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3화(403/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3화
아니, 지금 내 곡이 나오는데 집중을 안 하고 가이드녹음이 누구 목소리인지나 따지고 있어?
잡담 그만하고 곡 감상에나 집중하라는 의미로 눈을 부릅떴다.
우리 멤버들이 비록 내가 내 음악에 가지는 자부심과 음악의 의미를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 작업물이라고 무조건 내 곡에 표를 던져 주지 않으리란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나 정도는 아니더라도 레브의 음악에 멤버들 역시 다들 진심이었으니까. 나를 위한답시고 무지성으로 내 걸 고르면 오히려 내가 더 화날 것 같았다.
내가 절치부심할 수 있도록 충격과 자극을 주지는 못할망정 나를 안주하게 만들려고 해?
김도빈은 레브 제2차 우정 싸움이라도 날까 봐 걱정하는지 연신 견하준을 힐끔 돌아봤지만 애초에 견하준은 류재희가 이번 데모곡의 가이드녹음을 맡았다는 사실을 진작 알고 있었다.
내가 당연히 말을 해 줬지. 견하준도 내 작업물 데모곡, 특히 타이틀 후보곡의 데모곡 가이드보컬은 당연히 제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주먹다짐 및 음주로 견하준과의 사이 개선도 100%를 달성한 그날, 대화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오해가 생길 만한 웬만한 일들은 견하준과 바로바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 혹시 재녹음 필요해?’
‘딱히? 막내도 제법 잘 따라오더라고? 물론 너만큼은 아니긴 해도. 막내 본인이 네가 가이드녹음 하는 게 그렇게 부러웠다는데 이제 종종 맡겨야지.’
‘네 선택지가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네. 드라마 촬영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나도 바빠질 거고. 재희가 잘 따라간다니 다행이다.’
견하준은 김도빈의 걱정과 달리 담담하게 일거리 분담을 받아들였다.
아니, 그런데 가이드녹음을 막내가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싸움이 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가이드녹음 한 번에 시급 100만 원씩 쳐 주는 것도 아니고, 만약 그만큼 준다고 한들 견하준이 그 돈이 간절할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리는 것도 아닌데?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견하준이 ‘네가 맡은 가이드녹음은 원래 내 몫이었어! 그걸 남한테 넘기다니, 용서 못 해!’라고 반응하리란 상상을 하지 않는다, 도빈아.
서예현을 봐라. 가이드녹음을 한 이가 견하준이든, 류재희든, 그냥 멤버한테 가이드녹음을 또 맡겨서 목소리만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반쯤 무효화시킨 것에만 신경 쓰고 있지 않은가.
서예현이 별걱정 없어 보이면 딱히 문제없는 거다. 이제 나랑 견하준을 번갈아 보는 서예현의 표정이 진지해지면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지.
다른 후보곡들도 쟁쟁했지만 솔직히 곡 리드를 제일 잘 살린 건 내 곡이었다.
당연하다. 곡 리드를 짜는 일에 내가 제일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으니까.
타이틀곡 후보로 나온 네 곡을 모두 듣고, 다시 후보곡이 1번부터 흘러나오는 동안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투표지에 적혀있는 내 곡에 체크했다.
내 곡이라는 콩깍지를 제외하더라도 멤버들이 곡을 가장 잘 살릴 수 있으며 이번 정규 앨범의 콘셉트에 걸맞으면서 귀에 팍 꽂히는 곡은 내 곡이었다.
내가 별 고민 없이 투표한 것과 달리 회의실은 여전히 투표지를 앞에 놓고 고심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이미 투표를 끝내고 투표지를 접어 놓은 류재희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 역시 표를 바로 던지지 못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김도빈은 거의 머리를 싸매고선 끙끙 앓더라. 확실히 퍼포먼스 면으로 보면 1, 2번 곡이 낫고, 음악성만으로 따지면 3, 4번 곡이 좀 더 나으니 팀 메인 댄서의 입장으로서 고민이 될 만도 했다.
3, 4를 투표지에 적어 놓고 펜을 그 두 숫자 위에서 번갈아 까딱거리고 있는 서예현을 턱을 괸 채로 구경하고 있자 서예현이 후다닥 손으로 종이를 가리며 나를 째려보았다.
뭘 봐.
입 모양으로 내게 말하는 서예현을 향해 손가락으로 3과 4를 번갈아 펼치자 서예현의 중지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카메라를 슬쩍 의식한 서예현이 손을 쓱 아래로 내렸다.
