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0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9화(409/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09화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체대 설 특집 방영일이었나. 녹화야 훨씬 전에 했지만 설 특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만큼 녹화와 방영에는 텀이 있었다.
물론 녹화했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는 않았다. 그걸 어떻게 잊겠는가.
일단 녹화 날에 견하준과 내가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며 쌓였던 것을 거하게 터트리고 견하준의 술버릇을 직관하게 된 덕에 잊지 못할 날이 되어 버렸을뿐더러.
KICKS가 왕따 및 낙하산 논란으로 화려하게 터지면서 허구한 날 정이서 개인 팬덤의 실드 및 KICKS 타멤 팬덤과 우리 팬덤 측의 반박 증거로 언급되던 게 아체대 녹화 인증샷 및 목격담인데.
하와이 여행과 차연호가 내게 던진 진실, 숙소 이사와 류재희와의 사이 개선도 일 및 가족 이슈 등의 제법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아체대 녹화 날은 기억 저편에 묻히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윤정아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딱히 아체대를 보고 싶지 않았다.
KICKS의 단독 컷들이 통편집당했다고 해도 경기에 낙하산 놈의 얼굴이 나올 텐데 내가 그 꼴을 굳이 봐야 할 이유가?
그리고 비록 비자발적이라 하더라도 논란의 불판을 뜨겁게 달군 낙하산과 함께 붙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통편집당했어도 속이 쓰릴 것 같고, 우리가 낙하산 놈과 함께 붙어 있는 모습이 통편집을 피하여 송출되어도 KICKS랑 엮인 일이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질 가능성도 있어 성가시고.
물론 내가 시청하지 않는다고 해서 후자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보면서 속 쓰린 것보다는 낫겠지.
“아체대가 뭔데?”
사촌 형 하나의 물음에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을 가볍게 던졌다 받으며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이돌 체육대회. 줄여서 아체대.”
“설마 아이돌 다 모아서 체육대회 하는 거야?”
“오, 정확해. 바로 그거야.”
“와, 듣기만 해도 진짜 재미없어 보이는데.”
사촌 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질색했다. 그 와중에도 눈은 착실히 티비 화면을 향해 있었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사람들한테는 당연히 재미없지.”
“하긴, 전 세계 국대 모인 올림픽도 아니고 아이돌들 모아서 하는 체육대회인데 뭐 긴장감이나 있겠어? 잘 쳐줘 봐야 대학 체육대회 수준이겠지.”
물론 올림픽에 비하면 개노잼이라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긴 했지만 뭔가 면전에서 들으니 영 자존심이 상했다.
“흠, 다른 건 몰라도 내가 나간 축구 결승전은 긴장감 넘쳤는데.”
“해축급?”
“실력 차가 얼마나 나는데 해축급이겠냐고. 그래도 내 체감상으론 동네 조기 축구 수준은 벗어난 정도?”
“그러면 그 경기만 보자. 축구 언제 해?”
“나도 모르지?”
어깨를 으쓱하자 사촌 형이 김샌 얼굴을 했다. 윤정아가 틀어 놓고 계속 보고 있으면 축구 경기가 언젠가는 나온다고 설득을 시도했지만 이 방 안의 누구에게도 그다지 끌리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아니야, 그냥 안 봐도 될 것 같아. 그냥 해축을 보지 뭐 하러 그걸 봐.”
점점 간절해지는 윤정아의 눈초리에 슬그머니 리모컨을 숨기며 물었다.
“정아야, 나중에 다시 보기로 보면 안 되냐?”
“나 레브 봐야 해!”
윤정아의 절박한 외침에 나, 김도빈 류재희를 차례로 가리키며 맞받아쳤다.
“레브 여기 있잖아! 여기 셋이나 있잖아!”
지금 5분의 3이, 절반 이상이 여기에, 자기 앞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왜 레브를 티비 방송 안에서 찾고 난리야!
레브 보고 싶으면 여기 셋 실컷 보면 되지.
