 공항 출국사진을 보며 냉철한 평가를 내렸다.
“목 부분이 좀 밋밋해 보이는데. 퍼 후드로 입을 걸 그랬나.”
“왜요? 충분히 멋있어 보이는데요?”
“네 눈에 안 멋있어 보이는 내 패션은 대체 뭐냐?”
“고양이 후드티요.”
“그건 논외고, 인마. 내가 골랐냐. 김도빈이 골랐지.”
“레브 준비해 주세요!”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휴대폰을 내려두고 리허설을 위해 무대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현재 WAMA 시상식을 앞두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우두커니 서서 빈 관중석을 바라보던 서예현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기분 이상하다.”
“왜?”
“우리가 엔딩 무대를 장식한다는 게.”
제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선 나를 힐긋 돌아본 서예현이 다시 관중석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끝을 흐렸다.
“처음으로 서 보는 큰 무대라 엄청 긴장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오, 지금은 긴장 따위는 하지 않아도 실수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소리?”
이렇게 놀릴 수 있는 것도 서예현의 실력이 많이도 발전한 덕이었다. 그 당시의 서예현이 지금의 서예현을 보면 자기 자신이라는 걸 못 믿지 않을까.
여전히 앞에 시선을 둔 채로 서예현이 픽 웃었다.
“네가 나한테 그랬잖아. 너무 큰 실수만 아니면 실수해도 된다고.”
“뭐라고? 내가 그렇게 자비로운 말을 형한테 해 줬단 말이야?”
그때의 나는 시스템이 내리는 초심통에 굴복했단 말인가. 아무리 봐도 불화 조장을 만들지 않기 위한 감언이설인데.
“어, 내가 뉴 안무의 창시자로 유명한 덕에 발 방향 실수하는 걸로는 이슈 거리도 안 되니까 실수해도 된댔어. 아, 동선 꼬여서 멤버랑 부딪혀 자빠지면 이슈는 될 거라고도 했나?”
“음, 내가 할 만한 소리 맞네. 순간 형이 꿈이랑 현실을 착각한 줄.”
“그 말 듣고 위안은 되더라.”
“와, 형 마조야?”
“어떻게 너는 그때랑 똑같은 말을 하냐. 이런 건 하나도 안 변했어, 아오.”
차마 세팅해 놓은 자신의 머리에 화풀이는 하지 못하고 발만 탕탕 굴린 서예현이 투덜거렸다.
“너도 감성에 빠진 표정이길래 같은 생각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럼 너는 뭐 생각하고 있었어?”
사람 마음은 그렇게 잘 읽으면서 시선은 못 보냐. 내가 보고 있던 건 관중석이 아니라 가수석이었다.
“그냥, 올해부터는 여기 못 나오는 놈들.”
“아…”
단번에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린 서예현이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회귀 전에는 시상식에는 참가했던가. 이제는 슬슬 가물가물해지는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 과거랑 비교해 봤자 뭐하겠는가. 내가 지금 살아가는 현재가 더 중요하지.
“자, 대형 맞추고. 마지막 리허설인 만큼 본무대처럼 하자.”
여기저기서 시원하게 들려오는 멤버들의 대답을 듣고 있자 정말로 서예현의 말처럼 기분이 이상해졌다. 서예현이 말했던 것이 무슨 마음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참 많이도 달라졌구나,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