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0화(400/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0화
디데이를 닷새 남기고 멤버들 모두의 사이 개선도를 100%까지 달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드디어 성공했다고!
류재희가 나랑 같이 있지만 않았더라도 소파에서 몸부림치며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대체 몇 년간의 장기 퀘스트였는지.
게다가 수치가 고정되지 않고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많- 이도 고생했지. 무슨 시소도 아니고, 한 놈 오르면 한 놈 떨어지고, 에휴.
이사가 닷새만 늦었어도, 그래서 류재희 동생 놈이 중고나라에 조금만 더 우리의 선물을 늦게 팔아 치웠어도 나는 류재희와의 각 잡은 상담으로 사이 개선도 100%를 달성하기는커녕 다시 <내 우주로 와>를 부르고 있었을 터였다.
대표님이 이삿날을 길일으로 잡았다고 했을 때는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걸 다 믿으시냐 혀를 찼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진짜 길일이었다.
지금 여기까지 온 게 한순간에 리셋되는 걸 이삿날 잘 잡은 덕에 막았는데 길일이지, 암, 암.
대표님의 이 미친 운은 대체 어디까지 가는 것인가.
[▷멤버들과의 관계를 개선해 보자! ✓▶멤버들과의 사이 개선도를 100%로 채우기 완료했습니다.
▶‘회귀 페널티’가 소멸합니다.
▶보상으로 초심도 30과 ‘기억의 파편(29)’, ‘(알 수 없음)’이 주어집니다.]
회귀 페널티가 소멸했다는 문장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드디어 데뷔 초로 다시 돌아갈 위협에서 벗어났다.
물론 이 망할 시스템이 다시 내게 회귀 페널티가 있는 퀘스트를 던져 주면 또 다시 시달리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한 자릿수 디데이 카운트다운을 보며 스트레스 받는 일은 당분간 없겠지.
만족스럽게 고개를 까딱하며 보상 목록을 읽었다. 현재 초심도는 88점. 그리고 초심도는 100이 최대치였다.
‘그럼 초과된 18점은 킵해 뒀다가 나중에 초심도 깎이면 채워 주나?’
[ㄴ]이런 융통성이라고는 없는 망할 시스템 같으니라고. 초심도 18점이 땅 파면 나오냐고. 위클리 퀘스트를 몇 번을 풀 완수해야 얻을 수 있는 점수인데 이걸 그냥 날리라고?
차라리 지금 비속어 아홉 번 내뱉어서 18점 깎이련다. 그럼 18점이 날아가는 게 아니라 날아간 점수를 채우는 거라 덜 억울하겠지. 오랜만에 욕설도 해서 속도 시원하고, 일석이조 아니냐.
오랜만에 힙합곡 1절 한번 완주해 보자.
[초심도 18점이 보관되었습니다.]꼭 이 망할 시스템은 내가 협박을 하고 나서야 융통성을 발휘하더라. 원하는 걸 얻어 만족스럽게 웃으며 나머지 보상도 훑었다.
[기억의 파편(29): 조건을 달성하면 관련 기억이 해금됩니다]옆에 있는 숫자는 뭐야. 나이야, 개수야? 그리고 어떤 조건인지쯤은 알려줘야 내가 그걸 달성을 하든 뭐를 하든 할 거 아니야.
[(알 수 없음): 조건 불충족으로 열람 불가]심지어 이건 알 수 없음에 열람 불가다. 이따위 거는 대체 왜 주는 거야?
무려 히든 퀘스트를 완료했건만 시스템이 조작한 기억을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역시 영 쓸데없는 시스템이라는 생각만 강화해 줬다.
“형, 녹음 시작해요!”
가사와 멜로디를 금세 숙지한 류재희의 재촉에 보상 아이템에 대한 생각을 저 멀리 밀어놓고 녹음 부스로 류재희를 들여보냈다.
“너 너무 지금 힘 빡 들어갔어. 목소리에 담긴 설렘을 빼 봐. 지금 이거 풋풋한 노래 아니잖아. 데모곡 가이드녹음하는 게 뭐라고 그렇게 들떠 있어?”
첫 소절 만에 끊으며 이마를 짚자 류재희가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저렇게 설레어 할 줄 알았으면 한두 번 정도는 맡겨 줄 걸 그랬나.
