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1화(401/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1화
류재희가 제 계획을 말하며 보내 준 파일을 대략적인 상황 설명을 담은 메시지와 함께 그대로 아버지한테 넘겼다.
류재희가 회수한 제 생일 선물을 소중하게 차곡차곡 상자에 담는 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왔냐고 나를 슬쩍 떠보는 김도빈의 말을 씹으며 소파에 늘어져 텔레비전에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오는 김도빈 때문에 결국은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게 왜 궁금해, 인마. 정 물어보고 싶으면 막내한테 직접 물어보든가.”
“몇 시간의 대화만으로 류재 기분이 확 풀려서 돌아온 게 신기해서요. 애초에 형이 상담을 잘하는 편은 아니잖아요.”
“짜식이 형을 무시하네?”
혹여 자신이 했던 신랄한 단점 디스를 내가 멤버들한테 말할까 봐 신경이 쓰였는지 힐긋 나를 돌아본 류재희가 휴대폰을 소파에 내려둔 채 티비를 시청하는 나를 보고 물었다.
“3분 만에 다 작성했을 리는 없고, 내일 프린트해 와서 작성하시게요?”
“아니? 전문가한테 넘겼는데?”
“형만 믿고 맡기시라면서 이 단계에서부터 넘기시면 어떡해요.”
‘내가 쓸걸’이라는 짙은 후회가 류재희의 얼굴에 걸리자마자 다급히 해명했다.
“막내야, 이 형이 농땡이를 피우고 싶어서 무작정 떠넘겼다고 생각하면 곤란해. 우리가 허접하게 쓰는 것보다 딱 봐도 전문적으로 보이게 전문가가 쓰는 게 훨씬 더 협박하기 좋지 않겠냐.”
“아니, 바쁘실 텐데 저희가 괜히 일 방해하는 거 아닌가 싶고…”
“괜찮아, 괜찮아. 많이 써 봐서 별로 시간 안 걸릴걸?”
내 지론은 예나 지금이나 확고했다. 남한테 외주 맡겨서 결과가 더 좋게 나올 수 있는 거면 외주 맡기는 편이 낫지.
안절부절못하는 류재희를 안심시키고 있자 파일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한테서 답장이 도착했다.
[아버지- 고소장은 왜?] 오후 9:41 [아버지- 형사과 넘기라고?] 오후 9:42아직은 협박만 하는 용인데 지금 형사과에 넘어가면 안 되지. 내가 상황도 엄청 정성 들여서 자세히 써 줬는데 이렇게 의뢰인의 설명을 무시해도 되는 거야?
물론 의뢰비는 0원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 부모님께 주었던 행복과 기쁨으로 의뢰비 쌤쌤 칩시다.
사고를 좀 쳐서 부모님 뒷목을 잡게 만든 적도 있긴 하지만 세상 어떤 자식이 어릴 적에 사고 한 번 안 치고 살았겠냐.
문자를 읽으라는 의미로 보냈던 길고 긴 설명 문자를 복사해서 대여섯 번 다시 전송하자 알았으니까 그만 좀 보내라는 답장이 왔다.
여기에서 더 깝쳤다간 부탁 대상이 친할아버지까지 올라가는 참사가 발생할 수 있었기에 조용히 멈추고 민사 소송은 못 거냐고 물어봤다. 협박할 거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아버지- 손배 민사까지는 걸 수 있지] 오후 9:46 [아버지- 그런데 멤버 미성년자 동생 고소해서 뭐 하려고] [아버지- 아빠가 그쪽 부모랑 이야기해서 해결할 테니까 일 키우지 말고 있어] 오후 9:49괜히 외주 맡겼나. 문자에 다 적어 놨는데도 계속 도돌이표 같은 대화만 반복하고 있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꽤 바쁠 때 일을 맡겨 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부모님들끼리 서로 연락처 가지고 계시나…?”
“콘서트 끝나고 대기실에서 교환하시던데요.”
“막내야, 그때 너희 부모님 오셨냐?”
“아뇨, 재선이밖에 안 왔어요.”
