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2화(402/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2화
“그렇게 말씀하셔도 소용없어요. 류재경한테 확실히 전해 주세요. 50만 원 네가 직접 벌어서 내게 갚지 않으면 다음 달에 바로 고소장 형사과 접수될 거라고.”
매정한 목소리로 어머니의 말을 끊은 류재희는 다시금 쏟아지는 한탄과 원망을 아무 표정 없이 듣고 있기만 했다.
어머니가 힘든 건 어릴 적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랬으니 자진하여 동생들을 돌보고 지긋지긋한 제사도 물심양면으로 도왔지. 예전부터 저를 붙잡고 지금처럼 한탄과 원망을 늘어놓았는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그러다 보니 류재희의 희생은 어느덧 고마운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깟 푼돈을 벌려면 얼마나 힘든지 본인도 알아야죠. 그래야 자기가 받았던 용돈의 가치를 깨닫죠.”
류재경에게 유일한 면죄부가 있다면 그런 부모의 태도를 그대로 학습했다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류재선은 바르게 컸기에 딱히 면죄부라고 쳐 주고 싶지도 않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오해하시는 모양인데, 제가 이번 달 생활비 50만 원 덜 드린 건 류재경한테 그 돈 주지 마시라고 그런 거예요. 고소하자고 한 사람은 이든이 형이 아니라 저고요.”
자식들 용돈도 뜯어 가는 부모가 돈을 대신 내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이건 그저 심술이었다. 류재경에게 원망과 불평이 돌아가게 만들 심술.
웃긴 건 류재경도 딱히 편애하는 자식이 아니라는 거였다. 류재경을 용서하지 못해 부모한테까지 주는 돈줄이 막힐까 봐 제게 이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거지.
결코 류재경을 봐 주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강경하게 내세우자 역시나 예측대로 목소리가 뾰족해진 어머니가 윽박질렀다.
-동생 인생 망치려고? 네가 그러고도 형이니?
“더 망치지 않게 형으로써 도와주는 거죠. 벌써부터 금전 감각도 없고 분명히 경고했는데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데 지금이라도 고쳐 놔야 하지 않겠어요?”
깊은 한숨 소리, 그리고 지긋지긋하다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울렸다.
-어디 가서 내 자식이라는 소리 하지 마라. 애가 저렇게 정 없고 이기적일 수가. 내가 잘못 키웠지, 내가 잘못 키웠어.
조금만 제가 숨 쉴 틈을 찾을 때마다 지겹도록 들어왔던 한탄이었다. 그런 만큼 제게 상처 주기엔 우스운 말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 말은 하지 마시지 그랬어요, 어머니.”
이런 식으로 마지막 정을 떼고 싶지는 않았는데.
류재희가 씁쓸한 웃음을 허공에 흘려보냈다. 살갑고 도움되는 자식 역할, 동생들을 위하는 맏형 역할, 집안의 대들보 역할은 이제까지 충분히 했다.
그러니 그는 이제 투정도 부리고 남한테 기대 볼 수도 있는 막내로 살고 싶었다.
“할 말도 있고 하니까 신정 때 찾아뵐게요. 참, 류재경한테 걔가 팔아치운 그 운동화 다시 찾아오면 갚아야 할 돈 30만 원으로 깎아 준다고도 전해 주시고요.”
수화기 너머의 어머니가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그는 더 듣지 않고 뚝, 전화를 끊었다.
류재희는 드디어 언젠가는 무너질 낡은 울타리를 벗어날 결심을 했다.
이제 그한테는 피 한 방울 섞이진 않았지만 가족보다 더 든든하고 저를 위해 주는 이들이 있는 튼튼한 울타리가 있었으니까.
* * *
소속사에서 진행한 올 한 해의 일정 브리핑은 이른 연초에 이루어졌다.
일단 올해의 제일 큰 이벤트인 정규 앨범은 4월에 발매 예정이었다. 컴백 쇼케이스 날짜는 4월 27일.
이제까지는 내 작업 스타일에 맞추어 곡에 콘셉트를 맞췄다면 이번 정규 앨범은 준비 시간이 충분했던 만큼 정석적인 루트를 밟았다.
