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Blank Slate Regression for the Idol That Lost His Original Mindset RAW novel - Chapter (4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41화(41/47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41화
그렇다면 상당히 요긴한 보상이다.
생수병의 뚜껑을 따려다가 멈칫했다.
다른 때였으면 당장 원샷했을 테지만, 지금은 아픈 놈이 하나 더 있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나는 병을 내려다보며 고민에 잠겼다.
내가 먹어서 시스템이 심어 놓은 엿 같은 시한폭탄을 제거하여 인간 평균 기대수명보다 먼저 가는 불상사를 막을 것인가.
아니면 컴백 이틀 앞두고 독감에 걸려 내일까지 나을 수 있을지 미지수인 녀석에게 먹여 활동에 지장 없게 할 것인가.
근시안적으로 보자면 후자가 맞겠지만 멀리 보면 역시 내 몸을 생각하는 게…….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각혈 페널티입니다!]그냥 견하준에게 먹이라고 대놓고 말해라.
혀를 차며 생수병을 자동차 좌석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견하준이 입원했다는 병원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리려는 김도빈을 제지했다.
“너는 숙소로 가 있어. 괜히 너까지 옮지 말고.”
문을 열고 내리기 전, 김도빈이 내 팔을 덥석 잡았다.
아이템 물약은 한 병뿐이거든? 너까지 독감 걸려 앓아누우면 성가셔지니까 제발 고집부리지 말고 순순히 숙소 좀 들어가라.
미간을 팍 찌푸리자 즉시 손을 놓은 김도빈이 음료수 상자를 공손히 내밀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음료수 세트 가져가시라고…….”
“그냥 숙소에 가져다 놔.”
어차피 견하준도 오늘 안으로 퇴원할 테니 병문안 선물은 만병통치물약인가 뭔가 하나로 충분했다.
“병문안 가는데 빈손으로 가는 건 예의 아니랬는데요.”
“응, 예의 없는 놈 하련다.”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만병통치 삼X수 생수병 달랑달랑 챙겨 들고선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귀찮고, 내가 생각해도 만병통치 어쩌고는 현실성이 없었기에 그냥 내가 인성 터진 놈 하기로 했다.
응급실 침대에 링거를 꽂고 누워 있는 견하준과 그 옆을 지키고 앉은 서예현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으헉, 뭐야? 요즘은 도플갱어도 돌아다니나 봐.”
서예현이 기겁하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내려다보며 한 소리 했다.
“뭐라는 거야. 김도빈한테 옮았냐?”
“분명 너 119 구급차에 실려 가서 입원했다고 겨우 두 시간 전엔가 들었는데? 사람이 두 시간 만에 회복하는 게 가능해?”
“이상 없어서 수액 맞고 방금 퇴원했지. 아직 회복이 완전히 된 건 아니지만?”
수면 부족이야 잠만 하루 정도 푹 자면 오케이고, 영양 불균형이야 밥만 잘 먹으면 해결이지.
“대체 구급차는 왜 부른 건데?”
“아니, 그럼 피를 갑자기 한 바가지를 토했는데. 119 신고를 안 해?”
“너는 뭐 어떻게 되먹은 인간이길래 피를 한 바가지 토해 놓고 두 시간 만에 멀쩡히 걸어 다니냐? 사람은 맞냐?”
열이 올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눈을 감은 견하준을 내려다보다가 여전히 헛소리를 나불대는 서예현을 향해 손짓했다.
“지금 밑에 매니저 형 기다리고 있거든? 내가 간호할 테니까 형은 먼저 숙소로 가 있어.”
“아니, 잠깐…… 환자가 환자를 간호해도 괜찮던가……?”
그야 수건 짜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맡기는 것보단 낫겠지.
하지만 나는 학습 능력이 있는 인간인 터라 초심도를 위해 그 말을 속으로 꾹 삼키며 고개를 까딱했다.
서예현이 매니저 형의 전화를 받으며 응급실을 벗어났다.
눈을 살짝 뜬 견하준이 침대 옆의 의자에 털썩 걸터앉은 나를 발견하고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입원했다며.”
“그랬지. 지금은 퇴원했지만.”
“왜 왔어. 여긴 예현이 형한테 맡기고 네가 숙소를 들어가서 쉬었어야지.”
