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8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6화(38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6화
“야, 윤이든.”
“왜.”
“너 그때, DTB 우승 상품으로 차 받았을 때 나한테 넘기라니까 그때 네가 했던 소리 기억해?”
여전히 싱글벙글한 미소를 얼굴에 걸친 채로 내게 묻는 서예현을 보고 있으니 왜인지 모를 오싹함까지 느껴졌다.
저 인간이 드디어 미쳤나. WAMA 무대에서처럼 정말로 빈정거림을 들어야지만 기뻐할 수 있는 몸이 되어 버린 건가.
진짜로 그런 거면 내 죄가 크다. 우리 멤버 중에서 서예현에게 빈정거린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혹시 운전면허를 따서 이러는 건가 싶었지만 <몽유별곡(夢遊別曲)> 활동부터 하와이 여행이랑 연말 시상식 무대 준비까지, 서예현이 면허를 따기 위해 딱히 시간을 낼 틈이 없었으므로 그 가설은 머릿속에서 지웠다.
나도 면허를 따는 데에 꼬박 몇 주가 걸렸는데 우리한테 그나마 널널하게 주어진 시간은 딱 일주일뿐이었지 않나.
서예현이 그 기간 동안 바로 면허를 따기에는 불가능하다. 교육도 들어야 하고, 필기시험도 봐야 하는데 필기시험 공부만으로도 며칠이 걸리는걸.
대놓고 안도하며 내가 그때 서예현한테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읊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면허부터 따고 말하라고 했잖아. 그리고 형은 또 아주 당당하게 올해 딸 거라고 선언을 했었지.”
그다지 오래 지나지는 않은 일이었기에 기억이 생생했다.
만약 서예현이 그 당시에 면허가 있어서 내가 최형진이 아니라 서예현한테 차를 넘겼으면 이게 훈훈한 미담으로 포장되고 딜러와 카푸어 밈으로 나랑 최형진의 인증샷이 흥하고, 그 사진이 또 쿨거래 밈으로 쓰이고, 최형진이 레브 팬싸까지 등장함으로써 다시 한번 이슈가 되는 일은 없었겠지.
덕분에 우리 멤버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넘겼음에도 얻은 게 제법 많았기에 아깝지는 않았다. 형진이는 차 수리는 했나 몰라.
“또?”
“그러고 또 내년이 되면 똑같은 소리를 할 거라고. 내후년이 돼도. 3년 후가 돼도. 한 10년 후에는 땄으려나 모르겠다- 라고 했던가?”
왜 저렇게 안 좋은 소리를 끈질기게 다시 듣고 싶어 하는 거지? 진짜로 내가 서예현의 이상 취향을 적립하는 데에 한몫해 버린 건가.
잠깐만,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오소소 소름이 돋는 팔을 문지르며 남몰래 인상을 찌푸렸다.
“또?”
집요한 물음에 슬슬 지쳐서 손에 들고 있던 소주잔을 부러 거칠게 바닥에 내려놓으며 삐뚜름한 미소를 얼굴에 걸쳤다.
“어어, 형님이라고 불러 준다고 했지? 아쉽게도 물 건너갔네.”
거참 아쉽게 됐다. 만약 서예현이 면허를 따지 않았을 때의 조건도 달았으면 꽤 재미있었을 텐데.
내가 그 말을 내뱉자마자 서예현의 표정은 방금보다 더 환해질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환해졌다.
“아니, 아쉬워할 필요 없어.”
방으로 들어갔다가 지갑을 가지고 나온 서예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나랑 시선을 똑바로 마주한 서예현이 눈을 접어 웃었다.
“오늘부터 형님이라고 부르면 되거든.”
위풍당당하게 치켜올린 카드에 박힌 무궁화 무늬의 홀로그램이 숙소의 조명을 받아 반짝 빛났다.
서예현의 증명사진이 박혀있는 그 카드에 적힌 글자는 바로 ‘자동차 운전면허증’이었다. 왜인지 서예현이 하도 물어봐서 영 불안하더라니, 내 촉이 어김없이 또 들어맞았구나.