그리고 회귀 전에는 계속 갈아타더니만 지금은 아직도 레브 파고 있냐고. 나는 너한테 네가 전에 파던 보이그룹 싸인 다시 받아 주려고 올해 나올 그 그룹 프로듀싱도 고려하고 있었는데.
내 지적에 윤정아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5 빼기 2는 0.”
“5 빼기 2가 3이지 왜 0이야?”
헛소리나 다름없는 생뚱맞은 수학 공식에 눈을 가늘게 뜨고 따져 묻자 류재희가 키득거리며 설명해 주었다.
“저거, 두 명이 빠진 레브는 레브가 아니란 소리예요. 왜, 정이서 처음에 KICKS 탈퇴한다는 기사 뜨고 댓글에 그런 말 있었잖아요. 6 빼기 1은 0이라고. 그거랑 똑같은 거예요.”
“와, 설명 진짜 1타 강사급이다. 이 정도면 이든 오빠도 충분히 이해했을 듯.”
윤정아가 감탄하며 류재희를 향해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야, 윤정아. 솔직히 까놓고 말해 보자. 5 빼기 2가 3이든 0이든 너 그냥 예현이 형 보고 싶어서 그러지.”
윤정아가 뜨끔한 표정으로 내 시선을 피했다. 과연 서예현을 데리고 왔으면 그때도 아체대를 본다고 고집했을지 아니면 아체대를 포기하고 실물 서예현을 눈에 담고 있었을지 궁금했다.
티비에 방영 중인 야인시대는 곧 수많은 짤방을 탄생시킨 가장 유명한 장면에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고, 이 방에 있는 사람 중 이걸 놓치고 아체대를 보고 싶어 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아, 류재희랑 김도빈 빼고.
그래도 저 두 녀석도 아체대냐 이거냐 하면 이거 고르지 않을까?
“정아아, 이참에 최애를 바꿔 볼 생각은 없니?”
류재희는 몇 번을 만났으니 나름 윤정아한테는 실물 뉴페이스일 김도빈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살살 회유하자 윤정아가 더럽게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빠, 최애는 바꾸고 싶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야. 최애는 그러니까, 따지자면… 뺑소니 같은 거지. 갑자기 튀어나와서 속수무책으로 치고 가는 거라니까.”
…비유가 저게 맞아?
“가슴이 반응해야 한다고. 물론 내가 올팬 기조이긴 해도 깨물어서 아픈 손가락 하나쯤은 다들 있는 법이잖아? 오빠가 하준이 오빠를 너무나도 편애해서 멤버들을 견하준과 비견하준으로 나누듯이?”
…비견하준 밈을 쟤도 아네. 윤정아까지 알 정도면 대체 얼마나 퍼진 건가.
그래, 쟤도 데이드림이니까 알 수도 있지. 방송에서도 멤버들이 비견하준 차별을 멈춰 주라고 몰아간 게 한두 번이냐.
“그래도 형 요즘 공정해졌어요.”
김도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나 대신 윤정아의 말을 부정해 주었다.
“아, 이든 오빠가 이제 멤버들한테도 하준이 오빠한테 하는 것처럼 유하게 대해요?”
“아니요, 그 반대요. 물론 여전히 비견하준 차별은 존재하지만 예전처럼 범접하지 못하는 그사세까지는 아니랄까.”
“에휴, 눈치 없는 도빈이 형. 여전히 그사세는 그사세야. 그냥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 조심스러움이 사라져서 그렇게 보이는 거지.”
류재희가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어 김도빈의 말을 정정했다. 내가 언제 견하준을 매정하게 대했느냐고 김도빈에게 반박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김도빈의 말이 맞는 것 같아 류재희한테 물었다.
“그래? 도빈이 말이 맞지 않냐? 이전에야 뭐, 나랑 하준이랑 둘이 알고 지낸 기간이 너희들보다 현저히 차이가 났으니까 그랬다지만 지금은 다 한 가족이고 한 팀이지.”
