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9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92화(39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92화
제일 속내가 복잡한 게 견하준도, 서예현도 아닌 류재희였을 줄이야.
제법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동생인 터라 슬쩍 엿본 속내가 더 충격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그 속내를 내가 쉬이 이해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내가 알던 류재희는 은근한 인정 욕구가 있긴 해도 그걸 굳이 대놓고 드러내진 않으며 내 몇몇 면을 동경하며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똑소리 나는 동생이었다.
그런데 그 동경하는 형이 완벽한 사람은 아니길 바라는 건 대체 무슨 심리냐고.
자기가 따라잡을 수 있기를 바라는 건가? 류재희가 그렇게 야망이 컸나?
“형?”
나를 심란하게 만든 원흉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위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데뷔 초의 동글동글한 모습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쟤가 벌써 스물한 살이라니. 시간 참 빠르다.
다시 돌아온 데뷔 초의 나이보다 회귀 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의 나이와 더 가까워졌다니. 그리고… 세월이 그렇게 될 동안 나는 여전히 류재희를 모르고 있었다니.
내가 대꾸 없이 빤히 저를 바라보자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류재희가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허공을 무섭게 노려보고 계세요. 도빈이 형이 형 지금 귀신이라도 보고 있는 거 아니냐는데요?”
과연 김도빈이 할 만한 헛소리였다.
“왜 남의 방에 와서 훔쳐보면서 그런 헛생각을 하고 난리야?”
“훔쳐보다뇨. 하준이 형이 슬슬 다시 정리 시작하자고 해서 형 부르러 온 건데요.”
김도빈이 잔뜩 억울해하는 목소리로 반박했다.
“차암 상상력이 무궁무진해, 우리 도빈이는. 지난번에 홍천 펜션 갔을 때 밤중에 노래방 기기 켜진 걸로도 귀신 있다고 난리를 치더니.”
여전히 소파에 드러누운 채로 고개만 슬쩍 움직여 방문 옆에 바싹 붙어 있는 김도빈을 돌아보며 이죽거렸다.
“포착 엑소시스트에 나왔잖아요. 제가 그 이후에 이모한테 전화해서 방송에 나온 거 다 진짜였냐고 물어보니까 그거 다 진짜랬어요. 촬영 끝나고 무당이 이모한테 부적 몇 개 써 주면서 당장 이 펜션 팔든지 허물든지 하랬대요. 터 진짜 안 좋다고.”
“방송 측에서 비밀 유지해 달라고 했나 보지. 비밀 유지 조항 몰라, 어?”
“조카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잖아요.”
“왜 없어, 인마? 조카도 남이지.”
정말로 남보다도 못한 고모를 떠올리며 대꾸했다. 내가 이모는 없어도 고모는 있다고.
“그리고 진짜 집에 귀신 있어 봤자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우리 내일 이사 가잖아. 이 집 뜨면 그만이지.”
“만약 붙어서 따라오면요?”
“도빈아, 1절만 하자.”
“넵. 어차피 따라와도 형이 잘 쫓아내 줄 거 같아요.”
내가 아이돌이지 무당이냐? 귀신 쫓게?
끝까지 헛소리를 해 대는 김도빈에게서 신경을 끄고 류재희를 불렀다.
“야, 재희야.”
류재희가 말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너무 완벽해서 부담스럽냐?”
나름 진지한 질문이었건만 류재희가 몹시 떨떠름해하는 얼굴로 즉시 고개를 저어 부정의 뜻을 나타냈다.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류재희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그룹에 배우로 전향해야 할 사람이 차암 많아. 그 연기 재능 서예현한테 기부나 하지. 노래도 잘하는 놈들이.
“그야 네가 나를 참으로 열심히 따라 하니까?”
자기 속내 까발렸다고 사람 꼽주는 게 마음에 안 들었긴 하지만 멤버들 앞에서 류재희의 그 내밀한 속내를 까발릴 수는 없었기에 대충 둘러 대자 류재희가 뻔뻔한 얼굴로 웃었다.
“그렇게 말해도 저는 계속 형 따라 할 건데요. 물론 형이 완벽하지는 않지만요.”
“그래라, 그래. 누가 하지 말라냐.”
