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39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96화(39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396화
류재경이 정한 직거래 장소는 집 근처의 파출소 앞이었다. 파출소 앞이라는 장소는 계좌 이체를 할 때 돈을 의도적으로 누락하여 보낸다든가 하는 먹튀를 예방하는 데에 퍽 효과적이었다.
날아갈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직거래 장소에 도착한 류재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수고를 거치지 않고도 거래자로 추정되는 이를 찾을 수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깊숙이 눌러쓴 채로 파출소 앞에 서 있는 두 남자가 단번에 눈에 들어왔으니까. 모델 같은 체형 덕분에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눈에 확 튀었다.
류재경이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두 남자 중 키가 더 큰 쪽이 슬쩍 뒤로 물러났다.
“중고나라 맞으시죠?”
그를 내려다본 남자가 고개를 까딱했다.
마스크 위로 드러난, 뿔테 안경 렌즈를 뚫고 선명히 보이는 속눈썹 긴 눈에 마른침을 꿀꺽 삼킨 류재경은 제발 이 사람이 마기꾼이길 빌었다.
한 배에서 태어난 친형이랑 허구한 날 외모로 비교 받고 형만 한 동생 없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던 그는 미남에게 적대심과 열등감을 패시브로 장착하고 있었다.
마주한 눈빛에 서린 묘한 퉁명스러움에 류재경은 잠시 주춤했지만 곧 마음을 가다듬고 들고 있던 박스를 쓱 들어 올렸다.
거래자가 박스를 받아 들려는 듯 손을 뻗자 류재경은 박스를 거래자의 손이 닿지 않을 거리로 잽싸게 내렸다.
본인에게 장난이라도 걸고 있다고 생각한 건지 마스크 위로 보이는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저음의 목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물건 안 주시나요?”
“먼저 입금 완료하면 드릴게요. 선입금해 주세요. 현금도 괜찮고요.”
비록 이곳이 파출소 앞이긴 하지만 거래자가 물건을 받자마자 입금하지 않고 튀었는데 달리기가 너무 빨라서 잡지 못하고 그렇게 물건만 털렸다는 레전드 중고나라 사기 사례가 있지 않은가.
저 거래자가 사기꾼으로 보이는 관상은 아니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거래자는 그 말에도 휴대폰을 꺼내는 대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로 가만히 서서 삐딱하게 그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왜 저래? 의문을 가지기가 무섭게 짧게 고개를 저은 거래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물건 먼저 주세요.”
“혹시 여기 안에 벽돌 들어 있을까 봐 그러세요? 원하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포장 까서 확인시켜 드릴 수도 있는데.”
“네, 먼저 확인부터 시켜 주세요. 물건 맞는지 확인 좀 하게. 판매자 분께서도 아시다시피 이게 좀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잖아요?”
말투에 묻어나오는 은근한 무시와 의심에 류재경은 신경질적으로 테이프를 뜯어 박스를 열었다.
“됐죠, 이제?”
“네, 맞네요. 그래도 일단 물건부터 넘기세요.”
류재경은 슬그머니 거래자의 발로 시선을 옮겼다. 달리기 좋아 보이는 운동화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중고나라 직거래 사기?
옆에 우뚝 서 있는 파출소가 그 무엇보다도 든든해져 류재경은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돈 주기 싫어서 이러시는 거예요? 그게 아니면 제가 물건 보여 드린다고 했는데도 선입금 거부하시는 이유가 뭔데요?”
“네, 솔직히 돈 주기 아까워서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상식에서 벗어난 말을 너무나도 당당하게 내뱉는 모습에 류재경이 순간 벙쪘다.
“하, 씨발. 제대로 또라이 걸렸네, 진짜. 5만 원 얹어주고 직거래까지 해 준다 했을 때 이상한 거 느끼고 걸렀어야 했는데.”
“잘됐네요. 이참에 이유 없는 선의는 없다는 것도 좀 배우세요. 특히 돈 관련된 문제면 더.”
“사기꾼 새끼 주제에 훈수 두고 지랄이야. 그렇게 돈 안 주고 물건만 받고 싶으면 파출소 안에서 똑같이 말하고 가져가 보시든가!”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저를 바라보는 거래자를 향해 류재경이 씩씩거렸다.
“어이는 제가 더 없고요. 그렇게 당당하면 파출소 안에서 거래하자니까요? 그 말 파출소 안에서 다시 해 보시라고요.”