그리고 사이 개선도는 김도빈과 서예현이 견하준보다 먼저 100%를 달성했다.
“하준이 형한테 물어보세요. 하준이 형은 제 말이 맞다고 할걸요. 형도 도빈이 형만큼 눈치가 워낙 없어서.”
“짜샤, 당사자인 내가 더 잘 알지 네가 더 잘 알겠냐?”
픽 웃으며 류재희의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지금 아체대 진작 시작했겠다고 발을 동동 굴리는 윤정아한테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거실 텔레비전으로 보는 건?”
“어른들 다 계시는데? 그리고 할아버지 지금 대국 보시는데?”
“너는 이미 전적이 있지 않냐? 우리 리얼리티 추석 특집을 할아버지랑 나란히 본 전적이?”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고. 그때는 오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고, 지금은 오빠가 있잖아.”
돌겠네. 내가 어릴 적부터 윤정아의 습관을 단단히 잘못 들인 모양이다. 다른 회유 방법을 겨우 찾아냈다.
“아니면 예현이 형이랑 영상 통화라도 하게 해 줘?”
나 말고 서예현을 희생시키면 되지 않을까. 물론 서예현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몰랐기에 영상 통화를 받아줄지는 미지수였다.
아체대 끝날 때까지 서예현이 열심히 입을 털면 우리는 야인시대를 마저 볼 수 있고, 윤정아는 자기 최애와 영상 통화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진짜? 하게 해 줄거야? 그런데 예현 오빠 혹시 이번에도 아체대에서 양궁 나갔어?”
“양궁? 나갔지. 재희랑 하준이도 나갔지.”
“그럼 그거 봐야 해. 영상 통화도 하게 해 주면 정말 이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지만 엘프 예현의 활약을 놓칠 수는 없어.”
“너 나한테 갚아야 할 은혜가 아주 산처럼 쌓이고 있다? 먼저 콘서트 티켓의 은혜부터 아체대 본방 사수를 포기해서 오늘 갚는 게 어떠냐? 다시 보기로 집 가서 편하게 보라니까. 너 이제 입시도 안 하잖아.”
치사하지만 윤정아한테 콘서트 초대석 티켓의 은혜를 들먹이다가 귓가에 흐릿하게 들리는 소리에 몸을 굳혔다.
“야, 정아야, 그런데… 할아버지 지금 대국 보신다고 안 했냐…?”
딱딱하게 굳어 삐그덕거리며 묻는 내 질문에 윤정아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거실에서 DTB 프로듀서들 목소리랑 디셈브 목소리랑 내 목소리가 들리지…?”
그리고 그 세 목소리가 모두 나오는 편수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패자부활전.
그리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겠다며 그 패자부활전에 입고 나갔던 의상도 떠올랐다.
내가 잘못 들었겠지, 싶었지만 계속해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내 목소리, 그리고 이 방에서 보이지 않는 이헌이 형.
-아, 이든이가 저 프로에서 1등을 한 거야?
-네. 아, 그런데 하필 이 편이… 할아버지, 잠깐 돌렸다가 다시 틀어도 괜찮을까요?
-내버려 둬라. 한번 봐 보려니까.
그리고 거실에서 들려오는 큰아버지와 이헌이 형과 할아버지의 목소리.
-여러분, 님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토록 기다려 왔던 장면이 드디어 티비 화면에 등장했음에도 그걸 보는 걸 망설임 없이 포기하고 거실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류재희와 김도빈이 갑작스러운 내 돌발 행동에 당황하며 내 뒤를 쫓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니, 시발 덥넷 미쳤나고! 왜 패자부활전 재방을 설날에 틀어 주고 난리냐고!
제발, 제발…! 늦지만 않았길…!
마침내 거실에 다다라 티비 화면으로 고개를 돌리자…
“으아악! 안 돼액!”
큼직한 거실 티비 화면엔, DTB 패자부활전의 내가 목 끝까지 올려 놓았던 아이다스 저지 지퍼에 이제 막 손을 가져다 대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