먼저 이번 앨범의 음악적 방향성과 콘셉트를 기획한 후, 그것에 맞추어 작성한 곡 리드를 소속사 작곡가들과 외주 작곡가들에게 전달했다.
나 역시 곡 리드를 보며 곡 작업을 했고 말이다.
회귀 전, 아이돌보다 프로듀서로서의 정체성에 더 가까웠을 때 제법 많이 겪어 본 방식이라 이제까지의 작업 과정이랑은 달라도 익숙하여 헤맬 일은 없었다.
멤버들과 다 함께 기획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머릿속으로 뼈대를 구성해 놓은 것도 있었고, 곡 리드 작성을 거의 내가 하다시피 한 것도 있었기에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수록곡까지 고르려면 적어도 열다섯 곡은 나와야지 선택지가 있겠는데요?’
‘안 그래도 제가 A&R팀이랑 같이 수집곡 듣고 필터링해서 후보 추렸는데 이대로 가면 열 곡 이상은 택도 없어요. 후보부터 열 곡이 안 되거든요, 지금.’
‘곡 리드에 벗어난 곡만 빼도 이 정도인데 퀄리티까지 고려해서 거르면…’
‘일단 제 작업물 중에서 최대한 곡 리드랑 비슷한 곡들을 찾아봐야죠. 그것까지 합치면 얼추 수는 맞추겠네요.’
‘타이들곡 후보는 적어도 세 개로는 잡는 게 어떻겠니. 세 개 이상이면 더 좋고. 내가 또 인맥 팔이를 한 번-’
‘아니요, 대표님. 인맥 팔이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G1 프로듀서랑 백상열 작곡가한테도 제가 말해 놨으니까 컨택해서 곡 리드 전달해 주시고요. 마감일은 일단 2주로 잡아 주세요. 타이틀곡은 제 곡까지 해서 여기 내에서 정하게요. 이러다가 컴백일 다 늦추게 생겼는데, 지금.’
‘타이틀곡 선정이랑 수록곡 픽은 그럼 3주 후에 하죠. 뮤비 업체 선정은….’
아, 물론 다른 과정들도 수월하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지만. 대표님의 운은 믿어도 감은 믿지 못하는 법 아니겠는가.
같은 곡보다는 회귀 전 미니 2집 같은 곡을 가지고 오실 확률이 훨씬 높았다.
솔직히 그걸로 뜨긴 했지만 도 미련이 남았던 거지 퀄리티만 놓고 보자면 썩 그렇게 내 마음에 들던 곡도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국내 콘서트와 북미 투어가 잡혀 있었다.
‘공연 과정이랑 공연 장면을 담은 DVD를 출시할 예정이라서 투어 때 카메라 계속 따라다닐 거예요. 그 점 미리 알아두시고요, 언행 평소보다 살짝 더 주의 부탁드려요.’
‘저희 영화는 안 나와요? 알테어 선배님들 보면 영화관에서 투어 영화 상영도 하던데.’
‘도빈이 네가 개인적으로 극장 빌려서 DVD 틀고 팬분들께 상영 이벤트 해라. 그러면 그게 영화지.’
‘오, 괜찮은데요?’
‘…농담한 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영화… 까지는 저희가 아직…’
‘도빈이가 헛소리한 거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올해도 작년처럼 정신 없이 바쁜 한 해가 되리란 건 자명했다.
아, DTB 시즌 5도 챙겨 봐야 하는데. 과연 회귀 전과 달리 내가 나온 시즌 4를 뛰어넘는 레전드가 될 것인가, 아니면 회귀 전처럼 하락세의 시작을 여는 시즌이 될 것인가.
며칠 전에 곡을 보냈다는 지원이 형과 상열이 형의 연락도 받았고, 내 작업물 데모곡도 류재희의 가이드보컬로 얼마 전에 완성되었다.