“딱 끊지 말고 말꼬리 늘리듯이 늘여. 아니, 그렇게 너무 애교 부리듯이 늘이지 말고 살짝 맥없이 해 봐. 자다가 막 깬 것 같이.”
이번 가이드녹음 디렉팅은 아무래도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견하준이 한 번 만에 받아들여 찰떡같이 바꾸는 걸 류재희는 두세 번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못 살리지는 않네.’
하긴, 본녹음 할 때도 류재희는 견하준 다음으로 내 디렉팅을 잘 따라오는 녀석이었지. 선택지가 넓어지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견하준이 스케줄로 바쁘거나 목 상태가 좋지 않을 때, 혹은 견하준의 음역대를 벗어나는 곡은 류재희에게 맡기면 되겠군. 음역대는 비슷했지만 아무래도 류재희가 아주 조금 더 높았다.
“됐어, 수고했다.”
가이드녹음을 마치고 녹초가 된 류재희가 헤드셋을 벗고 녹음 부스에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가이드녹음은 좀 가벼울 줄 알았는데 본녹음만큼 빡센데요. 하준이 형이랑 할 때도 이래요?”
“지금까지 네가 들은 데모곡 퀄리티 보면 굳이 묻지 않아도 답이 나오지 않냐?”
최종본을 재생하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견하준의 것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익숙한 류재희의 목소리가 작업실에 울렸다.
음, 잘 나왔군. 내 디렉팅을 찰떡같이 받아먹는 견하준만큼의 섬세함은 살짝 부족했지만 그래도 워낙 실력이 좋은 녀석이라 요구되는 섬세함을 기교로 충분히 보충했다.
이 정도면 블라인드 테스트에 던져 놓아도 걱정은 되지 않을 수준이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를 연신 힐끗거리던 류재희가 긴장을 풀고 대놓고 안도했다.
“그러면 하준이 형이랑 저 중에 누가 더 같이 작업하기 좋아요?”
생글생글 웃으며 질문해 오는 류재희의 말에 거의 조건 반사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즉각적으로 답을 도출해 냈다.
그래도 아직은 견하준이지.
하지만 기껏 올려놓은 사이 개선도가 99%로 다시 깎일까 봐 류재희한테 선의의 거짓말을 해 주기로 했다.
퀘스트 완수 창이 떴어도 저 망할 시스템이 어떻게 나올지 몰랐으므로. 99로 떨어졌다고 다시 디데이 띄우면 어떡하냐고. 저 시스템은 그러고도 남을 극악무도한 놈? 것? 아무튼 그거였다.
씨바, 회귀 페널티만 아니었어도 내가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타협할 일은 없었는데.
“둘이 비슷해. 하준이가 조금 더 편한 정도?”
“저랑도 4년 하면 편해지지 않을까요? 그때는 저도 하준이 형만큼 형 디렉을 잘 따라갈 수 있겠죠.”
“4년 아니고 6년이다. 걔는 연습생 때부터 내 작업물 가이드녹음 전담이었어.”
“그럼 저는 이후 6년 동안 하면 되죠. 6년 후에 형이 레브에 없을 거 아니잖아요.”
당장 4년 후에 탈퇴하는데. 물론 지금이 아니라 회귀 전의 이야기였다.
내 표정이 미묘해지자 류재희가 내 어깨를 덥석 붙들었다.
“형…? 아니죠…? 지금 탈퇴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죠…? 래퍼로서의 자아를 찾아 돌판을 벗어나 힙합판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거 정말 아니죠…?”
“그래, 가이드녹음 준이랑 번갈아 해라.”
“왜 말을 피해요, 불안하게…!”
“내가 탈퇴를 왜 해, 인마!”
지금은 내가 미쳤다고 탈퇴하겠냐. 내가 어떻게 이 그룹을 일구고 키워 왔는데! 그저 6년 후라고 하니까 과거가 오버랩되어서 그러지.
그리고 차연호가 했던 말에 따르면 6년 후엔 내가 레브가 아니라 세상에 없었다던데.
이럴 거면 차연호한테 내 빈소에 온 놈, 안 온 놈 물어볼 걸 그랬다. 왔으면 녹음할 때 덜 갈구고 안 왔으면 존나게 갈구게. 1분은… 왔으니까 봐 줘야 해, 괘씸죄를 적용해야 해?
류재희가 내게 제 솔직한 속내도 털어 놓고 데모곡 가이드녹음도 마쳤겠다, 멤버들이 잠들기 전에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작업실을 나섰다.
