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9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95화(39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95화
“뭐를? 우리가 스포츠토토 한다는 거를? 아니면 스포츠토토가 합법인 걸?”
일단 거짓말로라도 잡아떼고 봤지만 우리 앞에 있는 건 김도빈이 아니라 류재희였다. 이런 개수작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을 흘린 류재희가 내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거겠어요? 형들이 그런 거에 취미 없는 것쯤은 잘 알고 있고요.”
류재희의 손가락이 휴대폰 액정을 두어 번 가볍게 두드리자 화면이 켜지며 잠금화면이 나타났다.
타이밍 한번 더럽게 좋게 중고나라 채팅 알림이 화면 상단에 떴다.
“류재경이 한 짓 말이에요.”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는 말과 눈앞에 드러난 중고나라 채팅 알림에 어쭙잖은 연기를 집어치웠다. 류재희한테 스포츠토토나 하는 형들로 오해받지 않아도 되는 걸 기뻐해야 하나.
뻣뻣하게 굳어 있던 서예현이 뒤늦게 파득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제 알았어…?”
“차로 이 뉴 숙소까지 이동할 때요. 혹시나 해서 차에서 중고나라 훑어보니까 보이더라고요.”
우리보다 먼저 알았구나. 지금까지 해 왔던 노력이 사실 모두 헛수고였다니.
류재희가 방심하고 있었다고 김도빈한테 전해 들었던 터라 나도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류재희는 우리 다섯 중 가장 모니터링의 대가였다.
“그럼 지금까지 그냥 티 안 내고 있었던 거야? 세상에, 말을 하지 그랬어. 그걸 어떻게 너 혼자 감당하려고 했냐.”
“이렇게 좋은 날에 어떻게 티를 내겠어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묻어나오는 서예현의 한탄과도 같은 말에 류재희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류재희의 얼굴에 아주 찰나, 씁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형들이 좋은 날이라고 내 기분 안 상하게 만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게 이렇게 보였는데.”
알면 됐다.
너무 일찍이 철들어 버린 막내 녀석의 모습에 입맛이 쓰긴 했지만. 이럴 때만큼은 그냥 꼭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형들한테라도 기대 주길 바랐는데.
우리가 그렇게 기대기에 못 미더웠나. 흠, 과거를 돌아봐도 우린 제법 듬직한 형들이었는데?
내 머릿속에서 자체 미화가 되어 버린 건지, 아니면 류재희의 머릿속에서 다운그레이드가 되어버린 건지 모르겠군.
우리의 심란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번갈아 본 류재희가 볼을 긁적이며 툭 내뱉었다.
“그리고, 저 괜찮아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한 빈말쯤으로 해석하고 있다가 류재희의 바로 다음 말에 빈말은 아님을 확신했다.
“물론 중고나라에서 발견했을 때는 기분이 처참했지만… 형들이 저 휴대폰 못 보게 하려고 온갖 쇼를 하시는 거 보고 기분이 좀 풀렸거든요.”
“재희야, 우리가 언제 쇼를 했다고 그러냐? 형들의 그 필사적인 노력이 쇼 같디? 어?”
“헐, 티 났어? 윤이든 너는 여기서까지 꼰대본능 발휘하지 말고.”
투덜거리는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며 서예현이 경악했다.
“정확히는 그 눈치 없는 도빈이 형까지 이상함을 느낄 수준으로 다 티 나게 행동해 놓고선 본인들은 속여 넘긴 줄 알고 뿌듯해하는 얼굴들이 재밌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시발, 김도빈도 눈치를 챘단 말이야? 김도빈 눈치가 많이 늘었군. 절대 우리가 어색하게 행동해서 들켰을 리가 없었다.
나름 자연스러웠다고.
류재희가 알아챈 후로도 계속 힘들어했던 건 아니라고 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그래, 우리의 고생이 마냥 헛수고는 아니었구나.
“아, 그래도 하준이 형은 그 와중에도 참 자연스러우시더라고요. 역시 아무나 연기하는 게 아닌가 봐요.”