가끔씩은 들어맞지 않아도 좋을 텐데, 이런 젠장할.
홀로 음료수만 홀짝이고 있다가 슬쩍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서예현이 내 앞에 들이민 것을 훑은 김도빈이 눈을 크게 떴다.
“헐, 형도 면허 땄네요? 언제 딴 거예요?”
“발급 날짜가… WAMA 출국 전이구나. 올해 안에 따긴 했네. 우리 그 전전주에는 쭉 하와이에 있었지 않아? 형, 언제 딴 거야?”
마찬가지로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면허증을 구경하던 견하준의 물음에 서예현이 씩 웃으며 답했다.
“그 전주에 땄지. 하필 내가 도로 주행 시험 잡은 날짜에 눈 쏟아진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아주 귀신같이 내가 시험 끝나고 숙소 돌아온 이후에 눈이 오더라.”
하늘이 내게 당하고만 살던 데뷔 초의 자신을 불쌍히 여겨 형님 소리를 듣고 살 수 있도록 도운 것 아니겠냐는 헛소리를 내뱉는 서예현을 무시한 채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앞에 들이밀어진 운전면허증을 살피다가 믿기지 않는 글자를 발견했다.
곧바로 서예현의 손에서 운전면허증을 낚아채 조명에 이리저리 비추어 보았다.
“위조 아니야? 심지어 1종인데? 1종 보통을 일주일 만에 땄다고?”
“기능이랑 도로를 한 번에 패스했으니까. 도빈이가 너한테 달달 들볶이는 거 보고 지레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더라고? 그리고 나는 이미 2종 소형을 딴 경험이 있단 말씀.”
자세히 보니 1종 보통 덜렁 하나만 있는 내 면허증과 달리 서예현의 면허증에는 1종 보통 밑에 2종 소형이라는 글자도 적혀 있었다.
시바, 저게 뭐라고 멋있는 건데. 하지만 내 운전면허증에도 2종 소형을 추가하기엔 오토바이나 바이크 사고율이, 흠…
“아니, 그래. 기능이랑 도로는 한 번에 붙었다고 쳐. 그럼 필기는? 필기를 하루 만에 공부했다고? 형 필기시험 책도 안 샀잖아.”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어. 굳이 책을 안 사도 앱으로 공짜로 필기시험 대비도 할 수 있고 말이야.”
서예현이 이번에는 휴대폰을 내 앞에 고이 들이밀어 주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최신판 앱이 보였다.
그제야 휴가 가기 전부터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낼 때까지 휴대폰만 보고 살던 서예현의 행동에 관련된 퍼즐이 맞춰졌다.
김도빈처럼 씹덕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게 아니라 필기 공부를 하고 있었던 거구나. 그럼 우리가 서예현이 연애 중이라고 오해하던 건…
“그러면 휴대폰 보면서 왜 실실 웃고 있었던 건데? 필기 공부가 즐거웠던 거라면 형은 솔직히 연예인 체질이 아니라 대학원생 체질 아니냐?”
“그땐 필기 끝났을 때거든? 기능 시험 동영상이랑 도로 주행 코스 찾아보면서 네 그런 표정 볼 생각에 너무 행복한 나머지 웃음이 절로 나오더라고?”
“무슨 표정?”
“지금 네 표정.”
서예현이 휴대폰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바꾸어 친히 내 얼굴을 비추어 주었다. 넋이 나간 얼굴이 고스란히 휴대폰 카메라 화면에 담겼다.
세상이 내게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이래서 내기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였구나.
사실 뭐, 형님이라는 호칭 자체는 별 게 아니었다.
나랑 적당히 거리감 있는 친분을 유지하는 형들을 부를 때나 친한 형들에게 넉살을 떨 때 자연스러울 정도로 입에 붙은 호칭이었으니까.
당장 DTB 시즌 4에서도 내게 형님이라 불리는 래퍼가 몇인데.