“그래?”
거래자, 아니 사기꾼의 등 뒤에서 참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류재경은 중고나라 사기꾼을 참교육하고 무용담을 올릴 생각에 들떠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배짱을 부려 댔다.
“어, 시발! 파출소 가자고! 걸릴 게 네가 있지 내가 있겠냐?”
설전이 벌어지는 동안 뒤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남자가 깊숙이 눌러쓰고 있던 캡모자의 챙을 올리며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아, 너는 걸릴 게 없으시다? 나는 지금 당장 파출소 가도 상관없는데, 어쩔래?”
얼굴의 반 이상을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내리자 드러나는 낯익은 얼굴에 류재경이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혀, 형?”
좆됐다.
새하얗게 질린 류재경의 머릿속에선 그 세 글자만이 둥둥 떠다녔다.
박스를 든 채로 뒤돌아 도망가려는 류재경의 뒷덜미를 서예현이 가볍게 낚아챘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그를 단단히 붙든 손아귀의 악력이 제법 강했다.
“아, 이거 놔요! 지금 내 몸에 손 댄 거 폭행죄로 신고할 거예요! 저기 앞에 파출소 있는 거 안 보여요?”
“몸이 아니라 옷인데.”
버둥거리는 류재경을 잡고 있던 서예현이 심드렁하게 말을 정정해 주었다.
“예현이 형, 놔도 돼요.”
제 동생의 추한 버둥거림을 지켜보고 있던 류재희가 말했다. 류재경의 얼굴에 안도가 스침과 동시에-
“제가 잡을 테니까.”
류재희의 큰 손이 류재경의 팔을 아프게 콱 붙들었다.
“그래, 신고해. 이대로 나란히 파출소 들어가서 너는 절도죄로 나는 폭행죄로 자수하면 되겠네.”
류재희가 제 동생을 파출소 쪽으로 잡아 끌었다. 류재경은 끌려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텨 봤지만 결국은 류재희의 손에 잡혀 인적이 드문 파출소 뒤편으로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손을 뗀 서예현은 류재경의 손에서 박스를 무사히 회수한 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내가 이거 집에 맡기면서 분명히 말했지. 이거 팬분들이 준 선물이라 절대 잃어버리거나 버리면 안 된다고.”
이를 악물고 짓씹듯이 내뱉는 류재희의 꽉 쥔 주먹에 손톱이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걸 심지어, 중고로 팔아넘기려고 해?”
“아니, 뭐, 형 팬들이 보내는 선물이야 자주 들어올 거고, 형이 집에 가져다 놓고 딱히 찾지도 않고 그러니까 형한테 중요하거나 소중한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형이 용돈 하라고 보태 줬다 치고….”
사과 한 마디 없이 횡설수설 변명을 내뱉는 류재경을 보는 류재희의 눈빛이 점점 싸늘하게 식어 갔다.
“네 지금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 정말 몰랐다고? 너 진짜로 나 망하는 꼴 보고 싶었어? 내가 팬분들한테 받은 선물이 중고나라에 돌아다니면 내가 무슨 소리를 들었을지, 어떤 이미지가 됐을지, 그 나이 먹고도 예상을 못 했다고?”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린 류재희가 실소를 내뱉었다.
“형이 용돈만 안 줄였어도 내가 이러진 않았을 거 아니야!”
류재경은 숫제 적반하장으로 나가기로 했는지 류재희와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선명한 비웃음이 류재경이 만드는 소음을 끊었다.
“류재경, 네가 지금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탁-
류재희의 손이 류재경의 어깨 위에 얹혔다.
툭- 툭-
두어 번 어깨를 토닥이던 손이 콱 어깨를 틀어쥐었다.
“내가 너한테 용돈을 준 이유는 네가 예뻐서도 애틋해서도 미안해서도 아니라, 내 이름이 엮일 사고를 치지 말라는 뜻이자, 그 대가였어.”
말이 뚝뚝 강조되어 끊길수록 잡힌 어깨에 가해지는 힘이 점차 세졌다.
“너 지금 나한테 용돈 받는 거 당연하게 여기지 마. 그거 무조건부 아니야.”
차갑게 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 용돈이 아예 끊길 위기에 처했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류재경은 억지 눈물을 짜 내며 류재희한테 싹싹 빌었다.
