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6화(406/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6화
“뭐? 우리 집으로 온다고?”
집을 존나게 사랑해서 휴가 때마다 멤버들 중 제일 첫빠따로 제 본가로 달려가던 김도빈이었기에 자기 집을 떠나 우리 집으로 오겠다는 그 당당한 요구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네! 예현이 형 본가는 너무 멀고 하준이 형은 하준이 형네 형이랑 누나도 계실 테니까 가기 좀 그렇잖아요. 외동에다가 재희도 있는 형네 집이 딱이에요.
“왜, 무슨 일 있냐? 너 빼고 가족 여행 가서 집이 텅 비기라도 했어?”
-어, 그게, 그건 아닌데… 만나면 이야기해 드릴게요.
평소였으면 옳다구나 하며 굳이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줄줄 풀어 놨을 텐데 이야기해 보라고 판을 깔아 줘도 말하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자 이상함과 의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김도빈이 무어라 하든 김도빈의 목소리를 도용한 보이스피싱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저게 피싱범이 아닌 김도빈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피싱범이 이렇게 뜯어 낸 내 본가 주소를 인터넷에 뿌리기라도 하면… 역시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저게 진짜 김도빈인지 알아내는 법은 간단했다. 우리끼리만 아는 질문을 던지면 됐다.
“야, 도빈아.”
-네?
“레브 회의 지금 몇 회냐?”
-네? 갑자기요? 어, 몇 회였더라…
김도빈, 아니 피싱범은 역시나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당황한 티를 물씬 냈다.
“너 이 자식, 피싱범이지!”
확신이 담긴 내 외침에 피싱범이 잔뜩 억울해하는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그러는 형은 지금 몇 회인지 알아요?
“당연히 알지! 칠백… 칠백… 엄… 재희야, 우리 회의 몇 회냐?”
-형도 재희한테 물어봐야지 알잖아요! 그리고 재희랑 형이랑 같이 형 본가 갔다는 걸 피싱범이 어떻게 알아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았다.
피싱범, 아니 김도빈과 몇 번의 질의응답을 거치고 나서야 수화기 너머의 놈이 피싱범이 아닌 김도빈임을 인정해 주었다.
김도빈이 간절하게 외치는 소리가 귓구멍을 따갑게 찔러 와 슬쩍 휴대폰을 귀에서 뗐다.
-혀엉, 주소만 불러 주시면 알아서 찾아갈게요! 제가 솔직히 길 잃을 나이는 아니잖아요. 차도 있고요.
김도빈은 얼마 전에 차를 한 대 뽑았다.
하지만 본인이 꿈꾸던 대로 제 드림카를 첫 차로 뽑지는 않았다. 내게 연수 몇 번 받고 나니 초보의 실력으로 그런 비싼 차를 끌고 다니는 건 길바닥에 돈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김도빈은 내가 DTB 시즌 4 우승 상품으로 받았던 차가 뒤늦게 아까워졌던 모양인지 제 어리석음과 아쉬움을 몇 번 토로했지만 이미 차는 최형진에게 넘어갔기에 후회해 봤자 늦었다.
그러게 준다고 할 때 순순히 받지는. 왜 괜히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형진이 좋은 일만 시켜 줬냐.
하긴, 덕분에 선의의 라이벌에게 우승 상품인 자동차를 양도한 나까지 이미지가 좋아졌으니 따지고 보면 형진이만 좋은 일 시켜준 건 아니군.
“맨날 얼굴 보는 게 멤버들인데 기왕이면 얼굴 자주 못 보는 가족들이랑 휴가 보내지 뭐하러 와?”
-저 집에 있기 싫어요.
“그럼 친구 집 가, 인마. 휴가 때마다 만나는 친구들도 있잖아, 너.”
-친구들도 다 친척 집이나 조부모님 댁 갔대요. 몇 명은 걔들 집이 큰집이라 만날 수는 있어도 재워 주기는 불가능하댔고요.
“그러면 숙소로 가든지. 새 숙소 좋잖아. 아니면 호텔 잡아서 휴가 동안 호캉스를 즐기던가.”
-저 진짜 갈 데 없는데 숙소나 호텔에서 쓸쓸하게 혼자 있고 싶지는 않단 말이에요. 형이랑 재희도 며칠 후에 숙소 올 거잖아요.
