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87)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7화(38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87화
제게 곧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내 입에서 나오는 형님이라는 호칭을 싱글벙글한 얼굴로 만끽하는 서예현의 음주 페이스가 한결 빨라졌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하자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나름 할 만했다.
물론 제가 드디어 맏형의 권위를 되찾은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서예현은 내 속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긴 했지만.
“형님, 한 잔 더 받으십쇼!”
“야, 이제 슬슬 그만 줘. 나 지금 좀 알딸딸해.”
“아, 형님. 실망입니다. 이 정도 주량도 못 버티면서 저한테 형님 소리를 들으려 했다니, 쓰읍…”
그 말에 오기가 생겼는지 이를 악문 서예현이 바로 바닥에 내려놓은 잔을 다시 들어 원샷했다.
한 놈은 주량이 맥주 반병이고 한 사람은 끔찍한 술버릇을 멤버들 앞에서 반강제로 공개한 후로 더욱 철저하게 주량을 지켰기에 현재 술을 들이붓는 이는 사실상 세 명이었다.
나야 뭐, 맥주만으로 주량 한계점에 도달할 리는 없었기에 마음 놓고 들이켰다. 내가 따라 준 술을 한 잔 더 마신 서예현이 갑자기 뜬금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진짜 얼마나 힘들게 이 면허를 땄는지 알아? 어? 너희들이 하와이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 나는 열심히 필기 공부를 했다고!”
이게 무슨 니들이 새벽에 잠잘 때 나는 노오력했다는 국힙 단골 가사 같은 말이야?
“너튜브로 맨날 기능 시험 순서랑 방법이랑 싹 외우고! 도로 주행 코스 너튜브에 검색해서 차선 어디에서 바꾸는지, 어디에서 꺾는지 다 외우고! 그런데 나 좀 운전 잘한대. 강사님이 그랬어. 연수 윤이든 니가 해도 문제없어. 어, 진짜로. 나 자신 있어.”
술잔을 들고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열변을 토하는 서예현의 잔에 또 술을 채워 주었다.
“내가 진짜 얼마나 힘들게 일주일 만에 면허를 땄냐면 말이야, 어?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하와이 해변에 누워 있고 싶었는데 필기시험 답 외웠잖아.”
“아, 예, 형님. 그러십니까.”
“그런데 나 운전 재능 좀 있나 봐. 나 잘한댔어. 윤이든 네가 연수해 줘도 내가 도빈이보다 덜 갈궈질 거 같아. 그런데 너 1종은 맞지? 2종 자동한테 연수받으면 1종 면허 보유자로서 좀 짜치는데.”
“아, 예예. 당연히 1종이죠.”
“넌 그럴 거 같았어. 그놈의 가오가 뭐라고. 이런 놈들 나 졸업하고 나서는 만날 일 없을 줄 알았는데 뭔 놈의 같은 팀에 딱 있냐.”
“가오 챙기는 사람들이 고등학교에만 있겠습니까, 형님.”
“너도 학창 시절에 그러고 다녔냐? 진짜 꼴불견이다. 그런데 나 진짜 1종 힘들게 땄어. 만약 도로 주행 떨어지면 일주일 만에 못 따니까 쉽게 2종 자동 따려다가 도빈이도 1종 땄는데 내가 2종 따긴 좀 그렇지? 싶은 거야.”
“저한테 왜 그러세요, 형. 거기에서 제가 왜 나와요.”
“그래서 1종으로 갔는데 나 딱 한 번에 붙었어. 나 운전 재능 있대. 연수해 봐. 내가 도빈이보다 네 잔소리 덜 들을걸?”
“이든이 형을 무시하지 마세요. 이든이 형은 형이 운전을 잘해도 핸들 잡은 각도로 눈을 부라리면서 고함 지를 사람이라고요.”
“너는 나한테 왜 그러냐, 도빈아.”