거봐, 비교군이 견하준이라서 우리가 들킨 거라니까. 절대 우리가 연기를 못해서 들킨 게 아니라고.
“우리는…? 우리는 안 자연스러웠어?”
“형들은 얼굴에 ‘우리도 알고 있음’ 이 문장이 딱 쓰여 있었고요.”
우리 재희가 눈치가 참 빠르구나. 그런 것도 다 눈치채고.
“그러면 내 선물도 네가 구매한 거냐?”
제일 먼저 팔렸던 내 선물을 떠올리며 묻자 류재희의 표정이 단번에 어두워졌다.
“…아니요.”
음, 이놈의 주둥이가 방정이었군. 내 옆구리를 다시 팔꿈치로 쿡 찌른 서예현이 이어 물었다.
“나머지는 거래 중이야?”
류재희의 표정이 여기에서 더 어두워질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어두워졌다. 팔꿈치를 세워 서예현의 옆구리를 툭 쳤다.
“제가 직접 하면 제 아이디를 알고 있는 류재경이 혹시 눈치챌까 봐 친구에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흔쾌히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친구가 없더라고요. 다들 이 일을 퍼트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어서…”
류재희가 말끝을 흐렸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러면 지금 거래 중인 게 얘가 아니네!”
“막내야, 잠깐만! 형들이 일단 이거 꼭 회수해 줄게! 야, 윤이든! 일단 3만 원 얹어준다고 미끼 던지고 5까지 올려!”
우리는 같은 그룹이라는 운명공동체에 있기 때문에 소문을 퍼트릴 일도 없어서 선물 회수에 최적이었다.
[어떻게 거래 안 될까요]> [제가 진짜 계속 찾던 거라]> [3만 원 더 얹어 드리죠]><[아 지금 문의한 사람 많아서;;] [그럼 5는요?]>
<[잠시만요]
예상대로 류재희 동생은 곧바로 미끼를 덥석 물었다.
우리를 말려야 하는지 우리가 선물을 되찾아 오도록 두어야 하는지 도저히 가늠이 가지 않는다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보고 있는 류재희한테로 다가가 어깨에 팔을 턱 얹었다.
“내가 연기도 위로도 더럽게 못 해도 네 동생 버릇은 단단히 고쳐줄 수 있거든.”
<[진짜로 5만원 더 얹어서 사실 거예요?]
채팅창에 새 채팅이 도착했다. 어쩐지 들뜸과 조급함이 느껴지는 채팅이. 몸을 움찔하는 류재희의 어깨를 두어 번 다독이며 말을 덧붙였다.
“물론 재희 네가 원한다면.”
막 도착한 채팅을 착잡한 얼굴로 읽은 류재희가 버석하게 중얼거렸다.
“…중고나라에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이든이 형 같은 형이었다면 재경이가 이럴 수 있었을까.”
이럴 수 있었겠냐고? 이딴 간 큰 짓을 하긴커녕 내 앞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지.
뭐, 그래도 류재희가 말하는 걸 보면 나를 마냥 물렁한 형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연습생 생활을 하느라 어느 순간부터 동생들한테 신경 쓰지 못한 게, 이런 집에서 혼자 먼저 벗어난 게 미안해서 엄하게 잡지 못하고 오냐오냐하기만 했던 내 잘못인가 싶어서…”
“너희 집 막내는 잘 컸더만. 그냥 네 첫째 동생이 싹수가 노란 거니까 굳이 너 자신한테서 이유 찾지 마라.”
류재희가 결국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제 딴에는 참아 보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끕, 울음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간헐적으로 몸이 들썩였다.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옆에 앉아 등을 두드려 주었다.
잠시 후, 겨우 진정한 류재희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주저하다가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삐딱하게 웃으며 서예현에게 지시했다.
“형님, 직거래 요청하십쇼.”
왜 장물을 팔면 안 되는지 오늘 뼈저리게 느껴 봐라.
* * *
“류재, 네 짜장면 다 불었어.”
눈에 불을 켜고 제 동생과 채팅을 나누는 두 형을 방에 두고 홀로 식탁으로 돌아오자마자 그의 짜장면 그릇을 가리키며 하는 김도빈의 말에 류재희는 발개진 눈으로 그만 웃어 버리고 말았다.