“형, 진짜 미안해. 내가 너무 생각이 없었어. 내가 설마 형 망하라고 의도적으로 이랬겠어? 나 앞일 생각 안 하고 막 저지르는 거 형도 잘 알잖아. 용돈을 너무 빨리 써 버렸는데 돈 나갈 일이 너무 많아서 내가 순간 미쳤나 봐.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진짜로.”
제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으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동생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류재희가 어깨에 얹은 손을 거두며 말했다.
“류재경, 마지막 기회 줄게. 나머지도 가져와.”
아직 거래 전이라 집에 얌전히 놓여 있는 나머지 거래물품 박스를 떠올린 류재경이 말끝을 흐렸다.
“나도 형한테 돌려주고 싶은데 이미 팔려 버려서….”
“거래가 있으면 거래 파기를 하든가. 사람 면전에서 파출소 가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를 자신감은 있고 거래 파기하자고 메시지 보낼 자신은 없어?”
“진작 택배로 부쳤는데… 그 사람이 돌려줄지는 모르겠어서… 최대한 부탁은 해 볼게.”
“진짜지?”
잠시간 냉소가 스친 눈으로 류재경을 빤히 보던 류재희가 나직하게 물었다.
지금 이 거래 공친 것도 배 아파 죽겠는데 그걸 포기하라고? 속으로 이죽거리며 류재경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류재희는 경고인지 충고인지 모를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는 서예현과 함께 뒤돌아 멀어졌다. 류재경은 그런 류재희를 비웃었다.
‘10분 후에 있을 거래에서 팔아넘기고 형한테는 거래자가 안 돌려줬다고 둘러 대면 그만이지.’
어차피 가족 간 절도는 처벌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식IN의 도움을 받아 확실하게 검토했다.
‘잠깐, 그러고 보니 두 번째 거래자도 4만 원 더 얹어주고 직거래한다고 하지 않았나? 원래 5만 원이었는데 직거래라고 만원 뺐지.’
서예현&류재희 콤보는 적어도 직거래랍시고 얹은 가격을 후려치지는 않았건만 퍽 비슷한 접근 방식에 또 류재희가 등장할까 봐 불안해진 류재경은 아직 다음 거래까지 시간도 조금 남았겠다, 후다닥 채팅을 보냈다.
[지금 선입금해주세요]><[직거래 이유가 물건 확인하고 돈 보내려는 건데]
<[제가 댁 뭘 믿고요?]
<[댁이 잠수탈지 어떻게 알고 돈을 먼저 보내라는 거죠?] [잠수 절대 안 타거든요?]>
[정 의심 가면 인터넷에 중고거래 직거래 선입금 쳐보시던가요]> [선입금 안 하면 거파합니다]>잠시간 텀을 가진 후, 텍스트로도 짜증이 보이는 듯한 채팅이 도착했다.
<[나 참]
<[계좌]
계좌 번호를 보낸 지 2분 만에 돈이 곧바로 입금되었다.
<[국민은행 박동주로 입금 완료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만약 사기면 흥신소 고용해서라도 지구 끝까지 쫓아갑니다]
오히려 이렇게 집요하게 의심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류재경의 의심을 덜어주었다.
입금이 곧바로 된 것과, 입금자명이 다급히 검색해 본 레브 멤버들의 이름과 현저히 다르고 성이 겹치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형이 아니라 제대로 된 거래자가 확실하구나.
안도하며 박스를 들고 다시 파출소 앞에 도착한 류재경은 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인영을 발견했다.
스냅백을 깊숙이 눌러써 얼굴을 가리고 있던 이가 느긋한 손길로 모자를 벗더니 뒤로 뒤집어썼다.
저, 저, 저 인간이 왜 여기서 나와?
드디어 햇빛 아래에 선명히 드러난 잊지 못할 얼굴에 류재경이 뻣뻣하게 굳었다. 류재경은 아직도 5만 원권의 신사임당만 보면 그날의 악몽이 떠오르곤 했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건만 주머니에 시건방지게 손을 꽂은 윤이든이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 더 빨랐다.
“우리 구면이지?”
턱, 어깨에 얹힌 팔이 도주 시도를 제지했다.
제 눈앞으로 들이밀어지는 휴대폰 화면의 중고나라 채팅창에 뒤늦게 류재희의 경고를 이해한 류재경은 그 자리에서 딱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