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8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2화(38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2화
‘와… 얘가 이렇게도 웃을 수 있었구나.’
카메라에 찍힌 윤이든의 미소를 멍하니 보던 홈마는 귀에 확 박히는 비트에 반사적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번쩍 고개를 들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전주는 팬들한테는 귀에 익었지만 팬이 아닌 이들의 귀에는 낯선 멜로디와 비트였다.
미니 4집인 [Attention]에서 와 타이틀곡 경쟁을 벌였던 <다시 시작해>.
와아아-
비록 역주행곡은 아니지만 강렬한 비트의 일렉트로닉 댄스곡인 이 곡은 무게감 있는 베이스 기반인 EDM이 돋보이던 로 달아오른 무대 분위기를 폭발적으로 확 끌어올려 공연장의 열기를 제대로 지피는 데에 큰 몫을 했다.
여유롭고 느릿한 제스쳐 같은 안무였던 와 달리 <다시 시작해>의 안무는 각 잡히고 파워풀한 군무였다.
콘서트에서 한 번, 그리고 컴백 첫 주에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 무대를 선보인 곡이었기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하게 되자 팬의 입장에서는 더욱 반가웠다.
곡에 집중이 되던 전 곡 무대와 달리 이번 곡의 무대는 백댄서까지 합류하여 무대를 채움으로써 퍼포먼스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첫 귀에 꽂히는 멜로디와 중독성 있고 따라 하기 쉬운 훅 덕분에 금세 입에 익어 후렴구를 흥얼거릴 수 있는 것도 무대의 몰입에 도움이 되었다.
최애 렌즈를 빼고 보더라도 무대에서 존재감이 압도적인 윤이든이나, 팀의 메인 댄서로 춤선에서부터 시선을 확 잡아끄는 김도빈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이를 담으며 홈마는 속으로 담백한 감탄을 내뱉었다.
‘쟤도 실력 엄청 늘긴 했다.’
초창기 레브를 퍼포먼스는 부족하지만 곡 퀄리티와 라이브 실력으로 승부하는 그룹이라고 평 받게 했던 서예현도 이제는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제법 수월하게 퍼포먼스를 소화해 내고 있었다.
엔딩 무대의 진정한 엔딩은 올해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청류가(淸流歌)>가 차지했다.
현대적인 무대 의상과 고풍스러운 부채 소품, 제법 절도 있는 안무의 삼박자가 잘 어우러져 무대를 볼 맛이 났다.
화제가 되어 여러 커버도 나온 서예현의 시조 랩과 그에 대비되는 윤이든의 빡센 리얼 힙합 랩.
그리고 앞선 두 곡의 단조로운 보컬은 잊으라는 듯 메인 보컬 유제와 리드 보컬 견하준이 내지르는 시원시원한 고음도 한몫했다. 그 기교 넘치는 보컬을 받쳐 주는 김도빈의 목소리도 안정적이었다.
정신없이 무대에 몰입하고 있으니 벌써 곡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후렴구가 다가왔다.
스파클 머신에서 분수처럼 터지는 불꽃과 천장에서 흩날리는 컨페티가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렇게 레브는 자신들이 엔딩 무대에 설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을 객석을 채운 이 많은 관객들과 TV로 WAMA를 보고 있을 시청자들 앞에서 완벽하게 증명해 보였다.
펼친 부채로 입가를 가리는 엔딩 포즈를 취하다가 제 얼굴 쪽으로 날아오는 컨페티를 향해 은근슬쩍 부채를 부쳐 컨페티를 멀리 날리는 윤이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카메라에 담은 홈마는 레브가 백스테이지로 돌아가자마자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오늘의 프리뷰를 업로드했을 때의 반응이 꽤 궁금했다.
* * *
“형, 떼창이랑 호응 들었어요?”
여전히 무대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은, 땀범벅이 되어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한 류재희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내게 물었다.
아마 류재희가 인이어를 빼 보라고 언질을 주지 않았다면 아마 회귀 전후를 통틀어 오늘 처음으로 서 본 엔딩 무대에서 그걸 듣지 못하고 내려갔겠지.
하지만 덕분에 오늘의 무대에 의미가 하나 더 더해질 수 있었다.
“거봐, 실패한 곡 아니라니까.”
류재희의 등을 가볍게 한 대 치며 씩 웃었다. 혀를 내두른 류재희가 툴툴거렸다.
“제가 형한테 해 드리고 싶었던 말을 형 스스로 하시네요.”
“스스로가 깨달아야지, 남이 백날 말해 봤자 본인에게 와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냐.”
수건을 건네받아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를 툭툭 털면서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소품 부채로 연신 땀 범벅인 얼굴을 부쳐 대고 있던 서예현이 물었다.
“갑자기 인이어 빼더니 그거 때문이었어?”
“아, 저는 음향 송출 문제 있어서 뺐어요. 그런데 마침 딱 떼창이 들려서 아, 이거 이든이 형 들려 줘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래, 고맙다.”
목에 걸고 있던 수건으로 류재희의 머리를 가볍게 헤집었다. 축축함이 느껴진 건지 류재희가 곧바로 목을 빼서 내 손길을 피해 댔다.
“악, 형! 형 땀 닦은 수건으로!”
“네가 예현이 형이냐? 언제부터 그렇게 깔끔 떨었다고.”
다시 수건을 목에 걸며 투덜거리자 서예현이 거기서 내가 왜 나오느냐고 발끈했다. 깔끔하다고 해 줘도 난리야.
“내년에도 엔딩에 설 수 있었으면 좋겠네. 꼭 WAMA가 아니더라도.”
미련이 남은 얼굴로 견하준이 무대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마찬가지로 무대를 돌아보는 류재희와 서예현의 얼굴에도 미련이 슬쩍 비쳤다.
