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40화(40/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화
페널티라는 단어를 본 순간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아니, 아니겠지. 설마.
랜덤이라는데 똑같은 페널티가 걸릴 확률이…….
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에 나는 덜컥 생각을 멈췄다.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피로에 전 몸은 도저히 움직이지를 않았다.
“우욱! 컥!”
책상에 엎드린 상태 그대로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토해 내며 기침했다.
얼굴에 불쾌하게 닿는 축축함과 함께 피비린내가 훅 느껴졌다.
겨우 실눈을 뜨자, 붉게 물든 세상과 마주했다.
야 이 시스템 개새끼야. 내 몸 안의 피 죄다 증발하겠다. 열심히 일만 한 내 적혈구는 무슨 죈데.
바닥을 구르며 난리를 치고 싶었지만 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건 둘째 치고, 바닥을 구를 힘조차 없었다.
지난번과 달리 속이 영 쓰리고 기력도 없는 게,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어 덜컥 불안해졌다.
시스템도 저번처럼 몸에 이상이 가지 않는다는 안내 문구도 띄우지 않고 말이다.
‘나 진짜 죽는 건가……?’
초심도도 아직 78점인가 79점인가 이러는데? 페널티가 죽을병인 건 너무한 거 아니냐?
극한의 공포로 인해 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고, 손이 덜덜 떨려 왔다.
멀쩡하고 튼튼한 사람을 겨우 콘셉트 하나 안 잡았다고 한순간에 시한부로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향해 속으로 온갖 쌍욕을 다하고 있자 시스템이 해명을 띄웠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각혈 페널티입니다.] [페널티는 오직 ‘각혈’만이 적용되었습니다. 프로젝트 대상자의 몸 상태는 본인의 관리 부족입니다.]……하긴, 며칠간 입맛 없다고 식사도 자주 거르고 빵이랑 에너지 드링크로 연명하긴 했지.
[‘몸 관리’ 항목이 초심도 시스템에 새로이 추가되었습니다.]그리고 추가 항목도 띄웠다.
인생이 한결 더 살기에 빡빡해졌다.
이 망할 시스템은 규제 완화 좀 하라니까 규제 항목을 더 늘리고 자빠졌네.
저 멀리 있는 휴대폰을 잡기도 여의찮아 힘겹게 손을 들어 책상 위에 피로 119라는 숫자를 썼다.
류재희 이 자식은 편의점 간다더니 뭔 공장 가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오나. 왜 이렇게 안 와?
점점 눈이 감겨 오고 있자, 이제야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와 문이 열리는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형, 먹을 거 좀 사 왔…… 으아아아아악!”
투툭,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우렁찬 류재희의 비명이 귀를 아프게 찔러 댔다.
누가 메인보컬 아니랄까 봐 성량 하나는 더럽게 컸다.
“형, 이든이 형! 살아 있죠? 이거 설마 살인사건은 아니죠? 혀엉, 대답 좀 해 보세요, 어허헝…….”
울먹이며 나를 흔드는 녀석의 손길에 피 섞인 기침을 내뱉었다. 류재희가 식겁하며 손을 뗐다.
살인사건이냐고 물으면서 사람 잡아 흔드는 건 뭔데. 만약 내가 진짜 칼 맞았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 김도빈 같은 녀석아.
힘겹게 손가락을 움직여 119가 쓰여 있는 곳 근처를 툭툭 치자 그걸 발견한 류재희가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119? 이게 뭐예요? 저 다잉 메시지 해석 못 한단 말이에요!”
류재희의 저 빡대가리 같은 말에 열이 뻗쳐서 그런지, 시스템이 나를 엿 먹이려고 이러는 건지.
아니면 퀘스트의 중요성을 머릿속에 잊지 못하도록 새겨 주고 싶어서인지, 다시 한번 피가 울컥 토해져 나왔다.
쿨럭거리며 입 안에 고인 피를 퉤, 뱉은 후, 남은 기력을 모두 짜내어 겨우 말을 내뱉었다.
“119 신고하라고, 시발…….”
다잉 메시지는 얼어 뒈질…….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나를 덮쳐 오는 고통과 함께 그대로 시야 역시 암전되었다.
빌어먹을, 눈 떴을 때 다시 데뷔 첫날이면 시스템 이 개자식 찢어 죽이러 간다.