그런 호칭이었지만 하필 그 대상이 된 이가 서예현이라는 게 문제였다.
서예현은 내게 형이라기보다는 생일이 나보다 몇 개월 빠른 관념적 동갑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형이라는 호칭도 옛다, 호칭 식으로 붙여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상위의 호칭을 서예현한테 붙이라니!
앞에 놓인 소주병을 덥석 잡고 병째로 입 안에 콸콸 쏟아부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었다.
대체 이놈의 호칭이 뭐라고 운전 면허를 일주일 만에! 그것도 몰래 숨어서 따고 난리야!
기대하는 듯한 초롱초롱한 눈빛을 앞에 두고 어렵사리 입을 열어 내뱉었다.
“(형)님.”
“형님에서 형은 어디로 날려 먹었어?”
“(형)님은 묵음 법칙도 몰라?”
“보통 형님에서 형을 묵음 처리하지는 않지? 형님이 언제부터 영어 단어였더라? 앞 글자 통째로 날리게?”
반박인지 빈정거림인지 모를 말을 쏟아내고 소맥잔을 들어 올린 서예현이 그걸 단번에 들이켜고선 짧은 비웃음을 내뱉었다.
“에휴, 짜치는 새끼.”
내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소주병과 맥주병을 양손으로 쥐어 동시에 한 잔에 따르는 기행을 보여 준 서예현이 제 옆에 있던 류재희를 쿡쿡 찌르며 삐딱하게 웃었다.
“막내야, 점마 한 입으로 두 말한다. ‘님’이 언제부터 형님이었냐?”
왜 서예현한테서 익숙한 태훈이 형의 향수가 느껴지는 거지.
홀로 술을 홀짝이던 류재희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피했다. 하, 새끼. 아직도 나한테 삐쳐 있구먼.
가까운 시일 내로 밥이라도 한 끼 먹이면서 사과를 한 번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깡소주를 들이켰다. 윤이든 참 많- 이 유해졌다.
“또 본가 간다고 현관에 드러누워서 난리 치지 말고 적당히 마셔.”
주량을 다 채웠는지 이미 제 잔을 내려놓은 견하준이 내 손에서 소주병을 뺏어 들었다.
“내가 그랬다고?”
“어, 네가 그랬어.”
견하준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별다른 술주정 없이 얌전히 본가로 돌아간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다니. 그래서 그날 아침에 견하준이 그렇게 지쳐 보였구나.
나도 딱히 포도의 강아지 하우스 옆에서 또 다시 눈을 뜨고 싶지는 않았기에 소주에서 맥주로 종목을 변경했다.
그런데 준아, 내 음주를 말리지 말고 내게 굳이 형님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서예현을 말려 주면 안 되냐.
하지만 견하준 역시 김도빈과 마찬가지로 흥미진진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관조하고 있었기에 견하준의 개입은 포기했다.
“진짜 형님 소리 듣고 싶어?”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며 진지하게 묻자 서예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그래. 그럼 내가 왜 연말 무대 연습이랑 면허 시험이랑 병행해 가면서 이 악물고 올해가 가기 전에 아득바득 면허를 땄겠냐?”
대체 무엇이 저 인간을 형님 소리에 집착하도록 만든 것인가. 그래도 내가 대외적으로는 형 대접 정도는 해 줬는데 말이야.
“후회 안 할 자신 있고?”
“후회할 일이 뭐 있어? 나는 밖에서 너한테 형님 소리 들어도 딱히 상관없는데?”
“아, 예, 형님. 그러시다면 제가 더 할 말이 없죠. 남아일언 중천금이니 한 번 내뱉었던 말은 지키는 게 도리 아니겠습니까-.”
두 손으로 소주병을 들어 서예현의 잔에 공손하게 한 잔 따라 주며 깍듯하게 대꾸했다.
“세상에, 얘가 나한테 존댓말을 해….”
서예현이 퍽 감동 받은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뭘 감동 받고 그래. 지금부터 시작인데. 점점 채워지는 서예현의 잔을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싹싹 빌면서 애원하게 만들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