김도빈이 인이어를 빼며 장난식으로 대꾸했다.
“그건 솔직히 소속사를 대형으로 이전해야만 가능한…”
“너는 평소에는 헛소리 헛생각 잘도 하면서 왜 이럴 때만 쓸데없이 현실적이냐?”
혀를 차자 형의 사고방식을 한 번 따라해 봤다며 김도빈이 변명했다. 류재희가 키득거리며 덧붙였다.
“아니면 누가 내년에 이든이 형처럼 덥넷 예능 하나 나가서 덥넷의 아들이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죠. 그러면 WAMA 엔딩 무대 정도는 또 확정일 테니까요.”
“윤이든 만큼의 포텐을 터트리려면 서바이벌 정도는 나가야 할 거 같은데.”
“예현이 형, DTB 시즌 5 갑시다.”
“나한테 왜 그래. 난 예선 1차 탈락이야. 그 흑역사를 평생 박제되게 만들 셈이야?”
시즌 4에 나왔다가 흑역사만 박제하고 갔던 아이돌 래퍼들이 서예현한테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어 준 모양이었다.
“코난 나비 넥타이처럼 초커 뒤에 오디오 마이크를 붙여서 예현이 형 목소리로 이든이 형이 대신 랩을 하고, 예현이 형은 립싱크만 하는 거죠.”
…뭐라는 거야. 코난 나비 넥타이가 뭐? 다들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김도빈은 계속해서 신나서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아는 분야가 나와서 자기 혼자 흥분한 오타쿠 같았다.
“그러면 이든이 형급은 아니더라도 제법 화제를 끌어모을 수 있을 수도? 이든이 형급의 어그로는 노력의 영역으로는 아무래도 불가능하니까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렇게 해서 내가 DTB 시즌 5 우승자 되는 것보다 우리가 대상 두 번 받는 게 더 쉽지 않을까?”
서예현이 떨떠름한 얼굴로 반문했다. 하지만 김도빈은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냐고 서예현을 쿡 찌르며 웃음으로써 서예현만 진지충을 만들었다.
“중소의 기적 한 번 되어 보지, 뭐.”
견하준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반은 장난을 담아, 반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대상도 받아 보고, 대형 소속사 아이돌들 제치고 엔딩 무대도 차지해 보고, 회귀 전에 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을 바라보며 가슴 한편에 품었던 모든 부러움과 미련을 지금 실현해 봐야지.
그때는 이룰 수 없는 꿈이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한 현실이니까.
홍콩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서치 퀘스트를 위해 내 이름을 검색했다.
조금 내리자 WAMA에서 찍힌 프리뷰가 바로 떴다.
EDEN81 @EDEN0801
20xx1222 WAMA
Preview #이든
#레브 #REVE #EDEN
(인이어_뺀_윤이든_미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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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어를 귀에서 빼고 미소지었던 순간은 딱 한 곡의 한 순간뿐이었기에 이 사진이 언제 찍힌 건지는 쉽게 유추 가능했다.
무대 위에서 떼창을 들으면서 내가 이런 얼굴로 웃었던가.
왜인지 낯설게 느껴지는 내 얼굴을 보다가 피식 웃으며 사진을 저장했다. 내 음악에 확신을 갖지 못할 때마다 이 순간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어서.
* * *
WAMA에 이어 크리스마스에 열린 뮤직대전까지 마치자 신년까지 나흘이 남았다.
다행히 올해는 KICKS가 시상식에서 빠지며 뮤직대전에서 예고만 되어 있었던 콜라보 무대가 무산되었기에 연습 시간을 더 늘리지 않아도 되었다.
와 <청류가(淸流歌)> 두 곡을 1절만 잘라 먹지 않고 온전히 할 시간을 준 건 의외였지만. 덕분에 올해 발매한 노래들로 무대를 잘 꾸릴 수 있었다.
순서도 엔딩은 아니었지만 엔딩 직전 무대였다. 뮤직대전의 엔딩은 항상 그렇듯 TK 소속 아이돌이 차지했다.
조기 퇴근하는 이 없이 다섯 명이 모두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게 낯설긴 했다.
재작년에는 두 명의 빈자리가, 작년에는 한 명의 빈자리가 있었으니까. 전원 성인 그룹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잘 났달까.
점점 새해의 1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류재희와의 사이 개선도 100 채우기 D-Day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다.
[▶멤버들과의 사이 개선도-서예현(100%)
-견하준(100%)
-김도빈(100%)
-류재희(99%)]
이렇게 지내면서 혹시 100이 되지 않았을까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확인을 해봐도 여전히 숫자는 99에 머무르고 있었다.
네 명 다 100을 못 채워서 ‘아, 나는 글렀구나’하고 데뷔 초로 회귀하면 억울하지나 않지.
딱 한 명과의 사이 개선도가, 그것도 100을 한 번 찍었던 사이 개선도가 딱 1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데뷔 초로 돌아가서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겠냐.
심지어 원인도 몰라서 계속 무한 회귀하면?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요즘 초심도가 내가 의도하지 않으면 딱히 안 깎이기도 하고, 시스템이 많이 유해졌기도 하고 내 문의에 대꾸도 꼬박꼬박 해주던 터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 이 시스템의 본질은 상당히 극악무도했다.
진짜로 진정한 From the bottom을 이루게 해 준다니까? From the bottom을 부르짖는 래퍼 놈들도 이 시스템 체험을 한 번씩 해 봐야 그 가사에 진정성을 팍팍 담을 텐데.
심지어 이 무한 회귀가 그저 협박이 아니라는 건 두 번이나 고통을 겪으면서 직접 체험해 보기도 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재희야, 너 혹시 나한테 무슨 말 못 한 불만이라도 있냐?”
나 자신한테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으니 상대한테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