타이틀곡 선정은 지원이 형의 곡, 상열이 형의 곡, 내 곡, 리드로 수집되어 걸러진 스무 곡 중 가장 낫다고 선별된 한 곡, 이렇게 네 곡을 후보군으로 잡고 블라인드 투표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블라인드 투표를 위해 오늘 대표님과 직원분들, 레브 멤버들이 소속사 회의실에 모였다. 설 연휴 전에 정하는 게 연휴를 보낼 때 마음 편하다나 뭐라나.
이번 설 연휴에도 류재희를 집에 데려가서 할아버지한테 세뱃돈이나 뜯을까? 류재희가 따라오려 하긴 하려나? 아무리 새 숙소가 좋다고 해도 홀로 두기도 그런데.
김도빈의 새 숙소 찬양 일장 연설을 들으면서 흐뭇해하는 대표님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한창 블라인드 테스트를 준비하는 도중, 내 옆에 앉은 서예현이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하준이 목소리 들리는 게 윤이든 데모곡일 텐데 블라인드 의미가 있나?”
“그렇다고 신선함을 주어 청취자들을 교란시키겠답시고 형님한테 맡기거나 제가 부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그러면 투표 광탈입니다, 광탈.”
“광탈이라는 단어를 그렇게 강조해서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광. 탈.”
“옘병.”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로 속닥거렸지만 우리 근처에 방음벽이 둘러싸고 있지 않은 한 우리의 속닥거림이 지척에 들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초등학생도 그렇게는 안 싸우겠어요, 형들.”
류재희의 한숨 섞인 말에 곧바로 서로를 향해 이죽거리던 표정을 집어넣고 믿음직한 보호자의 얼굴을 뒤집어썼다.
“우리가 언제 싸웠다고 그러냐, 막내야.”
“그래, 우리는 가벼운 대화를 좀 한 거야. 싸웠다니.”
“대화 내용이 지나치게 가벼워서 날아갈 것 같던데요. 목소리 변조만 하면 이게 성인의 대화라고는 아무도 생각 안 할 걸요.”
“성인들도 이런 대화를 할 수도 있지. 편견을 버려.”
마찬가지로 우리와 가까이 붙어 앉아 있던 견하준이 나를 툭툭 치더니 손가락으로 회의실에 설치된 카메라를 슬쩍 가리켰다.
앨범 메이킹 과정 자컨을 위해 블라인드 투표 과정을 담는 카메라였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대화들은 분량을 맞추기 위해 편집될 걸 알았기에 딱히 이 가볍디가벼운 말싸움이 실릴 것이란 걱정은 안 했다.
“형님, 때로는 사소한 편견이 눈을 가릴 때도 있는 법입니다.”
“뭐라는 거야. 너답지 않게 그런 진지한 말 하지 마.”
진지하게 말하자 서예현이 질색했다.
견하준의 가이드녹음만이 내 작업물이라는 편견을 가진 서예현이 과연 이번 내 작업물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
이어서 블라인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1번 곡은 누가 봐도 상열이 형의 스타일이 짙게 묻어 나오는 곡이었다.
우리의 이번 앨범 콘셉트와 제법 잘 어울리는 곡이기도 했다.
2번 곡은 리드로 수집된 곡이었다. 내가 1차 필터링에 참가하여 걸러 내며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곡이었기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 콘셉트를 이런 관점에서도 해석할 수 있구나, 꽤 신선했었지.
3번 곡은 지원이 형의 곡이었다. 다만 곡을 듣고 한 번에 알아차린 게 아니라 소거법으로 추측해 낸 것이었다.
그만큼 이제까지의 스타일과 동떨어진 실험적인 곡이었다. 곡 리드를 1번 곡보다 더 잘 담아 냈기도 했다.
“와, 이번 후보곡들 라인업 진짜 장난 아니네.”
“타이틀곡 네 개로 컴백하면 안 돼요? 수록곡으로만 두기 아까운데.”
후보곡들이 워낙 쟁쟁한 터라 다 마음에 들었는지 멤버들이 딱 하나만 골라야 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마지막 4번 곡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어, 잠깐만. 하준이 형 목소리가 없는데? 이번에 이든이 형 곡이 없나…?”
“진짜 의미 있냐고… 이건 막내 목소리잖아.”
김도빈과 달리 편견에 넘어가지 않은 서예현이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