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5화(405/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5화
노크 소리가 울린 조수석 창문을 반사적으로 돌아보자 류재희네 막냇동생이 숨을 헐떡이며 조수석 옆에 서 있었다.
“어떻게 할래? 이야기하고 갈래?”
“제가 문자로 재선이한테 나오라고 했어요. 그 집에서 이야기해 봤자 애 돈만 뜯길 게 뻔하니까.”
내 물음에 대꾸한 류재희가 창문을 열었다. 내가 류재희에게 약하듯, 류재희 역시 자신의 막내한테는 한없이 약한 모양이었다.
잔뜩 주눅 든 모습의 류재희 막냇동생이 쭈뼛거리며 사과를 건넸다.
“형, 미안해…”
“네가 뭐가 미안해. 그나마 네 덕분에 버텼는데.”
픽 웃은 류재희가 손을 뻗어 고개 숙인 제 막냇동생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내가 김도빈이나 류재희의 머리를 헤집는 것과 똑 닮은 모습이었다. 진짜 뉴트리아가 아니라 카피캣이라니까.
여전히 류재희의 눈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류재희네 막내가 웅얼거렸다.
“작은형 무서워서 형한테 말도 못 해 주고, 말리지도 못했잖아…. 팬 선물이 중고나라에 팔리면 형한테 무슨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재희 동생. 내가 고소장 날린 거 보면 모르겠냐. 그거 팬 선물 아니고 우리 선물이야.”
내 말에 고개를 치켜든 류재희 막냇동생의 얼굴은 안도로 가득 차 있었다. 계속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사실 말리거나 류재희한테 말해 주지 않은 저 막냇동생도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그래도 싹수 노란 저 집 둘째 놈이 동생을 평소에 얼마나 잡아 댔을까 생각하면 그 잘못도 약간의 정상 참작 여지는 있었다.
사실상 당사자인 류재희도 그 책임은 묻지 않으려 하는 것 같으니 내가 무어라 할 수도 없고 말이다.
“네 용돈은 안 끊을 거야. 그러니까 형한테 용돈 받는 거 절대 가족들한테 말하지 말고. 알았지?”
“나도 굳이 안 줘도 돼, 형. 나 진짜 괜찮아. 지금까지 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나 안 쓰고 거의 다 모아 놨어.”
류재희의 신신당부에 막냇동생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지만 류재희는 강경했다.
“집안 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고, 너 여기에 두고 오는 것도 갑갑한데 이 정도는 해야지 형 마음이 편해.”
잠깐의 실랑이 끝에 류재희네 막내가 먼저 손을 들었다.
“집 나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 형이 혼자 살 만한 빌라나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얻어 줄 테니까. 친구랑 같이 살아도 되고.”
“오, 막내. 완전 형인데?”
휘익, 휘파람을 불며 감탄하자 류재희의 귀 끝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류재희의 손이 내 허벅지를 퍽퍽 내리쳤다. 하극상 봐 주는 건 오늘까지다, 막내야.
류재희의 통큰 제안에도 고개를 짧게 저은 막냇동생이 제법 의젓하게 말했다.
“대학 갈 때까진 버티려고. 다른 지역으로 대학 진학해서 기숙사 생활하면서 차차 독립할 생각이야. 거기서 알바도 구해 보고 해야지. 언제까지 형이 주는 용돈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
다른 가족들이 저 막냇동생 마인드 반만 따라갔어도 마음 약한 류재희가 절연이라는 최후의 칼까지 꺼내 들지는 않았을 텐데, 쯧쯧.
당장의 욕심에 눈이 멀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계속 집에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2년밖에 안 남았잖아. 어차피 작은 형도 인서울이랑 경기권 대학은 글렀으니 작은형 내년에 대학 가면 숨통은 조금 트이겠지.”
그 싹수 노란 놈 하는 꼬라지 보면 대학이 아니라 어디 구치소나 갈 거 같은데. 어쨌건 그 자식이 타 지역으로 대학을 가면 돈 나갈 일이 한층 더 많아지는 거니 이 집구석을 향한 류재희의 복수에 한몫 거들어 주는 셈이었다.
