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4화(404/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4화
원래 내가 처음 세웠던 휴가 계획에는 류재희의 본가에 가는 일정 자체가 없었다.
그냥 바로 류재희를 데리고 내 본가로 나르려고 했는데 류재희가 먼저 내게 자신의 본가에 들렸다 가자고 말해 왔다.
‘왜, 집구석 깽판 쳐 줄 사람 필요해?’
‘그냥 가는 길에 들러서 본가에 남은 짐 좀 챙겨 오려고요. 재선이도 보고, 해 줄 말도 있고 해서요.’
그 말을 하는 류재희의 표정에는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것이 여실히 담겨 있었기에 더 묻지 않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다녀와도 되는데 굳이 나를 데리고 가는 이유가 다 있을 것이다. 집구석 깽판 서포트를 해 달라는 시그널이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류재희의 기대 그 이상으로 잘 수행해 줄 자신이 있었다.
선글라스 홀더를 열어 선글라스를 척 얹은 다음, 차를 출발시켰다.
“너희 집 가는데 왜 이렇게 긴장해?”
긴장을 풀라는 의미로 장난스레 묻자 류재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가 어머니 얼굴 보고도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통화랑 면대면은 다르잖아요.”
“내가 예전에도 말했지 않냐. 끊어 낼 때는 끊어 내야 한다고. 도망가면 계속 반복될 뿐이야.”
“알고 있어요. 그래서 형 데리고 가는 거예요. 형이랑 같이 가면 어떻게든 될 것 같거든요.”
어느새 차는 류재희가 찍은 주소의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했다. 류재희 첫째 동생 놈과의 중고나라 거래 장소 근처였기에 찾아가기는 제법 수월했다.
내가 주차할 공간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와중, 류재희는 떨떠름한 얼굴로 주변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경비실에서 방문 차량 주차증 받아 와야 하나. 낯설어서, 원…”
“너희 집인데 왜 낯설어?”
“본가가 여기로 이사 오고 나서는 거의 안 왔거든요.”
먼저 차에서 내린 류재희가 주차증을 끊어 오는 동안 적당한 곳에 주차를 마치고 차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냈다.
여전히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나를 보며 눈을 가느다랗게 좁힌 류재희가 물었다.
“그런데 형, 혹시 그러고 저희 집까지 가시게요?”
“왜, 보디가드 같고 멋있잖아.”
“형도 요즘 도빈이 형한테 물드는 거 같아요.”
“너는 형한테 무슨 그런 심한 말을 하냐?”
투덜거리면서도 선글라스를 벗진 않았다. 위압적인 분위기를 옆에서 잡아 주고 있어야지 류재희가 할 말을 다 하고 오지 않겠나.
엘리베이터 층수에서 한 번 막혔다가 드디어 무사히 도달한 집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류재희가 초인종을 꾹 눌렀다.
“형, 왔어?”
류재희네 막내가 문을 열고 우리를 반겼다. 정확히는 제 형을 먼저 반긴 다음에 그 뒤에 서 있는 내게 90도로 허리 숙여 깍듯하게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말까지 더듬어 대며 인사하는 류재희네 막내의 모습은 내가 혹시 둘째와 막내를 헷갈려 막내한테 윽박지른 적이 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재희 왔니? 뒤에는… 재희 친구?”
현관에 신발을 벗어 두고 집 안으로 들어오자 중년 여성이 류재희를 반갑게 맞이했다. 얼굴 보자마자 고성과 욕설이 오갈 줄 알았는데 퍽 의외였다.
아들이 속한 그룹 멤버를 알아보지 못한 건 좀 엥하긴 했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 그럴 수도.
류재희 첫째 동생놈은 나를 보자마자 움찔했지만 옆의 부모님이 제 든든한 방패막이라도 된 듯, 방으로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네, 할 말 있어서 설 연휴에 온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친구 아니라 같은 팀 멤버 형이에요.”
“그래, 그래서 엄마가 갈비찜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지. 아들, 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지금 차려 줄까? 둘이 같이 밥이라도 한 끼 먹고 가.”