류재희야 할아버지의 마음에 든 인재였지만 김도빈은 류재희보다는 아무래도 내 쪽에 가까웠기에 내 친가에 데려가기도 뭐하고 이 집에 홀로 두고 가기도 뭐했다.
할아버지가 뒷목 잡든 김도빈이 뒷목 잡든, 둘 중 하나가 이루어질 미래가 훤히 보였다.
그러니 오지 말라는 소리를 돌려 돌려 말하자 깊은 한숨을 내쉰 김도빈이 울적한 목소리로 토로했다.
-저는 굉장히 우리 가족들한테 실망했어요. 오죽하면 제가 뛰쳐 나왔겠어요.
여기도 가족 이슈가?
회귀 전의 기억을 뒤져 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김도빈의 가족 문제는 딱히 없었다.
사실 있었더라도 나는 모를 것이다. 회귀 전의 나는 그런 내밀한 속사정을 알 수 있을 만큼 김도빈과 가깝지 않았으니까.
가깝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남보다 못했지. 서예현보다 조금 나은 사이였을 뿐.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관계 개선이 정말 천지개벽 수준이군.
“아니, 대체 무슨 일인데?”
-궁금하시죠? 집으로 초대해 주시면 형 집에서 말해드릴게요.
“너 지금 우리 집 숙박권 두고 나랑 딜하냐?”
한참을 더 이어지는 김도빈의 징징거림에 결국 두손 두발 다 든 나는 김도빈에게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어머니, 한 명 더 올 예정인데 괜찮죠?”
엄마를 돌아보며 거의 통보식으로 묻자 주변을 돌아본 엄마가 눈을 가늘게 좁히며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흘겼다.
“진짜 카메라 있는 거 아니지? 네가 그렇게 깍듯하니까 낯설다, 얘.”
“형, 제 앞이라고 그러지 말고 편하게 해요. 어머님도 낯설어하시잖아요. 설마 저를… 가족이 아니라 남이라고 생각해서 그러시는 건 아니죠…?”
자기 볼을 감싸고 잔뜩 불쌍한 척을 해 대는 류재희를 힐긋 본 포도가 같이 낑낑거렸다. 막내끼리 통하는 게 있나 보다.
“알았다, 알았어.”
툴툴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슬슬 극존칭이 오글거리던 터였다.
지난번까진 엄마도 딱히 믿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미화된 어른스러운 리더 형으로 나를 꾸며 우리 부모님한테 말해 주던 류재희는 이제 절반쯤의 진실을 드러냈다.
물론 그 정도만으로도 엄마는 드디어 내가 철이 들었다고 좋아하셨다.
삐빅, 현관에서 들리는 도어락 소리에 내 무릎 위에 뻗어 있던 포도가 벌떡 일어났다.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주기가 무섭게 포도는 꼬리를 마구 흔들며 현관으로 달려갔다.
친자식인 내가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거랑 퍽 대조적이었다. 이래서 자식보다 개가 낫다는 건가.
“아빠, 왔-”
“안녕하세요! 형, 저 왔어요!”
아버지의 뒤에서 불쑥 나오는 김도빈의 얼굴에 즉시 편하게 부르던 걸 멈추고 호칭을 틀었다.
“아버지, 오셨습니까.”
내 인사를 받자마자 주변을 두리번거린 아버지가 풀 세팅을 한 엄마와 나, 그리고 엄마의 옆에 이 집 아들처럼 앉아 있는 류재희를 번갈아 보다가 내게 떨떠름하게 물었다.
“어디 방송국 촬영 왔어?”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어머니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아버지.”
오랜만에 얼굴 보는 아버지와 인사를 마치고 김도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왔냐? 차 안 막히든?”
“엄청 막혔죠. 저 형이랑 통화 끝나고 바로 출발했는데도 이제 왔잖아요.”
“어쩌다가 울 아버지랑 같이 들어왔냐?”
“주차장에서 만났어요. 사실 같이 엘리베이터 탈 때까지만 해도 모르다가 층수 겹치고 알았죠. 콘서트 끝나고 대기실에서 만난 기억 없으면 끝까지 못 알아봤을걸요. 그때도 새삼 느낀 건데 형이랑 진짜 안 닮으신 거 같아요.”
멈칫했다가 눈을 굴리며 김도빈이 슬그머니 질문을 덧붙였다.
“혹시 제가 한 말이 욕은 아니죠? 사실은 형도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던가?”
“딱히…?”