하지만 류재희는 제 동생의 똑 부러지는 대답에도 영 걱정이 되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내가 이제 지원 끊으니까 집안 형편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냥 원래대로 돌아온 것뿐이잖아. 큰형은 여기에서 벗어난 거고.”
막냇동생이 미약하게 웃으며 류재희의 걱정을 깔끔하게 잘라 냈다.
하지만 여전히 미련과 걱정을 놓지 못한 류재희가 무어라 더 말하려 하자 고개를 저은 막냇동생이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선수 쳐 말했다.
“그거 알아, 형? 형이 집에서 떠나고 우리 집 제사 횟수 확 줄었다? 엄마가 자기도 이제 나이 들었는데 혼자 그 많은 제사 준비하기 힘들다고 아빠랑 엄청 싸워서 줄였어.”
그 말을 들은 류재희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작은형이나 나나 제사 준비 안 돕잖아. 형이나 도왔지. 제사 때마다 맨날 밖으로 나도니까 우리한테 시키지도 못하시더라고.”
볼을 긁적인 막냇동생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니까, 형이 돕지 않아도 어떻게든 다 굴러 간다고. 이렇게. 그러니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
멈칫했던 류재희가 입술을 깨물며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류재희가 손바닥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마음의 짐을 한결 내려놓은 듯한 얼굴을 한 채 류재희는 손을 뻗어 제 동생의 볼을 턱 잡았다.
“나참, 형 위로도 다 해 주고. 언제 이렇게 컸어.”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엄마랑 아빠가 형 이름으로 뭐 하려고 하면 최대한 막아 볼게. 형한테도 미리 말해 주고.”
류재희네 막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건 잘 부탁한다며 동생의 볼을 한번 꾹 잡아 늘리고 손을 뗀 류재희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잘 있어.”
“응, 잘 가, 형.”
막냇동생 역시 웃으며 제 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고마워. 가족 중에 한 사람이라도 형한테는 말해야 할 것 같았어.”
조수석의 창문이 완전히 올라가기 전, 감사 인사를 던진 막냇동생이 후다닥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차가 출발하고 나서도 한참을 제 동생이 달려간 방향을 돌아보던 류재희는 차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오고 나서야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고마워하네요.”
“저기 중에서도 너 닮은 사람 하나는 있네.”
“그러게요. 적어도 홀로 동떨어져서 주워 온 자식 아닌가 하고 제가 스스로를 의심할 일은 없겠네요.”
한숨 같은 실소를 뱉던 류재희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뭐야, 갑자기 왜 웃어?”
혹시라도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실성한 건가 싶어 걱정을 담아 물어 보자 류재희가 키득거리며 대꾸했다.
“아니, 마지막이 형이 저희 부모님에게 하고 나온 말이 생각 나서요. 아드님은 저희가 잘 키우겠다니. 누가 보면 형들이 단체로 저 입양한 줄 알겠어요.”
“왜, 진짜로 입양해 줘?”
내려간 선글라스를 쓱 치키며 삐뚜름하게 묻자 류재희가 고개를 저었다.
“정중히 사양할게요. 관념적 아버지가 등본상 아버지가 되는 건 좀….”
연휴 첫날이라 슬슬 막히기 시작하는 도로에, 내 본가에 도착하기까지 거리에 비해 시간이 좀 걸렸다.
현관문을 열고 오랜만에 오는 본가에 들어서자 포도가 반갑게 현관으로 뛰어와 킁킁, 나랑 류재희의 냄새를 번갈아 맡더니 금세 흥미를 잃고 터벅터벅 강아지 하우스로 돌아갔다.
신발을 벗고 선물세트를 한쪽에 잘 세워 놓은 후, 강아지 하우스 앞에 쭈구려 앉은 류재희가 개껌을 앞발로 잡고 열심히 뜯고 있는 포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포도가 이전만큼 저를 안 반기네요.”
“너도 이제 아는 사람이라 이거지. 포도, 형 왔잖아. 왜 아는 척도 안 하고 휙 들어가고 그래? 형 섭섭하다, 야.”