열에 들떠 잔뜩 가라앉고 쩍쩍 갈라진 목소리를 듣자 골이 당겨 왔다. 살짝 손을 대 본 이마는 뜨거웠다.
와, 만병통치물약인지 만수무강물약인지 아무튼 내가 안 마시길 잘했다.
컴백 앞두고 저렇게 목이 나가면 라이브는 어떻게 하냐고.
“불안해서 그 인간에게 퍽이나 맡기겠다. 더 심해지면 어쩌려고. 일단 물 좀 마셔. 목 다 나갔네.”
자연스럽게 만병통치약인지 그냥 맹물인지 모를 액체가 담긴 생수병을 내밀었다.
의심 없이 건네받은 견하준은 목이 말랐는지, 모두 들이켰다.
견하준의 목울대가 꿀렁이는 걸 긴장한 눈으로 지켜보다가 빈 생수병을 입에서 떼자마자 득달같이 물었다.
“어때? 몸 좀 괜찮아진 거 같냐?”
멀뚱히 나를 보던 견하준이 짧게 고개를 저었다.
너는 무슨 물 한 병 마신 거로 그런 말을 하느냔 표정이었다.
손등을 대어 본 이마는 여전히 뜨거웠다.
와, 시스템 개자식이 나한테 사기를 쳤네? 뭐어? 만병통치? 마안벼엉토옹치이? 만병통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젠 약장수로 투잡 뛰냐? 그래서 그리 바쁘셔서 내 문의도 다 씹어 드셨어?
사기꾼 약장수한테 홀랑 속아 넘어간 내가 등신이지, 내가 등신이야. 아이고, 아까운 내 랜덤 티켓!
‘아, 망했다. 당장 컴백 어쩌냐.’
절망에 빠져서 대가리만 쥐어뜯은 지 10분 후.
“으음……? 좀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
열에 달떠 가빴던 숨소리가 조금 차분하게 돌아왔다. 목소리 역시 살짝 가라앉긴 했지만, 아까보다는 확실히 상태가 괜찮았다.
시스템에게 한 바가지 쏟아붓던 욕을 멈추고 머쓱하게 뒷머리를 헤집었다.
거, 쿨타임이 있으면 있다고 빨리빨리 말을 해 줘야지.
* * *
한창 어두운 새벽이 돼서야 열이 완전히 가라앉은 견하준은 퇴원 절차를 밟고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나랑 견하준, 서예현, 이렇게 셋이 쓰는 방이었지만 혹여 옮을지도 모르니 아픈 놈들 격리해 놓는다는 핑계로 서예현을 김도빈과 류재희가 쓰는 방으로 쫓아냈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편하게 (이 빌어먹을 반지하에서 그나마) 넓은 방을 쓸 수 있었다. 물론 아픈 놈들은 없다는 게 함정.
견하준은 이미 눈을 감고 자고 있었지만, 나는 하도 그놈의 만병통치약이 눈앞에 아른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워 뒈질 것 같다. 그것만 먹었으면 각혈 페널티는 이제 걱정도 안 됐을 텐데 왜 나는 그걸 견하준에게 먹여서……! 아니, 먹어야 할 상황이긴 했다만…….
“나 버린 놈이 뭐가 예쁘다고, 하…….”
나지막하게 한탄하자 생각지도 못한 대꾸가 돌아왔다.
“아직도 원망해?”
“깜짝이야, 안 잤냐?”
휙, 옆을 돌아보자 잠에 취해 반쯤 뜨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그냥 계속 푹 자라고 이불을 얼굴까지 손수 올려 주며 이죽거렸다.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는 알고?”
“내가 뉴본에서 나오고…… 네 연락 무시했잖아.”
그 중얼거림에 이불을 견하준의 머리끝까지 덮어씌우던 손이 멈칫했다.
회귀 전에 견하준이 내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기 전, 그러니까 나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부채감으로 붙들고 있는 것도 더는 못하겠다, 정말로. 나는 할 만큼 했어. 너는 모르겠지만.]그때는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견하준의 저 말을 듣자 퍼즐 조각이 모두 맞춰졌다. 기가 막혀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상체를 들고 확, 이불을 걷었다. 날 선 눈빛으로 견하준을 내려다보며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말했다.