다정한 목소리와 표정에는 한 치의 꾸밈도 없었다. 저게 연기면 류재희 어머니는 이미 명배우로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 저런 면의 애정 때문에 류재희가 지금껏 가족을 매정하게 끊어 내지 못했구나, 조금이나마 이해는 갔다.
“됐어요. 밥 먹으러 집에 온 거 아니에요. 짐 챙기러 온 거지. 재선아, 형 짐 어디에 뒀다고 했지?”
캐리어를 들고 막냇동생의 안내를 따라 방에 들어가는 류재희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다용도실 같은 방 한구석에 류재희의 짐이 대충 쌓여 있었다.
“뭐야, 내 짐이 이것밖에 없다고? 내가 몇 개 더 본가에 가져다 놨잖아.”
“그건 작은형이….”
“하아, 그냥 버린 셈 치련다.”
역시 사람이 하나만 하지는 않는구먼. 팔았을까 자기가 쓰고 있을까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서 관뒀다.
내 도움 없이도 금방 캐리어에 얼마 되지 않는 짐을 모두 담고 나온 류재희가 소파에 앉아 있는 자신의 부모님을 돌아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생활비 드리는 것도 끝이에요. 저는 이제 이 집 가족 아니니까 돈 댈 의무도 없죠.”
류재희 부모의 눈이 커졌다. 류재희 첫째 동생놈은 이 사달의 70%를 차지한 놈답게 초조한 얼굴로 엄지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소파에서 다급하게 벌떡 일어난 류재희의 어머니였다.
“얘,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지금 수능이랑 대학 진학 앞둔 네 동생들도 그렇고, 몇 년 새에 집에 돈 들어갈 데가 얼마나 많은데 돈을-”
“우리 집 원래 큰돈 없이도 우리 가족끼리 잘 살았잖아요. 왜 제가 성공하자마자 갑자기 돈 쓸 곳이 그렇게 많아지는 건데요.”
제 어머니의 말을 끊은 류재희가 언성 하나 높이지 않고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게. 우리가 한참 망하다가 빡 떴으면 얼마나 더 보상 심리가 발동하셨을지, 쯧쯧.”
회귀 전, 류재희가 으로 빵 떠서 드디어 숨 돌릴 정도는 된 우리의 형편에 여유를 가질 새도 없이 싹싹 긁어 가던 류재희 가족의 모습을 단편적으로나마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 말은 비꼼이 아니라 한 치의 과장 없는 진실이었다.
“네가 왜 이 집 자식이 아니야? 내가 배 아파서 낳아놨는데 무슨 그런 배은망덕한 소리를 해!”
어머니가 제 앞에서 가슴을 퍽퍽 두드리며 우는 소리를 해도 류재희의 표정은 변함 없이 냉정했다.
“어머니가 수틀리시면 항상 하던 말 있잖아요. 어머니 입으로 어디 가서 어머니 자식이라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요. 그래서 원하시는 대로 해 드리려고요.”
아니, 그래 놓고 ‘아들~’ 이런 거야? 이중인격이야?
“저도 어머니 자식이라는 소리 안 할 테니까, 어머니도 이제 어디 가서 저를 당신 자식이라고 하지 마세요.”
“오우, 어머님이 선빵 치셨네.”
류재희의 뒤에서 박수를 두어 번 짝짝 치며 말을 거들었다. 류재희 어머니는 아들의 절연 선언에 너무 충격받았는지 가슴을 두드리는 손길도 뚝 멈췄다.
“류재희!”
“아버지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돈 드릴 일 없으니까 어머니 내세워서 돈 필요하다고 우는 소리하는 거 그만 하세요.”
엄한 목소리로 저를 호명하는 아버지도 류재희는 가볍게 K.O시켰다.
“에휴, 아버님. 어머님 내세우지 말고 남자 대 남자로 이야기하셨어야죠. 그렇게 어머니 뒤에 숨는다고 좋은 아버지 안 됩니다.”