“뭐야, 그때 첫째 동생한테도 티켓 주지 않았냐? 그거는 어쨌대? 설마 팔아먹은 건 아니지?”
“재선이가 받아서 친구랑 왔더라고요. 아마 재선이가 류재경한테 돈 주고 받아왔을 확률이 99%지만.”
비록 친동생한테 한 짓이긴 하지만 콘서트 티켓을 기어이 팔아먹어? 오냐, 너는 괘씸죄 추가다.
오, 그렇구나.
그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고소당해도 아버지가 알아서 처리해 주겠지. 아니면 소속사 법무팀에서 나서거나.
[ㄱㅊㄱㅊ] 오후 9:57 [그냥 해주시면 매우 감사] [우리도 다 계획이 있습니다 아버지] 오후 9:58 [스캔뜨지 말고 사진 찍어서 보내줘] 오후 9:59류재희라면 고소장 사진만으로 충분히 제 동생을 협박할 수 있을 거란 굳은 믿음이 있었다.
“오, 왔다.”
30분 후, 정갈한 글씨체로 작성이 완료된 고소장 두 장의 사진이 전송되었다.
아버지의 손에 꽤 심각한 사건으로 재탄생한 ‘한때 내 신발이었다가 류재희에게 소유권을 양도했지만 고소를 위해 잠시간 다시 내 것이 된 한정판 신발의 중고나라 유람기’를 읽으며 감탄을 터트렸다.
“봐봐, 역시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면 다르잖아.”
내 옆에 붙어 함께 고소장을 구경하던 류재희도 인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류재희한테 전문가에게 외주 맡겨 작성 완료된 고소장 두 개를 전달했다. 그것들은 이제 류재희가 알아서 제 동생을 협박하는 용으로 잘 쓸 것이다.
그래, 내가 딱 보니까 그 자식은 이 정도 협박쯤은 해야지 정신 차릴 것 같더라. 말로는 절대로 교화되지 않을 스타일인 게 딱 보이더라고.
류재희가 열심히 제 첫째 동생한테 전달할 협박 문자를 작성하는 동안 견하준은 내게 제 형한테 전해 들은 중고나라 사기 대처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중고나라 사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몇 번 사기 당해 본 형한테 물어봤는데 일단 더치트에 전번이랑 계좌 등록하라는데?”
“걔는 중고 거래로 사기 치려 한 게 아니라 그게 되려나 모르겠네. 어쨌든 착실하게 직거래로 팔려고는 했으니까. 내 계좌가 거기에 등록됐는지 확인해야 할 판이다, 준아. 잠깐만, 아닌가? 장물 거래니까 이것도 등록되나?”
“네 계좌 올라가 있으면 너도 올려 버려.”
눈눈이이를 실행하라는 친구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얘도 안 그렇게 생겨서 은근히 과격하다니까.
어느덧 깨어 있기에는 늦은 밤이 되어 다들 새로 생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류재희가 입을 열었다.
“이사 첫날 기념 겸 이제 다들 각방 쓰는 기념으로 오늘만 다 같이 거실에서 자면 안 돼요?”
다들 방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칫했다. 막내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여기에서 매정하게 방으로 들어가면 그게 싸패지.
“뭐야, 류재. 우리가 리얼리티 카메라도 없는데 그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을 거 같아?”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면서 방으로 들어가며 싸패 김도빈이 말했다.
“그래, 거실에 이불 깔아라.”
내 지시에 방으로 옮기던 걸음을 멈칫한 김도빈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돌아보았다.
“헉, 오글거린다고 제일 적극적으로 반대하실 분이… 혹시…?”
“또 빙의 의심해라?”
“저만 오케이 외칠까 봐 미리 선수 친 건데요!”
삐딱하게 한마디 하자 김도빈이 잽싸게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가지고 나왔다.
“애정과 관심이 고픈 막내를 보는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주실래요, 형들?”
제게 향하는 네 쌍의 눈길에 류재희가 투덜거렸다.
“저는 그저 형들이 룸메 없는 밤을 보내기 외로울까 봐 하루만 룸메 체험 연장판을 드린 것뿐인데요.”