김도빈에게 목 마시지를 빙자한 헤드록을 선사하고 있자 서예현은 또 다시 ‘남들 다 놀고 있던 하와이 해변에서 홀로 쓸쓸히 필기 공부를 하고 있었던 나’로 회귀해서 한탄인지 자랑질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 진짜 1종 힘들게 땄어. 일주일 만에 못 따면 안 되니깐 나 진짜 1종 힘들게 땄어. 내가 얼마나 힘들게 땄냐면…”
스스로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걸 보아하니 서예현도 이제 슬슬 맛이 가고 있는 듯했다.
빈 잔을 흔드는 서예현의 옆에서 다시 소주를 채워 주고 있으니 견하준이 적당히 먹이라는 신호로 내 옆구리를 툭 쳤다.
타이밍 좋게 잔을 들이켠 서예현은 그 잔을 마지막으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거의 바닥에 머리를 박기 일보 직전이었던 서예현의 뒷덜미를 턱, 낚아채자 한숨을 내쉰 견하준이 몸을 일으켰다.
“내가 예현이 형 방에 데려다 놓을 테니까 너는 재희 방까지 부축 좀 해 줘. 도빈아, 여기 뒷정리 좀 싹 해 주고.”
서예현은 이미 블랙아웃의 영역으로 가 버렸기에 그렇다 쳐도 류재희는 멀쩡하지 않나 싶어 무심코 돌아보자 소리 없이 눈물을 질질 짜 대는 막내가 눈에 담겼다. 저건 술도 안 줬는데 혼자서 얼마나 마신 거야?
견하준의 지시에 반사적으로 일어나 맥주캔 두 개를 손에 쥐던 김도빈이 갑자기 멈칫하더니 눈을 깜빡였다.
“제가 류재, 아니 재희 룸메이트인데 이든이 형이 뒷정리하고 제가 재희 방으로 데려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사람이 취하면 솔직해지는 법이잖아. 재희도 털어놓을 때는 털어놔야지.”
“아, 맞다.”
섬세한 견하준의 설명에 김도빈이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부축하자 우느라 빨개진 눈으로 나를 곁눈질한 류재희가 고개를 마구 저어 댔다.
“뭐야… 예현이 형으로 바꿔 줘요. 형보다 예현이 형이 훨씬 섬세해서 좋다고요…”
“허구한 날 내 옷 탐내더니 이건 또 예현이 형 선호냐?”
삐딱하게 웃으면서 묻자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류재희가 이죽거렸다.
“예현이 형? 형님이라고 안 불렀다고 예현이 형한테 다 말할 거예요.”
“말해라, 말해. 내가 그 형이 무서워서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겠냐.”
나도 비웃음으로 맞받아쳤다.
내가 자기가 안 보인 곳에서 형님이라고 자기를 부르지 않는다는 걸 서예현이 알게 됐다? 그러면 약 오른 서예현 하나 생기는 것밖에 더 돼?
“왜 예현이 형이 초반에 형이랑 그렇- 게 사이 나빴는지 알 것 같았어요. 형은 진짜 말로 천 냥 빚질 인간이에요.”
어깨에 팔을 걸친 채로 방까지 질질 끌고 와서 제 침대에 던져 주자마자 류재희가 괘씸한 소리를 내뱉었다.
“가족 욕하는 건 그 사람을 욕하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형도 누가 형 조부님을 형 앞에서 욕하면 아무리 조부님이 형한테 그러셔도 화는 날걸요.”
그야 그렇겠지. 우리 할아버지는 적어도 내가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중고나라에 팔아넘기지는 않았으니까.
류재희는 제게 당연하다는 듯 돈을 요구해 대는 가족들에게 실망했어도 여전히 가족을 놓지는 못한 모양이다.
여전히 가족이라고 생각하니까 안 좋은 소리도 곧 자기가 듣는 소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회귀 전에도 가족 때문에 그렇게 힘들어해 놓고선. 매정하지 못한 걸 멍청하다고 할 수도 없고, 참… 어느새 땀에 젖은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류재희가 중얼거렸다.
“아무리 류재경이 글러 먹었어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요…”
아니, 네 동생 그 정도 맞다니까.
“너도 괜히 불안하니까 그렇게 더 과민반응하는 거 아니냐?”
헛웃음을 내뱉으며 정곡을 찌르자 류재희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술기운에 흐릿해진 눈동자로 나를 마주 본 류재희가 미약하게 웃었다.