* * *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흐릿한 시야를 깜빡이자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조금 돌리자 옆에서 질질 짜고 있는 류재희가 보였다.
염병, 시한부 꼴이 따로 없네. 누가 보면 죽을 날 받아 놓은 줄 알겠다.
“시간, 얼마나 지났냐……?”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며칠간 혼수상태여서 컴백 방송 날짜도 훌쩍 지나서 깨어난 건 아니겠지.
그러면 초심도 한 번에 20점은 깎일 거 같은데. 다시 리셋되는 거 아니야……?
손까지 덜덜 떨려 오게 만드는 그 끔찍한 상상들을 멈추게 한 건 잔뜩 코를 먹은 류재희의 대답이었다.
“크흥, 형 응급실 실려 오고 5분 지났어요…… 아직 매니저 형도 오는 중이라는데 빨리 일어나셔서 다행…….”
5분 실화냐. 어쩐지 손등에 링거 바늘도 안 꽂혀 있더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류재희가 내민 물티슈로 얼굴에 말라붙은 피를 벅벅 닦아냈다.
“이든아, 괜찮냐?”
뛰어온 매니저 형이 내 꼴을 보고 이마를 짚었다.
“하, 컴백 앞두고 미치겠네. 지금 하준이도 열이 38도까지 올라서 응급실에 데려다 놓고 오는 길인데.”
“응급실? 그렇게 심각해?”
“저녁이라 동네 병원이 다 문 닫았잖아. 그런데 너 전에도 이런 일 한 번 있었지 않았냐? 그때는 별다른 이상 없었다며.”
“그랬지, 하…….”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는 초조하게 내 차례만을 기다렸다.
비교적 멀쩡한 상태인 나는 응급환자들이 실려 오는 응급실에서 뒷순위 환자였다.
“카페인 과다 섭취에 수면 부족 및 영향 불균형입니다.”
내 진단명을 듣고 눈을 깜빡였다.
“혹시 카페인 과다 섭취 증상에 각혈도 있습니까?”
“카페인 과다 섭취로 출혈이 생길 일은 없습니다만…….”
수면 부족으로 쌓인 피로만 제외하면 내 몸 상태는 참으로 멀쩡했기에 수액이나 좀 맞고 퇴원하는 거로 결정 났다.
이쯤 되면 정말로 몸에 이상 없는 페널티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아니, 하지만 피를 그만큼이나 토했는데 어떻게 몸에 아무런 이상이 안 생길 수가 있냐고……!
일반병실 2인실로 옮겨져 수액을 맞고 있으니, 하도 울어 눈가가 벌게진 류재희가 내게 땍땍거렸다.
“너무 무리해서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에너지 드링크 적당히 먹고 편식하지 말고 밥 좀 잘 먹으라고 했는데……!”
“너도 편식해서 나랑 같이 한 소리 들어 놓고 뭔 소리야. 편식하지 말란 말은 네가 아니라 준이가 했잖아. 너도 병원 온 김에 기억력 검사 한번 받아 봐라. 그리고-”
툭툭 떨어지는 수액을 보며 하,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어떻게 밤을 안 새워. 곧 컴백인데 연습 뺄 수도 없으니 내가 무리하는 길밖에 없었지, 인마.”
내가 멀쩡하다는 진단을 듣고 다시 견하준 쪽으로 간 매니저 형한테서 온 문자를 확인해 보니 견하준은 독감이란다, 독감.
그나저나 큰일이군. 당장 모레가 컴백인데 견하준까지 독감이라니.
이제까지 연습을 꽤 호되게 했던 터라 당장 무대에 올라가도 실수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아픈 상태로 무대에 서는 건 팬들한테도, 아픈 당사자한테도 못할 짓이었다.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지르자 왜인지 감동받은 표정으로 류재희가 결연하게 말했다.
“당분간은 제가 형의 노비가 되겠슴다. 1층에 매점 있던데 병원 매점에서 뭐 좀 사 올까요?”
“아니, 작업실 돌아가서 피 좀 닦고 피비린내 좀 빼 놔. 참, 깨끗하게 치웠는지 사진 찍어서 보내라. 비밀번호는 알지?”
피범벅이 된 제 작업실을 발견하고 용철이 형이 경악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곤란했다.