잘근잘근 씹고 물어뜯기에만 여념이 없던 개껌을 슬쩍 뺏어 위로 쓱 올리자 포도가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노려보았다.
형보다 개껌이 더 소중하다 이거지?
개껌으로 터그놀이를 해 주고 있으니 쭈구려 앉았던 무릎을 펴고 선 류재희가 혀를 찼다.
“형은 확실히 강아지를 대하는 거랑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엄청난 온도 차가 있는 것 같아요.”
“엥? 내가?”
“만약 도빈이 형이 이랬다고 생각해 보세요. 형이 방금 포도에게 했던 것처럼 부드러운 타박이 나오겠어요? 분명 눈 부라리면서 ‘야, 이 싸가지 없는 자식아. 너는 형이 왔는데 아는 척도 안 하고 휙 들어가냐, 인마?’ 이러실걸요.”
“와씨, 성대모사 뭔데.”
게다가 비속어를 할 수 없어 시스템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다운그레이드 시킨 호칭까지 구현하다니.
류재희가 관찰력이 좋은 것인가, 내가 그만큼 읽기 쉬운 것인가.
“그런데 형 부모님께서는 지금 집에 안 계세요?”
“나도 몰라. 불러봐야지.”
“어른께 먼저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포도한테 순간 정신이 팔려 버렸네요.”
류재희가 포도를 힐끔거리며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평소처럼 부모님을 부르려다가 내 옆에 있는 류재희를 의식하고 호칭을 바로 틀었다.
“어머니, 아버지. 아들 왔습니다!”
우렁차게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뭐지, 안 계시나?”
“안쪽에서 방금 기척은 느껴지던데요.”
류재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안방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왔니? 엄마 금방 나갈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하지만 그래 놓고 엄마는 10분 동안 나오지를 않았다. 아버지한테 메시지를 넣어 보니 아버지는 지금 밖이라 저녁 먹을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가겠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거실로 나온 엄마를 보고 입을 떡 벌렸다.
“엄마, 어디 방송 촬영 나가…?”
풀 세팅을 하고 나온 엄마는 소파에 앉아 있는 우리를 먼저 본 후에 누군가를 찾듯 거실을 잠깐 훑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엄마는 눈살을 찡그리며 풀 세팅의 이유를 말해 주었다.
“네가 평소랑 다르게 너무 예의 차려서 부르길래 설날 특집 촬영한다고 방송국 카메라 달고 온 줄 알았지.”
류재희가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간헐적으로 몸을 떠는 꼴을 보아하니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내가 방송하니까 집 좀 치워 놓으라고 미리 연락했지. 아들을 향한 믿음이 그 정도도 없어?”
“당연하지. 네가 그 정도로 섬세하진 않잖니.”
“내가 까먹고 있었어도 재희가 하라고 시켰을걸.”
“여전하구나, 우리 아들.”
“어머님, 안녕하세요.”
“그래, 잘 지냈니?”
꾸벅 인사를 한 류재희가 엄마한테 명절 선물 세트를 건넸다. 엄마 역시 류재희를 반갑게 맞이했다. 지난번 방문 이후로 엄마는 한 번씩 류재희가 휴가 때 나랑 같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그래도 이전에 한번 우리 집에서 지내며 안면을 텄다고 류재희는 엄마랑 대화하면서도 제법 어색해하지 않고 살가운 막내아들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소외된 나랑 포도만 소파 구석에 덩그라니 있을 뿐이었다. 자식보다 개가 낫다더니, 그래도 살가운 개보다는 살가운 아들이 더 좋은가 보다. 쓰는 언어가 같아서 그런가.
내 무릎에 앉은 포도를 쓰다듬고 있다가,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시선을 내렸다.
[✆김도빈]뭐야? 휴가 때는 더럽게 연락 안 하더니.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자 다급한 김도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든이 형! 지금 재희랑 있죠? 지금 형 본가 도착했어요? 형 본가예요?
“어어, 그런데 그건 왜? 내가 본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냐?”
집요하게 내 위치를 물어보는 김도빈에 눈썹을 치키며 대꾸하자 생뚱맞은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형네 집 가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