혀를 차며 류재희네 아버지한테 충고해 주었다. 뭐, 절연한 이상 류재희한테 좋은 아버지가 되긴 이미 글렀지만.
“참, 제 이름 팔아 가면서 채무 문제 등의 돈 관련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법적 조치 취할 거예요. 합의 절대 없고요. 자식 의무는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니까 이제 류재경한테나 효도 받으세요.”
내가 걱정했던 부분도 류재희는 야무지게 짚고 넘어갔다. 역시 레브의 두뇌다운 모습이었다.
“노후까지 효도 받으려면 지금부터 정신 차리게 만드셔야겠는데. 저 녀석 싹수 보니까 자칫하다간 노후 준비는커녕 그 돈이 싹 합의금으로 나갈 수도 있거든요.”
류재희 첫째 동생 놈을 가리키며 심드렁하게 경고 겸 충고를 해 드리자 류재희네 어머니가 모로 눈을 치뜨며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 듣자 듣자 하니까 그쪽은 뭔데 아까부터 계속 말을 얹어 대요?”
“저요? 저희 막내 보호자요.”
“보호자건 뭐건, 남의 가족 일에 왜 끼어드는데!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
“제가 한정판 신발을 이 자식한테 뜯겼는데 이 정도 말도 못 합니까? 와, 입이 너무 근질근질해서 당장 고소장 형사과에 확 접수해 버리고 싶네.”
고소장을 들먹이자 류재희 첫째 동생 놈의 얼굴에 잠시간 공포가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류재희 어머니의 반응은 달랐다.
“고소장 날린 사람이 그쪽이었어? 그래 놓고 뻔뻔하게 우리 집에 와? 아무튼 잘됐네. 그쪽 부모님이랑 전화 좀 하게 번호 좀 줘 봐요! 그쪽 부모한테 지금 따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아, 진짜요? 그렇지 않아도 저희 아버지가 벼르고 계시거든요. 고소장도 아버지가 써 드린 거라서요. 제가 고소장 형사과 접수하신다는 거 겨우 말렸는데 전화해서 합의 종용하시면 그게 진짜 접수될 수가 있어요.”
나는 딱 하나 빼고 진실만을 말했다.
“이든이 형 아버지가 변호사이시거든요. 류재경 빨간 줄 그이게 하고 싶으면 계속 합의 요구해 보세요.”
류재희의 거듦에 류재희네 어머니는 순순히 우리 아버지와의 통화 및 합의 시도를 포기했다. 변호사를 상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류재경, 너는 그 고소장 날리기 전에 50만 원 갚아. 신발 찾아와서 신발이랑 30만 원 갚든지.”
“아니, 막내야. 왜 20만 원이나 깎아 줘. 100원만 깎아. 도둑놈이 제가 싼 똥 치우는 비용이 무슨 20만 원이나 하냐. 100원이면 충분하지.”
“형… 내가 계속 요청은 하는데 거래자 쪽에서 답신을 안…”
“그럼 50만 원 갚아야지. 내가 네 사정 알아야 해?”
매몰차게 말을 끊은 류재희가 아연한 표정으로 저를 보는 제 가족을 돌아보았다. 회귀 전, 류재희의 수렁이나 다름없었던 그의 가족을.
“지금까지 키워 주셔서 감사했고, 그 빚은 충분히 다 갚았으니까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차에서 긴장하던 것치고는 제법 단호하게 마지막 인사를 마친 류재희가 캐리어를 끌고 현관으로 향했다.
“아드님 새로운 보호자는 네 명이나 생겼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아드님은 저희가 잘 키우겠습니다.”
나도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류재희의 뒤를 따라 류재희의 집을 나섰다.
쾅-.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완전한 단절이었다.
차 트렁크에 캐리어를 다시 싣고 차에 타 시동을 거는 동안 류재희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집 안에서는 그렇게 냉정하더니만 막상 집을 나오자 착잡해 보이는 류재희의 표정에 무어라 말을 붙이기가 좀 그랬다. 다른 이도 아니고 가족이랑 절연한 건데 이럴 만도 하지.
그 순간.
똑똑-
차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 침묵을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