이 자식, 내가 완벽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자기의 소망을 대놓고 진실처럼 말하고 있어.
내가 류재희를 이해하는 게 남은 1%를 채우는 정답인 건지, 아니면 류재희가 생각을 바꿔 먹는 게 남은 1%를 채우는 해결책인 건지.
전자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류재희의 속마음을 알아야 하는데 과연 내가 류재희의 속마음을 끌어낼 수 있을까. 류재희가 내 앞에서 제 속마음을 털어놓기는 할까.
그냥 류재희가 생각을 바꾸는 게 더 빠를 수도.
그게 이제 이번 달 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문제지.
중고나라 사건이 터지면 팬들의 선물을 팔았던 회귀 전보다는 사건의 경중이 훨씬 가벼워 당시의 멘탈 상태까지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멘탈이 나가기는 할 류재희를 위로해 주면서 류재희와의 진지한 대화 정도는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류재희의 비극을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나 자신한테 회의감이 몰려와서 문제지.
“재희야, 미안하다.”
“됐어요, 진작 다 풀렸어요. 사과를 몇 번이나 해요.”
류재희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정 그렇게 미안하시다면 저 드레스룸 짐 정리, 형 거랑 제 거 구분하는 일은 형이 도맡아서 해 주시든가요.”
“그거면 되냐? 알았다, 쉬고 있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류재희가 당황했는지 다급히 나를 붙잡았다.
“그냥 해 본 소리인데 왜 갑자기 진지하게 받아들여요. 보통 때의 형이었으면 ‘음,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라고 받아쳐야 하잖아요.”
“너는 왜 미안해서 해 준다고 해도 난리냐.”
“형 평소 반응이랑 너무 달라서 그렇죠. 설마 제가 며칠 형한테 삐져 있었다고 제가 어려워지기라도 한 건 아니죠?”
“며칠 삐친 걸로 네가 어려워지기야 하겠냐.”
류재희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놓으며 나란히 다시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그렇게 멤버 다섯 명이 달라붙어 열심히 드레스룸을 정리한 결과….
“이야, 그래도 상자 하나에 다 들어갈 수 있을 만큼으로 정리 못 한 짐 줄이기 성공했다!”
“결국은 다 정리 못하고 가는구먼. 어떻게 예상에서 벗어나지를 않아.”
그래도 한 상자로 줄이는 것에 성공했다.
“내일 입주 청소 끝나고 짐 정리도 다 해야 하니까 다들 늦게 자지 말고. 특히 도빈이.”
“넵.”
각자 방으로 흩어진 후, 김도빈한테 문자를 넣었다.
[너 안 잘 거면 새벽에 중고나라나 좀 살펴라] 오후 10:32 [김도빈- 캐롯마켓이랑 중고나라 모니터링은 재희 몫이고] 오후 10:33 [김도빈- 저는 번개장터에요] 오후 10:34 [새벽에 재희가 중고나라 살피겠냐? 잠 안 자고 있는 너나 가능하지?] 오후 10:35결국 나는 김도빈을 중고나라 모니터링에 써먹는 걸 포기했다. 나도 새벽 1시까지 중고나라를 살피다가 결국 몰려오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확인하지, 뭐.
* * *
다음 날 아침.
중고나라에 아직도 우리의 선물들이 올라오지 않은 걸 확인한 내가 안도와 초조함이 반반 섞인 감정을 감내하고 있을 때, 멤버들은 사다리차로 옮겨지는 이삿짐을 보며 숙소를 떠나는 소감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 <마이돌 관찰카메라> 한창 촬영할 때 이사 오지 않았나? 시간 진짜 무슨 일이야.”
“추억이 새록새록하네여. 이 숙소 처음 왔을 때는 반지하에서 막 벗어난 터라 너무 감격스럽고 최고의 집이었는데 본가 한 번 다녀오니까 이 숙소도 딱히 좋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었는데.”
“형 본가가 너무 좋아서 그렇지, 이 집도 꽤 괜찮은 편이야.”
류재희가 딱히 동의하지는 못하겠다는 얼굴로 슬쩍 김도빈을 돌아보며 반박했다.
서예현이 시원섭섭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잘 풀린 일들이 많았잖아?”