음, 스포츠토토급의 변명이군.
“그래, 그래. 막내가 독방 쓰려니까 많이 외로웠구나.”
“막내가 외롭다는데 이 형들이 또 옆에 있어 줘야지.”
“딱히? 나는 계속 독방 써서 익숙한데. 그래도 재희가 외롭다니까 하룻밤 정도는 거실에서 같이 자 줄게.”
건수 하나 잡아 덥석 물고선 저를 놀리는 말들에 류재희가 밑에 깔 이불이나 가져오겠다고 후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을 든 채로 가만히 서서 고민하고 있는 서예현을 툭 치고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님은 소파에서 주무십쇼. 또 바닥에서 자다가 등 배겨서 못 자겠다고 아닌 밤중에 염불 외워서 사람 깨우지 말고.”
이전에도 리얼리티에서 훈훈한 장면을 연출한답시고 거실 바닥에서 다 함께 자다가 중얼거림에 깬 피해자(견하준)와 뒤척거림에 깬 피해자(나)가 존재했기에 그냥 서예현을 소파로 보내 버리기로 했다.
소파에서 자면 제 등이 배긴다고 다른 사람까지 못 자게 만들진 않겠지. 잠자리 주변 환경에는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자면서 등판 환경에는 예민하기가 아주 완두콩 공주님이 따로 없었다.
“바닥에서는 못 자도 소파에서는 충분히 숙면 가능하지.”
냉큼 소파에 드러누워 이불을 덮으며 서예현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다섯 멤버가 한자리에 모여 눕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막내야, 바닥 안 추워? 보일러 높여 줄까?”
“괜찮아요, 하준이 형. 충분히 따뜻해요.”
“막내야, 목 안 건조해? 물 가져다줄까?”
“빨리 물 마시고 와, 도빈이 형. 형이 목말라서 그러는 거잖아.”
“막내야, 이불 너무 얇지 않아? 형 이불이랑 바꿔 줄까?”
“괜찮아요, 예현이 형. 형 이불은 너무 두껍거든요.”
“막내야, 자장가 불러 줄까?”
“아, 그냥 해산! 해산! 다들 그냥 방 들어가서 자요! 하루만 같이 자자고 했다가 평생 받을 애 취급 다 받네!”
“야! 다른 멤버들은 잘 받아 줬으면서 왜 내가 한마디 하자마자 짜증이냐!”
훈훈한 분위기는 개뿔. 이게 10분 이상 가는 꼴을 못 봤어, 내가.
* * *
전문가의 손을 거친 티가 여실히 나는 고소장 두 장의 사진을 보낸 뒤로 미친 듯이 걸려 오는 류재경의 전화와 문자를 류재희는 단 한 통도 받아 주지 않았다.
50만 원을 벌어서 주면 이 고소장들은 그대로 폐기 절차를 밟을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도 써 줬는데 글을 읽지 않은 건지, 아니면 50만 원을 벌 생각이 없는 건지.
개인적으로 류재희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법, 윤이든이 멀어지자 윤이든이 선사해 주었던 공포심도 멀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고소장 사진을 보내어 새로운 공포심을 선사해 준 거고 말이다.
[✆어머니]어머니께 전화가 오는 것도 류재희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고 3인 애한테 무슨 고소니, 네가 이번 달 생활비를 50만 원 덜 줬으니 그걸로 갚은 셈 치자느니, 그깟 푼돈 50만 원 버느라 네 동생 대학도 못 들어가게 만들 거냐느니, 운동화 한 켤례면 좀 봐 주지는 그런 걸로 고소장 보낸 애도 참 매정하니, 내가 네 동생 혼쭐을 냈으니 부모끼리 대화 좀 하게 윤이든 부모 연락처 좀 달라느니, 귀 아프게 쉴 새 없이 꽂히는 말들도 모두 류재희의 예상 범위 내였다.
이전의 류재희라면 분명 제 편을 들어주지 않는 모습에 상처받고 실망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하-.
짧은 실소를 내뱉은 류재희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