아버지는 할아버지 판박이랬기에 아버지를 닮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닮기라도 했어 봐라. 할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달달 볶았겠는가.
“이제 내 본가까지 왔으니까 말 좀 해 봐라. 무슨 일이 있었길래 휴가 첫날부터 집에서 뛰쳐 나와?”
“저희 형이 제 이름 걸고 카페 차린다잖아요. 연예인 가족이 하는 카페로 저 은퇴할 때까지 꿀 빨 거래요! 그래서 제가 형이랑 싸우니까 어른들은 형 편만 들고!”
김도빈이 씩씩거리자 단번에 얼굴이 심각해진 류재희가 물었다.
“뭐라고 하셨는데?”
“형이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그렇게 예민하게 굴고 어른들 다 있는 앞에서 목소리 높이면서 싸워서 분위기 망치냐고.”
김도빈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탄조로 토로했다. 그런 김도빈을 보며 심각함을 거둔 류재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질문했다.
“형은 뭐라고 했는데. 형의 형 말고, 형.”
“뭐라 했긴. 형도 이렇게 잘나가는 연예인 형이랍시고 이렇게 내 등골 빼 먹으려 하는 거냐고 그랬지.”
“그걸 설마 진지하게 말했어?”
“어. 내 딴에는 진지했지.”
당당한 김도빈의 대답에 류재희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너희 형 경찰대 다닌다고 안 했냐? 카페 창업이랑 경찰이랑 겸업이 돼?”
“글쎄요? 경찰도 공무원이니까 안 되지 않을까요?”
“너희 형이 뭐 경찰대 때려치울 정도로 카페에 깊은 뜻이 있어? 아니면 예전부터 카페 사장이 꿈이었어?”
“아니요? 경찰이 꿈이긴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맨날 허구한 날 자기가 경찰 되면 저 감방에 처넣을 거라고 하고 다녔거든요. 겨우 냉장고에 있던 요구르트 하나 더 먹은 거 가지고.”
여기에서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면 대체 어떤 맥락에서 카페 차린다는 말이 나온 건데?”
“티비 방송에 카페 이색 디저트 소개하는 게 나왔거든요.”
“그래서 너희 형도 갑자기 저거 해 보고 싶다고 카페 하나 차려 주래?”
“아니요? 말 끊지 말고 들어 보세요. 맥락이 그게 아니라고요.”
“알았어. 말 안 끊을 테니까 말해 봐.”
“카페 이야기하다가 친척 형 친구의 아는 형의 남동생의 여친 분이 레볼루션 멤버 한 분의 누나인데 동생이 카페 차려 줘서 레볼루션 팬들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형이 저한테 자기도 카페 하나 차려 달라고 막.”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 정도는 알겠다. 누가 봐도 장난식으로 한 말이잖아, 인마.
한숨을 푹 내쉰 류재희가 충고조로 말했다.
“형, 철 좀 들어.”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래, 인마. 철 좀 들어라.”
“다들 형이 없어서 그래. 형이 하는 모든 말은 삐딱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고요!”
“호오, 그래? 내 말도 삐딱하게 들리냐?”
손 관절을 뚜둑 꺾으며 묻자 김도빈이 황급히 조건을 추가했다.
“모든 형이 아니라 친형 한정이요!”
“아, 그래서 류재경이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구나.”
“그냥 친형이 아니라 연년생 친형!”
저녁 먹자는 엄마의 말에 김도빈을 갈구는 걸 멈추고 식탁으로 향했다. 류재희가 차례, 제사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내 귀띔 덕분인지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은 전 몇 개를 제외하곤 잘 차린 집밥이었다.
“너 저녁 먹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 알았냐?”
“형, 이 밤중에 저를 쫓아내시는 거예요? 안 그래도 저희 엄마한테 지금 문자 왔는데 저 며칠간 집 들어가면 맞아 죽어요, 진짜. 메댄 없이 4인조 레브로 활동하고 싶으시다면 저를 돌려보내세요.”
내 으름장에 김도빈이 재빨리 고개를 저으며 집에 돌아가면 안 되는 이유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오랜만에 집이 북적거려서 좋네. 간만에 명절 같아.”
“그러게. 이렇게 집이 시끌시끌한 게 얼마 만인지.”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김도빈 그냥 여기 있으라고 내버려 둘까.
시끌시끌한 소음 비중의 70%가 김도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