책상 아래로 보이는, 세워진 중지에 실소를 터트리며 혀를 비죽 내밀었다. 똑같이 중지를 올려주면 망할 시스템이 또 금지된 손동작 어쩌고로 내 초심도를 깎아 댈 게 분명했으니까.
슬슬 투표를 마무리하고 투표지가 모두 모였다.
이번 타이틀곡 후보들이 워낙 좋은 터라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요즘 한창 히트곡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는 상열이 형은 둘째 쳐도 지원이 형은 내가 본격적으로 작곡에 뛰어들기 훨씬 이전부터 톱 프로듀서였으니까.
정규 앨범이라고 각 잡고 만든 곡이라 그런지, 나조차도 블라인드 투표 1위를 뺏길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낄 만하더라.
투표가 마무리되고, 투표지의 표를 모두 합산한 최종 결과가 나왔다.
“4번이 1등이네요.”
“와, 2등인 3번이랑 세 표 차이 나네. 아슬아슬했다.”
흠, 내가 표를 던지지 않았어도 충분히 1위를 차지했겠군. 내 표를 제외하고라도 두 표나 앞선 투표 결과에 마음이 놓였다.
역시 예상대로 1번 곡은 상열이 형 곡, 2번 곡은 리드로 수집된 소속사 내부 작곡가 곡, 3번 곡은 지원이 형 곡이었다.
“그러면 타이틀곡은 4번 곡으로 하고, 트랙 리스트 확정은 모레 진행하죠. 발매 일자는 유통사와 논의해서 잡고 날짜 나오면 바로 공유하겠습니다.”
“곡 녹음은 아티스트 분들 설 연휴 휴가 보내시고, 그 후 일주일 안에 마감 가능하실까요? 녹음본 나오면 안무팀 리스트 업이랑 시안 취합하고, MV팀 리스트에서 선정 진행합시다.”
“일주일이면 충분히 녹음이랑 후반 작업까지 싹 마무리하죠.”
앞으로의 일정 보고를 마지막으로 회의가 마무리되고, 우리는 잠깐 남아 대표님과의 면담 시간을 가졌다.
“요즘 앨범끼리 이어지는 세계관 도입하는 게 유행이라며? 이번 활동에 살짝 스포성으로 끼워 넣고 다음 활동부터 본격적으로 우리도 세계관 도입해 보자. 어때?”
이번에 인외-실험체로 이어지는 세계관 콘셉트와 초능력 세계관으로 컴백한 아이돌의 반응이 꽤 좋아서 또 욕심이 든 모양이었다. 그놈의 콘셉트 미련 아직도 못 버렸냐고.
이번에 신인 걸그룹 런칭 준비도 하고 있다던데 제에발 그 그룹에도 목소리 큰 친구가 한 명쯤은 있길 바랄 뿐이었다.
“착하게 말해 드릴까요, 못되게 말해 드릴까요?”
“쓰읍, 마음의 준비를 좀 하게 먼저 착하게 말해 줘 봐.”
“대표님 취향을 바꾸기 전에는 일단 좀 그 세계관 집착을 포기하세요. SF 불모지에서 대표님 취향은 전혀 매력적이고 끌리는 세계관으로 팬층이나 대중들에게 와 닿을 수가 없거든요.”
“전혀 착하지 않은데… 그리고 내 취향이 뭔지 어떻게 알고?”
“우주잖아요. 다중우주, 평행우주, 무슨 우주, 우주 전쟁.”
입을 떡 벌린 대표님이 무슨 용한 무당 보는 눈으로 나를 보며 감탄 섞어 물었다.
“우리 이든이가 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았어?”
씨바, 관심이 많은 게 아니라 회귀 전에 그런 그뭔씹 컨셉에 하도 데여서 그런 거거든요. 대표님 빠돌이라니, 들은 오해 중 가장 끔찍한 오해였다. 스폰 오해보다 더.
“못되게 말하는 건…?”
회수된 카메라가 있던 쪽을 반사적으로 한 번 돌아보며 확인을 마치고 말했다.
“팬들은 난해하고 너무 컨셉츄얼하다고 안 반기고 대중한테는 그뭔ship이 될걸요. 대중성 잘 잡아 놨는데 왜 대표님 손으로 다시 말아 드시려 하세요.”
