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9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93화(39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93화
서예현이 고개를 마구 저어 대는 통에 서예현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문 서예현이 목소리를 잔뜩 낮춰 속삭이듯이 내게 따졌다.
“내가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왜 뜬금포로 내 입을 막고 난리야?”
“형님이 입 여니까 자동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니 부디 노여움을 거둬 주십쇼.”
“왜 이제 조선시대까지 회귀했냐? 내가 무슨 주상 전하야?”
그 말을 하는 서예현의 목소리에 뿌듯함이 묻어 나와서 영 재수 없었다. 내가 설마 자기를 주상 전하로 대우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깍듯함의 정도를 조금 낮춰도 될 것 같았다.
혹여 우리가 가까이 붙어 있으면 멤버들이 이상함을 눈치챌까 봐 발 두 개가 들어갈 만한 거리를 두고 서예현과 나는 류재희의 첫째 동생으로 추정되는 판매자의 판매 목록을 천천히 다시 훑었다.
“결국 올라왔구나. 언제야?”
“3시간 전이네. 우리 한창 이전 숙소에서 짐 빼느라 정신없었을 때. 내가 다 지켜보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새로 고침만 하고 있었는데 무심결에 넘겼나 봐. 젠장, 밑에도 좀 내려보면서 훑어볼걸.”
류재희한테 닿지 않을 만한 크기의 목소리로 속닥거리다가 방금의 재수 없는 서예현의 표정이 그의 얼굴에 걸린 걸 보고 곧바로 형님체로 되돌렸다.
“아무튼, 그렇게 찾았습니다, 형님.”
서예현의 얼굴이 금세 벌레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슬쩍 류재희를 돌아보자 아무것도 모른 채로 2층 발코니에 김도빈과 나란히 기대어 잔뜩 들뜬 얼굴로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오늘이 팔아 치우기 제일 좋은 날이라고 해도 류재희가 이렇게 기뻐하는 날에 동생이라는 놈은 찬물 수준도 아닌 얼음물을 끼얹고 난리냐고, 망할.
“오늘같이 기쁜 날에 막내 기분을 내핵으로 꽂고 싶지 않은데 어떡합니까, 형님. 빨리 머리 굴려서 좋은 아이디어 좀 내 보십쇼.”
원래 계획은 류재희가 가족을 향한 실낱같은 마지막 기대를 산산이 부술 수 있도록 이걸 직면하게 하는 거였지만 막내가 지금 새 숙소에 이사 와서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데 이 좋은 날을 최악의 날로 기억되게 만들라고?
차라리 차연호를 한 번 더 도발해서 그놈의 위험도인지 뭔지를 넘기게 만들어 그때처럼 회귀를 피하는 대가로 서른 살의 나를 소환하는 게 낫지.
김도빈한테 미친 서른 살 내가 타투 늘리는 거 필사적으로 막으라고 미리 말해 놓고.
한참을 고민하던 서예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꾹꾹 눌렀다.
“이걸 어떻게 상처를 안 받아. 차라리 우리가 먼저 이거를 구매해서 몰래 막내 방에 넣어 놓고 저주 걸린 물건이라 돌아왔다고 하는 게 그나마 제일 들어 먹히겠다.”
“막내가 일곱 살도 아니고 그게 들어 먹히겠습니까. 형님도 이제 도빈이한테 물드셨습니까?”
“내가 설마 이게 먹히길 바라면서 이런 아이디어를 냈겠냐? 그냥 얼척 없는 마음이 더 커져서 이렇게라도 재희 상처를 덮기를 바란 거지.”
퍽 걱정하는 표정이 서예현의 얼굴에 걸려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문득 궁금증이 들어 물었다.
“그런데 형님, 만약 저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실 겁니까?”
“어쩌긴 뭔 어째. 톡으로 링크 던져 주는 거지. 너는 막내처럼 섬세하지 않고 무신경하니까 괜찮아. 알아서 그놈 털고 알아서 회복할 거잖아.”
“윤이든 차별을 멈춰 주십쇼.”