밴 옆자리에 앉아 있던 덕분에 제일 빨리 류재희의 충격을 알아챈 김도빈은 류재희가 형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이였다.
옆에서 더 호들갑을 떨어 주며 류재희의 감정 노동을 막아 준 김도빈이 아니었으면 분명 새 숙소 입주 날부터 자신 하나 때문에 분위기를 망쳤을 것이다.
“버려야지, 어쩌겠어.”
“예현이 형한테 꼭 말해 줄게. 분명 예현이 형이 장하다고 엄청 칭찬해 줄걸?”
김도빈의 넉살에 류재희가 작게 키득거렸다.
“이든이는 다 먹었고, 예현이 형은 더 안 먹는대?”
“물어보고 올까요?”
“아니, 그냥 예현이 형 해물덮밥만 빼고 치우자, 일단. 막내는 좀 쉬고 있어.”
견하준식의 다정한 배려에 류재희는 또 비집고 나오려 하는 눈물을 겨우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도 같이 치워야죠.”
제게 배려를 보이지 않는 원 가족이 아니라 바로 이게 내가 바라던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닌가?
류재희는 견하준을 도와 빈 그릇을 한데 모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 * *
“오늘 안에 팔리라고 가격 존나 후려쳐 놨더니 호구들이 알아서 가격 올려주고 집 앞 직거래까지 해 주네.”
미리 준비해 놨던 박스에 차곡차곡 판매 물품들을 쌓으며 류재경이 킬킬거렸다. 그런 류재경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류재선이 소심하게 제 작은형을 만류했다.
“형, 큰형이 알면 어쩌려고 그래… 그거 큰형이 팬들한테 선물 받은 거라잖아.”
혹여 헷갈리지 않았나 다시 한번 두 박스 안의 물건들을 확인하던 류재경이 코웃음을 쳤다.
“형이 알면 어쩔 건데. 집 청소하다가 모르고 버렸다고 하면 그만이야. 어차피 형도 그냥 처박아 놓고 있었던 것들이잖아. 매년 팬들한테 선물 받을 거고. 그거 몇 개 동생한테 못 줘?”
형은 그걸 중고로 팔려고 해서 문제라고. 류재선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말해 봤자 작은형이 멈출 리가 없었다. 말대꾸했다고 발로 걷어차이기나 하겠지.
“야. 형한테 내가 중고로 팔았다고 꼰지르면 죽여 버린다, 진짜.”
살벌한 눈초리와 함께 쏟아지는 협박에 류재선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큰형에게는 미안했지만 류재선은 한 집에서 같이 살면서 툭하면 자신을 때리는 작은형이 더 무서웠다.
류재선은 제발 부디 저걸 산 이들이 제가 준 선물인 걸 알아본 큰형의 팬이어서 류재경이 머리채가 다 쥐어뜯긴 채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랐다.
‘아니, 그러면 큰형도 싸잡혀서 욕먹으려나? 만약 그렇게 되면 인터넷에 해명글이라도 올려야 하나?’
류재선이 퍽 류재희의 동생다운 생각을 하는 동안 류재경은 싱글벙글 웃으며 먼저 직거래가 잡혀 있는 것의 포장을 마쳤다. 제일 먼저 팔린 건 편의점 택배로 부치고 온 지 오래였다.
곧 제 수중에 두둑이 들어올 돈을 생각하니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형이 용돈을 팍 줄인 탓에 한창 쪼들리던 참이었는데.
그러게 누가 용돈을 줄이라 했냐고 류재경은 글러 먹은 제 행동의 탓을 류재희한테 돌려 댔다. 물론 본인은 외면하는 사실이지만 류재경은 류재희가 용돈을 줄이지 않았어도 똑같은 행동을 했을 터였다.
마침내 직거래 시간이 되자 박스를 든 류재경은 오늘 들어올 돈으로 무엇을 할지 온갖 행복한 상상을 해대며 집을 나섰다.
류재선의 상상보다 훨씬 더한 상황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