“에엥, 형님. 그렇게 치면 반지하에 있을 때도 잘 풀렸지 않습니까. 우리가 반지하에 있으면서 잘 풀렸기 때문에 이 집으로 이사를 온 게 아닙니까.”
내 반박에 곧장 표정을 구긴 서예현이 무어라 하기 전에 이삿짐센터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폐기물 처리할 거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 네. 여기 장식장이랑요, 식탁이랑 의자도 싹 폐기 처리고요….”
서예현이 직원분한테 다시 폐기물 목록을 말하는 동안 마지막으로 숙소를 한 번 쫙 둘러보았다.
“반지하 때는 속이 후련했는데 이 집은 막상 떠나려고 하니까 아쉽네.”
“쭉 숙소 생활 하면서 나름 추억이 많이 쌓인 곳이잖아.”
“다음에 입주하는 사람들도 잘됐으면 좋겠다.”
제법 정이 든 숙소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우리는 새 숙소로 출발했다.
“영진이 형, 새 숙소 방 몇 개예요?”
“너희가 직접 가서 봐. 미리 말하면 기대감 떨어진다.”
“야야, 류재. 숙소 장난 아니게 좋은가 봐. 영진이 형 얼굴에 미소 걸린 거 봐 봐.”
“형, 숙소 몇 평이야? 이번 숙소보다 좁지는 않지?”
내 물음에 매니저 형이 너스레를 떨며 대꾸했다.
“당연히 넓어져야지. 소속사 사옥은 키우면서 너희 숙소는 줄여 봐라. 무슨 말이 나오겠냐.”
그렇게 기대감을 안은 채 드디어 새로운 숙소에 첫 입소했다.
“와, 복층이다!”
“와, 방 다섯 개야! 드레스룸도 따로 있어요, 형들! 방 하나 안 비우고 각자 독방 써도 돼요! 드디어 새벽까지 휴대폰 한다고 내게 잔소리할 사람이 없어졌군!”
가격이 전 숙소의 몇 배로 훌쩍 뛴 거 같은데? 소속사가 양심은 있구나. 매니저 형 말마따나 사옥은 그렇게 확장해 대면서 이사는 안 시켜 줘서 속으로 욕 좀 하고 있었는데.
넓고 깔끔한 복층 숙소를 둘러보며 견하준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집을 위해서 그렇게 이사가 늦어졌구나.”
“방 두 개 있는 반지하에서 부대끼면서 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방 하나씩 쓰는 복층 숙소까지 왔다니, 어떤 의미로는 진정한 From the bottom이다. 이 정도 서사 없는 놈들은 그걸로 가사 쓰는 거 싹 다 금지시켜야 해.”
“오, 형님. 굉장히 힙합 마인드가 되셨습니다? 진짜 DTB 시즌 5 준비라도 하십니까?”
서예현의 감상평에 짝짝 박수를 보내며 중고나라 모니터링에 다시 돌입했다.
내가 봤을 때 100% 오늘 아니면 내일이 중고나라에 올리는 D-Day라니까.
이사 당일과 이사 다음 날이 짐 정리로 제일 정신없을 때 아닌가.
만약 중고나라 올려 놓고 안 팔리면 고스란히 돌려주면 되는 거고, 팔리면 잃어버렸거나 친구에게 빌려줬다고 오리발 내밀면 되는 거고.
값이 제법 나가는 것들인 만큼 가격을 후려쳐서 올려놓으면 빠르게 팔릴 확률도 높아질 테고 말이다.
어느 측이든 류재희 첫째 동생이 손해 볼 건 없다.
당연하다, 애초에 류재희 첫째 동생의 것이 아니라 류재희의 것이니까.
“그런데 너는 무슨 새집으로 이사를 와서도 집 구경을 하는 게 아니라 계속 휴대폰만 보고 있어? 휴대폰 화면에 무슨 꿀이라도 발라 놨-”
내가 손가락을 멈칫한 것과 서예현의 시선이 내 액정에 닿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판매자 프로필을 터치하니 판매 목록이 나왔다.
그 판매 목록의 익숙한 물건들을 눈치채지 못할 서예현이 아니었다.
“야, 이거….”
곧바로 서예현의 입을 틀어막으며 낮게 속삭였다.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