나는 인간 형제가 없으니까 부모님의 현 막내 아들인 포도에게 대입해 보았다. 만약 포도가 류재희 첫째 동생처럼 그런 짓을 한다면?
우리 포도가 그러리라곤 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데. 적어도 우리 포도는 그렇게 배은망덕하지는…
본가에 갈 때마다 간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면 간식만 쏙 먹고 다시 엄마한테 가 버리던 포도가 떠올랐다. 흠, 이것도 배은망덕의 범주에 포함되려나.
이런 짓을 한 게 포도라고 생각해 보니 그런 싸가지 첫째 동생을 놓지 못하는 류재희가 조금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포도가 그럴 리는 없지. 강아지가 어떻게 중고나라에 물건을 팔아. 그게 가능하면 우리 포도는 진작 <세상에 저런 일이>랑 <애니멀팜>에 출연했을 거다.
내가 헛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손가락을 뻗어 쓰윽 내 휴대폰 화면을 내려본 서예현이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격 엄청 후려쳐 놔서 이거 백퍼 팔릴 거 같은데.”
“아, 씨ㅂ… 이 와중에 벌써 하나 팔렸네.”
판매 완료가 뜬 게시글을 보자마자 절로 터져 나오는 욕을 꾸역꾸역 삼키며 인상을 팍 찌푸렸다.
심지어 팔린 건 내가 류재희한테 선물로 준 것이었다.
이거 시발 회수 가능하나? 못 찾아오면 깜빵 갈 줄 알라고 협박 좀 할까? 내가 아버지 명함이 있었던가? 일단 할아버지 명함이 없는 건 확실한데.
젠장, 이럴 때를 대비해서 할아버지 명함 하나 받아 놓을걸.
근시안적이었던 과거의 나를 한탄하며 무심결에 다시 2층의 발코니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 사이 김도빈과 류재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왜인지 드는 불안한 촉에, 들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끔과 동시에 뒤에서 류재희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형들은 집 구경 안 해요? 왜 계속 답지 않게 나란히 서서 이든이 형 폰만 보고 있어요?”
놀란 마음을 바로 갈무리한 나와 달리 티 나게 화들짝 놀란 서예현이 얼버무렸다.
“어, 어…? 집 구경? 당연히 이제 해야지.”
“집구경이 별거 있냐? 여기에서 집 돌아보면 그게 집구경이지.”
망할, 말 하나 딱딱 못 맞추냐.
원망을 담아 힐긋 노려보자 우연찮게도 서예현 역시 나랑 별다를 바 없는 눈초리로 나를 돌아보았다.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휙,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나처럼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만 아마 서예현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
“재희 너 2층 방은 다 보고 내려왔냐?”
“그냥 보기만 했어요. 1층 방 봐 보고 다시 2층이랑 비교해 보려고요.”
“그래, 그래라. 형님, 저희는 발코니나 구경 가시죠.”
복층 1층에 위치한 방으로 류재희의 등을 떠밀고 무사히 발코니로 피신을 성공했다.
혹여 또 류재희가 우리 등 뒤에서 접근해 올까 봐 몸 방향을 집안으로 향한 채 심각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일단 여기서 더 팔리기 전에 우리가 사죠, 형님.”
함께 올라온 아이폰과 아이패드, 그리고 구매자의 취향을 알 것만 같은 것들을 서예현한테 보여 주며 속삭였다.
“우리? 나도 사야 해?”
“지금 보면 다른 것도 같이 올려놨지 않습니까. 한 사람이 막내가 맡긴 것만 쏙쏙 골라서 사면 이 새, 아니 자식이 지레 찔려서 꼬리를 자를 확률이 높아집니다.”
“음, 그러네. 재희로 의심할 수도 있겠네.”
이런 미감 뒤진 것들을 우리 멤버들이 사서 막내 선물로 줬을 리도 없을뿐더러, 선물 증정식에서 서로가 무엇을 선물했는지 다 알 수 있었기에 무엇이 류재희가 맡긴 것들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형님, 중고나라 회원 가입되어 있습니까?”