“잠깐만, 새 숙소 주소가 뭐였더라?”
매니저 형한테 물어보려 휴대폰을 켜기가 무섭게 류재희가 손을 뻗어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내가 기어에 손을 올린 채로 저를 빤히 보자 류재희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왜요?”
“아니, 막 뿌듯해하면서 본인의 유능함을 막 어필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해서?”
“물론 제가 유능하긴 하지만 이런 걸로 기여와 필요성을 주장하기는 좀… 그럼 너무 하찮아 보이잖아요.”
떨떠름하게 대꾸한 류재희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감이 생기니 뻔뻔해졌구나. 좋은 현상이다.
악셀을 부드럽게 밟으며 내비게이션을 힐긋했다.
“내비 집 주소도 새 숙소 주소로 바꿔야겠네.”
“제가 바꿀게요. 지금 이 주소 집으로 설정만 하면 되잖아요.”
아차, 습관적으로. 익숙한 루트로 핸들을 꺾으려 드는 내 손을 겨우 제지하고 류재희한테 오랜만에 잔소리를 쏟아부었다.
“그런데 너는 면허 언제 딸래? 예현이 형도 땄는데. 지금 멤버들 중에서 너만 안 땄다. 너 이러다가 평생 안 딴다니까? 운전할 줄 알면 생활 반경이 얼마나 넓어지는지 알아?”
“올해 딸 거예요. 예현이 형이 올해 같이 따자고 해 놓고 형한테 형님 소리 듣겠다고 작년에 홀라당 먼저 따 버렸잖아요. 저는 예현이 형한테 배신당했어요.”
“그 형도 은근 웃기다니까. 형님 소리 듣겠다고 따 놓고 왜 형님 소리 해 주니까 그렇게 질색을 하는 건지. 하여간 성격 차암 독특해.”
“예현이 형이 원하는 건 Respect가 담긴 형님 소리지 조폭 바지사장 같은 형님 소리가 아니니까요.”
“세상이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그 형도 알 필요가 있어.”
“형 덕분에 뼈저리게 알았을걸요. 특히 녹음할 때.”
짜식이, 사이 개선도 100%가 됐다고 말대꾸도 100%가 됐어.
다시 봐도 영 적응 안 되는 새 숙소로 입성하자마자 거실에 놓인 박스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막내야, 네가 본가에 가져다 놨던 것들 다 있는가 확인해 봐. 네 거라 건들기도 좀 그래서…”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서예현이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박스를 가리켰다.
소파도 한결 사이즈가 커져서 한 사람이 드러누워 있더라도 두 사람이 더 앉을 수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김도빈이 벌떡 일어나 류재희를 도와 박스를 뜯었다.
“도빈이 쟤 왜 갑자기 철든 척하냐?”
견하준을 툭툭 치고 목소리 낮춰 물으니 좋은 일 아니겠냐는 여상한 대답만 돌아왔다.
“하나 빼고 다 있네요. 몇 개 정도는 놔두고 팔아치웠을 줄 알았더니 제가 너무 제 동생을 과소평가했나 봐요.”
박스에 담긴 물건들을 거실 바닥에 나열해 놓은 류재희가 냉소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를 돌아보는 류재희의 입꼬리가 축 쳐졌다.
유일하게 없는 그 하나는 내가 류재희한테 선물했던 한정판 운동화였으니까.
새로 사 준 건 아니고 본래 내 것이었지만 류재희가 내 걸 한 번 보고 제대로 꽂혔기도 하고 지금 와서 구하기도 힘든 거라 그냥 류재희한테 쿨하게 넘겼다.
그런 게 중고나라에 매물로 개싸게 나오니까 바로 팔렸지, 시발.
“형 선물만 결국 못 돌아왔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건 빼고 본가에 맡길걸. 형 말 안 믿고 고집 부린 대가가 이렇게 돌아오네요.”
류재희의 목소리에 담긴 짙은 후회에 신발 하나 더 고르라고 위로해 주자 견하준이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오답인가 보다.
“50만 원도 안 갚을 게 뻔한 놈인데… 이든이 형, 협조 좀 해 줄 수 있어요?”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류재희의 제안에 고개를 흔쾌히 끄덕이며 씩 웃었다.
“나 이런 거 잘하는 거 알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