“불안할 게 뭐 있어요. 어차피 형은 사람 보는 눈 없잖아요. 그러니까 낙하산이 형 뒤통수 치기 직전까지 모르고 있었지.”
말하는 싸가지 좆되네-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류재희라 봐줬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미 정색 빨고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윽박질렀을 텐데.
평소에는 마음에 쏙쏙 드는 말만 해 주더니만 수틀렸다고 밉상 같은 말만 내뱉는 류재희의 주둥이를 쭉 잡아 늘리며 짜증 섞어 실소했다.
“하, 짜식이 형을 물로 보네.”
고개를 마구 흔들어 겨우 주둥이를 꼬집은 내 손길에서 벗어난 류재희가 웅얼거렸다.
“이해 좀 해 줘요… 이번에는 형이 틀려야 해요…”
땀에 젖은 뒷머리를 쓸어올리던 손이 멈칫했다.
“본가에 그거, 형들이 준 생일 선물 두면서 팬서포트 받은 거라고 말하고 왔어요. 못 팔 거예요. 그래, 안 팔 거야. 내가 부족하게 해 준 게 뭐가 있는데 류재경이 설마 나 욕 먹일 짓을 하겠냐고….”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 류재희가 환하게 웃었다.
“형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에요. 나는 형이 슬럼프도 금방 극복해 내서…”
극복해 내서 뭐. 사람을 열받게 하는 건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 어?
그 말을 끝으로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스르륵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든 류재희의 목 끝까지 이불을 대충 덮어 주고 심란해지기만 한 상태로 방을 나왔다.
씨바, 이거 맞추면 난 이제 존나 완벽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건데? 그럼 또 류재희랑의 사이 개선도가 깎이는 거 아닌… 어?
벙찐 얼굴로 류재희가 잠들어 있는 방을 돌아보고 있자 내 품에 소주병을 안겨 준 김도빈이 나를 툭툭 쳤다.
“형, 왜 그래요? 재희가 형 꼴 보기 싫대요?”
“너 인마, 자기 일 떠넘기는 게 아주 수준급이다?”
다시 김도빈의 품에 소주병을 토스하며 투덜거렸다. 소주병을 품 안 가득 끌어안은 채 재활용 백이 있는 다용도실로 터덜터덜 향하는 김도빈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중얼거렸다.
“사이 개선… 그래, 호감이 아니라 개선이었지.”
사이 개선도가 100%가 되었지만 여전히 서예현은 나를 “야, 윤이든”으로 부르고 견하준보다는 멀게 여기며, 김도빈은 아직도 가끔 내게 쫄고, 견하준과 나는 한 번씩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100%가 완벽한 관계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구나. 나랑 멤버들 사이에 회귀 전부터 쌓인 벽을 부수는 거였지.
내가 류재희를 그동안 너무 어른스럽게만 봐 왔음을 문득 깨달았다.
서예현이, 그리고 내가 말했던 대로 류재희는 아직 어렸음에도.
그렇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1%, 아니 이제 2%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게 나인지 류재희인지.
* * *
신정으로부터 하루 후에 서예현한테 그가 그토록 바라던 운전 연수를 한 번 경험하게 해 주고 이삿짐도 어느 정도 다 쌌다.
물론 서예현은 그렇게 자신만만한 것 치고 내게 김도빈보다 몇 배는 더 욕을 들어먹은 후에야 그것이 면허 따는 초보자를 위한 입 발린 칭찬이라는 걸 인정했다.
이사도 당장의 급한 일이었지만 그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앞서 있었다.
“대상은 못 받아도 본상은 받을 거 같은데 수상 소감 어쩌냐…”
“나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윤이든 너는 왜 전부터 그렇게 인상적인 수상 소감에 집착을 해?”
“형님, 인상적인 수상 소감 하나 뽑아 주실 거 아니면 방해하지 마십쇼. 형님 이해 따윈 바라지 않습니다.”
내게는 이제 거의 페널티 받는 날로 명명되는 시상식이 코앞이었다.
참, 서예현이 형님 소리에 학을 떼게 만들어 줄 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