한 몇 달간은 그 작업실에 신세 져야 할 텐데 말이다.
“……진짜 노비네.”
벅벅 머리를 긁으며 류재희가 터덜터덜 병실을 나간 지 10분 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이든이 형! 몸 괜찮아요? 예현이 형은 하준이 형 간호하느라 못 와서 제가 대표로 왔습니다!”
내 옷과 병문안 선물로 제일 많이 나가는 음료수 세트 박스를 달랑달랑 들고 병실로 들어온 김도빈은 환자복이 아닌 피 묻은 옷을 입은 채 링거 바늘을 꽂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형, 얼마나 남았대요……?”
저 오타쿠 자식이 나랑 시한부 놀이를 하자는 건가 싶어 어이가 없었지만, 역정 낼 기운도 없어서 그냥 적당히 받아 주기로 했다.
“저 나무 잎새 다 떨어질 때까지.”
공기가 갑갑해서 열어 놓은 창문 밖의 나무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하필 가리킨 나무는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있는 그런 나무였다.
마침 더럽게 타이밍 좋게 바람이 불어 그나마 붙어 있던 마지막 잎새마저도 날려 버렸다.
동시에 마지막 수액 방울이 툭, 떨어졌다.
“형 이제 죽어요……?”
“도빈아, 1절만 하자.”
“넵!”
고개를 끄덕인 김도빈이 소심하게 덧붙여 물었다.
“그런데 형, 진짜 괜찮아요?”
“아니.”
슬슬 쓰리기 시작하는 속에 병문안 선물로 사 온 음료수 세트를 열어 알로에 주스를 꺼내 들이켰다.
“그럼 언제 퇴원해요?”
곧, 병실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가 링거 바늘을 뽑았다.
간호사가 나가자 피가 묻은 상의를 김도빈이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선 손짓했다.
“지금. 내 옷이랑 음료수 박스 챙겨라. 재희에게 이 병원 말고 숙소로 오라고 문자 넣고.”
“네? 지금요? 왜 이렇게 빨리 퇴원해요?”
“다 나았으니까.”
“방금은 안 괜찮다면서요.”
“빨리 퇴원해야 할 이유가 생겼잖아, 지금.”
그게 다 서예현에게 견하준을 맡기고 온 네 녀석 때문이잖아.
내가 몸을 털고 일어나자 저 형은 무슨 신인류냐고 김도빈이 약간 질린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시스템이 내 몸에 심어 놓은 원인 모를 병 때문에 각혈을 하는 건지 아직도 의심 중이었지만, 이걸 굳이 김도빈한테 말할 필요는 없잖아?
나랑 자기를 동류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냐. 나한테는 현실인데.
“이거 괜히 사 왔다. 편의점에서 사 온 거라 더 비싸게 주고 샀는데.”
“준이나 가져다줘.”
열린 상자를 미적미적 닫는 김도빈에게 역정을 냈다.
“마음 급하니까 꿈지럭대지 말고! 아니, 너는 네가 간호 맡고 있겠다고 해야지, 서예현 그 인간에게 간호를 맡기면 어떡해!”
“예현이 형이 저는 메댄이니까 저까지 옮으면 안 된다고…….”
마스크와 모자를 써 얼굴을 가리고는 퇴원 절차를 밟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시발, 이제 119 부르라고 난리 안 쳐야지.’
영수증에 찍힌 금액을 보자 난리 칠 생각이 싹 달아났다.
김도빈과 나란히 서서 매니저 형을 기다리는 내 눈앞에 상태창이 반짝였다.
[랜덤 티켓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No]지난번에 위클리 퀘스트 올 클리어로 받아 놓았던 랜덤티켓이 눈앞에 떴다.
내가 쓰고 싶을 때 쓰지 못하게 하고 강제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을 봐 왔을 때 쓸데없는 아이템은 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 고민하지 않고 Yes를 택했다.
[아이템 ‘만병통치물약’이 나왔습니다!] [물약 아이템은 세간의 시선 때문에 생수병에 담겨 나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삼다수 생수병이 바닥에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아이템치고는 참…… 임펙트 없었다.
만병통치라고 써진 글자를 뜯어 보며 생각했다.
이거 먹으면 나 이제 각혈 안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