이 ship은 우주 함선을 뜻하는 ship입니다. 욕설로 생각하고 초심도를 깎으려 하는 건 곤란합니다.
“대표님, 차라리 빌보드 욕심을 내세요! 왜 그런 이상한 세계관 욕심을 내시는 거예요! 저 <내 우주로 와>도 겨우 기억에서 지웠는데 방금 되살아났어요!”
서예현이 대표님을 붙들고 간절하게 외쳤다.
그 우주복 같은 실험맨 착장을 다섯 명 모두 입었는데 허구한 날 끌올되는 건 제 사진뿐이니 서예현이 우주 콘셉트에 학을 뗄 만도 했다.
대표님의 우주 세계관을 향한 열망의 불씨를 성공적으로 밟아 꺼트린 후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
김도빈이 제일 먼저 류재희한테 말을 걸며 운을 뗐다.
“그런데 새삼 이번 앨범 작곡가 라인업 대단하네. 솔직히 이번이 진짜 역대급으로 고르기 어려웠던 듯? 랑 <다시 시작해> 때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더.”
“그러게. G1, 백상열, 이든이 형이라니. 대표님 적폐 인맥 작곡가가 들고 온 그 끔찍한 세 곡에서 타이틀곡 골라야 할까 봐 덜덜 떨던 게 전생 같다.”
카메라도 대표님도 없겠다, 류재희의 신랄한 디스가 쏟아졌다.
나조차도 잠깐 잊고 있던 그 곡들을 떠올리다가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대표님이 혹시 그 곡들을 내가 추천해 드린 대로 아침 알람 곡으로 쓰고 계실까?
“그러게. 그 당시에 비하면 이번에는 정말로 행복한 고민이었네.”
견하준이 한시름 놓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견하준은 심지어 대표님 인맥으로 들어온 터라 마음에 들지 않아도 견하준의 성격상 소개해 준 친척 어른을 생각하여 무어라 대거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진실은 나와 견하준과 대표님만이 알고 있긴 하지만 견하준한테는 낙하산이라 장난식으로 말하는 것도 금기였다.
솔직히 낙하산 뜻이 윗사람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으로 꽂힌 사람이라는데 견하준이 꽂힌 거냐고. 아무리 봐도 개척자지. 이 경우는 낙하산이 아니라 포크레인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닌가.
“그래도 그건 솔직히 <밍키매직> 리메이크에 비하면 양반이지. 나는 그 세 곡 중에서 타이틀곡을 골라야 하는 것보다 다음 앨범을 <밍키매직> 리메이크로 가는 걸 진지하게 고려하는 대표님이 제일 무서웠어.”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 내린 서예현이 그때가 생각나는지 부르르 몸을 떨며 질색 어린 말을 내뱉었다.
“하긴, 얼마나 싫었으면 예현이 형이 탈퇴로 대표님을 협박했겠어요.”
“…난 진심이었어.”
블랙소울보다 밍키매직이 더 싫었다니. 하여간 무엇이 더 싫던 간에 그런 서예현을 블랙소울과 밍키매직의 늪에서 구해 준 건 나였기에 히죽 웃으며 서예현을 툭툭 쳤다.
“저한테 고마워하십쇼, 형님.”
“그래, 엄청 고마워. 너는 진짜 내 연예계 생명의 은인이야.”
“으아아악! 빙의다! 서예현이 이렇게 순한 얼굴로 나한테 고맙다고 할 리가 없잖아!”
“야! 겉으로는 형님형님 하면서 속으로는 서예현이라고 부르고 있으니까 형님이라는 말에 진정성이 없지!”
“운전 중인데 둘 다 목소리 좀 낮추자.”
견하준의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와 서예현은 입을 다물었다.
* * *
트랙리스트에 들어갈 수록곡까지 선정하고 나니 드디어 설 연휴가 다가왔다.
서예현은 카이사르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휴가 첫날 아침 일찍이 본가로 내려갔으며, 견하준과 김도빈 역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본가로 향했다.
나와 류재희도 이번 설 연휴에 숙소에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캐리어 그거면 충분해? 짐 다 들어 가겠어?”
“애초에 짐 별로 없어요. 휴가 때도 거의 안 들어갔던 것만 봐도 알잖아요.”
캐리어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조수석에 탄 류재희가 제 본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며 약간의 긴장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저희도 가요, 이든이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