“혼자 멋대로 지랄하지 좀 마. 그딴 걸로 너 원망한 적 한 번도 없어. 누굴 멋대로 속 좁은 새끼로 만들어.”
[비속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2]진지한 이야기 하고 있을 때는 제발 OFF 모드 좀 해 줬으면 좋겠다. 가오 상하게 고통으로 움찔거리게 만들지 좀 말고.
“그딴 걸로 홀로 부채감 가지고 사람 억지로 붙들고 있으려 하지 마. 너 그거 기만이야.”
기분이 빠르게 진창으로 처박혔다. 그럴 수밖에.
친구라고 생각했던 놈이, 내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걸 부채감 삼아 오직 그것 때문에 나를 붙들고 있었다는 걸 알아 버렸는데.
그것도 연기가 특기인 놈이.
“지금까지 내 편 들고 나 챙겨 줬던 것도 너 혼자 가지고 있던 그 어쭙잖은 부채감 때문이었냐?”
가시 돋친 내 말에 견하준이 피식 웃었다.
“부채감만으로 사람 챙기는 놈이 어디 있어, 이든아. 네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건 사실인데 우리 우정까지 곡해하지는 말아 줬으면 싶다.”
여전히 그 말을 들어도 나는 견하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겨우 그까짓 걸로 왜? 뉴본이 뭐 같은 짓 한 거로 네가 나한테 사과할 게 뭐가 있는데?”
다시 풀썩 누워 천장만을 응시하자 옆에서 견하준이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냥, 항상 미안했어. 나 때문에 네가 뉴본에서 데뷔라는 좋은 기회 차버리고 뛰쳐나온 것만 같아서…… 내가 그때 네 연락 무시하지 않고 괜찮다고 말해 주기만 했어도…….”
담담함을 표하던 목소리가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네게 미안하다고 하는 순간 내가 네 미래까지 망쳤다는 걸 인정해야 했으니까. 그게 무서워서 그 한마디를 못 해서…….”
정말로 망돌 길을 걸었던 회귀 전의 과거가 생각났다.
저도 힘들 텐데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선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예민해지던 나를 우리 엄마인 양 챙기고.
이미 망가진 서예현과 내 사이를 어떻게든 중재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견하준이.
그때의 견하준이 가진 부채감은 우리가 망해 갈수록 점점 견하준을 짓눌러 갔겠지. 부채감과 우정이 주객전도될 만큼.
회귀 전 우리의 관계에서 온전한 피해자는 없었다. 우리는 둘 다 서로에게 있어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였다.
그럼 그 일이 싹 지워진 지금, 아직 서로에게 빚을 지워 놓지 않았던 지금이야말로 이미 정해져 있던 우리의 미래를 틀 적기가 아닐까.
마른세수하며 부러 가볍게 투덜거렸다.
“너는 지금 KICKS 꼬라지 보고도 그런 말 하고 싶냐? 착각하지 마. 나는 너 때문에 나온 게 아니라. 그냥 데뷔조에 낙하산 꽂을 때부터 거기 답 없는 게 훤히 보여서 나온 거니까.”
“나 참…… 언제는 나만큼 네 노래 가이드보컬 마음에 들게 부르는 사람 없어서 나왔다고 했으면서.”
“그 이유도 한 3할 정도는 있고.”
농담처럼 던진 말에 날 선 분위기가 완전히 풀렸다.
서로를 향했던 오해와 밑바닥에 잔류하던 감정들 역시.
드디어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다시 풀어서 바르게 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그 ‘나 버린 놈’이라는 소리는 대체 어느 문맥에서 나온 건데?”
“별 건 아니고, 한 7년 후쯤에 네가 나 손절 치는 꿈을 꿔서.”
그 대답에 약간 허탈함을 담은 눈으로 나를 보던 견하준이 이불을 제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웅얼거렸다.
“악몽 꿨구나. 컴백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랬나 보다.”
“글쎄…… 그래도 완전히 악몽은 아니었어. 아마도…… 그리고 덕분에 나름대로 오해도 풀었잖냐. 그럼 된 거지.”
“그래, 그러네…….”
잠에 취해 늘어지는 대꾸를 들으며 나 역시 스르륵 눈을 감았다.
눈꺼풀을 완전히 닫기 전, 덜 닫힌 암막 커튼 틈새로 푸른 새벽녘의 빛이 살짝 비쳤다.