“있어 봐. 나 예전에 인강 때문에 PMP 여기에서 샀던 적 있거든. 아마 지금까지 탈퇴 딱히 안 했을걸?”
단종된 국힙과 구하기 힘든 외힙 CD와 구매를 놓친 한정판 운동화만 중고나라에서 주구장창 사 댔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구매 사유였다.
곧바로 제 폰으로 중고나라에 접속한 서예현은 내가 보여준 것을 검색하여 류재희 동생이 올린 것들을 찜해놓았다.
“동시에 산다고 챗 걸면 좀 의심스러우려나?”
“한 1분, 2분 정도 텀을 줘 보시죠, 형님.”
“그놈의 형님 소리는 대체 언제 때려치울래?”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형님?”
이 와중에도 팔릴까 봐 초조한 마음은 덤이었다. 드레스룸과 주방을 보고 온 견하준이 발코니에서 무슨 작당 모의라도 꾸미는 듯한 꼴의 우리를 발견했다.
“둘 다 여기에서 뭐 해?”
중 고 나 라 올 라 왔 어. 입 모양으로 뻐끔거리는 말을 바로 알아들은 견하준이 곧바로 발코니로 넘어왔다.
견하준한테 중고나라 판매 목록이 뜬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며 간단히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걸 사 버리려고. 다 팔리기 전에.”
“그러면 나도 몇 개 살까? 그런데 내가 굳이 중고로 살 게 없어서 중고나라 이용을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심각한 포정이 되어 턱을 쓸던 견하준이 무언가 깨달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마 형은 있을 건데 형한테 혹시 아이디 빌려 줄 수 있냐고 물어볼까? 형이 중고로 mp3랑 폴더폰 공기계 사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사기당했다고 난리 친 기억도 있고.”
“그냥 회원 가입하면 바로 되는데, 굳이?”
“내 생각에도 굳이 하준이 너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세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산다고 연락하는 것도 수상하잖아. 재희 동생도 자기 형이 그룹 생활하고 있는 것쯤은 아는데.”
서예현이 그런 견하준을 만류했다.
일단 구매 문의 채팅을 남겼음에도 답이 없었다. 2분 후에 채팅을 보낸 서예현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답장이 왜 안 와? 생각해 보니까 지금 겨울방학 아닌가? 학교 안 가잖아.”
“사람이 하루 종일 폰을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
견하준의 말에 일단 류재희가 충격을 덜 받게끔 이 사실을 접하는 1단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감이 왔다.
“그래, 어떻게든 오늘 막내 폰 못 보게 만들자. 습관처럼 중고나라 들어갔다가 이거 발견하면 어떡하냐.”
내 제안에 나머지 둘도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슬금슬금 우리가 모여 있는 발코니로 김도빈을 끌고 다가온 류재희가 눈을 굴리며 물었다.
“형들, 저랑 도빈이 형이 2층 써도 돼요? 형들이 계단 오르내리기 힘드실까 봐 좀 더 젊은 저희가 배려 차원으로다가.”
“아침 운동도 안 하는 놈들이 말이 많다. 누가 더 체력 빡센지 한번 대 봐?”
자연스럽게 맞받아치자 류재희가 툴툴거렸다.
“그러면 얼른 2층 방 한번 보고 오세요. 발코니에만 있지 마시고요.”
우리가 다 같이 가면 김도빈과 류재희만 남는데? 그러면 류재희가 휴대폰을 보는 걸 제지할 수가 없는데? 류재희 모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발 연기를 선보일 게 분명한 서예현의 옆구리를 툭 쳐서 막고 내가 직접 나섰다.
“막내야, 폰 좀 빌려 주라. 2층 방 사진 좀 찍고 싶은데 형 폰 배터리가 없다.”
바지 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고 뻔뻔한 얼굴로 류재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방금까지 폰 보고 있지 않으셨어요?”
“계속 보고 있었으니까 배터리가 없지.”
류재희가 잠시간 빤히 나를 보다가 순순히 내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한 건 했다고 속으로 씩 웃으며 류재희의 휴대폰을 받아 들던 내 시야에 김도빈이 들고 있는 휴대폰이 들어왔다.
이런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